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37
237 그게 뭔데?
사천당가의 본가는 당가타 중심부 수만 평 대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세가와 달리 이곳엔 담장이 없었다.
당가타 마을 전체가 담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주의 집무실.
우걱우걱, 후루룩 쩝쩝, 냠냠…….
죽립을 벗은 진무앙은 탁자 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진 진수성찬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의 오른쪽에 당휘경, 맞은편에 당조동이 앉아 있었지만 그들은 음식엔 손도 대지 않았다.
당조동이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진무앙에게 물었다.
“진 도인님, 혹시 제때 끼니도 못 챙기고 다니시는 겁니까?”
그는 ‘도인’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지 않는 듯 말투가 어색했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진무앙이 그렇게 부르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우걱우걱… 너네 애들이… 쩝쩝… 귀찮게 해서 밥때를 놓쳤어… 추릅추릅…….”
“하실 말씀이라는 게…….”
“밥 먹을 때 말 시키지 마.”
“예.”
침묵 속에 진무앙이 음식을 흡입하는 소리만 났다.
일각 후.
“꺼억! 어, 간만에 잘 먹었다. 낙양을 떠난 후로 건량이나 객잔에서 끼니를 때우다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니까 극락이 따로 없구나.”
“식사가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깨끗하게 빈 수십 개의 접시를 보며 당휘경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는 거지? 당신, 혹시 뱃속에 아귀를 넣고 다니는 거 아냐?”
그녀의 말에 당조동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휘경아, 말 조심하거라!”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냅둬. 저게 당 포쾌의 매력이니까.”
“그래도…….”
“가주 백부님, 아까부터 여쭙고 싶었어요. 대체 이 남자는 누구죠? 누구이기에 그처럼 어려워하시는 거예요?”
당조동이 그녀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분이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감히 네게 말해줄 수가 없다. 그저 네가 저분 앞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당휘경은 인상을 찌푸렸다.
명백하게 당조동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이해는 했는지 계속 토를 달지는 않았다.
진무앙이 그녀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당 포쾌, 흑천의 몸통을 잡을 분이라는 게 이 칠푼이지?”
당휘경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알았어?”
“바보라도 알겠다. 흑천은 태검문주가 부천주 노릇을 하는 거대 조직이야. 그런 흑천의 몸통을 잡을 힘이 있는 사람이 성도에서 칠푼이 외에 누가 있겠냐?”
“진 도인님, 그 칠푼이라는 말은 좀…….”
“제 힘으로 흑천을 잡지 못해서 조카를 사지로 내몬 놈을 칠푼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불러?”
진무앙의 말에 당조동과 당휘경이 움찔했다.
당조동이 물었다.
“제가 휘경이를 세가 밖으로 쫓아낸 것이 연극이었다는 것도 알아내신 겁니까?”
“네 조카는 십여 세 때 살해당한 부모의 원수를 지금까지 쫓아다닐 정도로 의지가 굳은 데다 나를 미끼로 쓸 정도로 영리해. 그런 여자가 사고뭉치 노릇하다가 세가에서 쫓겨났다는 게 말이 되냐?”
“다들 믿던데요…….”
“당가에 바보가 넘쳐나니까 그런 거지.”
당조동이 진무앙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씀은 좀…….”
그러다가 안색이 해쓱해졌다.
당휘경이 벌떡 일어나 진무앙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기 때문이다.
“이 인간이! 뚫린 입이라고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지 마! 당가에 천재가 얼마나 많은데 바보가 넘쳐난다는 거야!”
창백해진 당조동이 당휘경에게 호통을 쳤다.
“입 다물거라! 이분이 뉘신 줄 알고!”
진무앙이 손을 들어 당조동을 제지했다.
“내버려 둬. 이런 게 당 포쾌의 매력이니까.”
“…예?”
진무앙은 당조동의 어리둥절한 눈빛을 무시하고 그에게 물었다.
“칠푼아, 너, 정말 흑천의 수뇌부를 알아내지 못한 거냐?”
당조동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흑천에 가입한 문파들은 대략적이나마 파악이 끝난 상태입니다.”
“태검문이나 대웅방도?”
“예. 태검문주는 흑천의 부천주, 대웅방주는 흑천의 호법당주입니다.”
뜻밖의 말이었던 듯 당휘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이 연이어 물었다.
“천주는? 너희 형제 중 한 명이냐?”
그의 질문에 당조동은 씁쓸한 표정일 뿐이었지만 당휘경의 안색은 확 변했다.
당조동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누군지는 모르고?”
“아직…….”
진무앙이 당휘경을 힐끗 돌아보며 혀를 찼다.
“형제의 난도 아니고… 골육상잔이 벌어진 거네. 잘하는 짓이다.”
“참사를 막지 못한 건 저의 불찰입니다. 설마 흑천이 막내 부부를 살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 포쾌 말로는 너희 삼형제와 당만성의 사이가 그리 좋았던 것 같지 않던데, 언제 화해한 거냐?”
“막내가 죽기 오 년 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흑천이라는 신생 조직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정보를 얻고 그들을 추적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흑천의 최고 수뇌가 본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만성을 끌어들인 거냐?”
당조동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예. 막내는 저희 삼형제의 홀대에도 악감정을 품지 않을 정도로 선하고 충직한 성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흑천의 추적을 맡겼다고?”
“예, 형제도 믿기 힘든 상황에서 제가 일을 믿고 맡길 수 사람은 그뿐이었습니다…….”
“그가 네 부탁을 바로 수락한 거냐?”
