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07
207 닭대가리만도 못한 새끼야
잠시 후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십여 명의 남녀가 공터를 포위하듯 에워싸며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검을 들고 있는 그들은 눈 아래를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피부와 눈빛으로 보아 이십대에서 사십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포함된 무리였다.
그중 중 우두머리인 듯한 중년인이 금설화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금설화 소저를 데려가기 위해 왔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볼일이 없소. 저항하지 않는다면 불상사는 없을 것이오.”
한밤중 야산에 느닷없이 나타난 강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중후하고 안정된 목소리였다.
그들을 돌아본 진무앙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강도라기엔 기세가 너무 정갈하고, 무인이라고 하기엔 많이 어설픈 친구들이네.”
석채은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종남의 제자들이 언제부터 강도질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녀의 말을 들은 복면인들이 움찔했다.
그게 눈에 보일 정도라 진무앙은 저절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중년인이 석채은에게 말했다.
“소저가 누군지 모르나 그런 억측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오.”
석채은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보며 말을 받았다.
“종남의 제자가 아닌 척하려고 작정했으면 검이라도 바꾸고 오든지 해야죠. 전부 천중검을 들고 있는데 종남 제자가 아니라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겠어요?”
그 말에 복면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대꾸를 하지 못했다.
다른 복면인들도 당황한 듯 두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뭔가 감추려는 듯한 행동이었다.
복면인들이 들고 있는 검은 형태가 모두 동일했다. 손잡이에 음각된 기묘한 바위의 형태까지도.
그 문양은 종남파의 상징인 천중암이라는 바위의 모습이었다.
이걸 검의 손잡이에 새기는 문파는 천하에 종남파밖에 없었다.
우두머리 복면인의 옆에 서 있던 여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다… 다른 말은 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금설화만 데리고 가면 돼요!”
짜증이 난 진무앙이 아르다반을 불렀다.
“아르다반.”
“예.”
“일단 저 친구들 주제파악 좀 시켜야겠다. 제압해라, 죽이지는 말고.”
“예.”
아르다반이 시원하게 대답하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가뜩이나 거구인 그는 소매가 없는 상의를 입고 있어 기둥처럼 우람한 두 팔이 다 드러났다.
소소는 타라의 품에 안겨 있었다.
자신들을 무시하는 게 분명한 진무앙의 말을 들은 복면인들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공터의 분위기가 대번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우두머리 복면인이 검을 들어 중단세로 아르다반을 가리키며 말했다.
“순순히 말을 따르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주지.”
그의 검날에서 아지랑이 같은 푸른 검기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복면인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장중한 기세가 공터를 찍어누르는 듯했다.
그 성취로 보아 복면인은 절정을 바라보는 검객이었다.
하지만 아르다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태평하게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대신 진무앙이 복면인의 말을 받았다.
“말 많은 놈치고 실력 있는 놈을 못 봤다.”
복면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더는 말이 필요 없는 상황.
쉬잇-
복면인의 검이 움직이자 장쾌한 검세가 일어나 아르다반의 상체를 쓸어갔다.
석채은이 혀를 찼다.
“역시 천하삼십육검이네요.”
천하삼십육검은 종남파의 일대제자 이상이 익힌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검법이다.
검이 도달하기 전에 검기가 먼저 아르다반의 상체를 갈랐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아르다반은 별반 표정 변화 없이 팔을 들어올렸다.
팔뚝으로 검기를 막겠다는 듯한 어이없는 방어 태세.
복면인의 눈에서 불같은 신광이 쏟아져 나왔다.
아르다반의 행태는 철저하게 그를 무시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감히!”
그의 분노한 일갈과 함께 푸르스름한 검기의 빛이 배는 강해졌다.
쾅!
검과 팔뚝이 부딪쳤는데 절삭음이 아니라 폭음이 터져 나왔다.
당사자인 우두머리 복면인은 물론이고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은 팔뚝을 베기는커녕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멈춰 있었다.
