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58
258 또 때리고 싶지 않아요?
크르르르르르-
전력을 다해 달리는 소소의 귀에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괴성이 들려왔다.
아이는 그 으르렁거림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는, 핏물에 담갔다가 꺼낸 듯 시뻘건 마령과 눈이 마주쳤다.
그것의 눈에 어린 건 끔찍한 살기와 분노, 그리고 용암처럼 타오르는 격렬한 증오였다.
크와아아아아-
마령은 진무앙의 모습을 한 암혼과 묵령의 공격을 무시하고 엄청난 포효와 함께 도약했다.
수십 장의 거리가 단 한 걸음에 사라지며 거대한 언월도가 소소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강심장을 가진 어른도 공포에 질릴 상황인데, 제아무리 비범하다 해도 아홉 살 아이가 평정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심장이 떨어질 지경으로 놀란 소소의 발이 꼬였다. 그리고 달리던 여력을 이기지 못한 아이는 앞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엎어져서 상체도 일으키지 못한 아이의 등으로 언월도의 끝이 창처럼 내리꽂혔다.
쐐애애애액-
절체절명의 순간,
가공할 힘이 담긴 검푸른 섬광이 언월도의 측면을 강타했다.
쾅!
충격을 이기지 못한 언월도가 마경과 함께 십여 장이나 튕겨 나갔다.
그리고 한 가닥 번개처럼 날아온 암혼이 소소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그의 손으로 허공을 부유하던 암월도가 날아들었다.
그는 이기어도술의 정화인 암월구식의 제육초 잔월도세로 소소를 공격한 언월도를 차단한 것이다.
고개를 돌려 암혼의 등을 바라보는 소소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암혼은 진무앙과 같은 모습이다. 그러니 자신을 보호하려는 그에게서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크와아아아아-
분노한 마령이 괴성을 지르며 언월도로 암혼을 베어갔다.
마령을 응시하는 암혼의 눈에 소름 끼치는 살기가 떠올랐다.
그것은 살기의 정화라고 할 수 있는 마령보다 더 강한 것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마령을 향해 몸을 날리며 암월구식의 제오초 굉월을 펼쳤다.
신기루처럼 피어오른 서른여섯 개의 도강이 마령을 휩쓸어갔다.
그 순간, 언제 왔는지 십오육 세 소녀의 모습을 한 묵령이 아직 일어나지 못한 소소의 허리를 잡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소소, 달려. 멈추면 안 돼!”
그리고 묵령은 전력을 다해 소소를 몽지림이 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휘이이이익-
크와아아아아아아!
그것을 본 마령이 분노에 찬 괴성을 지르며 암혼의 공세를 무시하고 소소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묵령이 그런 그의 앞을 바람처럼 가로막으며 외쳤다.
“못생긴 빨간 괴물아! 넌 우리하고 놀아야지!”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는 파천혈신륜의 날에서 핏빛의 강기 다발이 무더기로 튀어나와 거대한 강벽을 만들어냈다.
마공 생사혈륜참이었다.
마령의 언월도와 생사혈륜참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충돌했다.
쾅!
묵령의 검은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콰드드드득-
언월도가 생사혈륜참의 강벽을 엄청난 기세로 무너뜨리며 그녀를 찔러오고 있었다.
하지만 마령의 적은 묵령만이 아니다.
마령의 넓은 등을 향해 서른여섯 개의 도강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 공세를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마령은 생사혈륜참을 무너뜨리던 공격을 중지하고 엄청난 속도로 돌아서며 굉월도세를 향해 언월도를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쾅-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과 함께 암혼이 뒤로 일 장이나 밀려났다.
그것을 본 묵령이 파천혈신륜을 휘두르며 악을 썼다.
“아무리 자기 안방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마령은 두 사람(?)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신기도, 마병도 아닌 주제에 환우칠마병 중 하나인 파천혈신륜과 신마병 봉인자인 암혼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했을 상황이 가능한 건, 마령이 몽지림의 정신세계를 대부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몽지림이 소멸하고 마령이 완전히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다면 싸움의 양상은 일방적으로 암혼과 묵령에게 불리했을 터였다.
크우어어어어어!
마령은 연신 괴성을 지르며 암혼과 묵령을 벗어나 소소에게 달려가려 했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암혼과 묵령이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 빠져 나가려는 마령과 그것을 막으려는 암혼, 묵령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아흑…….”
소소는 신음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전신이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묵령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아이를 집어 던졌다.
그 덕에 몽지림의 코앞에 떨어질 수 있었지만, 아이가 받은 충격도 그만큼 컸다.
하지만 지금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소소는 힘겹게 일어나 몽지림에게 다가갔다.
은은한 서기가 흐르는 석 자 다섯 치의 장검을 가슴에 품은 채 반듯하게 누운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소소는 시황릉에서도 본 적이 있었음에도 몽지림의 아름다움에 또다시 탄성이 나오는 걸 참기 힘들 정도였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몽지림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 저 왔어요.”
몽지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 숙부님이 밖에서 애타게 언니를 기다리고 계세요. 그 말씀을 드리러 다시 왔어요.”
말을 잇는 소소의 눈에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어렸다.
“시황릉에서 눈을 떴을 때 언니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요? 저는 그때 정신을 잃고 있어서 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말하길 언니가 진 숙부님의 뺨을 굉장히 세게 때렸다고 했어요.”
아이는 몽지림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또 때리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 싶죠? 언니, 그러려면 정신을 차리셔야 해요.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소소는 진무앙이 들었다면 있는 대로 성질을 냈을 게 분명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는 여기 없었고,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니까.
그때였다.
