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20
220 놀라운 이야기
황궁.
황제의 집무실인 태화전.
옥좌에 앉은 신무제는 오 장 앞에 허리를 숙이고 서 있는 두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문상과 운중비각주였다.
신무제가 운중비각주에게 눈길을 주며 물었다.
“상관무외가 낙양에서 무엇을 하였 는지 알아냈느냐?”
운중비각주의 이마가 바닥에 닿을 것처럼 내려갔다.
“조사 중이지만 동창의 방해가 심하여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신무제가 미간을 찡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보고로군.”
“수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곧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폐하.”
“짐은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각주.”
삼엄한 기운이 대전을 찍어 눌렀다.
털썩! 쿵!
운중비각주가 무릎을 꿇으며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폐하, 소신의 무능을 절감하고 있사오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신다면 이른 시일 내에 만족하실 만한 소식을 갖고 오겠습니다.”
무심한 눈으로 운중비각주를 바라보던 신무제는 천천히 기세를 거뒀다.
그가 화제를 바꾸었다.
“서안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들어왔다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운중비각주가 지체 없이 대답했다.
“예, 폐하.”
“고하거라.”
“동창의 천군이 암중에 진행하던 대혈마신이혼대법이 실패로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전신마가에서 보냈던 묵철호법과 호법사자들, 그리고 그가 장악했던 화산파의 정예는 현장에서 궤멸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신무제의 눈에 흥미로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분노로 눈이 뒤집혔을 천군을 상상하면 무척 즐거운 일이긴 한데, 대체 누가 대법을 저지했다는 거냐? 이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능력자가 있던가?”
“만금산장주 금진운의 딸 금설화와 종남파의 제자 십여 명이 현장 부근에서 목격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잘것없는 놈들이 대혈마신이혼대법을 깨뜨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분명 다른 자들이 있었을 텐데?”
“금설화가 낙양에서 고용한 임시 호위무사 일행이 더 있었습니다.”
“임시 호위무사?”
“예. 진무앙이라는 낭인과 색목인 남녀 두 명입니다.”
신무제의 눈빛이 깊어졌다.
“낙양이라… 최근 들어 그곳의 이름을 자주 듣게 되는군. 그들 외에 눈에 띄는 다른 자는 없었느냐?”
“예, 폐하.”
그가 문상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들이 전신마가의 대법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들이 주체가 아니라 해도 관련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곳에 있던 자들은 그들뿐이기 때문입니다.”
“본가의 구화산, 성혈마가의 무한, 전신마가의 서안… 이렇게 되면 세 가문이 모두 한 번씩 좌절을 겪은 셈인가… 재미있군.”
중얼거리던 신무제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그가 문상에게 물었다.
“구화산과 무한 사태를 종식시킨 자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되었느냐? 여전히 진전이 없는 것이냐?”
“아직 그자의 정체를 파악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보를 수집한 결과, 그 일을 한 자가 한 명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명? 어떻게 그런 결론을 얻은 것이냐?”
“두 가지 정보에 근거한 결론입니다. 하나는 그자와 동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들, 남궁경을 비롯한 자들이 철저하게 함구하는 것이 무림맹의 행태와 동일합니다.”
“무림맹도 역병의 종식과 군사 실종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분명 무한 사태 종식이 막후에 무림맹 수뇌부와 교감을 한 자가 있는 듯한 정황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총군사 독고운진이 나서서 직접 정보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무엇이냐?”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두 장소에서 동일하게 목격된 자가 있습니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죽립을 쓴 이십대 초반의 절세미남이라고 합니다. 두 지역 목격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인상착의를 비교한 결과, 저는 그 둘이 동일인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결론이로군. 절세미남이라고 동일인으로 추정하다니. 비슷하게 생긴 자일 수도 있지 않느냐.”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목격자들이 말한 그자의 인상착의가 일치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자에 대해 그렇게 잘생긴 남자는 천하에 다시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자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습니다. 이건 정상이 아닙니다.”
“그자가 두 장소에 있었던 게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지 않느냐?”
“그 가능성은 더욱 희박합니다.”
“왜?”
“운중비각조차 그자를 추적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신무제의 눈에서 번갯불 같은 신광이 쏟아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운중비각주를 보았다.
“네가 추적에 실패했다고?”
운중비각주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폐하. 분명 목격자들이 있었으나 그의 정체는 물론이고 어디서 왔는지 사태가 종식된 후 어디로 갔는지 추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화산 부근에서는 남궁세가가, 그리고 무한에서는 무림맹이 철저하게 그자의 흔적을 지웠습니다. 두 지역에서 목격자를 찾은 것도 천운에 가까웠습니다.”
문상이 운중비각주에 이어 입을 열었다.
“속하는 남궁세가와 무림맹이 이처럼 공들여 그자의 흔적을 지울 이유는 하나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자가 구화산과 무한 사태를 종식시킨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폐하.”
“설령 너의 판단이 옳다고 해도 의문은 남는다. 그가 진정 두 사태를 종식시킨 자라면 단숨에 태양처럼 찬란한 명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정체를 숨길까?”
문상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속하도 그 점이 의문스러워 숙고를 거듭하고 있으나 아직 마땅한 해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신무제는 손끝으로 옥좌의 팔걸이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네 말처럼 그자가 실재하는 놈이라면 명예를 탐하지 않거나 이미 다른 명성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겠지…….”
신무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태화전에 정적이 흘렀다.
반각 후, 입을 연 그가 운중비각주에게 물었다.
