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36
236 도사라니까
당설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지… 진무…….”
진무앙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닥쳐. 계속 혀를 놀리면 내년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거다.”
당설의 입이 조가비처럼 꽉 다물렸다.
자신에 대해 발설하면 관련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고 했던 진무앙의 협박이 생생하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일행인 삼남일녀의 반응은 달랐다.
그들은 당설의 뒤에 서 있었기에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삼남 중 녹색건을 한 청년이 당설의 앞으로 나서며 진무앙에게 소리쳤다.
“미친놈, 감히 당 소저를 협박해? 네가 맞아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표독 눈매의 여자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보아하니 휘경이 고용한 뜨내기 낭인인 듯한데, 혀를 함부로 놀린 대가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게 해주겠어!”
그들의 말을 들은 당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가셨다.
그녀는 다급하게 녹색건 청년과 표독 눈매 여인의 팔을 잡으며 외쳤다.
“그만해!
당휘경도 놀란 다람쥐처럼 진무앙의 팔뚝을 와락 붙잡으며 말했다.
“참아!”
물론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진무앙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덕분에 당휘경의 손은 허공을 움켜잡을 수밖에 없었다.
뒤를 이어 시원한 타격음이 장내를 울렸다.
쫘좌좌좌좌작!
“으악!”
“악!”
“컥!”
“큭!”
“아흑!”
녹색건 청년과 표독 눈매 여자, 그리고 당설은 물론이고, 재수없게 오늘 그들과 동행한 다른 청년 두 명까지 모조리 귀싸대기를 얻어맞고 비명을 지르며 훨훨 날았다.
우당탕탕탕- 쿠당탕탕탕-
진무앙의 모습이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나타났다.
데굴데굴 구르는 다섯 명의 남녀를 보는 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당휘경이 손으로 머리를 싸안으며 그에게 말했다.
“나한테 차분하게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는 거야?”
“어떻게 돌아가는지 쥐뿔도 모르는 이런 잔챙이들하고 무슨 대화를 해?”
“그렇다고 다짜고짜 때려눕혀 버리면 어떡해! 본가에 도착할 때까지 보는 족족 저렇게 만들 거야?”
진무앙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잔챙이들 상대하는 거, 귀찮아서 더는 못하겠다.”
“그럼 어쩌려고?”
“어쩌긴 뭘 어째. 이 동네에서 제일 센 놈을 불러내야지.”
“가주님을?”
“응.”
“무슨 수로?”
진무앙은 대답을 하지 않고 당가의 본가가 있는 서북쪽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가슴이 복어의 배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고 당황한 당휘경이 물었다.
“당신, 뭘 하려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은 입을 열었다.
직후 천둥과도 같은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당조동! 이 칠푼이 새끼야, 당가타 확 박살내 버리기 전에 당장 튀어나와!”
그의 목소리에는 가공할 내공이 실려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비명과 함께 귀를 막으며 나뒹굴었다. 그리고 놀라 날뛰는 말 때문에 여기저기서 마차들이 뒤집어졌다.
“으악!”
“끄아아!”
“악!”
히히히히히잉-
콰당탕탕탕-
거기에 더해서 가뭄이 든 논바닥처럼 갈라진 땅에서 흙먼지가 구름처럼 치솟았다.
그뿐이랴.
거리 양편의 건물들은 지진을 만난 것처럼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우르르르르르-
시야에 들어오는 거리는 쓰러지고 자빠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멀쩡한 사람이라고는 넋이 반쯤 나간 채 서 있는 당휘경과 진무앙의 손에 머리카락이 잡혀 있는 마은뿐이었다.
당휘경은 입을 헤 벌린 채 눈만 깜박거렸다.
이런 광경을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잠시 후 충격에서 회복된 당휘경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당신, 진짜 정체가 뭐야?”
여러 번 반복한 질문이고 진무앙이 짜증을 낼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진무앙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도사야.”
“도사?”
“그래. 난 선계의 신선들한테서 도술을 배운 남자야.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도사지. 그래서 네가 본 것처럼 호풍환우는 기본이고, 뇌전을 쓰고 귀신도 부린다.”
“으음…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믿어. 믿으면 복이 온다.”
“…으음…….”
당휘경의 얼굴에 긴가민가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런 그녀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진무앙이 그녀의 앞에서 펼친 능력들은 대부분 무공의 범주를 아득하게 벗어나 있었다.
태검문에서 보았던 하늘의 거검은 차치하고, 방금 그가 펼친 사자후만 해도 무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는 수백 장 내에 있는 사람들을 단 한 번의 고함만으로 쓰러뜨렸다. 그 위력에 땅이 갈라지고 건물도 흔들렸다.
이 정도의 음공이라면 당연히 다수의 사망자가 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귀와 코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죽은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강대한 위력이지만 살상력은 떨어지는, 무인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이해하지 못할 형태의 음공이었다.
그러니 당휘경은 진무앙의 사자후가 무공인지 도술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린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플 거다. 말했잖아. 포기하면 편해질 거라고.”
