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92
192 여기 저승 아니지?
무림맹 약왕부.
쿵!
무언가 쓰러지는 커다란 소리에 곽운정은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소리가 난 곳이 진무앙의 방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방에 들어선 곽운정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진 소협!”
피칠갑을 한 진무앙이 바닥에 큰대자로 누워 있었다.
그는 정신을 잃은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피를 뒤집어쓰고 있다시피 해서 어디를 다쳤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아… 무앙… 무앙… 안 돼… 안 돼…….”
울먹이며 그에게 달려간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자마자 다급하게 그의 손목을 잡고 맥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손목을 잡을 수 없었다.
어느새 진무앙의 손이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앙…….”
어느샌가 눈을 뜬 진무앙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운정, 여기 저승 아니지?”
곽운정은 세차게 도리질을 하며 진무앙을 끌어안았다.
“아니야, 아니야!”
진무앙은 그녀의 등을 마주 안으며 긴 탄성을 토했다.
“후아… 살았구나……. 널 못 보고 죽는 줄 알았어.”
“역병을 앓던 백성들이 모두 회복되었어. 무앙도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거야?”
“응.”
“아아… 고생했어. 정말 고생했어.”
곽운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안도해서 흘리는 것인지, 감동해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진무앙이 말했다.
“내가 어떤 각오로 적들과 싸웠는지 알아?”
“몰라. 말해줘.”
“내가 죽으면 운정이 처녀로 늙어 죽을 텐데, 절대로 그렇게는 못 한다는 각오로 싸웠어.”
그 말에 곽운정이 진무앙의 옆구리를 세게 꼬집었다.
“아야! 간신히 살아 돌아왔는데 꼬집어서 죽이려고 하는 거야?”
“흥!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진무앙은 코웃음을 치는 곽운정을 세차게 끌어안으며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덮었다.
“무앙, 피라도 닦고…….”
곽운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무앙의 전신을 덮고 있던 핏물이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됐지?”
곽운정의 눈이 동그래졌다.
방금 씻은 것처럼 깨끗한 그의 수려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하아…….”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 채로 진무앙은 천천히 그녀의 옷고름을 풀었다.
곽운정은 거부하지 않았다.
방안의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 * *
제국 황도, 어느 대장원의 지하 밀실.
중앙엔 삼랑이라 불렸던 여인이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혼절해 있었다.
그녀는 숨소리가 낮고 가슴의 기복이 약했다.
삼척동자라도 그녀가 심한 내상을 입었음을 알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백의궁장을 입고 머리에 칠책 옥잠을 꽂은 신녀가 망연한 눈빛을 하고 서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삼랑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아… 천하에 괴인화 된 오만을 단신으로 절멸시킬 수 있는 건 오직 그 사람뿐인데…….”
쪼그려 앉은 그녀는 삼랑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 전체가 은은한 백색으로 빛나는가 싶더니 삼랑의 숨결이 순식간에 안정되었다.
“그가 지금도 이 세계의 어딘가를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무앙… 정말 공교롭구나. 귀찮은 일이라면 일단 질색부터 하는 그 사람이 어떻게 이번 일에 직접 개입한 걸까…….”
“으으음…….”
그때 삼랑이 낮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신녀님…….”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 앉았다.
신녀는 고개를 숙이는 삼랑의 눈에 똬리를 튼 극한의 공포를 보았다.
“두려웠느냐?”
“그는… 그는… 사람이 아니라 마신이었습니다… 신녀님……. 비록 한 시진밖에 유지되지 않는 불완전한 괴인화였다고 해도 사람이 그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야 하는데…….”
대답하는 삼랑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고, 갈라져서 쇳소리가 났다.
신녀는 삼랑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처럼 압도적인 대학살을 보고 공포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삼랑이 물었다.
“신녀님,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신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받았다.
“그에 대해서는… 후일 저절로 알게 될 테니 지금은 의문을 가슴에 담아두거라.”
