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84
184 나는 개새끼하고는 말 안 섞어
이붕이 냉정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진무앙이란 자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가 왜?”
“누님은 제게 그가 복마신군의 제자이고, 실력은 절정고수 급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능력은 누님이 주신 정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이세빙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가 스물 언저리의 나이에 비하면 대단한 성취를 이룬 인물이라는 건 분명하다만, 대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더 알아야 할 게 있단 말이냐?”
이붕은 대답 대신 반문했다.
“누님, 어제 그가 했던 전투도 보고받으셨습니까?”
“역병이 든 마을에서 그가 흑무대 스물을 죽였다고 들었다. 예상밖의 결과이긴 하지만, 그건 충분한 전력을 투입하지 않은 네 잘못이 크다.”
뼈를 후벼파는 듯한 냉정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붕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가 말했다.
“누님은 전투에 대해서 상세한 보고를 받지 못한 것 같군요.”
이세빙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내가 모르는 게 있다는 말이냐?”
대답하는 이붕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예. 어제 저는 누님이 알려주신 정보를 토대로 흑무대 이십 명을 역병이 돈 마을에 배치시켰습니다. 목적은 진무앙과 약양부 의원, 의녀들을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흑무대만 투입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
“백렬탄도 사용되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던 듯 이세빙의 눈이 커졌다.
“백렬탄? 산서 벽력당과 함께 화기양종 중 하나인 섬서 장가의 그 백렬탄 말이냐?”
이붕이 대답했다.
“예. 그것도 세 개나 투입되었습니다.”
산서 벽력당의 제자들이 무림에서 활동하는 무인 중심인 반면 섬서 장가는 관부에 화기를 납품하는 화기장인들의 가문이다.
그들이 만드는 백렬탄은 산서 벽력당의 벽력탄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진 화탄이다.
이세빙이 연이어 물었다.
“흑무대가 그걸 사용하고도 진무앙이라는 아이에게 궤멸당했다는 것이냐?”
“예. 그래서 제가 누님을 뵙자고 한 겁니다.”
안색이 굳어진 이세빙이 물었다.
“백렬탄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느냐?”
“흑무대원들이 가슴에 품고 그와 다섯 자도 떨어지지 않은 지근거리에서 자폭했습니다.”
“그런데도 살아남았다?”
“예. 그것도 화상의 흔적 하나 없이요.”
“말도 안 된다. 내가 본 보고서엔 그의 복마금갑공이 칠성 수준이라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런 폭발 속에서 화상조차 입지 않았다고? 복마신군 본인이라 해도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보고를 받고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누님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붕의 말에는 묘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이세빙이 아니었다.
“너는 진무앙이 복마신군의 제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예. 청출어람도 정도가 있습니다. 진무앙은 약관의 나이에 복마신군의 전성기 시절보다 더한 무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를 가르친 자는 분명 복마신군보다 훨씬 뛰어난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말이 됩니다.”
이세빙의 눈빛이 깊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이붕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진무앙을 제거해 주십시오.”
“불가.”
“그를 제거해 주신다면 누님이 그처럼 아끼시는 세광과 그의 아내, 두 자식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하겠습니다. 하지만 거절하신다면 내일 아침 무림맹 정문 앞에 걸린 그들의 머리를 보게 되실 겁니다.”
무서운 눈으로 이붕을 노려보는 이세빙의 볼살이 가늘게 떨렸다.
“천하에 세광이 나의 친동생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너뿐이다. 그만큼 너를 믿었거늘…….”
“말씀드렸던 것처럼 누님과 세광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얼음의 심장에, 뱀의 혀를 가진 놈.”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제 부탁을 수락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세빙이 치맛자락을 떨치며 일어나더니 정방을 나갔다.
일다경 후 이붕도 사합원을 떠났다.
그는 평범한 중년인의 인피면구로 변장을 했고, 흔하게 볼 수 있는 마의로 옷을 갈아입은 데다 죽립까지 눌러쓰고 있었다.
그들이 떠난 정방의 지붕 위.
암향무영과 사신암행으로 완벽하게 기척을 지운 채 은신하고 있던 진무앙이 일어섰다.
해가 중천에 다다른 대낮이었지만, 육안으로 그의 모습을 보는 건 불가능했다.
암향무영이 극에 이르면 빛 속에 몸을 숨기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막 골목을 꺾어 사라지고 있는 이세빙의 등에 꽂혀 있었다.
‘이세빙, 사정은 딱하다만 네 친인을 구하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선택엔 책임이 따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 곧 네게 그 책임을 물어주마.’
마인당, 아니, 정식 명칭 흑무대의 살수들이 죽인 마을 사람들과 약왕부의 의원, 의녀는 수백 명이 넘었다.
반면 흑무대의 살수들이 입은 피해는 몇 되지 않았다.
그런 불균형한 결과가 가능했던 건 무림맹의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풍령부운전주 이세빙의 정보조작 덕분이었다.
진무앙의 신형이 허공을 미끄러졌다.
그가 따르고 있는 자는 이붕.
‘심심해서 이세빙을 따라왔다가 생각지도 못한 대어를 낚았다.’
진무앙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이세빙을 직접 관리할 정도면 윗선에 속하는 놈일 거다. 잘됐어. 똥 누다 만 것처럼 나오는 것도 없이 시간만 질질 끌까 봐 벌써부터 귀찮아지던 참이었는데. 저 자식을 줄기로 잡고 쭉 잡아 올리자. 그러다 나오는 놈들은 나오는 대로 모조리 조지면 되지 않겠어. 흐흐흐.’
이붕은 철두철미한 자였다.
그는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썼다.
은신술을 펴기도 하고, 경공을 펼치기도 하고, 이 골목 저 골목 괜히 빙빙 돌기도 했다.