놀란 상태에서도 복면인은 초식을 변화시키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어느새 아르다반이 검을 막았던 팔을 쭉 뻗어 검날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럴 때 검을 놓고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검객이란 사람들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영역에서 산다.
복면인은 검을 놓는 대신 아르다반의 손에서 검을 빼내려고 힘을 주었다.
그것이 승패를 갈라 버렸다.
아르다반의 쇳덩이 같은 주먹이 복면인의 얼굴 한복판에 망치처럼 꽂혀 버린 것이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번개처럼 빠른 일권이라 복면인은 피하지도 못하고 얻어맞았다.
퍽!
“으악!”
비명과 함께 복면인은 삼 장이나 뒤로 붕하고 나가떨어졌다.
우당탕탕-
“대사형!”
놀란 복면인들이 그를 돌아볼 때 아르다반의 쇳덩이 같은 주먹이 복면인들을 일방적으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으악!”
“억!”
“컥!”
“켁!”
“하악!”
물론 복면인들은 검을 들어 발악하듯 아르다반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르다반은 무식하게 맨 팔뚝으로 검을 받아내며 전장의 전차처럼 복면인들을 휩쓸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퍽!
“윽!”
“악!”
“우읍!”
“어흑!”
“으악!”
십여 번의 비명이 줄지어 터져 나온 뒤, 공터는 평온을 되찾았다.
아르반이 헤벌쭉 웃으며 팔짱을 끼고 구경하고 있는 진무앙에게 다가와 말했다.
“끝냈습니다.”
“쟤들 꿇려라.”
“예.”
아르다반은 여기저기 나가떨어진 복면인들의 목덜미를 잡고 짐짝처럼 들고 와서 진무앙의 앞에 무릎을 꿇렸다.
쓰러질 듯 흐느적거리는 복면인들은 코와 입에서 피를 쏟고 있었지만 심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들어 나르는 아르다반에게 주먹질, 발길질 한 번 하지 못했다.
이미 장부가 흔들리고 경락이 뒤틀리는 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석채은이 살금살금 진무앙의 곁으로 다가가 속삭이듯 물었다.
“저 사람 누구예요?”
“누구?”
“색목거인이요.”
“아르다반이잖아.”
“누가 이름 물어봤어요!”
“그럼?”
“별호 말이에요.”
“뜬금없이?”
“난 누군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 참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놈의 직업병…….”
투덜거린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쟤 별호가 뭐였더라… 금강 뭐였는데…….”
소소를 안고 그의 옆으로 다가온 타라가 거들었다.
“진 호위님, 천축에서는 아르다반을 뇌정금강이라고 부르잖아요.”
“아, 맞다! 뇌정금강. 그게 쟤 별호였지.”
석채은은 미간을 찡그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별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봐도 생각은 나지 않았다.
무리도 아니었다.
천축 무림은 평생 한 번을 가기도 힘들 만큼 먼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활동하는 무인의 별호를 관심을 갖고 들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진무앙이 무릎을 꿇은 우두머리 복면인의 앞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으며 말했다.
“벗겨.”
아르다반이 복면인의 복면을 벗겼다.
우두머리 복면인은 짧은 수염을 멋있게 기른 사십 전후의 남자였다.
진무앙이 그에게 말했다.
“금 소저를 노린 이유가 뭐야? 종남이 아무리 쇠락했다고 해도 금품 때문에 납치 강도를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좌절이 극에 달한 듯 멍한 얼굴로 땅만 보고 있던 중년인이 힘없이 말했다.
“더 이상 모욕하지 말고 죽이시오.”
진무앙이 짜증스럽다는 얼굴로 망설이지 않고 중년인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쫘악-
우당탕탕쿠당탕-
강타의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 중년은 서너 바퀴나 뒤로 굴렀다.
“대사형!”
“대사형!”
“네놈이 감히 대사형을!”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
그의 좌우에 무릎 꿇고 있던 복면인들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의 옆에 장승처럼 서 있던 아르다반이 중년인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와 다시 무릎을 꿇렸다.
