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38
238 그러면 안 돼
진무앙은 당조동과 당휘경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사해집마부가 흑천을 만든 건 당가의 가주 위를 노려서가 맞아. 하지만 그들이 가주 위를 손에 넣으려는 건 당가를 장악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칠푼이가 사고낭산의 장보고에 숨긴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서지.”
당조동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물건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들이 이처럼 오랫동안 작업을 한다는 말입니까?”
“너는 지금까지처럼 그냥 모르는 게 낫다. 네 능력으로는 알아봤자 그것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당조동은 그의 말에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하지만 수긍하기 어렵다는 기색을 완전히 감추지도 못했다.
자신과 가문의 힘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물건이라니.
쉽게 수긍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진무앙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헛된 욕심을 부릴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그랬다가는 너 하나의 목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당가가 세상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
속을 들킨 당조동은 흠칫했다.
불복하던 마음이 빠르게 사그라졌다.
그 또한 진무앙의 경고가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인 것이다.
진무앙의 눈이 깊어졌다.
볼 것도 없이 청동검은 마령주나 신령주일 게 뻔했다.
그의 뇌리에 사마천웅이 떠올랐다.
당조동도 사마천웅과 같은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사마천웅이 점토판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그도 청동검이 무엇인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듣고만 있던 당휘경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렇게 공을 들일 만큼 청동검이 욕심난다면 직접 본가를 공격하면 되는 거 아냐? 집마부가 본가를 두려워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설마 정마대전이 벌어질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진무앙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걔들은 정마대전 따위가 벌어지는 걸 두려워하는 집단이 아니야. 공야승추가 싸움을 꺼리는 놈도 아니고.”
“그럼?”
“걔들이 두려워하는 건 따로 있어. 그 때문에 당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는 거야. 같은 이유로 흑천을 조직하고 그들을 조종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
당휘경은 들을수록 이해가 더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들은 천하삼정의 한 축일 정도로 강대한 무력을 가진 집단이잖아. 그런 그들이 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한다는 거야?”
대답은 진무앙이 아니라 당조동이 했다.
“휘경아,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네 눈앞에 있는 분의 분노다.”
그는 진무앙과의 대화에서 무언가 깨달은 듯 말투와 표정이 차분했다.
반면 당휘경의 눈은 쟁반만 하게 커졌고.
“예?”
당조동이 말을 이었다.
“사해집마부주 공야승추는 저분과 나의 관계를 안다. 그는 내가 그들의 손에 쓰러질 경우 저분이 분노하실까 두려웠겠지. 그래서 그들은 나와 본가에 대한 직접 공격을 하지 못하고 흑천을 조직했을 것이다.”
당휘경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흑천이라는 신생 조직과 그에 몸담은 내 형제 중 한 명이 나를 쓰러뜨렸다면, 저분의 성격상 아예 신경을 안 쓰실 가능성이 크니까.”
말을 마친 당조동이 입을 다물었다.
당휘경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진무앙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묻고 있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라고.
물론 진무앙은 그녀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했다.
아니,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는 다른 걸 생각하느라 당휘경의 시선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곽 씨 부자 사건을 접했을 때 사해집마부의 속사정이 복잡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 그런데 걔들 내부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모양이네…….’
곽 씨 부자 사건은, 그가 지금은 진소혜로 이름을 바꾼 곽효림을 구한 일을 가리킨다.
‘당조동은 흑암주가 없다. 하지만 내가 항마력을 심은 녀석이라 일반적인 무림의 섭혼술로는 그의 정신을 장악할 수 없어. 공야승추도 그것을 아니 이런 우회 방법을 썼던 것일 거고.’
진무앙은 사해동도관에서 가르쳤던 아이들의 뇌에 항마력을 심었다.
천하를 혼란에 빠뜨린 천무제가 그 방면의 탁월한 능력자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해동도관 출신들은 섭혼과 탈혼 계열의 사공과 마공에 대한 저항력이 무서울 정도로 강했다.
