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32
232 하나 더 부숴줄까?
태검문은 성도의 남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대지는 수만 평에 달했고, 일 장 높이의 담장 안에는 수십 개의 고루거각들이 즐비했다.
새벽의 여명이 밝아올 무렵,
“규모가 상당하네.”
태검문의 정문에서 오십 장 떨어진 골목에서 걸음을 멈춘 진무앙이 죽립을 슬쩍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당휘경이 말을 받았다.
“당가 다음으로 큰 문파라고 했잖아.”
두 사람은 각기 정신을 잃은 채 축 늘어진 양원룡과 방규백을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다.
그들의 앞은 정문까지 탁 트인 공터였다.
당휘경이 방규백을 힐끗거리며 진무앙에게 물었다.
“으, 피 냄새. 그런데 이놈들을 힘들게 여기까지 데리고 온 이유가 뭐야? 숨어 들어가는 데 방해만 될 건데?”
“숨어 들어가?”
진무앙은 피식 웃으며 연이어 중얼거렸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군.”
“뭐가 엉뚱하다는 거야?”
“성질도 급하네. 기다려,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진무앙이 속시원하게 대답할 기색이 아니자 당휘경은 화제를 바꿨다.
“흑천은 점조직이야. 가입 조건도 굉장히 까다롭고, 각 문파의 수뇌부가 아니면 접근도 하지 않아. 태검문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거야.”
“수뇌부 몇 명만 흑천의 조직원일 거라는 말이냐?”
“응. 태검문의 제자 대부분은 흑천이라는 이름도 모를 거야.”
“제자들한테는 살수를 쓰지 말아달라는 거냐?”
당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태검문은 정도 문파야, 제자들도 의협들이고. 몰래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니까 그들과 싸울 일은 거의 없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손에 사정을 두었으면 해.”
“알았어.”
이때까지 그녀는 진무앙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식 웃은 진무앙이 그녀에게 물었다.
“당 포쾌, 꼬리만 잡으면 그 뒤를 맡아줄 분이 따로 계시다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태검문이면 몸통 언저리쯤은 되잖아. 그러니 그 ‘분’이라는 인간, 슬슬 나올 때가 되지 않았냐?”
“재촉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오실 거야.”
“지금은 아니고?”
“내게는 시기를 판단할 권한이 없어.”
“어지간히 신비로운 척하는 인간이네.”
“풋, 나중에 그분 앞에서도 당신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볼게.”
“실망하지 않을 거야. 나는 사람을 가려서 말하지 않거든.”
“잘났어.”
“그걸 이제 안 거야?”
“사람 말을 그렇게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면 욕먹기 딱 좋아.”
“자기 편한 대로가 아니라 자유로운 거야.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
당휘경이 코웃음을 쳤다.
“흥, 부럽긴 개뿔이……. 당신, 사람들한테서 매를 버는 말투라는 말 자주 듣지?”
뇌리에 반사적으로 난향의 장죽이 떠오른 진무앙이 당휘경을 노려보았다.
당휘경도 지지 않고 그의 시선을 받았다.
두 사람의 눈길이 만난 허공의 한 점에서 보이지 않는 불똥이 격렬하게 튀었다.
‘은근히 얄밉네. 한 대 쥐어박을까…….’
진무앙은 괜히 손이 근질거렸다.
그러다가 그는 불현듯 한 가지를 깨달았다.
‘혹시… 내가 지금 이 여자한테 느끼는 감정을 사람들이 매일 나한테서 느끼는 거 아냐?’
뭔가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듯해서 진무앙은 공연히 심각해졌다. 하지만 귀찮아서 바로 그만뒀다.
이런 식의 자기반성과 심각함은 그라는 남자와 하늘과 땅만큼이나 거리가 멀었으니까.
먼저 고개를 홱 돌린 진무앙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 포쾌, 눈에서 힘 빼라. 그러다 눈에서 쥐 난다.”