진무앙이 말했다.
“쟤들 난리치는 거 보니까 네가 대사형인 듯한데, 진짜 무책임한 놈이구나.”
중년인이 불길이 이글거리는 듯한 눈으로 진무앙을 노려보았다.
“무인은 죽을지언정 모욕을 당하지는 않소!”
쫘악-
우당탕탕쿠당탕-
또 귀싸대기를 맞고 데굴데굴 굴러간 중년인을 데려와 무릎 꿇렸다.
진무앙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모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죽여달라고 해서 내가 널 죽이면 네 사제들은 어떻게 될 것 같냐? 너만 죽이고 쟤들은 살려두겠냐? 이 닭대가리만도 못한 새끼야.”
중년인은 충격을 받은 듯 눈빛이 흐트러졌다.
“나를 죽이고 쟤들은 살려달라고 하든지, 다 말할 테니 전부 보내달라고 하든지, 대사형쯤 되는 놈이면 그런 말이 먼저 나와야지, 대뜸 죽여달라는 말부터 해?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사제라는 놈들도 같이 죽겠다고 아우성이잖아.”
내상으로 창백하던 중년인의 안색이 시체처럼 푸르딩딩해졌다.
“사제들 목숨보다 네가 모욕당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해? 넌 와신상담이라는 말도 모르냐? 너 같은 놈을 대사형으로 삼은 걸 보니 종남 장문인도 정신줄 놨나 보다. 그러니까 백 년이 지나도 종남이 예전의 성세를 회복하지 못하는 거야.”
진무앙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 예전의 종남은 인재가 넘쳐나서 지켜보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냐.”
석채은이 감탄한 표정으로 진무앙에게 말했다.
“세상에! 진 호위, 당신의 입에서 책임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낙양에 돌아가서 이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예요.”
진무앙이 그녀를 째려보았다.
“그거 칭찬 아니죠?”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진무앙은 석채은을 무시하고 중년인에게 말했다.
“말해봐, 왜 금 소저를 노린 거냐?”
중년인의 눈빛은 방금 전과 달리 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는 두 번이나 치욕적인 귀뺨을 맞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진무앙이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그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하면 우리 모두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실 수 있소?”
진무앙은 대뜸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어야 했어, 새끼야. 말해. 너희 같은 송사리들을 죽여서 손에 피를 묻힐 생각 따위는 애당초 없었으니까.”
“소… 송사리…….”
종남 제자들은 분노하기보다 풀이 죽었다.
중년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석 달 전 본파엔 커다란 환란이 있었소.”
“환란?”
“검교지회를 아시오?”
“화산과 종남이 매년 번갈아 가며 자기 동네에 한데 모여 노는 행사 말이냐?”
검교지회는 화산파와 종남파가 일 년에 한 번씩 모여 무공을 교류하는 전통적인 행사로, 그 역사는 이백 년이 넘는다.
복면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았다.
“노… 노는… 후우… 석 달 전 열린 검교지회의 주최자는 본파였소. 그런데 참석하기 위해 온 화산파의 제자들이 갑자기 장문인과 장로들을 공격해 제압하고 본파를 장악했소. 당시 제자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그들을 몰아낼 수는 없었소. 그때 백여 명의 제자가 죽었소…….”
석채은이 믿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끼어들었다.
“종남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그렇소.”
“믿기 어렵군요. 그런 일이 있었다면 본문이 몰랐을 리 없는데…….”
중년인이 석채은에게 물었다.
“낭자는 누구시오?”
“하오밀문의 낙양목을 맡고 있는 석채은이라고 해요.”
“아… 낭자가 천상십화 중 한 명인 산다화 은섬비연 석채은, 석 낭자라는 말이오?”
“맞아요.”
“소저라면 당연히 그런 의문을 품을 수 있소. 나 또한 한 달 전까지 본파에 그런 환란이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으니…….”
중년인의 말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