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08
208 함께 가겠냐?
중년인, 그는 종남의 일대제자이자 대사형으로 별호는 천중검, 이름은 황수였다.
그는 스승인 종남장문인 포수경의 명으로 이 년 전 폐관에 들었다가 보름 전 나왔다고 했다.
그런 그를 맞이한 사람들이 지금 그의 옆에 있는 아홉 명의 사제와 사매였다.
이들은 환란 당시 강호에 나가 있어 목숨을 부지한 제자들이었다.
본래 외부에 나갔던 제자들은 이들보다 많은 이십여 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석 달 전 그들에게 장문인 명의의 귀환 명령이 떨어졌다.
명령에 따라 별생각 없이 돌아온 제자들은 산문 안으로 들어갔고, 아직까지 돌아 나오지 못했다.
그 수가 열하나였다.
황수를 제외하고 여기 있는 여덟 명은 뒤늦게 도착했다가 산문 밖에 숨어 있던 여제자 송이운의 만류로 외부에 남은 자들이었다.
송이운은 환란 당시 장문인의 조치로 비처에 한 달 가까이 숨어 있다가 간신히 탈출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조금 전 황수의 옆에서 더듬거리며 말을 했던 복면인이다.
일대제자 중 서열 이위였던 송이운은 대사형 황수가 폐관에서 나오는 날이 언제인지 기억하고 있었다.
보름 전 그녀는 연공실에서 나오는 황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종남파의 환란과 탈출 전 숨어 있을 때 들은 것들을 말해주었다.
그것을 들은 황수는 금설화를 납치하기로 마음먹고 그녀를 추적하다가 이곳에서 진무앙 일행과 만났던 것이다.
황수의 짧지 않은 이야기가 끝이 났다.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렸다.
황수의 이야기 중에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물었다.
“금 소저의 위치는 어떻게 알았냐?”
“며칠 전 우리를 찾아온 개방 전대 기인의 도움으로 알게 되었소.”
“개방? 그 거지의 이름이 뭔데?”
“모르오. 그분은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소.”
진무앙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그 거지 늙은이의 왼쪽 눈이 의안(가짜눈) 아니었냐?”
놀란 황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것을 어찌 아시오?”
진무앙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만금산장이 풍파에 휘말렸는데도 그 거지 자식이 너무 조용하다 싶었는데, 뒤에서 호박씨를 왕창 까고 있었군.”
그는 힐끗 금설화를 돌아보았다.
기도하듯 손을 꼭 마주 잡은 그녀의 입술 사이로 한마디 말이 흘러나왔다.
“할아버지…….”
일 장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당연히 그녀도 황수가 하는 말을 전부 들었다.
그녀가 할아버지라고 부를 거지는 천하에 개방의 태상장로인 비천유룡개밖에 없다.
“종남파의 환란과 금 소저가 무슨 상관인데 그녀를 납치하려고 한 거냐?”
황수는 대답 대신 엉뚱한 소리를 했다.
“현재 본파엔 경계를 서는 소수의 화산파 제자들만 남아 있소.”
“종남 사람들은?”
“환란에도 살아남은 본문의 제자들은 모두 만금산장으로 끌려가 모처에 감금되어 있소. 그건 송 사매가 숨어 있는 동안 알아낸 사실이오.”
진무앙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너희는 금 소저를 납치해서 종남 제자들과 교환을 하려고 했다는 거냐?”
“그렇소.”
“너희의 힘만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사부는 부모와 같은 분이고, 종남의 제자들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요. 그러니 우리의 시도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둘째 문제요. 이 일은 설령 우리가 모두 죽는다 해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오.”
“에라이!”
진무앙은 다시 황수의 귀싸대기를 후려갈겼다.
쫘악-
우당탕탕쿠당탕-
아르다반은 반사적으로 황수의 뒷덜미를 잡아 다시 진무앙의 앞에 꿇렸다.
황수를 보는 진무앙의 눈에는 짜증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그가 말했다.
“너는 정신머리를 좀 뜯어고쳐야겠다. 죽으려면 너나 죽어, 새끼야. 따르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네 머릿속에 아예 없는 거냐?”
황수가 입술을 질끈 물며 고개를 숙였다.
“나라고 어찌 그런 마음이 없겠소……. 하지만 우리 사형제의 마음은 모두 하나요.”
그의 말처럼 다른 아홉 명의 종남 제자는 분노한 눈으로 진무앙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무앙이 투덜거렸다.
“이래서 내가 무공을 배운 것들을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그가 황수에게 물었다.
“무림맹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안 해봤냐?”
“해봤소. 하지만 무림맹 서안 지부 주변엔 놈들의 이목이 깔려 있어 접근할 수 없었소.”
“무한에 사람을 직접 보내면 되잖아?”
“시일이 너무 촉박해 그럴 여유가 없었소. 그곳에서 지원 무사들을 데리고 오면 감금된 사람들은 모두 죽은 뒤일 것이기 때문이오.”
“다 죽는다고? 왜?”
“만금산장에서 모종의 대법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라는데, 송 사매가 들은 바에 의하면 본문의 제자들은 그 실험의 재료로 동원되었다고 했소.”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실험체로 동원된 사람들은 실험이 끝나면 모두 죽는다는 말이냐?”
“송 사매가 듣기로 그렇다고 하오.”
“끌려간 사람들의 수가 몇인데?”
“삼백 명가량이오.”
비록 지금은 제외되었지만 한때는 구대문파에 이름을 올렸던 문파치고는 굉장히 적은 수였다.
그리고 그 숫자는 현재 종남의 쇠락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 실험, 언제 끝나는데?”
“닷새 뒤요.”
진무앙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닷새?”
“그렇소.”