“예.”
“병 주고 약 준 격이네.”
혀를 차며 중얼거린 진무앙이 당휘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 포쾌의 선친이라는 남자, 어지간히 무던한 성격이었나 봐. 나 같으면 형이고 뭐고 바로 뒤집어엎었을 텐데.”
당휘경은 감정이 복받치는 듯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조원과 조평, 둘 중 하나가 흑천주라면, 넌 그들이 가주 위를 노린다고 생각하고 있겠군.”
“당연히 그럴…….”
말을 하던 당조동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게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영 아닌 것 같아서.”
“제가 어리석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태검문에서 잡아온 놈, 뇌옥에 있지?”
“예. 제자들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놈이 사해집마부 비마잠혈 소속의 마은이라는 거, 당 포쾌한테서 들었고?”
당조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진 도인께서는 흑천이 사해집마부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손을 잡은 게 아니라 걔들이 흑천의 몸통이야. 조원이든 조평이든 네 동생 중 천주 노릇을 하는 녀석은 집마부의 하수인에 불과해.”
당조동과 당휘경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예?”
“뭐라고?”
진무앙이 심드렁한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뭘 그리 놀라? 앉아. 칠푼아, 내가 올려다보는 거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새 잊었냐?”
당조동이 재빨리 다시 앉았다. 당휘경도 마찬가지였고.
그녀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마은 한 명 잡았다고, 집마부가 흑천의 몸통이라고 하는 건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냐?”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당 포쾌가 보는 것과 내가 보는 게 같다면 그렇겠지.”
“무슨 소리야?”
“그놈은 마은이 아니야.”
당조동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방금 그자가 마은이라고 하셨잖습니까?”
“마은 맞아.”
당휘경이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왜 말이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야?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놈은 마은의 흉내를 내는 부혈주야. 그러니까 마은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거지.”
크게 놀란 듯 당조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자가 비마잠혈의 부혈주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놈이 진짜 마은에 불과했다면 내가 왜 여기까지 힘들게 끌고 왔겠냐?”
비마잠혈의 부혈주는 단 두 명뿐이다.
그들은 각기 장강이북과 이남의 혈원들을 지휘했다.
그만큼 사해집마부 내에서도 최고위직에 있는 자들이었고, 가진 힘도 막강했다.
강남과 강북 단위의 집마부 제자들에게 전원 동원령을 내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놈이 마은 흉내를 내는 건, 내가 놈을 마은이라고 불렀기 때문이야.”
당휘경이 물었다.
“왜 그런 거야?”
“놈을 안심시키려고.”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비마잠혈의 부혈주라면 칠푼이와 비교해도 무게가 뒤지지 않는 놈이야. 그런 놈이 왜 태검문 제자로 위장하고 있는지 궁금하더라고.”
당조동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진 도인님의 말씀대로라면 사해집마부가 본가를 노리고 있다는 것인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본가를 노릴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사실이 발각된다면 간신히 안정을 찾아가던 무림에 다시 정마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는 위험한 사안입니다. 그들이 왜 그런 무리한 짓을 하겠습니까?”
“네가 이유를 모른다고 그들도 이유가 없을 거라고 넘겨짚지 마라. 그렇게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야. 뭐, 넌 예전부터 멍청해서 놀랍지도 않긴 하다만.”
백발의 당조동이 고개를 푹 숙였다.
진무앙이 그에게 물었다.
“네가 흑천에 대한 정보를 처음 얻은 게 언제쯤이냐?”
“십칠 년 전입니다.”
“그때 흑천은 신생 조직이라고 했지?”
“예, 생긴 지 삼 년이 되지 않은 조직이었는데도 세력 확장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빨라서 세가의 정보망에 걸린 것이니까요.”
“그럼 최대치로 잡아도 흑천이 설립된 건 이십 년을 넘지 않는다는 거네.”
“그럴 겁니다.”
“이십 년 전에 큰 사건 없었냐? 네가 기억할 만한 그런 거.”
진무앙의 질문에 당조동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일다경 후,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 무렵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이 없었다면… 혹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특이한 물건을 얻은 적은? 그게 아니라도 굉장히 오래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은 거 없었어?”
진무앙의 말에 당조동의 눈이 번뜩였다. 무언가 생각이 난 표정이었다.
“그런 물건이 하나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게 뭔데?”
“해독할 수 없는 고문자가 빽빽하게 쓰인 청동검이었습니다.”
진무앙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너, 혹시 그 청동검을 사고낭산에 가져다 놓았냐?”
당조동의 얼굴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사고낭산에 당가하고 관련이 있는 시설이 있는 거냐?”
“예. 본가의 비밀 장보고가 그곳에 있습니다. 청동검은 그곳에 보관 중이고요.”
“사고낭산에 그런 게 있었다고? 그런데 왜 내가 몰랐지?”
“그곳은 제가 가주가 된 다음에 만든 곳이라 진 도인께서는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대혼돈 시대 때 당가타에 있던 장보고도 불탔습니다. 저는 다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도 본가의 보물이 재가 되는 걸 방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고낭산에 새로운 장보고를 만든 것입니다.”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은 너뿐인 거지?”
“예. 저 외에 사고낭산에 장보고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독고운진 총군사님뿐입니다.”
진무앙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자식이 여기서 왜 나와?”
“본가 사람들에게 장보고 건설을 맡기면 보안이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군사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진무앙은 혀를 차며 말을 받았다.
“이제 수수께끼가 모두 풀린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