그의 옆모습을 보며 당휘경이 중얼거렸다.
“뭔가 측간에서 볼일 본 후에 밑을 안 닦고 나온 기분인데…….”
진무앙이 그녀의 하체를 힐끗 보며 심드렁하게 말을 받았다.
“닦아. 안 말려.”
볼이 붉어진 당휘경이 소리를 질렀다.
“닦기는 뭘 닦아!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진무앙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새가 짖는 소리가…….”
“이 인간이!”
그리고 그는 양원룡을 질질 끌며 휘적휘적 골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놀란 당휘경의 다급하게 그의 손목을 잡아채며 물었다.
“당신, 뭐해?”
진무앙이 눈을 껌벅이며 대답했다.
“보면서 뭘 물어? 태검문 가잖아.”
“정문으로?”
“응.”
“우리 둘이?”
“응.”
“……몰래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진무앙이 양원룡과 방규백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그럴 거였으면 이자들을 왜 데려오냐?”
“돌았어? 태검문은 제자가 삼백 명이 넘는다고!”
“네 부탁 기억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제자들한테 손쓸 때는 살살할게.”
진무앙의 동문서답에 당휘경은 입을 딱 벌린 채 할 말을 잃었다.
“가자.”
진무앙이 걸음을 옮기자 그의 손목을 잡은 당휘경은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갔다.
그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미친놈하고 일을 하고 있었구나…….”
“쟤들이 무서우면 그 손 놓고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든지.”
“날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이래 봬도 성도부 포도아문 제일의…….”
“포쾌지.”
“…그런데, 정말 정문으로 들어갈 거야?”
“응.”
“으으으… 내년 오늘이 내 제삿날이 될지도 모르겠네.”
“그럴 일 없으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둬.”
투닥거리는 사이 그들은 태검문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드나드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규모가 큰 문파인 만큼 아침도 바쁜 것이다.
문의 좌우에서 근무하던 호위무사들의 시선이 진무앙과 당휘경을 향했다.
그들의 안색이 확 변했다.
피에 전 양원룡과 방규백을 본 것이다.
정문을 드나들던 사람들도 본 듯 모두가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
“시체다!”
우측 호위무사가 굳은 얼굴로 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진무앙과 당휘경의 앞을 막아섰다.
동시에 좌측의 호위무사는 신속하게 호각을 불었다.
삐이이익-
요란한 호각 소리가 새벽의 안온함을 사정없이 깨뜨렸다.
우측 호위무사가 진무앙에게 위협적인 어조로 소리쳤다.
“멈춰라!”
당연히 진무앙은 멈추지 않았다.
얼굴이 굳어진 호위무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즉시 발검했다.
챙!
서슬 푸른 검날이 진무앙의 어깨를 사선으로 그어 내려왔다.
진무앙은 귀찮다는 기색으로 검날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덥석!
검날이 빨려 들어가듯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동시에,
펑!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호위무사는 마치 화탄에 맞은 것처럼 검을 놓은 채 뒤로 날아갔다.
쾅-
담장에 부딪힌 그가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 광경을 본 다른 호위무사는 호각을 입에 문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진무앙은 그를 지나가며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동료, 챙겨. 쟤 안 죽었어.”
문 안으로 들어선 그와 당휘경의 앞으로 이백여 명에 달하는 무사들이 달려왔다.
검을 든 그들의 기세는 사납기 이를 데 없었다.
새벽잠을 설치게 만든 침입자를 봤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당휘경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숫자를 보자 눈앞이 캄캄해진 것이다.
무사들의 중앙이 갈라지며 오십대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걸어나왔다.
그는 태검문의 부문주 한호영이었다.
그의 시선이 죽립을 쓴 진무앙을 지나 당휘경에게 닿았다.
“포쾌 당휘경? 자네, 새벽부터 이게 무슨 짓인가? 정당한 사유를 대지 못한다면 자네가 아무리 당가의 직계라도 내 참지 않을 것일세!”