이걸 깨뜨릴 수 있는 건 마계 삼가의 섭혼술밖에 없었다.
‘당조동이 섭혼술에 당하지 않았다는 건 전신마가와 집마부가 상관없다는 말인데… 다른 데 신경쓰느라 놈들이 아직 집마부에는 손을 쓰지 않은 건가?’
사해집마부가 자리잡은 십만대산은 전설의 십만마교의 발원지였다. 그리고 십만마교는 마계 삼가 중 전신마가가 만든 문파였고.
진무앙은 미간을 찡그렸다.
‘일월단심맹이 파천혈신륜을 손에 넣으려 했던 것이나 집마부의 당가에 대한 모략이나 뭔가 이상해. 걔들이 왜 이렇게 환우십병에 집착을 하는 거지? 내가 살아 있는 한, 그것들을 얻는다고 해서 다시 무림제패를 노릴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 놈들이?’
무림인들이 환우십병이라는 말에 눈이 뒤집히는 건 그것을 얻으면 무림을 제패할 수 있는 절대무공을 얻는다는 전설 때문이다.
하지만 사해집마부와 일월단심맹이 환우십병을 확보하려는 목적은 무림제패가 아닐 수도 있었다.
무림인 개인과 거대 세력이 같은 물건을 노린다고 해서 그들의 목적까지 같을 거라는 보장은 아무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자식들이 아무리 정신줄을 놓았다고 해도 무림을 제패하려는 전쟁에 나서지는 못해. 그러려면 내가 개입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필요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를 제거하는 거지.’
생각을 잇는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걔들은 환우십병을 얻는다 해도 그걸로 나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확신할 만큼 어리석지 않아. 그럼 그놈들이 환우십병을 얻으려는 목적이 내가 아니라 다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그게 뭐지?’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어차피 영약과 영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도 십만대산에 한 번은 들러야 하는데, 이참에 공야승추의 얼굴이나 보고 와야겠다.’
당조동의 조심스러운 질문이 그의 상념을 깨뜨렸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조원과 조평 중에 어떤 놈이 흑천주일까 하는 생각.”
그의 대답에 당조동의 안색이 흐려졌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이제 흑천주를 잡자.”
“누군지 알아내신 겁니까?”
“칠푼아, 내가 경이로운 능력을 갖고 있는 건 맞지만 점쟁이는 아냐.”
모른다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잡으시려고…….”
“두 놈 다 데려다가 자백할 때까지 팰까 생각 중이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그의 말에 안색이 해쓱해진 당조동이 바람처럼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엎드렸다.
“제발 그 생각은 거두어주십시오!”
얼마나 다급했는지 그는 바닥에 머리를 박기까지 했다.
당조동의 태도에 놀란 당휘경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가 나서서 뭐라 말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무거웠다.
게다가 당조동까지 엄한 눈으로 그녀의 다음 행동을 제지했다.
당휘경이 엉거주춤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을 본 후에 그는 진무앙에게 절박한 어조로 말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찾아내겠습니다.”
이처럼 다급하게 그가 진무앙을 만류하는 건 당연했다.
진무앙은 작정하고 손을 쓰면 인정사정이 없는 남자다.
그러니 결과가 어떻든 그의 아우들이 폐인이 될 가능성이 컸다.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다른 방법이라… 뭐?”
“그… 그게…….”
당조동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배어나왔다.
마음은 다급한데 떠오르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진무앙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일어나, 임마. 머리가 허연 놈이 새파란 청년 앞에서 그러고 있으면, 내가 노인네 괴롭히는 걸로 보이잖아.”
당휘경은 옆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괴롭히는 거 맞잖아!’라고.
물론 그녀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당조동이 물었다.
“그럼 아우들을 데려다 손을 보시는 건…….”
“안 해.”
당조동이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진 도인님.”
