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18
218 깼냐?
그때였다.
영정의 눈동자에서 보라색이 사라지며 흰자위까지 칠흑처럼 검게 변했다.
동시에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안개처럼 흘러나와 대전을 뒤덮었다.
외성의 수은 안개를 겪은 타라가 급하게 뇌정신공으로 강기 막을 펼쳐 일행을 보호했다.
수은 따위야 안개든 액체든 관심도 없는 터라 진무앙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그가 타라에게 말했다.
“타라, 쓸데없이 힘쓸 필요 없어. 이건 수은 증기가 아니야.”
그 말에 안도한 타라가 강기 막을 거두었다.
진무앙은 영정을 내려다보았다.
영정의 검은 눈동자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광포한 살기로 가득차 있었다.
“크으으으으-”
고통에 겨운 신음과 함께 물고기처럼 전신을 펄떡거리며 그가 물었다.
“파천… 짐의… 몸이… 왜 이러는… 것인가……?”
진무앙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영정, 너, 바보냐? 왜 전신마가 애들이 그 고생을 해서 대혈마신이혼대법으로 너의 혼을 불러냈겠냐? 널 다시 황제로 모시려고? 걔들이 미쳤냐, 널 모시게? 널 종처럼 부려 먹으려고 불러낸 게 당연하잖아.”
영정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지금 네 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전신마가 놈이 널 부려먹으려고 해서 그런 거야. 이 상태로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넌 정신줄 놓고 걔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가 될 거다.”
“끄으으으… 꼭두각시라니… 말도 안 돼… 감히 짐을…….”
영정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진무앙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네 정신력이 강해서 예상보다 오래 버티고 있긴 하지만, 네가 분노하면 정신줄 놓는 시간이 더 빨라질 뿐이야.”
영정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며 사지가 뒤틀렸다.
그의 정신을 장악하려고 하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씁쓸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진무앙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을 받은 자가 매화 문양이 새겨진 낡은 도포자락으로 부서진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슥 닦으며 싱긋 웃었다.
으깨지다시피 했던 그의 머리는 마치 기괴하게도 재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전한 형태를 되찾고 있었다.
진무앙에게서 삼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사람들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우진량이었다.
그가 진무앙에게 말했다.
“파천이라… 그저 전설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일 줄은 몰랐군.”
진무앙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네가 모르는 게 어디 그거뿐이겠냐.”
우진량의 부활을 보고 경악했던 타라 등은 그제야 내성에 들어온 뒤에 일이 너무 쉽게 진행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검후의 몸을 차지한 영정의 신위는 분명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외성에서 겪었던 병마용들과의 싸움이 그보다 오히려 더 힘겨운 것이었다.
게다가 대법을 실행한 것으로 의심되던 우진량은 진무앙에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죽임을 당했다.
진무앙과 우진량을 번갈아 보던 석채은이 중얼거렸다.
“역시 세상의 일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구나…….”
그 순간, 우진량의 전신에서 칙칙한 쇳빛의 강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본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묵철마강… 이 일에 들인 공이 상당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마가십호법 중 한 명이 직접 나서서 주관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눈빛이 깊게 가라앉은 우진량이 말을 받았다.
“아는 게 정말 많군.”
“만겁마안을 펼친 네 눈을 통해 지금의 나와 이곳 상황이 너희 가주 놈한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는 것도 알지.”
우진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진무앙이 장난처럼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이, 전신마가주 서문강, 잘 지냈냐? 고작 이백 년이 흘렀을 뿐이니 후대에게 가주위를 넘긴 건 아닐 테고. 여전히 가주는 너겠지?”
우진량은 석상처럼 굳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
“저놈 말하는 거 들으니까 그때 일을 전혀 모르는 거 같은데. 부하들에게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았나 봐? 아무튼 임아의 몸에 영정의 혼을 소환한 꼴을 보니까 그때 고생 좀 더 하더라도 널 그냥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를 하는 중이야.”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는군. 당신이 설령 전설처럼 불사의 존재라 할지라도 그건 이 세상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진무앙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
“닥쳐, 새끼야. 호법 나부랭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네가 능력이 있어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너희 가주한테 할 말이 있지 않았으면 넌 벌써 죽었어.”
그는 우진량을 가볍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서문강, 이 세상에 풀어놓은 네 부하들 전부 철수시켜. 집구석에서 기어나올 생각은 하지도 말고. 내 말을 뼈에 새겨두는 게 좋을 거야. 흘려듣는다면 그 대가는 참혹할 거거든. 이백 년 전엔 너 하나 징치하는 걸로 끝냈지만, 이번엔 전신마가를 아예 소멸시켜 버릴 거니까. 이건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야.”
우진량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
그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된 주문이 흘러나왔다.
“끄으으으… 그아아아아…….”
그러자 영정이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미친 듯이 비틀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가 안개처럼 대전을 휘감았고, 피부 위로 불거진 혈관들은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하지만 그는 진무앙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괴성을 지를 뿐 일어서지는 못했다.
진무앙이 그에게 펼친 점혈법은 단순히 혈도만 점하는 것이 아니라, 대혈마신이혼대법의 흐름을 봉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우진량의 얼굴이 식은땀으로 뒤덮였다.