당휘경이 어색하게 웃으며 포권을 했다.
“한 부문주, 이런 상황은 나도 원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문주님을 뵈어야 할 것 같네요.”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두 사람은 구면인 듯했다.
당휘경의 말을 들은 한호영의 눈썹이 꿈틀하며 위로 치솟았다.
그가 대로한 어조로 소리쳤다.
“고작 말단 포쾌 따위가 이렇게 무례한 방식으로 본문의 문주님을 뵙고자 한단 말인가!”
그런 그의 앞으로 피에 전 사람이 툭 떨어졌다.
털썩-
진무앙이 양원룡을 집어던진 것이다.
“무슨 짓이냐!”
흠칫하며 소리를 지른 한호영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양원룡과 친분이 있었지만, 피범벅이 된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진무앙은 연이어 당휘경의 어깨에서 방규백의 등덜미도 잡아서 한호영의 앞에 집어 던졌다.
털썩-
한호영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소문주님!”
그는 양원룡과 달리 방규백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의 외침을 들은 태검문 제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한쪽 무릎을 꿇고 방규백을 끌어안은 한호영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가 악을 쓰듯 소리쳤다.
“저놈들을 잡아라! 죽여도 좋다!”
채애애애애앵-
이백여 명의 검수가 일제히 발검하는 소리가 울리며 서슬 퍼런 살기가 장내를 휘감았다.
검을 겨눈 채 다가서는 태검문 제자들을 본 당휘경이 진무앙에게 바짝 몸을 붙이며 속삭였다.
“이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야. 튀자.”
진무앙은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싱긋 웃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딴소리를 했다.
“임아, 여기서 제일 큰 건물을 부숴라.”
어리둥절해진 당휘경이 하늘과 진무앙을 번갈아 보며 다급하게 속삭였다.
“튀자니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다 대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녀의 대답은 진무앙의 입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쿠우우우우우-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괴성과 함께 하늘이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당휘경은 물론이고, 태검문 제자들도 놀라 움직임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넋이 나간 듯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저게 뭐……?”
“거… 검?”
하늘의 검은 구름은 길이 삼 장에 이르는 거대한 검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변화는 찰나에 이루어졌다.
완전한 검의 형상이 된 검은 기운은 즉시 태검문에서 가장 큰 전각인 태전각의 지붕으로 유성처럼 떨어졌다.
쑤와아아앙-
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축이 뒤흔들리며 태전각이 폭발했다.
동시에 웅장하게 피어오른 버섯 모양의 흙먼지가 태검문의 하늘을 가렸다.
깊은 바닷물 속과도 같은 정적이 장내를 휘감았다.
“꿀꺽…….”
“커컥…….”
“끄으…….”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와 그러다가 목이 막힌 듯한 기음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태검문 전체가 벌컥 뒤집히는 소리가 나며 모든 건물에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쳐나오는 게 보였다.
대혼란이었다.
그 상황에서 진무앙이 한호영에게 말했다.
“어이, 부문주, 문주라는 놈을 불러와.”
한호영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네가 누구이기에 이런…….”
그는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진무앙이 태전각을 무너뜨린 당사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당휘경도 긴가민가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인간이네.”
혀를 찬 진무앙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말했다.
“임아, 하나 더 부숴라.”
또다시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 나타난 거검이 두 번째로 큰 건물 위로 벼락처럼 떨어졌다.
쑤와아아아앙-
콰콰쾅!
쑤와아아아앙-
콰콰쾅!
엄청난 굉음.
흔들리는 대지.
폭발하듯 피어오르는 웅장한 먼지구름.
그것을 보고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신음과 비명 소리.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당휘경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무앙을 보며 물었다.
“저거… 정말… 당신이 한 일이야?”
“그럼 누구겠어?”
“당신… 정체가 뭐야?”
“바보냐? 네가 고용한 용병낭인이잖아.”
피식 웃으며 대답한 진무앙이 한호영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하나 더 부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