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40
240 꼴값들을 떨어요
말을 한 사람은 눈처럼 새하얀 은발백염의 노인이었다.
그도 당조천처럼 장신의 마른 체구였고, 눈매는 차갑고 강렬했다.
그를 본 당조동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쿨럭… 숙부님이…….”
“내가 흑천주일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한 얼굴이로구나.”
은발백염의 노인은 선대 가주 당인풍의 친동생인 천수독객 당인걸이었다.
그는 지난 백 년래 당가가 배출한 최고의 고수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쿨럭쿨럭… 대체 숙부님이 왜… 쿨럭……?”
뚜벅뚜벅 걸어온 당인걸은 태연하게 당조동이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동시에 삼십여 명의 건장한 녹포인이 나타났다.
옷차림으로 보아 그들도 당가의 혈족들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장내의 상황을 보고도 그들은 흔들리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당조천이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치워라.”
녹포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쓰러진 당조동과 당가 원로들, 그리고 진무앙과 당휘경을 들어 사심귀마의 뒤에 내려놓았다.
장내가 정리되자 당인걸이 자신을 노려보는 당조동에게 말했다.
“조동아, 나는 나보다 무공과 학문에서 훨씬 뒤처졌던 형님이 가주가 되는 걸 받아들였다. 본가의 상속은 장자 승계가 원칙이었으니까. 하지만 무능력한 형님은 천무제의 공격을 막지 못했고, 본가는 초토화되었다. 그때 형님도 돌아가셨지.”
사람들은 가슴을 움켜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때 가주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본가의 후견인을 자처했던 무림맹의 총군사 독고운진은 내가 아니라 널 가주로 삼았다. 나는 물론이고 조천이보다도 모자라던 너를 말이다.”
“쿨럭… 숙부님… 그게 대체 언제적 일인데…….”
“반백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그날의 기억, 그때의 분노와 열패감을 하나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고… 쿨럭… 사해집마부와 결탁한다는 게… 쿨럭… 말이 됩니까!”
당인걸의 눈에서 불같은 신광이 쏟아져 나왔다.
“왜 안 된단 말이냐! 가주 위에 오르기에 나는 너무 늙었지만 조천이는 늦지 않았다. 뒤는 걱정하지 마라. 조천이가 본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이니.”
“쿨럭… 숙부님… 할아버님과 조상님들의 얼굴을… 쿨럭… 어찌 보시려고… 쿨럭… 하십니까…….”
“쓸데없는 걱정이로구나. 지옥에 갈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나섰겠느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사심귀마가 당조천에게 말했다.
“제형관주, 먼저 마혈을 해제해 주게. 당신들이 가주와 옛 감정을 푸는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러고 있는 건 많이 불편하군.”
그때였다.
어디선가 젊은 남자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그냥, 꼴값들을 떨어요.”
놀란 당인걸과 당조천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쓰러졌던 진무앙이 죽립을 삐딱하게 눌러쓰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녹포인들이 번개 같은 속도로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진무앙의 전신으로 당가비전의 암기인 비황석과 귀왕정, 단혼사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진무앙이 입맛을 다시며 당휘경에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당 포쾌의 부탁을 들어주기 어렵겠다. 보기 싫으면 눈을 감아.”
따다다다다다당-
그에게 날아들던 암기들은 무형의 막에 가로막힌 것처럼 허공을 때리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당휘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말뜻을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진무앙은 녹포인들을 향해 장난처럼 손가락을 튕겼다.
우르르르르-
은은한 뇌성벽력과 함께 검푸른 뇌전이 가공할 속도로 녹포인들의 미간을 꿰뚫었다.
퍼퍼퍼퍼퍼퍽!
“으악!”
“아악”
“컥!”
처절한 비명과 함께 녹포인들은 쇠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뒹굴었다.
그들은 땅에 닿기 전에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다섯을 세기도 전에 삼십여 명의 녹포인은 시체가 되었다.
장내가 찬물을 뿌린 것처럼 고요해졌다.
