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19
219 아까 한 경고 취소다
맨눈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무앙의 뺨을 세차게 올려붙인 몽지림은 곤룡포 자락을 휘날리며 그의 앞에 우뚝 섰다.
엄청난 일이 벌어진 터라 대전의 분위기는 만년설이 쌓인 북해처럼 꽝꽝 얼어붙었다.
진무앙이 귀싸대기를 얻어맞다니…….
누가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소소를 안고 천천히 일어선 진무앙은 벌게진 뺨을 어루만지며 구시렁거렸다.
“네 가슴에 쌓인 게 많은 거 아니까 맞아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래도 사람들 없을 때 하자……. 망신살 제대로 뻗치잖아…….”
투덜거리는 어조와는 달리 그의 눈빛은 부드러웠고, 입가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몽지림의 몸에서 영정이 떠난 것에 비하면 귀싸대기 한 방 맞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마휘에게는 쌍검에 목이 베일 뻔하기도 했고, 연백지로부터는 굉천뢰도 무더기로 선물받았었잖은가.
그에 비하면 귀싸대기는 귀여운 수준이지.
다행히(?) 몽지림은 진무앙을 더는 때릴 생각이 없는 듯 말없이 서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진무앙은 일행을 대전에서 빨리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그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위험은 사라졌으니까 너희는 금 장주와 종남파 제자들을 찾아봐. 그거까지 내가 해주길 바라지는 않겠지?”
“아!”
“예!”
“알겠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금설화와 소민, 황수 등이 황급히 대답한 후 빠르게 대전을 나갔다.
남은 건 타라와 아르다반, 그리고 석채은밖에 없었다.
“석 목주도 여기서 놀지 말고, 수색에 힘 좀 보태는 게 어때요?”
“당신과 저분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궁금해서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네요.”
“여자한테 남자가 맞는 거 처음 봤습니까?”
“많이 봤죠. 하지만 당신이 맞을 거라고는…….”
석채은은 말을 흐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녀는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미소를 본 진무앙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다른 사람 맞는 거 보면서 즐거워하다가는 천벌받아요.”
“천벌받죠, 뭐.”
“누가 그 스승에 제자 아니랄까 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은 아주 판박이네.”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려 몽지림과 눈을 마주친 진무앙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임아, 너, 왜 이래?”
몽지림은 보석처럼 빛나는 보라색 눈동자로 그를 똑바로 바라볼 뿐,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진무앙의 눈빛이 강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소소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아이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서너 번 숨을 쉴 시간이 지나자 소소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갔다.
“숙부님…….”
아이의 눈과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소모된 기력이 회복되려면 아직 먼 것이다.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 몽지림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소소에게 듣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꼬맹아, 임아 상태가 이상해. 어떻게 된 거냐?”
몽지림을 돌아보는 소소의 눈빛이 흐려졌다.
“죄송해요, 숙부님…….”
“뭐가?”
“영정이라는 그 아저씨의 방해가 너무 심해서 저 언니와 함께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언니를 만나서 깨우는 데는 성공했어요. 그런데 나올 때 그 아저씨가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면서 우리의 앞을 막았어요.”
“그래서?”
“언니가…….”
“임아가 어떻게 했는데?”
“저를 내보내고 그 아저씨와 심하게 싸웠어요.”
소소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갔다.
아이는 버티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결국 다시 정신을 잃고 진무앙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몽지림에게 눈길을 돌린 진무앙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이의 이야기는 짧았지만 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타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루드라 님, 소소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석채은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기에 그녀는 천축어를 썼다.
“임아가 눈을 뜬 건 영정을 쫓아내는데 성공했다는 걸 뜻한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싸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싸움을 끝내지 못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거다.”
“영정이 떠났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검후가 누구와 싸운다는 건가요?”
“대혈마신이혼대법.”
“예? 대법과 싸운다고요? 그건 이미 끝난 거 아니었나요?”
“마계삼가의 모든 대법은 완성되면 마령이라는 것이 깃든다.”
“마령… 이라고요?”
“그래. 마기의 정화를 품고 태어난 놈이라 독자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괴물이지. 하지만 갓 태어난 마령은 대법의 주관자가 깨워줘야만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진무앙은 무서운 눈으로 우진량의 시신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건 내 실수다. 저놈이 죽기 전에 읊은 주문은 영정의 잠능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마령을 깨우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검후의 정신을 정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겠죠?”
“찾아봐야지…….”
“소소가 한 번 더 들어가면 안 되나요?”
“너무 위험하다. 영정은 정신줄을 놓은 상태라 꼬맹이가 놈을 지나 임아에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마령은 교활해. 꼬맹이가 들어가면 임아를 버려두고 먼저 아이부터 제거하려 들 거다.”
타라는 소리 없이 탄식하며 몽지림을 보았다.
몽지림은 그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절세의 미인이었다.
진무앙의 여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녀의 나이는 스물두셋 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훤칠한 키와 품이 넓은 곤룡포로도 가려지지 않는 아름다운 몸매, 은발과 보라색 눈동자는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너무 안타깝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정상을 회복하지 못하다니…….’
그녀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진무앙의 감정은 달랐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우진량의 시신을 노려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가뜩이나 나 때문에 마음고생 심했던 여자를 이렇게 만들어? 서문강, 아까 한 경고 취소다. 네가 이 세상으로 기어나오지 않아도 내가 찾아가서 전신마가를 아주 뿌리째 뽑아주마, 다시는 이런 짓을 할 꿈도 꾸지 못하도록.”
