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83
183 그 소박한 게 너무 어렵구나
무림맹 군사부.
“아버님, 이세빙 전주는 진 숙부님이 맡아주겠다고 하셨어요.”
독고홍련의 보고에 독고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랬겠지.”
그는 양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멧돼지의 뒷다리를 뜯으며 말을 이었다.
“우걱우걱, 손 놓고 곽운정이라는 아이가 개고생하는 걸 보고만 있을 녀석이 아니니까. 우걱우걱.”
“그런데 아버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지 말씀해 주셨으면 해요.”
“뭘? 우걱우걱.”
“굳이 숙부님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을까요? 아버님의 눈에는 차지 않겠지만 저 혼자서도 배신자를 찾아낼 수 있어요.”
독고운진은 뼈만 남은 뒷다리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탁자 위에는 아직도 멧돼지 뒷다리가 산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가 통통한 손가락을 쪽쪽 빨며 말했다.
“네 능력을 의심해서 무앙에게 부탁을 한 게 아니야. 시간이야 좀 더 걸리긴 하겠지만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숙부님을 끌어들이신 거예요?”
“녀석에게 지금 이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하려고.”
“예?”
“무림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무앙밖에 없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녀석은 이 세상이 망하든 말든 별 관심이 없다.”
“저한테 그런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씀은 하신 적 없잖아요?”
독고운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한테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걸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예?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아버님도 모르게 진행되는 게 있다고요?”
“이 세계에 국한된 일이라면 당연히 내가 알겠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그렇게 범위가 좁지 않단다.”
“예?”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게 뭔데요?”
“이 세계에 절대 이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한계에 얽매인 인간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
“그래서 무앙이 나서야 한다.”
“아버님이 계시는데도요?”
독고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앙과 입장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 무앙은 이 세계가 잉태했고, 여기서 불멸의 길에 오른 녀석이야. 그래서 이 세계에 직접 개입할 수 있지.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독고홍련은 입술을 깨물며 탄식했다.
“하아…….”
“이 세계는 너처럼 여기서 태어나 사는 사람들의 것이다. 미래를 어떻게 만들든 그건 너희의 몫이지, 나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 역할은 일정한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진 숙부님이 나서실까요? 그분은 세상이 망하든 말든 별 관심이 없는 분이잖아요.”
“물론 그렇지.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 방법이 뭔데요?”
독고운진은 펑퍼짐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불쑥 물었다.
“홍련아, 너도 무앙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알지?”
“예, 여자잖아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
“그래. 맞다. 대혼돈 시대에도 자신의 여자들이 멸문지화를 당하지 않았다면 녀석은 천무제를 죽이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천무제가 죽지 않았다면 무림은 멸망했을 거고.”
“곽운정이 진 숙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거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기특한 녀석, 내가 널 정말 잘 키웠다.”
“물론 저는 아버님 덕분에 정말 잘 컸죠. 그런데 그녀가 진 숙부님을 정말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무앙이 그 아이를 사랑하면 가능하지. 그 녀석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천하라도 멸망시킬 수 있는 놈이니까.”
“그럼 그게 가능하다 치고요. 그녀가 진 숙부님을 어느 정도까지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나도 모른다.”
“예?”
“딸아, 내가 초월자이긴 하지만 신은 아니란다. 미래는 나도 몰라.”
“너무 허무한 대답이잖아요.”
“그게 인생이란다.”
“칫!”
“하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트린 독고운진이 말을 이었다.
“곽운정이 무앙에게 할 수 있는 역할의 최대치는 동기 부여다. 그녀가 무앙이 적극적으로 세상사에 개입하고자 하는 마음만 들게 해도 성공이야.”
“소박하네요.”
“그 소박한 게 너무 어렵구나.”
“곽운정이 그 어려운 걸 잘해냈으면 좋겠네요.”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독고운진이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멧돼지 뒷다리를 집어 들었다.
독고홍련은 일어났다.
부녀간의 대화가 끝난 것이다.
* * *
하북성 한단시.
다가닥! 다가닥!
어둠에 잠긴 서문으로 들어선 사두마차는 장원들이 밀집해 있는 서부 지역으로 향했다.
마차 안,
상관무외는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눈으로 맞은편에 앉은 소소를 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소소는 별다른 표정이 없는 얼굴로 그림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고.
아이는 손에 자수정으로 만든 팔찌를 꼭 쥐고 있었다.
상관무외가 소소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꼬마야, 벌써 며칠째 입도 벙긋하지 않는데,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답답하지 않냐?”
하남성 낙양에서 한단까지의 거리는 오백여 리.
상관무외는 진무앙이 추적을 할 수 없도록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며 이곳까지 왔다.
덕분에 북상하는 속도는 보통의 경우보다 배는 더 걸리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계획에 있던 거라 실망스런 속도는 아니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추적의 단서를 지우며 가는 게 백배는 중요했다.
그는 진무앙에게 뒤를 따라 잡히면 뒷감당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망갈 생각을 하는 거라면 잔머리 굴리지 말고 말만 해라. 언제든 보내줄 테니.”
“도망요? 그럴 생각이었으면 여기까지 제 발로 따라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건 나도 알지. 그럼 궁금한 건 없냐? 하나라도 있을 것 아니냐? 적어도 네 엄마가 어찌 되었는지는 알고 싶을 것 같은데?”