소소의 눈이 반짝였다.
마주 잡은 몽지림의 손가락에 가느다란 경련이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언니!”
아이는 떨리는 눈으로 몽지림을 보며 말을 이었다.
“언니가 정신을 차리기만 한다면 숙부님이 얼마든지 뺨을 맞아주실 거라는 거 알죠?”
소소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숙부님이 왜 그렇게 많은 여자를 옆에 두시는지 저는 아직 어려서 이해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그 때문에 많은 여자 분이 마음 아파하는 건 잘 알아요. 수향루의 이 루주님이나 다른 여자 분들도 숙부님만 보면 엄청나게 화를 내거든요. 그분이 없을 때는 또 쉴 새 없이 한숨을 쉬고요. 아마 언니도 그런 분들 중 한 사람이겠죠.”
경련을 넘어 몽지림의 손가락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저는 시황릉에서 언니가 진 숙부님의 뺨을 때리는 걸 보지 못했어요.”
소소는 힐끔 마령과 미친 듯이 싸우고 있는 암혼을 곁눈질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그걸 보고 싶어요. 이 루주님은 틈만 나면 숙부님한테 장죽을 휘두르지만 은근히 마음이 약하셔서 진짜로 때린 적은 없거든요. 제 생각에 천하에서 숙부님의 뺨을 때릴 수 있는 분은 언니뿐인 거 같아요.”
소소가 잡은 몽지림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언니, 제가 서안에 갔을 때 비천유룡개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말이 있어요. 그분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벽에 똥칠을 할 때까지 최대한 오랫동안 이승에서 살아야 한대요!”
소소의 말은 감정적이어서 두서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엔 가슴을 울리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언니, 제발 깨어나세요. 그래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숙부님을 만나실 수 있잖아요.”
그것을 느낀 듯 천천히 눈꺼풀이 올라가며 몽지림이 눈을 떴다.
그녀는 보랏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눈으로 소소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안색이 환해진 소소가 몽지림을 안으며 소리쳤다.
“언니!”
몽지림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무앙의 뺨을 또 한 번 때려주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일어나야겠구나.”
그녀는 소소를 안은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던 광장에 어디서 온지 알 수 없는 빛이 어슴푸레하게 깃들었다.
몽지림의 시선이 광장의 반대편을 향했다.
쑤와아아앙-
쐐애애애액-
콰콰콰콰콰콰쾅-
그곳엔 작렬하는 삼색의 섬광과 광장을 뒤흔드는 엄청난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흑, 적, 묵청의 빛무리에 휩싸인 암혼과 묵령, 마령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며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싸움의 양상은 소소가 처음 들어와서 보았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마령은 그때보다 느렸고, 언월도는 약해졌다. 상대적으로 암혼과 묵령은 더 빨라지고 강해졌다.
그러니 싸움은 두 사람(?)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이런 변화가 생긴 건 몽지림이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정신이 만들어낸 세상이었다.
주인이 깨어났으니 적대 관계의 손님인 마령의 힘이 약해지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몽지림이 소소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소소야, 이제 나가보렴. 우리 다음에는 밖에서 보도록 하자꾸나.”
소소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어요. 여기에 더 있을래요. 제가 지금 나가면 암혼 숙부님하고 묵령 언니도 나가야 해요. 그러면 검후 언니 혼자서 마령과 싸워야 하잖아요.”
몽지림이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말을 받았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너도 알잖니. 여기 오래 있으면 네 몸과의 연결에 문제가 생길 거야. 만약 네가 나 때문에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나는 다시는 무앙을 볼 수 없게 돼.”
몽지림은 평생 불문무예를 수련한 검의 수행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눈을 떠 소소를 보자마자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소소의 눈에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몽지림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마음만 받으마. 그리고 이 은혜는 밖에 나가서 꼭 갚을게.”
말투는 온화했지만 그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강경함이 깃들어 있었다.
소소는 물기가 가득 차오른 눈으로 몽지림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푹 떨구며 대답했다.
“네, 언니… 마령을 빨리 물리치고 밖에서 만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몽지림이 한쪽 무릎을 굽혀 아이를 안았다.
“고맙다, 소소야.”
아이에게서 손을 뗀 검후가 마령에게 몸을 돌리며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휘이이이잉-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그녀의 긴 은발과 곤룡포 자락이 휘날렸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모습이 한 자루 거대한 검으로 변하며 마령에게 날아갔다.
쑤와아아아아앙-
검후의 사문 보타암의 비전절기 일자수미혜검의 정화인 어검비행술이었다.
소소는 소맷자락으로 방울져 떨어지는 눈물을 닦았다.
이제는 이곳을 떠날 시간이었다.
* * *
동굴의 입구에 서서 금사강을 내려다보던 오청연이 고개를 홱 돌려 뒤를 보았다.
섬뜩한 마기에 등골이 서늘했기 때문이었다.
삼신기 중 하나를 품은 그녀에게 이런 느낌을 줄 존재가 흔할 리 없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몽지림의 미간에 닿아 있던 진무앙의 손이 검게 물들더니 팔뚝과 어깨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그의 손등 위로 일곱 치 크기의 검은 미소녀가 톡 튀어나와 암월도의 도갑으로 스며드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끝났구나. 성공한 걸까?’
그녀는 몽지림의 전신을 훑었다.
여기저기 뻥 뚫렸던 상처가 마치 만두처럼 부풀어 오르며 아물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서 반 시진이면 구멍이 사라질 듯했다.
‘성공했네…….’
진무앙의 반쪽을 뒤덮었던 검은 불길 같은 기운도 사라졌다.
오청연이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데도 진무앙이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