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25
225 밤이 길면 꿈도 많아진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각, 낙양의 남쪽, 이수 강변.
진무앙은 죽립을 삐딱하게 쓰고 앉아 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 그의 이 장 뒤에서는 강석초가 모닥불에 꼬치에 꿴 고기를 굽고, 매운탕도 끓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이 각이 넘도록 소식이 없는 낚싯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무앙이 고개를 뒤로 돌리며 소리쳤다.
“석초야, 아직 안 됐냐? 배고프다!”
강석초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 양심에 털 난 인간아! 소혜하고 잘 놀고 있는 나를 강제로 끌고 왔잖아. 그리고 음식까지 만들게 한 것도 모자라서 닦달까지 해?”
진무앙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를 후비며 말을 받았다.
“나이도 어린놈이 그렇게 매일 밤낮으로 소혜하고 침상에서 뒹굴기만 하면 영글기도 전에 뼈가 삭아, 임마. 가끔 이렇게 바람도 쐐주고, 몸도 움직여야 남자 구실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거야.”
“흥! 남자 구실 잘하고 있거든! 그리고 누가 나이가 어리다는 거야!”
“너.”
“으으으으… 이 늙지도 않는 꼰대가!”
“훗, 내가 늙지 않는 게 그렇게 아니꼬우면 어디 가서 주안과라도 하나 훔쳐 먹고 오든지.”
강석초의 입술이 댓 발 넘게 툭 튀어나왔다.
그는 고개를 홱 돌리고 음식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진무앙과 오래 대화를 해봐야 속이 끓는 건 자기뿐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잠시 낚싯대에 시선을 주고 있던 진무앙이 다시 말했다.
“석초야, 매운탕에 침 뱉으면 죽는다.”
“으으으… 사람을 뭐로 보고! 이것들은 나도 같이 먹을 건데 미쳤다고 침을 뱉겠냐!”
“아니면 말고.”
“으아, 그냥 확 들이받아 버릴…….”
“뱃살에, 턱살까지 다 뜯기고 싶으면 그래 보든지.”
“…….”
투덜거리는 것과는 달리 열과 성심을 다해 음식을 만들던 강석초의 눈에 음흉한 빛이 떠올랐다.
“무앙.”
“왜?”
“그 이야기 들었어?”
“뭐?”
“금미호 금설화 낭자가 만금산장 낙양 지점장으로 오고 있다는 이야기.”
“응?”
진무앙이 고개를 홱 돌려 강석초를 보았다.
“오 년 동안 장주 역할을 하던 애가 뭐가 아쉬워서 지점의 장으로 내려와?”
“내가 그 속을 어떻게 알아?”
낙양 지점의 규모가 강북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지점이다.
진무앙의 말처럼 장주 역할을 오 년이나 맡았던 금설화가 지점장이 된 건 비상식적이었다.
진무앙은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정신을 차린 금진운이 걔를 좌천시켰을 리는 없는데…….”
강석초가 그의 눈치를 슬슬 살피며 말을 이었다.
“서안에 다녀오는 동안 금 낭자한테 엉뚱한 짓을 하지 않은 거 맞지?”
“죽을래? 걔는 적산이 손녀야.”
“그게 무슨 문제라고. 역사를 보면 사정이 딱한 가신의 여식을 거둔 주공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잖아. 금 낭자가 너의 사대금녀에 해당되는 여자도 아니고.”
무앙의 기피 대상 사대금녀는 유부녀, 모녀, 사제지간, 그리고 스물이 안 된 여자다.
“석초야, 빈곤한 상상력으로 괴악한 이야기 만들어내지 마라. 그러다 진짜 맞는 수가 있다.”
진무앙은 죽립을 들어올리고 강석초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안 돌아가는 머리 굴리느라 애쓴다. 너답지 않게 날 은근히 부추기는 건, 내가 걔하고 조금이라도 엮이는 기미가 보이면 난향한테 고자질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강석초는 움찔하며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내… 내가 왜 그러겠어!”