“예… 신녀님.”
“삼랑, 그리고 당분간은 진행되던 모든 일을 중지할 것이니, 다시 시작될 때까지 몸을 추스르며 쉬도록 하여라.”
놀란 삼랑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신녀님…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신녀는 그녀의 말을 도중에 잘랐다.
“이번 일로 그가 이 세상의 일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가장 우선해야 할 건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의 개입 정도에 따라 우리의 움직임도 달라져야 하니까.”
삼랑은 신녀의 말을 온전히 이해했다.
괴인화된 자들의 눈을 통해 본 ‘그’는 저항이 불가능한 재앙과 같았다.
오죽하면 그녀의 입에서 마신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을까.
그라는 변수를 무시한 채 일을 진행시킨다면 모든 것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금의위 지휘사를 만나러 가겠다. 일이 무산되어 많이 불안해하고 있을 테니 다독여 줄 필요가 있다. 너는 몸이 좋아지면 그때 다시 부르마.”
“예, 신녀님.”
생각에 잠긴 삼랑을 남겨두고 면사여인은 밀실을 나갔다.
* * *
황도의 다른 대장원.
후원의 호수처럼 넓은 연못 중앙 정자에 일노일소가 마주앉아 있었다.
일노는 동창의 우두머리인 제독 도연근이었다.
그리고 일소는 황금빛 장포를 입고 같은 색의 면사로 눈 아래를 가린 청년이었다.
청년은 면사로 얼굴의 태반을 가렸다.
하지만 반듯한 이마와 칼끝처럼 쭉 뻗어나간 눈썹, 흑백이 뚜렷한 눈동자만으로도 그가 대단한 미남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도연근이 청년에게 말했다.
“천군, 무한의 일로 금의위가 타격을 받게 된 건 고무적이지만, 그처럼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종결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소?”
천군은 눈빛만큼이나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도 제독, 굳이 해석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무한을 구한 것이 사람이든 귀신이든, 세상의 일은 그저 인과의 수레바퀴를 따라 굴러갈 뿐입니다.”
“하지만 역병의 갑작스러운 소멸과 군사들의 실종에 어떤 인과가 작용한 것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구려. 그리고 세상에 누가 그처럼 신비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소.”
“조급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지요. 지금 모르는 일이라 하여 후일도 그럴 리 있을까요? 무한에서 일을 벌인 자의 정체는 조만간 그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도연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군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나는 그저 믿을 뿐이오.”
“이런 때일수록 집중하셔야 합니다. 도 제독은 금의위와 황상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마십시오. 사람이 아닌 자의 개입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들어내니까요.”
“명심하리다.”
도연근은 천군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한 후 정자를 떠났다.
혼자 남자 천군의 눈빛이 변했다.
스산하고 냉혹한 눈으로 정면 허공을 응시하며 그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상관무외, 어서 그 아이를 데리고 오거라. 그 아이가 있어야 신녀를 손에 넣을 수 있고, 그녀의 도움이 있어야만 신무제를 상대할 수 있다.”
누구도 들을 수 없는 혼잣말은 수면을 스치듯 바람결을 따라 흩어졌다.
* * *
황궁, 황제의 사적 집무실인 건청궁.
홀로 태사의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신무제의 앞에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낸 복면인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황상 폐하, 만만세. 운중비각주가 인사 올립니다.”
“무슨 일이냐?”
“무한 사안이 종결되었습니다.”
자칭 운중비각주라 말한 자의 목소리는 무색무취해서 남녀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상세히.”
“역병은 종식되었으며, 오만의 군사는 궤멸되었습니다. 수일 내로 호북성 도지휘사가 올린 장계가 병부에 도착할 것이고, 병부상서가 황상 폐하께 직접 보고를 드릴 것입니다.”
무한에 오만 군사를 보낸 것은 병부의 강력한 주장에 의한 것이었다.
신무제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역병이 종식되고 오만이 궤멸당했다고?”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병부는 내부적으로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금의위는?”
