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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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석철과 곽운정은 진무앙에게 무한에 가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가 워낙 완강하고 고집스러워서 말해도 듣지 않을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는 길은 편안했다.
바람도 적당히 불었고, 선원들도 배를 다루는 데 능숙했다.
구강에서 내려 하룻밤을 보낸 진무앙 일행은 무한으로 가는 여객선으로 갈아탔다.
선수의 난간 근처에 서서 강바람을 쐬던 진무앙이 곽석철에게 물었다.
“곽 대협, 배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제가 잘못 본 겁니까?”
그가 이상하다고 할 만했다.
지주현에서 탔던 배에 비하면 손님들의 수가 눈에 띌 만큼 확 줄어 있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기색들이지 않은가.
곽석철이 장난기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상한 게 당연하네. 상황이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듯하군.”
곽운정이 곽석철에게 말했다.
“숙부님, 배에 탄 사람들의 분위기를 보니까 무림맹의 정보 통제도 실패한 것 같아요.”
곽석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멀쩡하던 이웃이 시체로 변해 있는데 언제까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겠느냐.”
곽운정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 배에 탄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을 알면서도 무한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군요.”
“모두 가족이나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생계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야. 역병이 무섭다고 자기만 훌쩍 떠날 수만은 없는 게 세상사지…….”
미간을 찡그린 진무앙이 물었다.
“곽 대협, 무한에 발생했다는 역병이 그처럼 무섭단 말입니까?”
곽석철과 곽운정의 눈이 마주쳤다.
곽석철이 미세하게 머리를 끄덕이자 곽운정이 진무앙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진 소협, 지금 무한에 창궐하고 있는 역병은 그 위력이 끔찍할 정도로 강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는 것이에요. 어떤 식으로 감염되는지도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일단 병에 걸리면 체력이 강하고 내공이 심후한 무림인조차 닷새를 버티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무림맹의 약왕부에는 뛰어난 의원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들도 역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겁니까?”
“예, 그분들도 손을 쓰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옆에서 곽석철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역병을 ‘겁화’라 부른다네.”
“두 분은 무한에 계셨던 것도 아닌 듯한데, 어떻게 그곳의 상황을 그처럼 잘 아시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곽석철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이 질문은 진무앙이 경륜이 있는 무림인이었다면 나올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와 곽운정은 강호 무림에 상당한 명성을 떨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진무앙이 강호 경험이 있었다면 그들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상황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곽석철이 진무앙에게 되물었다.
“자네, 혹시 성수곡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진무앙의 눈이 커졌다.
물론 그는 그 이름을 들어보았다. 아니, 굉장히 잘 알고 있다고 해야 옳았다.
“성수곡이라면… 신의 사공춘이라는 분이 계신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설마 두 분은 사공 노사의 제자이십니까?”
“성수곡에서 나온 건 맞지만 신의의 제자는 아닐세. 그분은 내게 사백이 되시네. 우리가 무한의 사정을 자세히 아는 건 무림맹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며 무한 현지의 사정을 생생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일세.”
“아……!”
놀라 눈이 커진 진무앙은 탄성을 토했다.
그는 곽석철의 말 중 앞부분에 꽂혀 있었다. 뒷부분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성수 노괴한테 제자가 셋이나 있었어?’
그가 성수 노괴란 부른 사람은 신의의 사부인 전대 천하제일의 성수 의선을 가리켰다.
‘강호엔 노괴의 기명제자가 사공춘뿐이라고 알려졌어. 그건 괴의 만공과 이 자식이 노괴의 정식 후인이 아니라는 말이고……. 둘 다 자존심 강한 그놈의 눈에 들 정도의 자질을 갖지 못한 때문이겠지.’
성수 의선은 괴팍한데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았던 사람이었다.
그가 평생 기명제자로 인정했던 사람은 신의 사공춘뿐이었다.
괴의 만공은 사공춘에 못지않은 천재였지만 성수의선의 눈에 찰 정도는 되지 못했다.
그래서 천하에 괴의와 신의가 사형제지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고.
괴의 만공은 평생 자신이 성수곡 출신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 그가 목숨을 걸고 무저불회곡에 들어가는 무리수를 두었던 건, 모두 사부인 성수 의선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생각을 이어가던 진무앙의 눈이 반짝였다.
‘가만… 성수 노괴의 이름이 뭐였더라… 곽일, 맞아, 곽일이었어. 오호라, 이 자식하고 운정이는 제자가 아니라 노괴의 핏줄이구나. 신기하네. 그 쭈글이 자식에게서 저런 미녀 후손이 나오다니.’
그의 시선이 면사로 가려진 곽운정의 얼굴을 향했다.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잡생각이 파도가 출렁이듯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곽석철이 사공춘을 사백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운정은 노괴의 증손녀겠군. 그리고 숙부라는 곽석철의 외모가 볼품없는 걸 보면 그녀의 부친도 비슷할 텐데…… 그럼 모친이 굉장한 미녀겠네.’
“진 소협,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아… 두 분이 성수곡에서 나왔다는 말을 들으니까 사부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요.”
곽운정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무슨 이야기인데요?”
“사부님께서 강호행도를 하실 때 대마두에게 암습을 받아 죽음의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 근처를 지나던 의선께서 사부님의 목숨을 구해주셨고요.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강호에서 성수곡 사람들을 만나면 그 은혜를 반드시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곽석철이 물었다.
“흠, 자네 사부님이 어떤 분인지 더 궁금해지는군.”