진무앙은 휘적휘적 사심귀마의 곁으로 다가가 오른손으로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사심귀마는 아직 마혈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진무앙의 손에 머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진 그의 얼굴이 식은땀으로 푹 젖었다.
금방이라도 머리통이 박살날 판이 아닌가.
그리고 사심귀마만 표정이 변한 게 아니었다.
시체처럼 얼굴이 창백해진 당조천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무형산공독과 패혈산에 당했을 텐데, 어떻게……?”
진무앙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런 허접한 물건에 당하면 나를 아는 사람들이 비웃어, 새끼야.”
“뭐… 뭐라고!”
대뜸 욕을 얻어먹은 당조천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진무앙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왼손을 들어 그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잔챙이는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라. 일일이 상대하기 피곤하니까.”
면전에서 연속으로 모욕을 당한 당조천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거품을 물며 발작하려는 순간, 당인걸의 음성이 그것을 제지했다.
“조천아, 물러나 있거라.”
당조천은 진무앙을 무섭게 노려보며 입을 닫았다.
예상에 없던 일이 벌어졌는데도 당인걸은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네가 당가타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심상찮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누구냐?”
“너한테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냉정하던 당인걸의 이런 막말에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쉬잇-
아무도 그가 손을 움직이는 걸 보지 못했는데, 한 가닥 은빛 섬광이 유성처럼 진무앙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땅!
귀를 울리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진무앙의 목과 한 자 떨어진 허공에서 새파란 불똥이 튀었다.
당인걸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호신강기 파훼 전문 암기인 유성신침을 막아내다니, 놀라운 호신강기로군.”
“이런 시시한 거 말고, 제대로 된 걸 꺼내봐. 염왕에게 실력 발휘도 못하고 비명횡사했다고 고자질하는 꼬라지는 보기 싫으니까.”
진무앙의 말에 당인걸의 평정과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가 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아보았겠는가.
공야승추와 손중악도 그에게 이런 막말은 하지 못했다.
“이놈!”
거친 노성과 함께 대전 중앙 십여 장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시커먼 비침으로 뒤덮였다.
당조동과 당휘경, 당가 원로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비침의 범위가 진무앙에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까지 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폭우이화침에 만천화우를 접목했군. 네놈이 인풍이보다 훨씬 재능이 뛰어나다고 했던 말이 빈말은 아니었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장심에서 일어난 무시무시한 흡인력이 장내를 휘감았다.
혈우팔법 중 하나인 흡룡와류폭이었다. 하지만 그는 흡룡와만 펼쳤을 뿐, 이어지는 대선폭은 펼치지 않았다.
그걸 펼쳤다면 당인걸은 즉사했을 텐데도.
찰나지간 십여 장을 뒤덮었던 검은빛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수천 개의 비침은 얌전한 새색시처럼 진무앙의 손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당인걸의 얼굴에 망연자실한 표정이 떠올랐다.
폭우이화침은 당기 십대금용암기 중에서도 가장 위력이 강한 암기다.
그리고 만천화우는 당가의 무공 서열 일위였다.
그는 이 두 가지를 결합한 암기술을 막는 사람이 존재할 거라는 상상은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었다.
진무앙이 그에게 말했다.
“내가 널 살려둔 건 네 말에 정정할 부분이 있어서야. 물어볼 것도 하나 있고.”
말을 할 정신이 없는 듯 당인걸은 진무앙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먼저 궁금한 것부터 묻자. 당만성을 죽인 놈이 너냐?”
당인걸은 정신이 번쩍 든 것처럼 눈을 빛냈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왜?”
당인걸의 시선이 힐끗 당조천을 향했다.
“그 아이가 조천이의 꼬리를 잡았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손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의 성품과 재능을 아꼈으니까.”
그의 대답을 들은 진무앙은 당휘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벌써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다시 당인걸에게 눈길을 돌린 진무앙이 말했다.