“서안에서 목격된 진무앙이라는 자의 외모는 어느 수준이냐?”
“나이는 서른 전후이고 체격은 건장하지만 외모는 평범하다고 합니다.”
“흠…….”
침음성을 흘린 신무제가 운중비각주에게 지시를 내렸다.
“진무앙은 물론이고 그와 함께 움직였던 모든 자에 대해 철저하고 신속하게 조사하도록.”
“존명!”
“짐의 명이 있을 때까지 그들을 자극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마라.”
“존명!”
신무제가 나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즉시 운중비각주의 모습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신무제의 눈길이 문상을 향했다.
“문상, 아까부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얼굴인데, 무엇이냐?”
“속하는 세 곳에서 진행되던 작업을 좌절시킨 자가 동일인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신무제는 눈빛이 무거워졌다.
“동일인이라…….”
그가 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자는 암천광무존이겠지?”
문상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폐하.”
신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암천광무존… 그 외에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폐하께서는 운중비각주에게 금설화 일행을 자극하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폐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건 그들 중에 암천광무존이 있을 가능 성이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 아니옵니까.”
신무제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렇다.”
생각에 잠긴 눈으로 그가 중얼거렸다.
“진정 세 장소에 나타났던 자가 암천광무존이라면 시점이 너무나 절묘하구나. 그리고 만약 암천광무존이 ‘그’라면…….”
“무슨 말씀이신지……?”
머리 좋기로 천하에 둘째가라는 문상도 속뜻을 알아차릴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신무제는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 문상에게 다른 지시를 내렸다.
“문상, 너는 모든 일에 우선해서 운중비각주의 조사를 지원하라.”
“존명!”
신무제의 음성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대화가 끝났다는 것을 안 문상은 길게 읍을 한 후 태화전을 떠났다.
혼자가 된 신무제의 오른손에서 무형의 경력이 흘러나와 옥좌의 어딘가를 건드렸다.
스으으읏-
희미한 소리가 나며 신무제가 앉은 옥좌가 바닥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옥좌가 멈춘 건 십여 장을 내려간 후였다.
그곳은 폭 삼십 장, 높이 삼 장의 넓은 광장이었다.
광장의 바닥은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흰 대리석이 깔렸고, 벽과 천장의 재질은 한철이었다.
천장에 박힌 수천 개의 주먹만 한 야명주들로 인해 광장은 대낮처럼 환했다.
그렇게 밝은 데도 광장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어둡고 차가웠다.
신무제는 옥좌에서 일어나 광장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중앙의 바닥엔 부적을 연상시키는 주사로 그은 듯한 붉은빛의 기이한 문양이 원형으로 그려져 있었다.
음양과 팔괘가 복잡하게 얽힌 듯한 문양은 사방 오 장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기이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문양의 동서남북 끝 지점엔 만년한옥으로 만든 네 개의 관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관들 위에는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네 개의 형상이 허공에 떠 있었다.
그것은 회백색의 팔찌와 금빛의 종, 그리고 고풍스러운 외형의 암적색 칼날을 가진 장도와 핏빛의 활이었다.
신무제는 원형 문양의 중앙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고 관을 돌아보았다.
뚜껑이 열린 관에는 네 명의 여인이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들 중 두 사람은 혈왕의 딸인 우문백령과 카일라스산 지하에서 탈출한 마히샤였다.
우문백령의 관 위에는 팔찌가 마히샤의 관 위에는 금종의 형상이 떠 있었다.
신기루 같은 형상들.
그것은 환우마병들이었다.
신무제가 허공의 한 점을 노려보며 말문을 열었다.
“만겁수라환, 겁화금종, 탈혼마도, 단천혈마궁…… 가주, 그대가 요구한 환우십병의 칠마병 중 다섯 개를 모았다.”
그의 말은 이상했다.
광장엔 그 외엔 아무도 없었는데도 마치 눈앞에 상대가 있는 듯이이 말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공에 떠 있는 마병의 숫자는 분명히 넷이었는데도 그는 다섯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신무제가 입을 닫은 순간,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검붉은 원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신비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그대가 다시 상기시키는 건 내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
가주라는 자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검붉은 원이 춤을 추듯 일렁였다.
신무제가 말을 받았다.
“전신마가의 대혈마신이혼대법이 누군가에 의해 좌초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놀라운 이야기로군…….”
충격을 받은 듯 가주라는 자의 대꾸는 조금 늦게 나왔다.
신무제는 문상, 운중비각주와 나눈 대화를 가주에게 들려주었다.
가주가 말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야…….”
그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변해 있었는데,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말투였다.
신무제가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흥미진진하기만 할 리는 없을 텐데, 가주?”
“무슨 뜻인가?”
“가주, 내가 당신을 찾아온 건 묻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 무엇인가?”
“마계삼가에서 진행하던 일들을 좌초시킨 자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생각난 이름이 하나 있다.”
그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나와 처음 만났을 때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의 행적을 발견하면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반드시 당신과 상의하라고 신신당부까지 했었지.”
“황제여, 그대는 사달을 일으킨 자가 ‘그’라고 생각하는 건가?”
“가주,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굉장히 실망스러울 것이다.”
“…파천…….”
한 사람의 이름을 읊조리는 가주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황제여, 오늘은 그대와 좀 더 긴 시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
“바라던 바다.”
신무제는 팔짱을 끼며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날 그는 ‘가주’와 접촉한 후 처음으로 아주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