Immortal RAW novel - Chapter 168
168 당연히 훌륭하지
진무앙은 태연하게 환무경을 집어 들었지만 그걸 본 사공춘은 사색이 되었다
대경실색한 그가 비명 같은 신음을 토하며 소리쳤다.
“허걱! 진 대가, 그걸 집어 들면 안 됩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좌대가 박살이 나며 괴의의 해골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콰지직-
동시에 폭발하듯 솟구친 진회색의 빛기둥이 단숨에 흰색 빛을 집어삼켰다.
우르르르르-
엄청난 진동이 광장을 뒤흔들며 천장부터 시작된 회색 안개가 사방으로 무섭게 퍼져 나갔다.
사공춘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아… 이를 어이할꼬…….”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간덩이가 조막만 한 자식. 네 눈에는 혼돈성흔의 마력만 보이고, 나는 또 안 보이나 보네.”
말과 함께 그는 사공춘의 어깨를 와락 잡아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홱 집어 던졌다.
예상치 못한 행동이라 사공춘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헉!”
“넌 구경이나 해.”
그리고 진무앙은 암월도를 도갑에서 꺼냈다.
스르르르릉-
그는 암월도의 손잡이를 거꾸로 잡고 도의 끝을 진회색 빛기둥이 솟구치는 연못 바닥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광장 전체를 짓누르는 막대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앞으로의 전개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에 사공춘과 일행은 침을 꿀꺽 삼키며 숨을 죽였다.
터벅터벅.
진무앙은 진회색 빛기둥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정중앙에 우뚝 섰다.
암월도를 천천히 치켜든 진무앙이 무겁게 가라앉은 어조로 소리쳤다.
“암월, 간다!”
말과 함께 그는 암월도를 빛기둥의 중앙에 가공할 기세로 찔러 넣었다.
푸확!
연못에 고여 있던 빛무리가 폭발하듯 치솟았다.
콰콰콰콰콰콰-
동시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대한 진동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이 내공을 운용해서 균형을 잡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력한 진동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직선으로 솟구치던 진회색 빛기둥이 이무기처럼 꿈틀거리며 진무앙을 휘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강렬한 신광이 어린 그의 눈과 입가에 떠오른 냉혹한 미소와 함께.
“개새끼도 아니고, 그의 부림을 받는 곁가지에 불과한 놈 따위가 감히 내게 저항을 해보겠다는 거냐!”
진무앙의 비웃음 섞인 일갈과 함께 암월도에서 어마어마한 검은빛 해일이 일어나 진회색 빛무리를 찍어 눌렀다.
콰콰콰콰- 쿠쿠쿠쿠-
그의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이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창처럼 올올이 하늘로 곤두섰다.
쩌저저저저적-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진동을 견디지 못한 천장과 바닥이 가뭄 든 논바닥처럼 갈라지며, 크고 작은 돌조각과 바위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퍼퍽! 쿠쿠쿵- 콰콰쾅!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떨어지는 돌과 바위들을 정신없이 쳐냈다.
보석 가루와 회백색의 안개가 사방을 뒤덮었고, 꿈틀거리는 빛의 폭풍이 광장을 미친 듯이 질주했다.
진동은 반 각 넘게 지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혼란이 멈추며 칠흑 같은 어둠과 죽음 같은 정적이 찾아들었다.
유코와 유가흔, 남궁경과 황보평이 품에서 야명주를 꺼냈다.
네 개의 야명주 덕분에 사람들은 상당히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연못이 있던 곳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아…….”
사람들의 입에서 안도 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연못도 빛의 기둥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은 깊이가 일 장가량 되는 구덩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진무앙이 허공을 밟고 서 있었다.
“무앙!”
“진 대가!”
“진 대협!”
유코와 유가흔이 바람처럼 진무앙에게 달려갔다.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허공을 미끄러지듯 걸어 연못가로 나왔다.