진무앙은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그를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귓구멍에 말뚝 박은 놈,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지!”
그가 오른손을 들어 우진량을 가리켰다.
마치 손바닥에서 솟아나듯 두 자 길이의 반투명한 핏빛의 혈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상혈검이었다.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한 우진량은 묵철마강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주문의 속도를 높였다.
“@$#% %$&*&@#*&”
두터운 쇳빛의 강기에 가려진 그의 모습은 어렴풋한 형태만이 보일 뿐이었다.
진무앙은 털 듯이 환상혈검을 사선으로 그어 내렸다.
암왕쌍절의 두 번째 초식이자 혈우팔법의 최종절기 참혼절 번천무상인이 펼쳐진 것이다.
한 가닥 핏빛의 선이 묵철마강을 두부처럼 파고들며 우진량을 어깨부터 허리까지 베어버렸다.
“으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우진량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진무앙을 보았다.
“다… 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스으읏- 털썩!
푸확!
사선으로 양단된 그의 상체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며 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때 괴악한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으드득… 파… 파천… 으득… 나를… 죽여… 라…….”
말을 한 사람은 찢어질 듯 부릅뜬 눈으로 진무앙을 보고 있는 영정이었다.
우진량이 죽었는데도 그의 상태는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된 것처럼 보였다.
진무앙은 혀를 찼다.
“아까 내가 한 말 벌써 잊은 거냐? 네가 차지한 몸의 주인인 검후는 내 여자다. 그러니 못 죽여.”
“으아아아아아아!”
영정은 비명과도 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파… 파천… 난…… 더는… 버틸 수… 없다……. 곧… 마기가… 내 정신을… 장악할 거다……. 나는… 미쳐서 날뛰는… 괴물이 되기 위해… 소환에 응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게 뭐하러 이승엔 다시 내려와서 이런 대접을 받냐. 저승에서 너와 같이 순장당한 후궁들의 칼에 맞으며 사는 게 백 번 나았어, 임마.”
“놈들이… 나를… 속인…….”
“헛똑똑이 자식, 다 네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까 놈들한테 바보같이 속은 거잖아. 미련이 집착이 되면 죽은 뒤에도 고달프다는 걸 이제 알았냐?”
“그으으… 으으…….”
영정은 온몸을 뒤틀며 미친 듯이 펄떡거릴 뿐 더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광기로 물든 그의 눈동자는 그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진무앙이 고개를 돌려 소소를 보며 말했다.
“꼬맹아, 이리 와라.”
“예, 숙부님.”
그때까지 타라의 품에 안겨 있던 소소가 조심스럽게 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진무앙에게 걸어왔다.
공포스러운 상황이었는데도 소소의 표정과 걸음은 안정되어 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진무앙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태도였다.
진무앙의 앞에 선 소소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꼬맹아, 네가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다.”
“영정이라는 아저씨의 혼 너머를 보라는 거죠?”
진무앙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고 있구나. 저 자식의 혼 너머에 몽지림이라는 예쁜 언니가 있을 거야. 그녀는 자고 있을 텐데, 깨워서 밖으로 데리고 나와.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바로 응할 거야. 영정이 날뛰고 있을 테니까 조심하고. 알았지?”
소소는 망설이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숙부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석채은은 대경실색했다.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진무앙이 소소에게 시킨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진 호위, 지금 소소에게 저 사람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건가요? 소소가 가진 능력이 뭔지는 모르지만 저 아이는 이제 아홉 살에 불과하다고요. 잘못하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영정의 능력과 괴기한 모습은 그녀조차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열 살도 안 된 아이에게 그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시키다니.
진무앙이 힐끗 그녀를 보며 말을 받았다.
“석 목주, 꼬맹이를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낄 데, 안 낄 데는 좀 가려요. 내가 돌아오지 못할 일을 꼬맹이한테 시킬 사람 같습니까?”
석채은은 말문이 탁 막혔다.
그녀는 낙양에서 서안까지 오는 동안 진무앙이 소소를 어떻게 대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살뜰하게 챙기지 않는 것 같았지만 소소에 대한 그의 보호는 아주 철저했다.
타라와 아르다반을 아이의 옆에서 떼지 않았고, 밤에는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고 잘 정도였으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들을 부녀지간이라고 오해해도 할 말이 없을 모습이었다.
진무앙이 소소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시작해라.”
“예, 숙부님.”
소소는 무릎을 꿇고 앉아 조심스럽게 영정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진무앙은 그런 아이의 등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장심에서 흘러나온 막대한 기운이 조심스럽게 소소의 전신 경락을 타고 흘렀다.
타라와 아르다반이 두 사람의 좌우에 섰다.
얼마나 지났을까.
대전을 가득 채웠던 검은 안개가 소용돌이치며 영정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부가 환하게 밝아졌을 때 영정의 이마에서 손을 뗀 소소가 힘없이 진무앙의 품으로 쓰러졌다.
아이는 이미 혼절한 상태였다.
진무앙이 소소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고생했다, 꼬맹아.”
그리고 영정, 아니, 검후 몽지림이 눈을 떴다.
검은빛은 사라졌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보라색이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진무앙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깼냐?”
쫘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