당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당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하나둘씩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진무앙이 그들에게 말했다.
“닥치고 앉아 있어. 내년 오늘 제사상을 받고 싶은 놈은 일어서도 좋고.”
덤덤하고 평이한 어조였다.
하지만 수백 장 떨어진 곳에 있던 사람조차 그의 말을 똑똑히 알아들었다.
사람들은 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진무앙이 너무 무서워서 그를 똑바로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휘이이이잉-
서늘한 바람이 침묵에 잠긴 거리를 휩쓸며 지나갔다.
그때 진무앙이 당휘경에게 턱짓으로 서북쪽 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온다.”
눈을 든 당휘경은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지는 십여 명을 볼 수 있었다.
찰나지간 거리를 좁힌 그들은 진무앙의 십여 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들 무리는 반백의 노인 일곱 명과 세 명의 중년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앙의 노인은 칠 척 장신에 대나무처럼 몸이 마른 사람이었다.
그가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상대를 쓰러뜨린다고 알려진 암기의 대가, 당대의 사천당가주 칠보단혼 당조동이었다.
당조동을 본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가주님!”
당휘경도 그에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질녀 휘경이 가주 대백부님을 뵙습니다.”
당조동은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당휘경을 힐끗 일별했을 뿐, 바로 진무앙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말했다.
“방금 사자후 신공을 펼친 사람이 당신이오?”
당조동은 말을 높였다.
무림은 강자가 대접받는 세상이고, 눈앞의 죽립인은 사자후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사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와는 가능한 적이 되지 않는 것이 옳았다.
게다가 아직 사망자도 나오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
진무앙은 삐딱하게 고개를 모로 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야.”
무림에서 차지하는 당조동의 위치를 생각하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예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반말이었다.
당조동의 안색이 눈빛보다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당휘경은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라는 표정으로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고.
당조동이 말했다.
“혀가 짧은 자로군. 네가 이곳에서 저지른 망동을 잠시 묻어두고 휘경이와 함께 온 연유부터 물어보려 했었다. 하지만 너의 말을 들어보니 그런 내 생각은 너무 안이했던 것 같군.”
말과 함께 그의 전신에서 무서운 살기가 흘러나왔다.
날카로운 기운이 피부를 찌르고 주변의 공기가 서늘해지자 사람들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그때 당조동의 옆에 있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이름은 당조원으로 당조동의 바로 아래 동생이었다.
“형님, 제게 맡기시죠. 가주 되시는 분이 저런 낭인을 상대하는 건 격이 맞지 않습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옆에 있던 중년인이 말했다.
“아버님, 숙부님. 제가 저자를 잡겠습니다. 저희가 있는데 세가의 윗분들이 나서시면 후일 강호 동도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그는 당조동의 맏아들인 소가주 당재일이었다.
당조동은 진무앙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당재일이 진무앙을 똑바로 노려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던 진무앙이 혀를 차며 말했다.
“칠푼아, 칠푼아, 그러다 네 아들 잡는다.”
그의 말에는 묘한 운율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묘하게 안색이 변한 당조동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칠푼…….”
“후우, 돌대가리 칠푼이 자식. 세월이 네 기억력까지 같이 가져가 버린 거냐?”
이번에는 당조동의 안색이 완전히 변했다.
그는 미친 듯이 신형을 날려 당재일의 앞을 막아섰다.
놀란 당재일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당조동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진무앙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녕… 무ㅈ…….”
진무앙이 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입 닥쳐! 천잠사로 확 꿰매 버리기 전에.”
“합!”
당조동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당조원이 그에게 소리쳤다.
“형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자가 누구이기에…….”
당조동의 주먹이 인정사정없이 당조원의 입에 틀어박혀 그의 말을 막았다.
퍽!
“컥!”
이가 여러 대 나가고 입술이 찢어진 당조원이 신음을 토하며 나뒹굴었다.
당조원은 아연한 표정으로 당조동을 불렀다.
“혀… 형님…….”
“입을 다물어라. 저분을 모욕하는 건 내게 똥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말을 하며 힐끔 진무앙의 기색을 살피는 당조동의 등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미 육십을 넘은 친동생을 무자비하게 팼지만 그는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권이 진무앙의 마수(?)에서 동생의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무앙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랄 맞은 성격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오래전 사해동도관에서 진무앙에게 당했던 학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그였으니까.
근처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아연실색했다.
그건 당휘경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진무앙이 당조동에게 말을 이었다.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 장소를 옮기자. 너하고 할 말이 많다.”
당조동은 마치 얌전한 시동처럼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예. 본가로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네 아들 뻘 되는 놈들 이상은 전부 모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대답한 당조동이 당재일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당재일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당조동과 진무앙을 번갈아보다가 바쁘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가주인 당조동조차도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당조동이 앞장서서 걸었다.
넋 나간 사람처럼 진무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당조동의 뒤를 따르던 당휘경이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진무앙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도사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