“병부를 측면 지원하고 있는 듯하지만 움직임이 워낙 조심스러워 잘 눈에 띄지 않고 있습니다.”
“금의위 지휘사를 손안에 넣고 흔드는 신녀가 많이 놀랐겠어.”
신무제의 중얼거림에 운중비각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꾸가 필요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재미있는 상황이군. 무한 사안을 종결한 건 무림맹이더냐?”
“확실하지 않습니다. 역병 종식과 오만 병력의 궤멸을 어느 세력이 주도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호북성 도지휘사가 무림맹에 추궁을 했지만, 그들은 두 가지 일 모두 자신들이 한 게 아니라고 극력 부인하고 있습니다.”
“부인한다고 될 일이 아닐 텐데? 그러기에는 둘 다 규모가 너무 큰 일들 아닌가.”
“천하에 그런 짓을 할 만한 역량을 가진 집단은 무림맹뿐이긴 합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무한이 역병에서 구제되고 군사 오만이 궤멸당했는데 증거가 없다니?”
“그게… 역병을 앓던 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꺼번에 회복되었습니다. 게다가 오만 병사가 시신 한 구 남기지 못하고 증발하듯 사라졌습니다. 무한 북문 앞 평원엔 격렬한 전투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하룻밤 새에 벌어졌습니다…….”
가늘게 뜬 눈에서 강렬한 신광을 뿜으며 신무제가 중얼거렸다.
“병자들이 하룻밤 만에 모두 완쾌되고, 게다가 오만 군사가 궤멸된 게 아니라 증발하듯 사라졌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증거도 없는 터라 호북성 도지휘사도 무림맹을 계속 추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군. 신성구가 사용된 건가……. 그것이라면 역병 구제가 충분히 가능하겠지. 하지만 오만 군사는… 환우십병의 천무령이라면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지만 그들 중 완전한 각성자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않았는데 대체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했을까……?”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린 신무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오군도독부와 동창의 움직임은?”
“그들도 소식을 들은 듯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미 호북성에 있는 부하들에게 무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사태를 파악하라는 명을 내린 상태입니다.”
“금의위의 화운신녀처럼 동창의 천군 그놈도 정신이 없겠군…….”
신무제와 운중비각주의 대화에서 작금 황궁의 권력 구도를 엿볼 수 있었다.
군부의 양대 산맥인 병부와 오군도독부가 각각 금의위, 동창과 어떤 식으로든 협력하는 듯했다.
병부와 오군도독부는 물론이고 대대로 황제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금의위와 동창이 통제권을 벗어난 엄중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신무제에게서는 걱정하거나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운중비각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황권을 무시하는 저들의 망동을 언제까지 지켜보려 하시는 겁니까? 말씀만 하시면 한 시진 내에 수괴들의 목을 모조리 벨 수 있습니다.”
신무제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절대 손대지 마라. 그들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분이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누구의 말이라고 토를 달겠는가.
운중비각주는 고개를 숙였다.
“존명.”
신무제가 물었다.
“첩형 상관무외는 찾았느냐?”
“송구합니다. 그가 낙양에 머물다가 얼마 전 떠난 것은 확인했으나 이후의 종적이 묘연합니다.”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그자는 수년 동안 동창의 천군이 내린 단 하나의 명령만을 끈질기게 수행하고 있다. 분명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존명.”
신무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구화산의 혼돈성흔이 붕괴되면서 수십 년 동안 쏟아부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는데, 무한의 일로 추적의 단서를 찾은 것 같군. 흐흐흐.”
그가 낮은 웃음을 흘릴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며 태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태귀비 마마께서 환궁하셨다 하옵니다.”
순간, 신무제가 용수철이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즉시 태후전으로 가겠다. 준비해라.”
“예, 폐하.”
신무제가 성큼성큼 걸으며 운중비각주에게 말했다.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라.”
“예, 폐하.”
신무제는 뛰듯이 건청궁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