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69
169 와우, 정말 보기 좋구만
지하로 내려가는 우물.
진무앙을 선두로 일행은 줄줄이 우물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옷을 이어 만든 긴 밧줄을 쥐고 있었다.
물론 밧줄을 쥐고 앞장선 사람은 진무앙이었고.
땅에 발을 디딘 사람들의 얼굴엔 더는 진무앙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듯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사공춘을 포함한 열다섯 명을 밧줄에 달고 수백 장을 날아올라 우물을 벗어난 것이다.
그것은 제아무리 절세무공을 익힌 고수라 할지라도 사람인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위를 둘러본 사람들의 얼굴에 경계심이 어렸다.
우물을 둘러싼 경계선 너머엔 회색의 안개가 거대한 장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진 사공춘이 말했다.
“진 대가, 혼돈성흔의 마력이 흘러나오는 동굴이 사라졌는데도 아직 그 여력이 다 없어지지 않은 듯합니다.”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수백 년 동안 환무경을 통해 흘러들어온 마력이 이곳의 대지를 오염시켰다. 완전히 사라지려면 족히 한두 달은 걸릴 거다.”
혼돈성흔의 마력이 환무경을 통해 무저불회곡을 물들인 건 괴의 만공이 그것을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였다.
하지만 마력의 흐름은 괴물을 만들어내기엔 터무니없이 미약했다.
그렇게 미약하던 마력이 갑자기 강해진 건 만공이 신령주를 읊으며 환무경이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력이 강력해지는 일은 시간의 문제일 뿐, 어차피 일어날 사태이긴 했다.
그런데 만공이 환우지약을 깨우며 그 시기를 수백 년이나 앞당겼던 것이다.
환무경을 찾으러 무저불회곡으로 들어왔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목숨을 바쳐 마력이 곡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이래서 인생사는 새옹지마인 것이다.
사공춘이 말했다.
“그럼 경계선 밖엔 여전히 괴물들이 득실거리겠군요.”
“당연하지.”
“괴물들이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럽습니다.”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괴물들은 마력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나 세상으로 나가려 할 테니까.”
“어째서입니까?”
“마력은 괴물들의 힘의 근원이야. 그것이 없다면 몰라도, 남아 있는 이상 여기를 떠날 이유가 없지. 벌이 꿀이 있는 벌통을 떠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남궁경이 근심 어린 어조로 진무앙에게 물었다.
“진 대가, 그렇다면 마력이 사라진 뒤에 괴물들이 세상으로 나올 텐데, 혈마강시만큼이나 강력한데다, 수도 많은 그것들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요.”
진무앙이 딱하다는 눈으로 남궁경과 사공춘을 보며 혀를 찼다.
“쯧, 너희를 보면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남궁경이 되물었지만, 진무앙은 그것을 사뿐히 무시하고 사공춘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 괴물들하고 부딪히지 않는 길 알지?”
“예, 진 대가.”
“길 안내 잘해라. 다치는 사람 나오면 나중에 내 손에 작살날 줄 알아.”
“예…….”
진무앙이 유코와 유가흔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유코, 가흔.”
“응.”
“왜?”
“사공춘이 길을 아니까 그와 함께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눈이 동그래진 유코가 물었다.
“당신은?”
“쟤들 하는 말 못 들었어? 괴물들 때문에 세상이 걱정돼서 죽겠다잖아.”
“그래서 당신이 괴물들을 없애고 나오겠다는 거야?”
“응. 그러려고.”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당신은 세상에 상상도 못할 만큼 엄청난 도움을 주었어. 그것도 알아주는 사람이라고는 달랑 우리뿐인데다 무보수로. 그런데 당신이 왜 그런 수고를 또 해야 하는 건데?”
유코의 목소리에서 짜증과 걱정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녀는 세상이 망하든 말든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세상이 아니라 진무앙이었으니까.
진무앙의 시선이 남궁경과 남궁진, 남궁화를 차례로 훑었다.