그때 남궁경의 옆에 서 있던 사공춘이 힘없이 쓰러졌다.
덥석.
흠칫하며 사공춘을 부축하듯 안은 남궁경의 얼굴에 아연실색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였던 사공춘은 세월을 한꺼번에 먹은 것처럼 중년인으로 변해 있었다.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먹물처럼 새카맣던 머리도 군데군데 희끗희끗했다.
남궁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진무앙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 때문에 그런 거 아니거든! 마력과 신성력이 소멸할 때의 충격을 못 버티고 기절했을 뿐이야. 곧 눈을 뜰 거다.”
“끄응…….”
진무앙의 말이 신호이기라도 한 것처럼 신음과 함께 사공춘이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남궁경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등에 잡힌 주름을 보고는 상황을 짐작한 듯 길게 숨을 내쉬며 몸을 세웠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산 그였다.
드디어 그날이 왔으니 젊음을 잃은 것이 무어 그리 대수겠는가.
진무앙이 그에게 물었다.
“신성력이 사라진 충격이 꽤 클 텐데, 견딜 만하냐?”
사공춘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말했다.
“어린 시절 입은 은혜를 아직 갚지도 못했는데, 진 대가께 또다시 생명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 하찮은 힘이나마 필요하실 때는 언제든 말씀을 해주십시오. 뼈가 가루가 된다하여도 반드시 결초보은하겠습니다.”
진무앙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너, 벌써 치매냐? 헤어진 지 반백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내가 그런 거창한 말 싫어한다는 걸 그새 잊은 거야?”
사공춘은 경외 어린 눈으로 그를 보며 말을 받았다.
“진 대가께서 베푸신 은혜가 태산과 같은데, 이 정도를 어찌 거창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진무앙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이 재미없는 놈. 얼른 일어나. 네가 그러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잖아.”
“감사합니다, 진 대가.”
일어난 사공춘이 다시 한번 정중하게 포권하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은 그에게 불쑥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얼른 내놔.”
“예?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뭐긴 뭐겠냐, 흡철령이지.”
사공춘은 놀란 눈으로 진무앙을 보다가 지체 없이 허리춤에서 세 개의 방울이 달린 쇠로 된 나뭇가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진무앙에게 건네며 물었다.
“환무경과 흡철령을 저희가 가진 것도 알고 계셨던 겁니까?”
“밖에 있을 때는 몰랐지. 하지만 들어와서 바로 알았다. 나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서 혼돈성흔의 마력을 조금이라도 정화시킬 수 있는 물건은 이것들뿐이야. 그런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냐.”
“과연 천하에 진 대가의 눈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궁금해하지도 마라.”
“훌륭하십니다.”
진정이 어린 경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진무앙이 말을 받았다.
“당연히 훌륭하지. 내가 암천… 흠흠… 나, 진무앙이야.”
철없는 아이 같은 몸짓과 말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코와 유가흔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제는 진무앙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조금씩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깨달은 그의 성격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을 쓰기는커녕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 제멋대로 사는 남자의 전형이었다.
진무앙이 사공춘에게 물었다.
“괴의가 먼저 들어온 거지?”
“예.”
“너는 괴의의 연락을 받고 온 거고?”
“예.”
사공춘이 해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괴의 만공은 사파, 신의 사공춘은 정파를 대표하는 최고의 의원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한 스승 밑에서 사사한 사형제지간이었고, 피를 나눈 형제처럼 사이가 좋았다.
단지 추구하는 의술의 방향과 병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 사람들이 제멋대로 그들을 정사로 나누어 평가했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십수 년 전 사형인 만공은 사공춘에게 기이한 신기가 느껴지는 장소를 발견했다며 그곳을 조사하고 오겠다는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수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그로부터 사공춘에게 다시 연락이 온 건 이십 년 전이었다.
진무앙이 사공춘의 말을 끊었다.