진무앙이 심드렁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놈을 끌어낼 확실한 미끼가 있는데 내가 걔들을 패는 귀찮은 짓을 왜 하겠냐.”
진무앙과 나눈 대화 때문에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엉켜 있기는 해도 당조동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흑천주가 부혈주를 구하려 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놈은 부혈주의 신분이 탄로나고, 그가 집마부와 흑천의 관계에 대해 진술하는 걸 결코 원치 않을 거야. 그러니 그를 구하거나 죽이려 들겠지.”
“설령 아우 중 한 명이 흑천주라 해도 부혈주에 대한 시도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부혈주가 감금된 뇌옥의 경비는 철통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무앙이 혀를 차며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러면 안 돼.”
당조동이 눈을 껌벅거렸다.
“예?”
“놈이 포기할 정도로 철저하게 부혈주를 보호하면 안 된다고.”
진무앙이 연이어 물었다.
“세가에서 죄인을 심문할 때 어디서 하냐?”
“제형관에서 합니다.”
“그곳의 위치는?”
당조동은 진무앙에게 제형관의 위치를 설명했다.
제형관은 뇌옥을 관리하고 세가의 죄인을 조사하는 업무를 맡은 기관이라 거주 지역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쁘지 않은 위치네.”
고개를 끄덕인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당장 세가의 요인들을 모아. 그리고 오늘 저녁에 네가 놈을 뇌옥에서 꺼내 제형관에서 직접 심문할 거라고 발표해라. 참관자의 자격은 세가 내 서열 십위 이내로 하고.”
“알겠습니다.”
당조동이 바쁜 걸음으로 집무실을 나갔다.
당휘경과 둘만 남게 되자 진무앙이 그녀에게 물었다.
“당 포쾌, 얼굴이 왜 그래?”
“내 얼굴이 뭐?”
“세상 고민 다 끌어안은 거 같은 표정을 하고 있잖아.”
“내가?”
“응.”
진무앙의 말에 당휘경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어. 부혈주가 뇌옥을 벗어나 제형관에 온다면 그를 구하려는 자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겠지. 그런데 그 방법은 희생자가 많이 생길지 수도 있어.”
그녀의 말에 진무앙이 풀썩 웃었다.
“하하하.”
당휘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남은 심각해 죽을 지경인데, 왜 웃어!”
“웃기니까 웃지.”
“그러니까 뭐가 웃기냐고!”
당휘경을 보는 진무앙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당 포쾌, 원수를 잡고 나면 뭐할 거냐?”
“응? 뜬금없이 그건 왜 물어?”
“대답이나 해.”
“철밥통 포쾌를 계속할 거다. 됐냐?”
“흐흐흐.”
진무앙은 나직하게 웃었다.
당휘경은 신경질이 잔뜩 난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자꾸 웃냐고!”
“네가 포쾌를 계속하는 것도 성도부 백성들에게는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당연하지. 나는 성도부 포도아문 제일의 민완 포쾌…….”
진무앙이 그녀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너처럼 정이 많은 포쾌가 한 명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니까.”
당휘경은 움찔했다.
“정이 많다니! 나는 공사 구분 명확하고 정에 얽매이지 않는 냉철한 포쾌…….”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또 그녀의 말을 끊었다.
“헛소리는 닥치고. 넌 십 년이나 원수를 찾아 헤맸는데도 내게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어. 여러 차례 나를 방해하기도 했고.”
“…그건… 그건…….”
당휘경은 말을 더듬었다.
진무앙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동안 사고뭉치 소리까지 들으면서 남자처럼 거칠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연기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당휘경의 눈매에 파르르 잔경련이 일어났다.
진무앙의 음성이 더 부드러워졌다.
“나는 당 포쾌가 이번 일 끝나면 연기하지 말고 본래 성격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혹시 알아? 그럼 내가 제대로 당 포쾌에게 반할지도?”
당휘경의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