그가 덤덤한 어투로 대답했다.
“구화산은 남궁세가의 영역이니까.”
유가흔이 차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남궁희, 그녀 때문인 거야?”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알면서 묻지 마. 내가 확인받는 질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
듣고 있던 남궁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 대가, 저희 세가 때문에 일부러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누님도 원치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마력이 사라지기까지 한두 달 정도의 여유가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렇다면 본가로 돌아가 안휘 무림의 정예들과 힘을 합쳐 이곳의 괴물들을 정리해도 늦지 않습니다.”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말처럼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면 괴물들과 함께 남궁세가도 사라질 거다.”
안색이 굳어진 남궁경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뇌리에 입구에서 우물까지 오는 동안 상대했던 괴물들의 공포스러운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진무앙의 말이 옳았다.
그처럼 강한 괴물들 수백과 싸운다면, 설사 이긴다 해도 남궁세가와 안휘 무림은 향후 몇십 년이 지나도 회복하기 힘든 괴멸적인 타격을 입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최악의 경우 동귀어진할 수도 있고.
진무앙이 옆에 있었기에 그는 냉철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괴물들을 경시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진 대가,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진무앙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짓을 했다.
“알았으면 됐어. 입 아프니까 자꾸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말고 가.”
유코와 유가흔은 망설이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녀들은 진무앙이 마음을 굳힌 이상, 이 세상엔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사공춘과 남궁경 등은 진무앙에게 깊게 포권을 하고 등을 돌렸다.
내딛는 그들의 발걸음은 진무앙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떠나야 하는 마음만큼이나 무거웠다.
남궁진 등의 후기지수들이 그들을 따랐다.
진무앙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암월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암월, 조금만 더 놀고 가자. 흐흐흐.”
그는 낮게 웃으며 암월도를 빼 들었다.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그의 입가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붉게 물든 그의 두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의 발길을 따라 핏물처럼 진득한 살기가 일어나 천지를 짓눌렀다.
적이라고 판단한 자들에 대한 진무앙의 자세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삭초제근, 그리고 발본색원이다.
* * *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서편으로 빠르게 기울어갈 때,
우르르르- 꽈르르르릉-
콰콰콰콰콰콰쾅!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삼백여 장 규모의 광대한 무저불회곡이 꺼지듯 지하로 함몰되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유성이 곡을 강타한 듯, 무저불회곡은 백여 장이나 주저앉았다.
그래서 생겨난 분지는 용솟음치는 지하수로 인해 거대한 호수로 변하고 있었다.
쏴아아아- 쿠쿠쿠쿠쿠-
곡을 빠져나와 십왕봉 중턱에 모여 있던 유코 등 일행은 자연재해 급의 재앙과도 같은 그 엄청난 광경을 보며 넋을 잃었다.
유가흔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인간, 저기서 대체 무슨 짓을 하기에 산이 무너지는 거야…….”
유코가 실성한 듯한 기색으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내 말이…….”
남궁경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끼어들었다.
“너무 늦으셔서 걱정스럽습니다. 벌써 사흘이나 지나지 않았습니까.”
사공춘이 그의 말을 받았다.
“아경, 걱정하지 마라. 신과 같은 분이 아니더냐. 괴물들은 그분의 옷깃도 건드리지 못할 거다.”
그때 뒤에서 들려온 손뼉 치는 소리가 그녀들의 말문을 막았다.
탁탁탁탁-
놀란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진무앙이 손을 털며 서 있었다.
“무앙!”
“진 대가!”
“진 대협!”
진무앙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문을 열었다.
“와우! 내가 한 일이지만 정말 보기 좋구만. 적어도 구화산에서는 이런 일로 다시 신경쓰지 않아도 될 거야.”
남궁경이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진 대가. 저희의 능력이 미천하여 짐만 되고 폐만 끼쳤습니다.”
