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85
185 뭘 어째, 다 썰어야지
진무앙이 즐겨 쓰는 암왕사신류는 잠입과 암살에 특화된 무공인 만큼 당연히 고문과 관련된 절기도 있었다.
그 절기의 이름은 ‘단심루’.
분근착골과 착골수혼에 내가중수법까지 가미된 이 고문술은 이 분야에서는 마땅히 비교할 무공이 없을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
“그으… 그으… 그그그그… 으으…….”
입에 거품을 문 이붕의 전신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물고기처럼 펄떡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붕의 전신은 힘줄이 터지고, 뼈가 살을 찢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입술은 걸레처럼 찢어지고, 악문 이들은 유리조각처럼 부서졌다.
그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툭 불거진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렸다.
입 모양을 보면 죽여달라는 말이었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진무앙이 단심루를 펼치며 그의 아혈도 점혈했기 때문이다.
진무앙은 의자에 앉아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이붕을 내려다보며 길게 하품을 했다.
“아직 반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죽여달라면 곤란해. 국록을 먹는 놈이라며? 그럼 기개가 있어야지.”
이붕의 눈동자가 뒤로 넘어가며 흰자위가 눈을 덮었다.
“응? 박봉에 시달리는 월봉쟁이라고? 나보다 사정이 낫네. 난 일없으면 손가락이나 빨아야 하는 낭인용병이거든.”
저승 문턱에 한 발 걸친 이붕의 귀에 아무렇게나 중얼거리는 진무앙의 말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뒤틀리고 펄떡거리던 이붕의 움직임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게거품으로 뒤덮인 그의 얼굴에서는 생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진무앙의 발끝이 그의 혈도 두 곳을 걷어찼다.
퍼퍽!
이붕의 몸이 움찔거리며 뒤로 넘어갔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죽으려면 내 허락부터 받아, 새끼야.”
그는 지풍으로 이붕의 아혈을 풀며 물었다.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됐냐?”
“나… 나는… 진운이… 누구인지도… 모…….”
“멀었네.”
피윳!
진무앙은 다시 지풍으로 아혈을 짚으며 단심루를 시전했다.
“끄으으으… 그그그그그…….”
두 번째 해혈.
“여전히 개길 생각이냐?”
“이러고도… 당신이… 무사할 줄…….”
“아직이네.”
피윳!
세 번째 해혈.
“아… 악마 같은 놈…….”
“호오, 생각보다 근성이 있는 놈이었군.”
피윳!
이 과정은 다섯 번을 반복했다.
진무앙이 마지막으로 단심루를 해제했을 때 이붕의 모습은 머리만 큰 어린아이처럼 변해 있었다.
목 아래 뼈와 근육이 단심루로 인해 해체 수준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하는 대답을 하면… 죽여줄… 거요……?”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숨을 내쉰 이붕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각 후 전각의 창문으로 발에 전서통을 매단 수십 마리의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푸드덕- 푸드덕-
직후 진무앙은 휘적휘적 전각을 나섰다.
그가 떠난 자리엔 한 줌의 재만 남았을 뿐, 이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붕이 죽는 과정은 적지 않게 소란스러웠지만, 그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무앙이 펼친 단음강벽 때문이었다.
그는 전각에 들어설 때 전체를 단음강벽으로 둘러쌌던 것이다.
총군사 집무실.
“우물우물, 왔냐?”
산처럼 쌓인 당호로를 쉴 새 없이 입으로 집어넣던 독고운진이 불쑥 말했다.
유령처럼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진무앙이 의자에 앉으며 타박을 했다.
“그만 좀 처먹으라니까.”
“냅 둬. 이렇게 살다 죽을 거니까.”
“죽지도 못하는 놈이 부풀어오르기만 하니까 하는 말이잖아.”
“구박하러 왔냐?”
“그랬겠냐?”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세상에 구박할 놈의 씨가 마르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한 내가 널 구박하러 찾을 일은 없어.”
진무앙의 말에 독고운진은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섭섭하다.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으으으, 닭살 돋았잖아! 그런 말은 홍련이한테나 해, 새끼야.”
진무앙이 당호로를 하나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세빙이 년이 간자야.”
“그렇군.”
독고운진을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알고 있었냐?”
“아니. 의심만 했다.”
“걔는 네가 처리해.”
“물론. 내가 키운 아이인데 네 손을 빌릴 수는 없지.”