“지금까지 숱하게 그랬잖아, 임마.”
“어? 매운탕이 벌써 다 됐네!”
“말 돌리는 거 봐라. 이마에 난 식은땀이나 닦고 말해, 새끼야. 탕에 땀방울이 하나라도 떨어지기만 해봐. 그때는 네 껍질을 벗겨서 공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
“그런 끔찍한 소리를…….”
진무앙이 일어나 불가로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강석초의 뱃살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네 껍질을 벗기면 공을 오십 개는 만들 수 있겠다. 빈민가 애들한테 주면 아주 잘 갖고 놀겠어. 그렇지 않냐?”
“허걱!”
강석초는 신음과 함께 소맷자락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놋숟가락과 나무젓가락을 얌전히 들어 공손한 자세로 진무앙에게 내밀었다.
“대형, 시장하시죠? 어서 드십시오.”
“너의 자세가 매일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맞은편에 앉은 강석초가 꼬치를 하나 집어 들며 대꾸했다.
“꿈 깨.”
“돼지 자식.”
“뜬금없이 낚시는 왜 하러 온 거야? 다섯째가 그렇게 같이 가자고 해도 지루해서 싫다고 하던 인간이.”
“머릿속이 복잡해서 정리 좀 하려고.”
강석초의 입이 헤하고 벌어졌다.
“설마… 네가 생각이라는 걸 하려고 여기 왔다는 거야?”
따악!
“으악!”
강석초의 이마에서 요란한 딱밤 소리가 났다.
그가 두 팔로 머리를 싸안으며 악을 썼다.
“왜 때려!”
“훗, 머리통 깨지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그런 말을 하고서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냐? 아무래도 요새 네 간이 너무 커져서 배 밖으로 나오려는 것 같은데, 잘라주랴?”
“내가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잖아.”
“없는 말 지어낸 거 맞거든. 내가 얼마나 생각이 깊은 남자인데.”
“아으으으… 말이 되는 소리를…….”
“한 대 더 때려주랴?”
“…….”
이마를 문지르던 강석초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
“그런 게 있다.”
“비밀도 많은 인간.”
“부러우면 지는 거야, 임마.”
“하나도 안 부럽거든!”
대화가 끊어졌다.
잠시 두 사람은 먹는 데 집중했다.
매운탕이 바닥을 보일 즈음 강석초가 진무앙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무앙, 닷새 전에 이 낭랑하고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별거 아니었다. 왜?”
“정말이야? 그날 이후로 이 낭랑이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어서…….”
진무앙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분위기에 감염된 강석초도 입을 다물었다.
초겨울의 차가운 강바람이 두 사람을 스치며 지나갔다.
해질 무렵의 수향루.
이수에서 돌아온 진무앙이 겉옷을 벗자마자 문 밖에서 사공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호위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진무앙은 피식 웃었다.
시도 때도 없이 문을 활짝활짝 열어젖히는 강석초에 비교할 수 없는 예의가 아닌가.
“누가 샌님 아니랄까 봐.”
낮게 중얼거린 그가 크게 대답했다.
“들어와.”
사공춘이 들어와 그에게 길게 읍을 했다.
“앉아.”
마주앉은 진무앙이 사공춘에게 물었다.
“왜?”
“며칠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 때문에 생각이 너무 많으신 듯하여 찾아뵈었습니다.”
“네 말 때문에 내가 안 하던 생각을 하느라 머리가 좀 아프긴 하지.”
“죄송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소소의 상태에 대해 그날 드리지 못한 말씀이 있습니다.”
“좋은 거냐, 나쁜 거냐?”
“둘 다입니다.”
“말해.”
“무상선력을 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소소의 증세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악화할 겁니다.”
“내가 옆에 있어도?”
“예.”
“악화의 시작은?”
“일 년 정도 뒤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증세가 악화되기 시작하면 소소의 생명은 반년을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이게 나쁜 거지?”
“예.”