그제야 소소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를 했다.
“어차피 아저씨는 엄마에 대해 말해줄 생각이 없잖아요.”
상관무외는 혀를 찼다.
“쩝, 그건 그렇지. 그런데 너는 겁을 조금도 먹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구나. 목적지에 가서 무슨 일을 겪게 될지 걱정이 되지 않느냐?”
“겁먹어야 하는 건가요?”
“훗. 당돌한 질문이로구나.”
소소는 대꾸를 하지 않고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갈수록 상관무외는 아이의 담담한 태도가 눈에 거슬렸다.
그가 냉혹한 목소리로 이죽거리듯 말했다.
“행여 진무앙이 널 찾으러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라. 내가 널 데려오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아느냐? 그의 추종술은 천하무쌍이지만, 이번만은 그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소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이가 맑은 눈으로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아저씨는 숙부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내가 그를 모른다고? 훗, 천하에 나만큼 혈수광랑 진무앙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말하는 건, 아저씨가 숙부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상관무외의 눈썹이 역팔자로 곤두섰다.
“그놈과 몇 달 같이 살았다고 상대방 속을 뒤집어놓는 놈의 말투까지 닮았구나.”
소소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을 받았다.
“아저씨가 제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죄송해요. 저는 아저씨를 화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어요.”
상관무외는 눈살을 찌푸렸다.
소소와 함께 낙양을 떠난 후 그를 대하는 아이의 행동은 지금처럼 늘 예의 발랐다.
게다가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며 행동하는 건 그보다도 오히려 더했고.
그의 시선이 소소가 쥐고 있는 자수정 팔찌를 향했다.
‘저 꼬마는 팔찌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흠, ‘그분’은 저것이 아이의 엄마가 갖고 있던 물건이라고 하셨으니 그녀를 보았겠지. 그러니 저걸 손에 쥐면 제 발로 나를 따라나설 거라고 하셨던 말씀대로 된 것일 테고…….’
가슴속에 궁금증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그는 소소의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이 일을 맡기 전에는 그녀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고.
그러니 팔찌를 통해 본 엄마가 아이에게 무엇을 알려준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장소화의 가문인 수라혈교는 오래전 사술로 한 시대를 풍미한 문파이긴 하다. 하지만 대혼돈 시대에 황제군에게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후로는 쇠락일로를 걸었어. 저 아이가 태어날 때쯤엔 충성스러운 가신 몇만 남았고. 이 아이가 아무리 신기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망한 문파의 후예일 뿐인데… 이 꼬마에 대한 ‘그분’의 관심은 너무 커서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쓸데없는 궁금증이다. 지혜가 하늘에 닿는 ‘그분’의 속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저 ‘그분’의 뜻을 따를 뿐.’
다가닥. 다가닥.
사두마차가 어느 장원의 앞에 도착했다.
삐이꺽-
마부가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대문이 활짝 열렸다.
장원으로 들어가는 마차 안에서 상관무외가 소소에게 말했다.
“쉬거라, 황도까지는 아직도 천 리나 남았으니.”
소소는 대답 없이 자수정 팔찌를 꽉 움켜쥘 뿐이었다.
* * *
무한 중부의 황학루와 장강이 보이는 허름한 주택가.
해가 중천으로 떠오를 무렵, 펑퍼짐한 몸매에 평범한 외모의 사십대 여인이 바구니를 들고 골목에 들어섰다.
이곳에 사는 사람인 듯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난 골목을 걸어가는 그녀에게서는 헤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각 정도 걸었을까.
중년 여인은 낡은 단층의 사합원 주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삐이꺽-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선 여인은 작은 정원을 지나 정방(손님을 맞는 방)으로 들어갔다.
차를 마시고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누님.”
젊었을 때는 대단한 미남 소리를 듣고 남았을 만큼 중년인의 외모와 기도는 출중했다.
“이붕, 총타에서 여기까지는 삼십 리밖에 안 돼. 그 거리를 멀다고 할 지경이면 밥숟가락 놓아야지.”
중년 여인 이세빙은 무심한 어조로 말을 하며 인사도 받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 모양입니다.”
중년인 이붕은 쓴웃음을 지으며 마주앉았다.
이세빙이 냉혹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편하지는 않지. 세광이와 가족은 잘 지내겠지?”
“물론입니다, 누님. 이세광 장군은 평생 황상과 나라에 충성한 분인데 어찌 홀대하겠습니까.”
“세광이는 죽마고우인 너를 자신의 목숨처럼 아꼈거늘, 네가 그와 그의 가족을 납치하다니… 그처럼 의를 숭상하던 네가 이렇게 변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구나.”
이붕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누님. 하지만 세광이와 누님께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저는 국록을 먹는 자, 나랏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세빙의 눈끝이 보일 듯 말 듯 가늘게 떨렸다.
“원하는 정보는 모두 넘기고 있는데, 무엇이 궁금하여 나를 직접 불러낸 것이냐? 이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이런 만남은 독고 총군사의 눈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분은 범상한 분이 아니니까.”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뵙자고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습니다.”
눈살을 찌푸린 이세빙이 물었다.
“대관절 그 사정이란 게 무엇이기에 이만한 위험을 감수한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