“마인당은 금의위에서 키운 놈들이란다. 정식 명칭은 ‘흑무대’야. 웃기는 건 수뇌부가 아닌 놈들은 자기기들을 키운 게 금의위라는 것도 모른다는 거지. 흐흐흐.”
“누가 그래?”
“이붕이란 놈이.”
“걔가 누군데?”
“진운이란 새장관리인으로 위장하고 만리조전에 숨어 있던 놈이야. 놈은 금의위의 천호야.”
금의위는 우두머리인 지휘사 아래 17개 소와 남북 진무사, 천호, 백호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고운진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다.
“내 밑에 숨어 있었다고?”
“그래.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그것도 모르고, 쯧쯧. 놈은 전서구를 이용해서 무한에 투입된 흑무대를 지휘하고 있었어.”
“황제를 의심했는데 금의위였군.”
“이붕은 무림맹 공격과 외곽에 주둔한 군사를 암중 지휘하는 건 금의위가 맞다고 했어. 하지만 놈이 아는 정보는 한계가 있어서 역병을 퍼트린 게 금의위인지는 모르더라.”
“조금 김빠진다.”
“왜 김이 빠져?”
“금의위 따위가 노릴 정도로 본맹의 위상이 약화된 것 같아서.”
“네가 먹는 데 쓰는 관심의 일 할만 무림맹에 쏟았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걸?”
“난 항상 배고프다.”
“뱃속에 아귀가 사는 놈.”
“그래서 이붕이란 놈은 어떻게 했냐?”
“보내줬지.”
“어디로?”
“저승.”
“잘했군.”
“잘했지. 그런데 천호 한 놈이 더 있어.”
“더?”
“응. 그런데, 이붕도 그놈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어.”
“그놈이 핵심이겠군. 이붕과 흑무대의 활동을 감시하고 상부와 연락하는 역할일 테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할 말이 남은 표정인데?”
“그 몸매에 눈치는 겁나게 빨라요.”
“뭔지 말해봐.”
“무한에서 암약하는 흑무대 살수들은 총 이백오십 명이다. 내 손에 죽은 애들 오십을 빼고도 아직 이백이 남았지. 걔들한테 전서구를 이용해서 한곳으로 모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쩌려고?”
“뭘 어째, 다 썰어야지.”
“이미 어떻게 할지 다 정했는데 뭐하러 나한테 말을 하는 거냐?”
“그 뒷일 때문에. 중요한 건 흑무대를 써는 게 아니잖아. 역병을 없애는 거지. 놈들은 역병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틀림없이 감염되지 않는 어떤 방법을 갖고 있어. 내 생각엔 숨어 있는 천호 놈이 그걸 알고 있을 거 같아.”
독고운진이 싱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무앙, 그건 내게 맡겨. 네가 흑무대를 처리하면 놈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거야. 그럼 내가 꼬리를 잡을 수 있다. 네 생각처럼 만약 그놈이 역병을 처리할 방법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손에 넣겠다.”
“그럼 그건 네가 맡는다 치고……. 군사들은 어떻게 할 건데?”
진무앙의 질문에 독고운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민 중이다.”
“흑무대가 전멸했다고 놈들이 병사를 철수하지는 않을 거야. 관이 무림맹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데 걔들이 그걸 포기하겠냐?”
독고운진의 통통하고 커다란 입술 사이로 나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진무앙의 말은 그가 전부터 고민하던 지점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무한 외곽에 주둔하고 있는 군사는 오만이다.
그들이 철수하지 않고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진무앙이 물었다.
“돼지야, 홍련이 그러는데 군에서 사자가 와서 한 달 여유를 줬다며?”
“맞아. 그때까지 역병을 해결하지 못하면 무한 협약을 깨뜨리겠다고 했지.”
“과연 놈들이 무한 협약을 깨는 걸로 만족할까?”
독고운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야. 역병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역병의 감염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군은 무한에 옥쇄 작전을 펼칠 거다. 사자로 왔던 놈도 도시 전체를 불태울 거라는 말을 직접 했었고.”
입가에 미소를 지은 진무앙이 말을 받았다.
“그러면 무한의 백성들은 도시를 탈출하려 할 거고, 군은 그들을 도륙하겠지. 무림맹은 그걸 두고 볼 수 없을 거고. 그리고 만약 너희가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군대와 충돌한다면 그들은 무림맹에 역모죄를 뒤집어씌울 거다.”
독고운진은 혀를 차며 말을 받았다.