“그럼 이제 좋은 거 말해봐.”
사공춘이 품에서 양피지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어 진무앙에게 내밀었다.
두루마리를 받은 진무앙이 천천히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만년삼왕, 인형설삼, 만년화리의 내단, 만년옥장, 공청석유, 독각룡의 내단, 묘강금관사의 내단… 뭐냐, 이거?”
“제가 구화산에서 사형과 함께 연구한 무량보천신단의 재료 목록입니다.”
“마력을 막는 와중에 그런 걸 만들었다고?”
“앉아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연구밖에 없었습니다.”
사공춘이 말을 이었다.
“무량보천신단이라면 소소의 증세가 악화되는 걸 막고, 수명을 십 년에서 길면 이십 년 정도 늘릴 수 있습니다.”
진무앙이 두루마리를 움켜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이거 다 구하려면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해야 하는지 아냐?”
사공춘은 이마를 탁자에 박으며 사죄를 했다.
“죄송합니다.”
“나가봐.”
“예.”
사공춘은 진무앙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진무앙은 문을 잠갔다.
강석초가 무단 침입하는 걸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진무앙은 두루마리를 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다니면서 겸사겸사 목록의 물건들도 챙겨야겠네.”
침상에 앉은 그는 암월도의 도갑을 앞에 놓고 입을 열었다.
“묵령아.”
기다렸다는 듯이 도갑에서 검은빛 일색의 미소녀가 톡 하고 튀어나왔다.
진무앙은 환우마령에게 ‘묵령’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가 묵령에게 물었다.
“파천혈신륜의 위치, 찾았냐?”
[예.]“어디냐?”
[사천성 성도 부근이에요. 여기서 그것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해요. 거리가 먼데다가, 당신한테 들킬까 봐 필사적으로 기운을 숨기고 있거든요.]진무앙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받았다.
“성도 부근으로 좁힌 것만 해도 다행이긴 하지. 그런데 네가 여기 있는데 왜 그놈이 사천성까지 간 거냐?”
[저도 모르겠어요.]낙양에서 사천성 성도까지의 거리는 이천 오백여 리에 달한다.
“지금까지 그 자식이 했던 짓을 생각하면 거기에 또 다른 마병이 있을 수도 있겠군.”
진무앙의 예측은 일리가 있었다.
그는 파천혈신륜이 겁화금종과 현철을목마금의 마령주, 만겁수라환을 열심히 쫓아다니는 걸 보아왔으니까.
묵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크긴 하죠.]진무앙이 도갑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구화산에서 챙긴 흡철령과 환무경의 환우신령은 발견했냐?”
[아직 못 찾았어요.]“흠… 그 자식도 내가 나머지 환우지약의 조각 두 개를 가졌다는 걸 알고 있잖아. 그러니 내 주변에 얼쩡거리고 있을 거 같은데…….”
[환우신령은 제가 당신과 함께 있는 걸 느끼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저와 당신을 한패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거예요.]“하여튼 쉬운 놈이 없어.”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가 묵령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자식의 본체는 삼신기 중 무엇일까? 너는 아냐?”
[몰라요. 칠마병이 마령주가 있어야만 그 본체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삼신기도 신령주를 손에 넣어야만 본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다시 부를 때까지 들어가서 쉬고 있어라.”
[예.]묵령이 아쉬운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진무앙이 혀를 차며 말했다.
“허, 그 표정 뭐냐? 몸을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었네.”
묵령이 주눅 든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 안은 너무 심심해서…….]“낙양만 떠나면 밖에 나와 있게 해줄 테니까 얼른 들어가, 자식아.”
묵령의 표정이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진짜요?]“그래. 진짜다.”
[넵! 들어가 있을게요!]힘차게 대답한 묵령이 검은 아지랑이로 변해 암월도의 도갑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진무앙이 암월도를 집어 들고 벌떡 일어섰다.
“밤이 길면 꿈도 많아지는 법이지…….”
별채를 나선 그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난향의 집무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