타라가 그에게 물었다.
“대체 전신마가의 가주는 왜 검후를 실험체로 사용한 거죠? 그녀가 초절정고수라고 하지만 우진량을 보면 마가 내에서 그녀만 한 고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마계에서 태어난 자에게 대법을 펼치는 게 불가능하니까 그런 거야.”
“예?”
“전신마가뿐만 아니라 마계삼가에서 창안된 모든 탈혼대법은 그들에게는 사용이 불가능해.”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들은 사용할 수도 없는 걸 왜 창안한 거죠?”
“나는 그것들을 그들 자신에게 쓸 수 없다고 했지, 사용할 수 없다고는 하지 않았다.”
타라의 눈이 커졌다.
“그럼… 그들의 모든 대법이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려고 창안되었다는 건가요?”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중에 여유 있을 때 천천히 말해주마. 그렇게 되기까지의 사연이 좀 많이 복잡하거든.”
입을 다문 그는 우진량의 시신이 누워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의 한 걸음 뒤에서 졸졸 따라온 석채은이 물었다.
“이 사람이 정말 매화검존 우진량인가요? 혹시 인피면구를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는 우진량을 보며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은 우진량 본인이 맞습니다.”
“백 년래 화산제일고수라 숭앙받던 매화검존이 전신마가라는 곳에서 보낸 간자라니… 믿을 수가 없네요.”
“량아는 마가에서 보낸 간자가 아닙니다.”
“예?”
“전신마가의 탈혼심마대법에 의해 녀석은 혼이 쫓겨나고 몸을 빼앗겼을 뿐입니다.”
“아… 그럼 몽 선배처럼 다시 본래의 우 노사로 되돌릴 수도 있었지 않았나요?”
“불가능합니다. 혼이 쫓겨났다고 한 내 말은 어디로 들은 겁니까? 전신마가의 대법들은 무림의 섭혼술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가 씁쓸한 눈으로 우진량의 시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혼을 쫓아낸 후 마령이 대상자의 심신을 완전히 장악하면 정상으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임아도 마령과 싸우고 있는 상태니까 가능성이 있는 거지, 혼이 쫓겨난 뒤라면 본래의 그녀로 되돌릴 가능성은 전무했을 겁니다.”
“마령이라는 게 뭐죠?”
“그런 게 있습니다.”
석채은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타라와 이야기했을 때는 천축어를 썼던 터라 마령에 대해서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은 더는 석채은에게 설명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마령이 뭔지 말 안 해줄 거예요?”
진무앙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예.”
석채은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러던 그녀가 무엇을 떠올린 듯 안색이 살짝 변했다.
“진 호위, 그럼 금진운 장주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는 거 아니에요?”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전신마가의 대법은 아무한테나 막 펼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진운이한테 펼친 건 최상급 섭혼술이지, 마가의 대법이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만금산장 사람들에게 펼쳐진 게 마가의 대법이었다면 금설화가 흑암주를 갖고 있더라도 저항하지 못했을 거거든요.”
석채은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흑암주가 뭔지를 모르니 진무앙의 말을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아, 흑암주는 또 뭔가요?”
“그런 게 있습니다.”
“진짜 이렇게 나올 거예요?”
“예.”
“아으으으…….”
진무앙의 불성실한 대답에 신경질이 잔뜩 난 석채은이 앓는 듯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우르르르-
대전 밖에서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리더니 나갔던 일행이 돌아왔다.
등에 누군가를 업은 금설화와 소민은 들뜬 기색이었다.
반면에 종남 제자들은 양손에 검붉은 피가 묻은 옷을 든 채 참담한 표정으로 어깨를 떨구고 있었다.
금설화가 업고 있던 남자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그는 바짝 마른 초로의 노인이었다.
진무앙이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도 많이 늙었군. 나이가 드니까 말년의 적산이 놈과 더 비슷해졌어…….”
금설화가 그에게 말했다.
“진 호위님, 아버님은 정신을 차리지는 못하셨지만 무사하세요. 그런데 종남파 분들이…….”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진무앙은 별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다.
그가 황수에게 물었다.
“한 사람의 시신도 찾지 못한 거냐?”
황수가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피가 말라붙은 거대한 연못에서 본파의 옷들만 발견했습니다.”
“대혈마신이혼대법으로 마령을 형성하려면 다른 것들과 함께 제물로 사용할 일천 명의 생기가 필요해. 하지만 제물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면 필요로 하는 숫자를 삼분지 일로 줄일 수 있지.”
“그럴 수가…….”
“크윽… 사부님…….”
“흑흑흑… 사형… 사제…….”
종남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수십 년을 동고동락한 문파의 사형제들이 사악한 대법의 제물로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진무앙이 아르다반을 불렀다.
“아르다반, 금진운을 업어라.”
“넵.”
“설화는 민아를 챙기고.”
“예.”
“만금산장으로 가겠다. 황수, 종남 제자들도 함께 간다.”
황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희도 말입니까?”
모든 일이 끝난 뒤였다. 그러니 그들이 만금산장에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너희에게 줄 게 있다.”
진무앙의 말은 그걸로 끝이었다.
영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종남 제자들은 아무도 그의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진무앙은 이미 신에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진무앙이 걸음을 옮기자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일행은 시황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