“그렇게 되면 본맹은 궤멸적인 타격을 받을 게 뻔해. 아무리 제국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다고 해도 무림맹의 무사들은 모두 제국의 신민이야. 역모죄를 지은 자들로 낙인이 찍힌다면 자신의 가족이 모두 죽거나 노비가 될 텐데……. 어떤 무인도 심리적으로 그걸 버티기는 정말 어렵다.”
“그렇겠지. 그리고 역모죄 소리가 나오는 순간, 맹도들 태반이 이탈할 수도 있어. 그럼 아예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해야 해. 황군과의 싸움은 반역을 의미하는데, 무림맹은 전통의 대문파와 지방의 명문세가들이 중심이 된 세력이야. 뿌리 없는 낭인이 아닌 그들이 과연 멸문지화를 당할 게 뻔한 반역을 선택할 수 있을까? 더구나 황권이 안정되면서 난세가 종식되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
“어려운 얘기다…….”
“불가능한 얘기지.”
진무앙의 말에 독고운진의 둥글둥글한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웃어?”
“그럼 우냐?”
“이런 놈을 총군사라고, 에효.”
“무앙, 해결해 줄 거지?”
“아주 그냥 자기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풀려고 해요.”
“내 몸의 근수가 좀 많이 나가냐. 움직이기 힘들어. 나보다 훨씬 날씬하고 잘생긴 네가 뛰는 게 아무래도 그림이 잘 나오잖아.”
“맨입으로?”
“뭘 원하냐? 말만 해.”
그 말에 진무앙의 안색이 진지해졌다.
독고운진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너 왜 갑자기 진지해지고 그러냐? 무섭다.”
“구화산에서 ‘개새끼’의 흔적을 봤다. 너라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독고운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개새끼’라면… ‘그 새끼’?”
“응. ‘그 새끼’.”
“뭘 본 건데?”
“혼돈성흔, 마력과 신성력, 마수와 마물.”
“그런 것들이 여기로 직접 넘어왔다고?”
“응. ‘태초의 성역’이 열렸을 때에 비교할 정도의 능력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수준이었어. 내가 붕괴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쯤 안휘성은 물론이고 여기 호북성도 지옥으로 변했을 걸.”
“고생했네.”
“너한테 칭찬받으려고 한 거 아니거든!”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또 있어.”
“또? 뭔데?”
“아무래도 이 시대에 환우십병이 모조리 튀어나올 것 같다.”
“헐… 농담이지?”
“농담이겠냐?”
“진짜라고?”
“그렇다니까. 벌써 몇 놈은 상대도 해봤다. 천무령으로 완성된 게 아니라서 암혼을 불러낼 필요는 없었지만. 그런데 문제는 그것들이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것 같다는 거야.”
독고운진의 둥글고 반듯한 이마에 여러 개의 굵은 주름이 잡혔다.
진무앙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확실한 건 아니야.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지.”
“네 느낌은 예지력 수준이잖아.”
“물론 그렇긴 하지. 후우… 나는 너무 잘나서 문제야.”
“이럴 때 난향이 있었으면 장죽으로 한 대 때렸을 건데.”
“죽을래?”
진무앙이 째려보자 독고운진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네 느낌이 맞다 치자. 그럼 서로를 잡아먹은 놈들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 것 같냐?”
“그게 감이 잘 안 잡혀. 한 놈이 다른 놈들을 전부 죽이고 그 힘만을 흡수한 형태가 될지, 아니면 한 놈이 아홉을 부하처럼 거느리게 될지…….”
“네 느낌이 현실화된다면 어느 쪽이든 골치 아프긴 매한가지겠군.”
“그렇겠지. 완전히 각성한 환우십병은 지금의 나로서도 한 놈 이상 상대하기 어려우니까. 그런 놈들이 하나로 뭉쳐서 돌아다닌다면…… 으으으…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아마도 그때는 암혼 외에는 답이 없겠지. 하지만 나는 네가 그걸 불러내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건 진심이야.”
진무앙이 혀를 찼다.
“네가 말하는 걸 들으니까 너도 ‘개새끼’나 ‘환우십병’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는 것 같네.”
“지금은 그렇지. 하지만 짐작 가는 데가 아예 없지는 않아. 시간을 좀 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최대한 빨리 답을 알아낼 테니까. 그게 네가 원하는 거지?”
“맞아. 그럼 군은 내가 처리해 주지.”
“말한 대로 역병은 내가 맡지.”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