그는 필요한 순간에 가장 적절한 방법을 쓸 줄 아는 전문가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진무앙이었다.
‘아으으으으, 짜증 나. 그냥 바로 가지, 빙빙 돌기는. 별 거지발싸개 같은 자식이…….’
지닌 무공은 차치하고 그는 아득한 세월을 용병으로 보내며 수많은 전장에 몸담았던 남자였다.
그런 그에게 이붕이 펼치는 수법은 어린애 장난 정도에 불과했다.
즉, 이붕은 무슨 짓을 해도 진무앙의 눈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리저리 돌던 이붕은 한 시진 반이 더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거대한 정문을 통과했다.
정문 옆에 경계를 서던 수문위사들은 그와 잘 아는 사이인 듯 웃으며 인사를 나눌 뿐, 제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근처 주택의 처마 밑에 은신한 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진무앙은 어이가 없어 속으로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헐… 이거야말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 그대로의 상황이잖아.’
이붕이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무림맹 총타였던 것이다.
‘영리한 놈이로군. 아까 이세빙이 한 말을 생각하면 걔도 저 자식이 총타에 웅크리고 있는 줄 모르는 모양이던데… 이거 갈수록 흥미진진하네. 과연 저놈이 일하는 곳은 어디일까나.’
그는 미친놈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이붕의 뒤를 따랐다.
이각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이붕이 도착한 곳을 본 진무앙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으하하하하하하, 저놈, 제대로 웃기는 놈이잖아!’
이붕이 도착한 곳은 총타 내에서도 독립된 지역이었다.
높은 담장으로 외부와 차단된 이곳의 규모는 수천 평을 넘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십 채의 고루거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대문 위에 걸린 현판엔 ‘군사부’라는 세 글자가 선명했다.
이붕이 향한 곳은 군사부의 후원이었다.
그곳엔 거대한 새장과 새들의 훈련장, 그리고 팔천오백여 마리의 전서구가 있었다.
구구구구구구-
푸드덕- 푸드덕-
수백 마리의 전서구가 쉴 새 없이 날아오르거나 도착하고 있었다.
이곳은 천하 각지의 무림맹 지부, 향과 연락할 때 사용하는 전서구를 관리하는 ‘만리조전’이라는 부서였다.
이붕은 이곳의 새장 관리인 열일곱 명 중 한 명이었다.
각 관리인에게는 한 채의 전각이 주어졌다. 그리고 각 전각은 오백 마리의 전서구를 관리했다.
이붕이 관리하는 전서구들은 무림맹 총타와 호북성의 공중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다.
진무앙은 만리조전의 누각 지붕 위에 앉아 턱을 괴고 이붕을 지켜보았다.
이붕이 하는 일은 세 가지였다.
전서구들의 몸 상태를 챙기는 것과 군사부의 학사들이 가져온 서신을 전서통에 넣어 비둘기의 다리에 매달아 날려 보내는 것, 마지막으로 외부에서 날아온 전서구의 다리에서 전서통을 꺼내 해당하는 학사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붕을 관찰하던 진무앙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저 새끼, 장난질하기 딱 좋은 자리를 기가 막히게 골라서 들어갔네. 오백 마리 중 몇 마리가 엉뚱한 데로 날아갔다가 돌아오는 걸 누가 알겠냐고.’
그는 이붕이 관리하는 전서구 중 서너 마리가 학사들의 전서통과 상관없이 오가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시간을 더 두고 본다면 그런 전서구의 숫자는 훨씬 많아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진무앙은 그것을 더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그로서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었으니까.
구구구구구구구-
전서구들에게 모이를 주던 이붕은 불쑥 전각으로 들어서는 사내를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커다란 죽립을 삐뚜름하게 쓰고 허리에는 넉 자 길이의 고풍스런 장도를 차고 있는 남자.
그가 진무앙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붕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싱긋 웃는 진무앙이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흰 이가 드러났다.
“나 알지?”
“뉘신지…….”
“내가 여기에 왔는데도 그렇게 오리발 내밀면 실망할 거야, 이붕.”
그 순간 이붕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그런데 움직임의 목표가 의외였다.
보통 정체가 발각된 경우엔 도주 시도를 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이붕은 도주가 아니라 전서구들이 들어 있는 새장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사람 참 번거롭게 만드는 새끼네.”
진무앙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거푸 두 번 튕겼다.
탁! 탁!
무형의 지력이 섬전처럼 이붕의 두 다리로 날아갔다. 은은한 우레성이 뒤를 따랐다.
우르르-
그가 뇌정신궁에 전해준 고대 대뢰음사의 비전절기 뇌전파홍지력이었다.
퍼퍽!
“으악!”
뼈가 으스러지는 기음과 함께 두 다리가 피떡이 된 이붕이 달려가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사정없이 나뒹굴었다.
우당탕- 쿠당탕-
살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붕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그는 절정에 근접한 고수였다. 그래서 이번 임무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단 일초에 당한 것이다.
그의 두 다리는 무릎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가 보이지 않았다.
무릎 아래는 지력에 맞는 순간 재가 되어버렸고, 위쪽은 불에 지진 것처럼 봉합된 것이다.
그렇다고 고통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상처에서 전해져 오는 진저리쳐지는 통증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크윽… 대체… 왜 내게 이런 짓을… 나는… 진운… 이붕이… 으으윽… 아니오… 총군사의 진노를…….”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진무앙이 쓰러진 그의 머리를 발로 짓밟았기 때문이었다.
우지직-
광대뼈가 무너지고 눈동자가 부서졌다.
“크윽!”
진무앙이 말했다.
“입 닫아라. 나는 개새끼하고는 말 안 섞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