“질문은 끝났고, 이제 정정할 순서네. 너는 인풍이를 가주로 만든 놈이 독고운진인 줄 알고 있던데, 그거 엄청난 착각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
“인풍이를 가주로 만든 건 독고운진이 아니라 나야. 운진이 그 자식은 내 뜻을 따랐을 뿐이고. 너, 칠푼이를 죽이려고 했지? 그럴 때마다 번번이 공야승추에게 거부당했을 거고. 안 봐도 뻔해. 그런데 걔가 왜 거부한 줄 알아? 그거, 다 내가 화를 낼까 봐 무서워서라고, 새끼야.”
멍하던 당인걸의 눈이 조금씩 커지더니 그는 송곳에 엉덩이를 푹푹 찔린 사람처럼 펄쩍 뛰어 일어나며 소리쳤다.
“설마… 다… 당신은…….”
처음과 달리 당인걸의 어조는 확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쐐애애애애액-
가공할 파공성과 함께 폭우이화침이 그의 전신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그 위력은 그가 펼쳤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대했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팍-
이화침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당인걸의 전신을 관통했다.
푸화학!
당인걸의 전신에서 수천 개의 가느다란 핏줄기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여… 영광… 아들만은…….”
쿵!
하던 말을 끝맺지 못한 당인걸이 뒤로 쓰러졌다.
“아버님!”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당조천이 당인걸에게 달려가 그를 품에 안았다.
“아버님!”
그가 핏발이 곤두선 눈으로 진무앙을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네놈…….”
그 순간 진무앙의 손가락이 허공을 짚었다.
우르르-
쾅!
당조천의 머리가 폭발하며 핏물이 그와 품에 안긴 당인걸의 몸을 붉게 적셨다.
그때까지도 진무앙의 오른손은 여전히 사심귀마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왼손만으로 녹포인 삼십 명과 당인걸, 당조천 부자를 죽인 것이다.
사심귀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당신이… 그… 그분이시란…….”
순간 진무앙이 오른손을 비틀었다.
우두둑-
말도 끝맺지 못하고 목뼈가 부러지며 즉사한 사심귀마의 눈에서 빛이 꺼졌다.
진무앙은 천천히 사방을 돌아보았다.
장내는 녹포인들과 당인걸 부자의 시신과 그들이 흘린 피로 시산혈해를 이루고 있었다.
철벅철벅.
그는 핏물을 밟으며 휘적휘적 걸어가 당인걸이 앉았던 의자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걸 본 당휘경이 힘없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당신, 하던 건 마무리지어야지. 우리를 이렇게 놔두면 어떡해!”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죽립을 벗었다.
“무형산공독하고 패혈산은 독이 아니라서 해약이 없어.”
눈이 동그래진 당휘경이 당조동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조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 말씀이 맞다. 그 두 가지는 해약이 없다. 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게 언제까지인데요?”
“일각이다. 숙부님은… 우리를 오래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것 같구나.”
무형산공독과 패혈산의 효과가 일각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건 당인걸이 그전에 모두를 죽일 생각이었다는 뜻이다.
진무앙이 당조동에게 말했다.
“내 볼일은 모두 끝났다. 사심귀마의 시신은 관에 넣어 십만대산으로 보내라. 시신을 보면 공야승추든 손중악이든 당가를 공격할 생각은 하지 못할 거다.”
당조동은 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진무앙은 사심귀마의 시신에 공야승추 사제가 알아볼 수 있는 자신의 증표를 남겼음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칠푼아.”
“예.”
“나에 대해서는 함구령 내려야 하는 거 알지?”
“물론입니다.”
“나에 대한 소문이 나면 찾아올 거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염려하지 마시십시오.”
진무앙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간다.”
당조동이 황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대로 가신다고요?”
“그럼 여기서 뭐해? 예쁘지도 않은 네 주름진 얼굴을 보고 있을까?”
다음 순간, 진무앙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멍해졌다.
당휘경도.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이럴 수는 없어……. 제대로 작별 인사도 나누지 않고 그냥 가면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