진무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응. 맞아. 너희는 짐 덩어리였고, 민폐 자체였어. 그래서 내가 안 해도 될 고생을 어마어마하게 했지. 그러니까 이 악물고 노력해라.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 아니냐.”
“예.”
“명심하겠습니다.”
“뭐, 그래도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만.”
황보평과 후기지수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진무앙을 아는 유코와 유가흔, 남궁경과 사공춘은 그러려니 하며 한 귀로 흘리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이 정도의 말에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진무앙의 곁에서 며칠 버티지도 못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진리였지만, 적어도 진무앙이란 남자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말이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볼일도 다 봤으니까 알아서 제 갈 길 가자.”
“예?”
당황한 남궁경이 그에게 물었다.
“진 대가, 이대로 가시면… 잠시라도 본가에서 모실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진무앙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귀찮다.”
사공춘이 끼어들었다.
“진 대가, 이대로 헤어지기엔 너무 아쉽습니다. 며칠만이라도 모실 수 있게…….”
“사내놈이 모시긴 뭘 모셔? 난 그런 취미 없고, 넌 내 취향도 아니야.”
“예?”
사공춘이 당황해 말을 하지 못하는 사이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하고는 볼일 아직 안 끝났다.”
“예?”
진무앙의 말은 전음으로 이어졌다.
[아춘, 남궁세가에서 몸 좀 추스른 다음에 낙양의 수향루로 와. 네가 할 일이 있다.] [알겠습니다, 무존.]전음이라 사공춘은 드디어 진무앙을 부르고 싶은 호칭으로 부를 수 있었다.
진무앙이 황보평과 후기지수들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있었던 일, 너희끼리의 비밀로 남겨라. 가문의 윗사람이든 친구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내 이름은 더욱더. 이건 권유가 아니라 경고다.”
진무앙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얼어붙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여기서 있었던 일을 입에 올리는 자는 누구든 내 손에 죽는다. 그게 열 명이든 만 명이든, 개인이든 가문이든 상관없이. 말을 하고 싶을 때는 이 말을 꼭 기억해라. 멸문지화.”
할 말을 끝낸 그가 유코와 유가흔에게 고개를 돌리자 십왕봉을 찍어 누르던 가공할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유코, 가흔. 가자.”
어슬렁어슬렁, 휘적휘적.
진무앙은 경공을 사용하지 않고 걸어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유코와 유가흔의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유가흔이 그를 타박했다.
“꼭 애들한테 그렇게 무섭게 말을 해야 했어? 편하게 말해도 알아들을 텐데, 그렇게 겁줄 것까지는 없잖아.”
“가흔, 네가 아직 어리고 세상 경험이 적어서 그래. 세상엔 멀쩡하게 보여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들이 엄청 많아.”
유가흔은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렸다.
하오밀문을 삼십 년 넘게 이끌고 있는 자신을 어리고 세상경험 없는 아이 취급이라니.
속이 끓었지만 적어도 세월에 대한 것만큼은 진무앙에게 항의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꼬투리를 잡았다.
“맨날 자기 말을 믿어달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은 왜 못 믿어?”
진무앙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믿을 만하지만, 다른 놈들은 그렇지 못하니까.”
“하, 세상에나!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당신을 믿을 만하대?”
“내가.”
“아으으…….”
유가흔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을 못하자 유코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러게 왜 무앙하고 답도 없는 대화를 해. 저 사람이 언제 타박에 귀 기울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 없다는 거 알잖아.”
두 여자는 진무앙을 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느긋하게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신의 사공춘을 얻었으니 먼길을 걸어 무저불회곡까지 온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애초 이 여정은 괴의를 찾는 게 목적이었지만, 그는 죽었다. 하지만 그 대신 찾은 신의 또한 그에 못지않은 의술의 명인이다.
그러면 된 것 아니겠나.
그 과정에서 생긴 인과는 후일 닥쳤을 때 고민해도 되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오늘만 사는 남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