“죄송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신분을 밝히지 말라는 사부님의 엄명이 있어서…….”
곽석철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자 곽운정이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이해해요, 진 소협. 강호엔 소협의 사부님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역시 착해. 곽석철이 저 자식에 비하면 선녀가 따로 없어.’
슬쩍 곽석철을 째려보던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리며 강으로 시선을 돌렸다.
맞은편 무한 방향에서 세 척의 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진무앙은 세 척의 배 갑판에 흐르는 강렬한 살기를 읽었다. 그리고 그 살기가 선수에 있는 곽 씨 숙질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일백 장가량 떨어져 있었지만 배들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 여객선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곽석철과 곽운정도 곧 그 배들을 발견했다.
곽운정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저 배들, 뭔가 이상해요. 빨리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우리가 탄 배와 충돌할지도 모르는데…….”
안색이 딱딱하게 굳은 곽석철이 그녀에게 말했다.
“운정아, 너는 객실에 들어가 있거라.”
진무앙만큼 정확한 건 아니었지만 그도 세 척의 배에서 불길한 느낌을 받은 듯했다.
“예?”
“아무래도 저 배에 탄 자들은 이 배에 볼일이 있는 것 같다.”
진무앙이 말을 받았다.
“저들이 볼일이 있는 건, 이 배가 아니라 곽 대협과 곽 소저일 겁니다. 아무래도 두 분이 무림맹으로 가는 걸 원치 않는 무리가 있는 듯합니다.”
곽석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호초행이라더니 자네의 눈썰미도 평범한 편은 아니로군.”
진무앙은 움찔했다.
‘눈썰미가 좋은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이로구나.’
곽운정도 천재과에 속하는 여인이라 두 사람의 대화를 금방 알아들었다.
눈매가 굳어진 그녀가 말했다.
“숙부님, 우리가 무한으로 가고 있다는 정보가 샜다는 건가요? 무림맹 내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누가 우리의 무림맹행을 원치 않는가 하는 거다.”
곽운정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숙부님 말씀은… 무한의 역병이 빨리 소멸되는 걸 원치 않는 자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저들을 보니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두 사람의 대화는 심각했고, 내용 또한 무겁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진무앙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지 않았다.
그 정도야 이미 짐작하고도 남았으니까.
그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떤 놈의 무공을 사용해야 하지? 너무 강해도 안 되고, 너무 약해도 안 되는데… 열화마종 급의 무공은 기각, 대문파의 무공도 기각… 저놈들을 물리칠 수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무공이어야 하는데…….’
그의 머릿속에서 수천 가지 무공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그는 적당한 무공을 찾아냈다.
‘그놈 무공이면 될 거 같군.’
그가 결정했을 때 곽 씨 숙질은 입을 다물었다.
여객선과 오 장 거리까지 접근한 세 척의 배에서 복면을 한 흑의인들이 경공을 펼치며 넘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척에서 뛰어넘어 온 복면인은 각기 열 명, 도합 삼십 명이었다.
전신에서 살기를 흘리는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도검을 들고 있었다.
“저… 저… 저…….”
“수적이닷!”
“엄마!”
“아악!”
복면인들을 보고 놀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곽석철이 선원과 손님들에게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모두 객실로 피신하시오. 저들은 단순한 수적이 아니오!”
그의 말에 사색이 된 선원과 손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객실의 문을 향해 몰려들었다.
곽석철이 곽운정에게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운정아, 너도 빨리 들어가라.”
하지만 곽운정은 꼼짝도 하지 않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숙부님. 적의 수가 너무 많아요. 혼자서는 힘들어요. 그러니 저도 힘을 보태겠어요.”
진무앙이 힘있게 한마디를 했다.
“곽 소저, 곽 대협 혼자가 아닙니다. 저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강하게 이야기했지만 곽운정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세 사람이 말씨름을 할 시간은 더는 없었다.
복면인들이 여객선의 갑판에 발을 디뎠기 때문이다.
그들 무리 속에서 누군가 곽 씨 숙질을 보고 소리쳤다.
“저들이다!”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열 명의 복면인이 곽 씨 숙질에게 달려들었다.
나머지 이십 명은 아직 객실에 들어가지 못한 선원과 손님들에게 칼질을 시작했고.
그들의 손엔 일말의 인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으악!”
“아악!”
사람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갔고, 처절한 비명이 장강을 울렸다.
죽립 아래, 진무앙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복면인들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차피 복면을 쓰고 있어서 신분이 노출될 일도 없는 자들이라 곽 씨 숙질만 죽이려고 할 거라 예상했던 것이다.
‘내가 저놈들을 너무 쉽게 봤군.’
그때 대로한 곽석철이 일갈을 토했다.
“멈춰라, 이 무도한 놈들!”
그의 말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진무앙이 번개처럼 뛰쳐나갔다.
그리고 진각을 밟으며 코앞까지 접근한 선두의 복면인 두 명에게 쌍장을 휘둘렀다.
콰직!
쐐애애액-
갑판의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손 그림자가 구름처럼 일어나며 복면인들을 덮쳐 갔다.
그의 장세에 실린 육중한 기세에 놀란 복면인들은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좌우로 갈라졌다.
진무앙의 우측을 파고든 복면인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좌측 복면인의 도는 그의 목을 베어갔다.
그들의 움직임은 신속했지만 진무앙의 변초는 더욱 빨랐다.
직선으로 뻗어나갔던 장세가 신룡처럼 휘어지며 측면으로 돌아간 복면인들의 등으로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