일행이 있는 곳에서 만금산장이 자리잡은 여산 자락까지는 아직 오백여 리를 더 가야 했다.
무공을 익힌 사람만 있다면 이틀이면 충분히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일행 중엔 소소와 소민이 있다.
진무앙이 자신의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계획을 좀 변경해야겠다.”
석채은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 호위,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게 취미인 줄 알았는데, 계획이란 것도 할 줄 알아요?”
진무앙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틈만 나면 돌려까는 걸 보면, 아무래도 석채은은 예전에 향산과 숭산에서 홀대당한 게 어지간히도 뼈에 사무친 모양이다.
하지만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석채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금설화를 비롯한 모두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으니까.
석채은을 마치 없는 사람처럼 간단하게 무시한 그가 일행에게 말했다.
“원래는 가까운 화산에 먼저 들러서 자소궁 기둥뿌리를 뽑아놓을까 생각했는데, 황수의 말을 들어보니까 만금산장부터 가야겠다.”
하남과 섬서의 경계를 넘으면 화산은 금방이었다.
여산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오백 리 떨어져 있지만 화산과의 거리는 삼백여 리였으니까.
금설화와 소민의 얼굴이 환해졌다.
당연히 그녀들은 전적으로 진무앙을 지지했다.
금설화가 크게 말했다.
“진 소협의 뜻을 따를게요.”
모든 일의 배후에 화산파가 있다고 해도 그녀들에게 중요한 건 만금산장과 금진운인 것이다.
타라와 아르다반, 소소야 진무앙이 무엇을 하든 무조건 ‘예’인 사람들이고, 석채은은 의견 제시가 불가능한 구경꾼이다.
그러니 결론은 바로 났다.
진무앙이 종남파 제자들에게 물었다.
“우리와 너희의 목적은 다르지만 가야 할 곳은 같다. 우리도 만금산장에 가는 길이니까. 함께 가겠냐?”
황수의 안색이 굳었다.
그는 진무앙 일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니 그의 동행 요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황수의 속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한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금 소저는 만금산장과 화산파에 쫓기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걸 뒤집으려고 가는 거다. 제반 사정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일을 하다 보면 종남 제자들을 구하려는 너희의 목적도 달성될 거다. 그건 약속할 수 있다.”
황수 일행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진무앙은 종이라 생각되는 색목인을 시켜 그들을 일패도지시킨 신비스런 인물이었다.
그가 자신들을 돕는다면 사문 형제들의 구출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들의 대표자인 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기꺼이 소협과 함께하겠소. 무엇 일이든 시켜주시오.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해 돕겠소.”
진무앙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테니까 내상이나 추슬러. 뒤처지면 버리고 떠날 거다.”
“알겠소.”
진무앙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잘 시간 넘겼네. 타라.”
타라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다리를 길게 펴고 앉았다.
진무앙은 태평하게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우며 소소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소소가 다가오자 그는 아이를 잡아당겨 배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서 자라.”
아이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예, 숙부님.”
진무앙은 장포 자락으로 소소를 덮었다. 그리고 한 팔을 아이의 등에 얹은 채로 눈을 감았다.
타라는 희고 고운 손가락으로 천천히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르다반이 그런 진무앙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앉은 채로 잘 기세였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석채은과 금설화는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드르릉… 드르릉…….
눈 몇 번 깜박일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진무앙의 코 고는 소리가 공터에 낮게 깔렸다.
석채은이 중얼거렸다.
“저 인간의 뇌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궁금해…….”
하지만 진무앙의 정체를 아는 금설화는 감히 석채은처럼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석채은이 힐끗 운기조식에 들어가 있는 종남 제자들을 보며 말했다.
“귀찮은 거라면 질색인 사람이 왜 종남 제자들을 동행시킨 걸까? 그것도 먼저 제안까지 하면서……. 절세미인이 포함되어 있는 일행도 아닌데… 이 까도 까도 속을 알 수 없는 양파 같은 인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 * *
정오를 지난 시각, 화산의 계곡 분지.
늘 그랬듯 노인은 텃밭에서 채소와 꽃을 돌보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오사자가 호법을 뵙습니다.”
노인은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입술을 달싹였다.
“말하거라.”
“금설화 일행이 섬서성으로 들어섰습니다. 지금쯤이면 그들은 낙남현을 지났을 것입니다.”
노인의 눈이 반짝였다.
“낙양을 떠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곳을 지난단 말이냐?”
“예상보다 그들의 이동 속도가 굉장히 빨라 추종이 버거울 정도입니다.”
“화산을 지나쳐 가는 걸 보니 그들은 바로 만금산장으로 갈 모양이로구나.”
낙남현은 화산에서 정남쪽으로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속하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호법.”
“흠…….”
제오사자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들 일행에 뜻밖의 잡놈들이 합류했습니다.”
“잡놈?”
“종남의 대사형인 황수와 십여 명의 제자입니다. 그들 중에는 송이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송이운이라… 종남파에 숨어 있다가 탈출한 그 여아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대법의 비밀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었지?”
“예.”
처음으로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제오사자가 말했다.
“화산을 우회해 지나가는 저들의 이동속도를 따라잡는 건 쉽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목적지를 알고 있으니 만금산장이 있는 여산 입구에서 제거하는 게 더 효율적일 듯싶습니다.”
노인은 일어나 뒷짐을 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흰구름에 휩싸인 화산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을 푸른 하늘이 덮고 있었다.
“대법의 마무리가 사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변수가 생기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매화검수를 비롯한 정예를 모두 만금산장으로 보내거라. 나도 따라갈 테니.”
“존명.”
제오사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혼자가 되자 노인의 청수하던 얼굴이 음침해졌다.
그가 중얼거렸다.
“피는 많을수록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