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30
230 강적이네
“사천의 밤을 지배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규모가 상당한 놈들이라는 말이네.”
“맞아. 엄청나게 커. 무림과 일반을 가리지 않고 침투해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괴담처럼 여겨. 그래서 놈들이 실재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 실체에 접근한 사람의 수는 더 적고.”
“행사가 그렇게 비밀스러운 놈들이라면서 당 포쾌는 어떻게 걔들을 아는 건데?”
“우리 부모님이 그놈들의 손에 돌아가셨어. 그래서 내가 포괘가 된 건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겠어?”
진무앙은 제멋대로 자신의 방을 침입한 당휘경의 신상 내력을 구구절절하게 듣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화제를 바꿨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당 포쾌,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어.”
“뭔데?”
“사천당가라는 거대 명문이 버티고 있는 사천에서 흑천이라는 놈들이 암약하는 게 가능해?”
“당가에도 놈들의 일원이 몸담고 있으니까.”
“당가 내에도? 확실한 거냐?”
“내가 일곱 살 때 부모님이 살해당했어. 그날 나는 분명히 봤어. 놈이 자신을 반갑게 맞이한 그분들을 냉혹하게 살해하는 것을.”
집안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사천당가 사람이고, 부모가 살해당할 당시 그곳에 살았을 거라는 유추는 어렵지 않았다.
그래야 말이 되니까.
“왜 놈들이 당 포쾌의 부모님을 살해한 거야?”
“아버지가 흑천의 뒤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었거든.”
“그런 놈들이 지금 내가 가진 만향주의 제조법을 노리고 있다는 거야?”
“그래.”
“살 떨리는군.”
진무앙이 어떤 남자인지 전혀 모르는 당휘경은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당신 마음 이해해. 흑천은 정말 무서운 놈들이니까.”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렸다.
흑천이 제조법을 노리는 이유야 뻔했다.
만향주는 술꾼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명주다.
탁일문이 살아 있을 때는 천하에서 그것을 마시기 위해 찾아온 술꾼들로 인해 만향 객잔 앞은 늘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그의 사후 제조법은 실전되었고, 세상에 남아 있는 만향주도 없다.
그러니 누군가 진정한 만향주를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손에 넣는 건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흑천이라는 조직이 침을 흘릴 수밖에.
“놈들이 내가 제조법을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어. 장담하는데 그놈들은 벌써 당신에 대한 정보를 손에 넣었을 거야.”
진무앙의 눈빛이 강해졌다.
“당 포쾌는 담상건을 의심하는 거냐?”
당휘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담상건은 정파의 전형적인 의협이야. 정이 많고 사람을 돕는 걸 좋아해. 게다가 성격이 단순하고 직선적이어서 모략을 꾸미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그럼 담상건의 주변 사람을 의심하는 거로군.”
당휘경의 눈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당신, 머리 굴리는 게 제법인걸?”
진무앙은 입맛을 다셨다.
갑자기 난향이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건 그녀가 지금 당휘경이 한 말을 들었으면 분명히 보였을 반응이었다.
당휘경이 말을 이었다.
“당삼건은 청성파의 속가제자가 세운 대웅방의 현 방주 양웅의 무기명 제자야.”
“양웅을 의심하는 거냐?”
진무앙의 질문에 당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연이어 물었다.
“양웅과 만향 객잔에 돈을 빌려준 고리대금업자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는 거로군. 그렇지?”
당휘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 머리 굴리는 거, 그냥 제법 수준이 아닌데?”
또다시 난향이 떠오른 진무앙은 속으로 혀를 찼다.
당휘경이 말을 이었다.
“양웅의 아들인 소방주 양원룡이 고리대금업을 하는 철파당주와 자주 접촉한다는 정보가 있었거든.”
“정파의 대웅방과 사파의 철파당이라면 영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데… 하지만 흑천이라면 그 둘을 모두 품을 수 있다는 거로군.”
당휘경은 그새 적응이 된 듯 이번에는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그런 식으로 올라간 정보가 흑천의 수뇌부에 전달되면 나를 노리고 그들이 움직일 거다?”
“길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말하기가 참 편하네. 당신, 포도아문에 몸담을 생각 없어? 내가 추천해 줄 수도 있는데.”
“전혀.”
진무앙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후 당휘경에게 물었다.
“그래서 당 포쾌는 내게 흑천이 노리고 있다는 경고를 하러 온 거야?”
“그것도 있고.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
“뭔데?”
“미끼 노릇 좀 해줘.”
“응?”
“흑천 놈들이 얼마나 은밀하게 움직이는지 꼬리를 잡기가 너무 힘들어. 철든 이후로 계속 추적해 왔는데도 손에 넣은 게 거의 없을 정도니까. 하지만 당신이 미끼 노릇을 해주면 이번에는 신기루처럼 아른거리기만 하던 놈들의 꼬리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 거 같거든.”
“미끼 역할을 하는 내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하는 제안이냐?”
“그래서 내가 처음에 물어봤잖아, 당신 싸움 잘하냐고.”
“그게 이 말이었던 거야?”
“응.”
“꼬리를 잡는데 성공하면 몸통을 끌어낼 자신은 있고?”
“내가 흑천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어하는 건 맞아. 그렇다고 그 일을 혼자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년은 아니야. 꼬리를 잡기만 하면 뒤를 맡아줄 분은 따로 계셔.”
진무앙은 입을 닫고 당휘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당 포쾌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성도를 벗어날 때까지는 내가 호위를 해줄게. 그 뒤는 당신이 알아서 살아남아. 흑천이 당신을 포기할 리는 없으니까.”