“만공이 어떤 방법으로 네게 연락을 한 거냐? 그놈은 마력을 누르느라 꼼짝도 못하는 형편이었을 텐데.”
“이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사공춘이 넓은 소맷자락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진무앙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금모홍안?”
“역시 한눈에 알아보시는군요. 맞습니다. 이 친구는 금모홍안입니다. 만공 사형이 젊었을 때 인연을 맺었죠. 이름은 ‘홍아’라고 합니다.”
사공춘의 손바닥 위에는 키가 여섯 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형처럼 작은 황금빛 털과 보석처럼 붉은 눈을 가진 원숭이가 앉아 있었다.
금모홍안은 석채은이 가진 무영백랑보다도 더 희귀한 영물이었다.
그것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영특한 데다, 맹수를 손으로 찢어 죽일 수 있는 완력까지 가졌다.
하지만 금모홍안이 진정한 영물이라 불리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은 날개가 있었고, 하루에 천 리를 날아도 지치지 않았던 것이다.
사공춘이 말을 이었다.
“홍아가 사형이 무저불회곡에 있다는 것과 흡철령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흡철령을 찾은 뒤 남궁세가로 가서 록제를 만나 후사를 부탁하고 이곳으로 달려왔습니다.”
“만공이 느낀 신기의 정체가 환무경인 거지?”
“예.”
“그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 환무경이 혼돈성흔의 마력을 막고 있었고?”
“그렇다고 했습니다.”
“혼돈성흔의 마력이 가진 위험성을 깨달은 만공이 환무경과 함께 그것을 막다가 힘에 부쳐 너를 부른 거고?”
“예.”
“만공에게 흡철령의 위치를 알려주어 네게 전하게 한 것도 환무경일 테지?”
“그렇… 습니다.”
“만공이 신령주를 얻은 게 언제냐?”
“사십년 전 운남에 갔을 때였습니다. 그것은 상고시대의 죽편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천재인 사형조차도 해석하는데 십수 년이 걸렸지요.”
“신령주를 깨운 만공이 환무경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낸 것이로군.”
환우지약의 세 파편은 신령주나 마령주가 깨어나면 서로의 위치를 알아차리는 공능이 있다.
사공춘이 경외 어린 눈으로 진무앙을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직접 겪은 것처럼 아십니까?”
“내가 누구라고?”
“암처… 음음… 진 대가이십니다.”
“맞아. 내가 그 암… 음음… 진무앙이라고, 이 자식아.”
진무앙이 연이어 물었다.
“신성력을 끌어낸 건 언제부터냐?”
사공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신성력이라 하심은……?”
“그 백색의 빛무리가 신성력인데, 이름도 모르고 있었냐?”
“몰랐습니다.”
“너희는 그럼 신성력을 뭐라고 불렀는데?”
“만공 사형과 저는 그 힘을 무상선력이라고 불렀습니다.”
“작명은 그럴싸한데 그거 원래 이름이 신성력이야. 아무튼 그럼 신성력을 끌어낸 게 네가 아니라는 거냐?”
“예. 무상선력은 십여 년 전 마력 동굴의 옆에 저절로 생겨난 작은 동굴에서 스스로 흘러나왔습니다. 하늘의 보살핌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것이 아니었다면 혼돈성흔의 마력은 벌써 세상 밖으로 퍼져 나갔을 테니까요.”
진무앙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돌아가는 상황이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신성력은 그 개새끼의 마력과는 상극이다. 그놈이 환무경을 매개체로 혼돈성흔의 마력을 이 세상으로 흘려보냈다는 건 알겠는데……. 신성력은 어떻게 이곳으로 넘어온 거지? 환우지약에 반응해서 스스로 찾아온 건가, 아니면 그쪽 세상에 개새끼에 맞서는 존재가 있는 건가?’
그는 고개를 휘휘 저어 잡념을 털어냈다.
고민한다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의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가자. 볼일 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