“거절해도 호위를 해주겠다고?”
“당신이 언니하고 홍아에게 베푼 은혜는 갚아야지.”
진무앙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공에 은신하고 있는 몽지림이 보였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는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이럴 때는 하늘이 내게 그렇게 잔인하게 군 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가끔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 같기도…….”
당휘경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들이미는 것도 아니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게 있어.”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홍아한테서 내가 용병낭인이라는 얘기는 들었겠지?”
“들었어.”
“그럼 내게 의뢰를 하고 싶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군.”
“돈?”
“그 표정 뭐냐? 설마 날 공짜로 부릴 생각은 아니겠지?”
당휘경은 그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공짜로 부릴 생각이었는데?”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네.”
“포쾌 월봉이 얼마나 된다고 대가를 받으려는 거야? 그리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백성은 포쾌의 임무를 기꺼이 도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 당신은 그걸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제국의 백성이야.”
“제국에 그런 상식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내 상식이야.”
“강적이네…….”
“내가 그런 말을 좀 자주 듣는 편이긴 하지.”
“나도 원칙을 가진 용병낭인이라 무보수로는 절대 일 못 해.”
당휘경은 진무앙을 노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전낭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호기롭게 진무앙에게 전낭을 통째로 던졌다.
“다 가져.”
전낭을 열어본 진무앙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전낭 안에는 달랑 일곱 개의 철전밖에 없었다.
당휘경이 말했다.
“비웃는 거야? 그거, 내가 가진 전 재산이라고.”
“철전 일곱 냥이?”
“지금 철전 무시해? 국수를 일곱 그릇이나 먹을 수 있는 거금을?”
“상인들 삥 뜯은 거 없어?”
“난 밥과 술은 얻어먹어도 그런 짓은 안 해.”
“포쾌가?”
“포쾌니까.”
진무앙은 피식 웃으며 철전 하나를 꺼낸 후 당휘경에게 전낭을 건네주었다.
당휘경의 눈에 묘한 빛이 어렸다.
“그걸로 끝?”
“충분해.”
“고마워.”
“포쾌가 백성에게 인사도 할 줄 아네.”
“멋진 포쾌거든.”
“으하하하하하.”
진무앙은 당휘경과 탁홍이 깜짝 놀랄 만큼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당휘경에게서 마치 자신의 분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느낌은 싫지 않았고, 오히려 유쾌하기까지 했다.
진무앙이 웃음을 그치자 당휘경이 물었다.
“허파 끊어지는 줄 알았어. 다 웃은 거야?”
“응.”
“내가 밖에서 잠복하고 있을 거지만, 당신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놈들이 오늘밤에 올지도 모르니까.”
“미끼 노릇 잘할 테니까 놓치지나 말아.”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어. 성도부 포도아문에서 나보다 미행 잘하는 포쾌는 없어.”
“자신감만큼 실력이 따라주었으면 좋겠군.”
할 말을 다한 표정으로 당휘경이 탁홍의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몸을 돌리려던 그녀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궁금한 게 하나 생겼어.”
“뭔데?”
“철파당 놈들이 깽판칠 때 왜 구경만 한 거야? 걔들 숫자가 많아서 그렇다는 개소리는 하지 말고.”
“그게 왜 개소리라는 거야?”
“당신은 그런 놈들을 무서워할 남자가 아니니까.”
“나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
“포쾌의 눈을 무시하지 마.”
당휘경의 말에 진무앙은 풀썩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 자식들은 연기를 하고 있었거든.”
“연기?”
“응. 그들의 표정과 감정은 모두 억지로 만든 것이었어.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에 부응하듯 곧 담상건이 나타났고.”
당휘경이 미간을 찌푸렸다.
“담상건이 그자들과 짜고 연극을 했다는 거야? 동의할 수 없는 말이네. 담 대협은 그런 짓을 할 남자가 아니야.”
“맞아. 담상건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어.”
당휘경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서 낭랑이 담 대협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했단 말이야?”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때는 정파의 무인과 사파의 파락호들이 얽혀 있는 게 기묘하다는 생각을 했었지. 그런데 지금 당 포쾌의 말을 들으니까 그들 사이에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
그의 말에 당휘경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성도 무림에서 대웅방의 소방주 양원룡이 담상건을 친동생처럼 아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담 대협이 서 낭랑을 연모하는 것도 비밀이 아니고…….”
진무앙이 활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럼 누가 철파당을 움직인 건지 대충 답이 나왔네.”
당휘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 낭랑이 보고 있을 때 담상건이 크게 활약을 할 수 있도록 양원룡이 철파당주를 움직인 거라고 봐야 할 것 같아.”
“두 세력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정황 증거쯤 되겠군.”
당휘경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방을 나갔다.
탁홍도 진무앙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은 터라 아이가 진무앙을 보는 눈빛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혼자가 된 진무앙은 창가에 섰다.
해시 말(밤 11시경)이 되어가는 시간이라 성도는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의 품이 꼬물거리며 묵령이 머리를 내밀었다.
[특이한 포쾌네요.]“그래, 성격이 참 특이한 포쾌다.”
그가 말을 이었다.
“묵령, 내가 부를 때까지 임아하고 같이 있어라.”
[오늘밤에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그렇게 바라던 만향주의 제조법이 내 손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뜸을 들이겠냐?”
[알았어요.]묵령이 유령처럼 진무앙의 품을 빠져나와 일 장 밖 허공에 은신해 있는 몽지림의 어깨에 올라 앉았다.
몽지림은 무심한 표정으로 진무앙을 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진무앙은 길게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오늘밤은 심심하지는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