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64
264 내 여자의 향기가 난다
마유숭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는 무섭게 빛나는 눈으로 흑의복면인에게 말했다.
“성급하군. 완전한 거래가 성립되기 위해선 단심맹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입증해야 하네. 지난번에 자네가 나를 찾아왔을 때 분명히 내가 말했었는데, 잊은 모양이로군.”
흑의복면인이 느긋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것을 잊었다면 제가 어떻게 거래 성립을 언급할 수 있었겠습니까.”
“호오! 어떻게 능력을 입증할 생각인가?”
“총독이 이곳으로 부임한 후 십수 년 동안 옛 대리왕국의 혈족들은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켰죠. 그 때문에 총독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찾아내지 못한 그자들의 근거지를 알아내기라도 했다는 건가?”
“너무 앞서 나가시는군요. 총독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고 싶지만 그건 시일이 좀 더 필요합니다.”
“흥! 알아내지 못했군. 자신감이 넘치기에 혹시나 했는데, 실망이로군.”
마유숭의 타박에도 흑의복면인은 태연했다.
“좀 더 여유를 갖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게 어떨까요?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니까요.”
그 말에 마유숭의 눈이 번뜩였다.
“그들의 근거지를 찾지는 못하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귀한 정보가 있습니다.”
“그게 뭔가?”
“반역자들 사이에 치명적인 분열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분열?”
“그렇습니다.”
“믿을 만한 정보인가?”
“반역자 조직 내부에 투입시킨 제 부하에게 얻은 것이니 충분히 신뢰할 만합니다.”
“이백 년 동안 한 몸처럼 움직이던 자들 사이에 분열이 생기다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파악되었나?”
“역시 총독도 그걸 궁금해하시는군요.”
“당연한 일 아닌가?”
“제가 총독에게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그 이유’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눈에 기묘한 빛을 떠올리며 흑의복면인이 말을 이었다.
“그들의 분열은 천하에 알려지지 않은 귀중한 보물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마유숭이 미간을 찡그렸다.
“보물이라고?”
“그렇습니다. 그것을 손에 넣은 자는 제국에 대항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마유숭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까짓 일개 보물의 힘으로 제국에 대항한다고? 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처럼 허황된 말은 처음 듣네.”
“과연 그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도 되는 사안일까요? 총독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백 년 동안 한 몸처럼 움직이던 자들을 분열시킨 물건인데요?”
마유숭은 미간을 찡그렸다.
흑의복면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보물과 반역자들의 분열에 대한 자네 의견은 잘 들었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그동안 총독이 반역자들을 처리하지 못했던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그들의 근거지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들의 보안이 철저해서 언제 어디서 공격을 할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죠.”
“세 번째는?”
“백성들의 민심이 아직 단 씨 일족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 중엔 그들에게 은밀하게 협조하는 자들이 굉장히 많지요.”
“잘 아는군.”
“운남무림이 사해집마부의 영역이긴 하지만, 우리도 필요한 정보는 늘 수집하고 있습니다, 총독.”
“인정하겠네. 그런데 그 세 가지 이유와 보물, 분열이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건가?”
“본 밀령이 전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자들의 근거지를 찾아내지 못한 이상, 단시일 내에 성과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자들의 근거지로 갈 수 없으면 그자들을 오게 하면 되지요.”
마유숭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거대한 운남성을 십수 년째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황제의 관심을 받지 못해 중앙 정계에서 밀려났다고는 하지만, 그는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
마유숭이 물었다.
“분열된 반역자들을 보물로 유인을 해서 그들의 뒤를 치자는 것인가?”
흑의복면인의 눈에 미소가 듬뿍 어렸다.
“역시 훌륭하십니다, 총독.”
“자네가 보물을 갖고 있나?”
“그럴 리가요. 저는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 작전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그것은 자네가 보물을 손에 넣어야 가능한 것이잖나?”
“그건 제가 책임지고 진행할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위정보를 이용할 생각인 모양인데, 과연 그자들이 속을까?”
“이런 공작은 천하에서 본 맹이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자신만만하군.”
“자신이 있으니까요.”
“공허한 자신감이라면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가 작지 않을 걸세.”
냉혹한 경고였지만 흑의복면인은 신경도 쓰지 않는 기색으로 말을 받았다.
“총독께서는 제 연락을 받는 대로 언제든 군사를 동원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길어도 칠 일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단 씨 일족과 추종자들을 모조리 없앨 수 있다면 운남의 오랜 화근이 사라지는 것이죠. 그러면 총독의 중앙 진출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내 오랜 바람을 정확하게 알고 있군.”
“그렇지 못하다면 제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지요.”
흑의복면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가 끝났으니 돌아갈 시간이었다.
마유숭이 그를 보며 불쑥 물었다.
“그런데 자네도 그 보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인가?”
“본맹의 간자가 알아보고 있는 중이지만 정보를 얻는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반역자들 내부에서도 최고위층 외에는 아는 자가 없는 특급 정보라서요.”
“그렇군. 알게 되면 내게 말해주게.”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포권을 한 흑의복면인이 한 가닥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홀로 남은 마유숭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사도 무림을 제패한 일월단심맹에서도 가장 모략에 능하고 사악하다는 구유밀령의 단주가 주는 정보를 믿기는 어렵지. 그들이 내게 주는 정보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가공한 것일 테니까…….’
곰곰이 생각을 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보물과 분열에 대한 정보가 전부 거짓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구유밀령이 보물에 대해 사실을 말해줄 것 같지 않으니 나도 다른 경로로 그 정보를 확인해 봐야겠다. 그러려면… ‘그자’를 만나봐야겠군.’
마유숭은 집무실을 나섰다.
한편, 총독부를 나온 흑의복면인은 인근의 사람이 없는 주택가에서 복면을 벗고, 겉옷을 갈아입었다.
놀랍게도 그는 남자가 아니라 굉장히 요염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는 일월단심맹 구유밀령의 제오단주 주설란이었다.
어둠에 잠긴 총독부를 흘깃 돌아본 그녀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다.
하늘로 시선을 돌린 그녀의 눈에 진한 그리움과 묘한 열기가 함께 떠올랐다.
“하아. 허접스럽게 잔머리나 굴리기나 하는 저런 놈을 상대해서 그런가, 오늘따라 무앙이 더 보고 싶네. 오늘밤도 잠자긴 틀렸어. 그렇다고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아무 남자나 안을 수도 없고……. 아직도 그는 낙양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호위무사 짓을 하며 노닥거리고 있으려나…….”
중얼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흥! 또 어디서 예쁜 여자 꽁무니나 따라다니고 있겠지. 보지 않아도 이렇게 눈에 선한 걸 보면 그러고 있을 게 분명해. 다음에 만나면 ‘그곳’ 털을 다 뽑아버려야지.”
그녀는 면사로 눈 아래를 가리며 걸음을 옮겼다.
왠지 쓸쓸한 밤이었다.
* * *
그 시각.
서민들이 모여 사는 대리시의 서부 주택가.
“에취!”
어둠에 담긴 시장 거리를 걷던 진무앙이 갑자기 재채기를 하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오청연이 물었다.
“갑자기 웬 기침이에요? 어디 안 좋아요?”
진무앙이 손등으로 코를 훔치며 말을 받았다.
“어떤 놈이 내 욕을 하고 있나 봐.”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진무앙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한이 드는 걸 보면 틀림없어.”
“누군가 당신을 욕하고 있다면, 제 생각에 그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일 거 같은데요?”
“응? 왜?”
“남자라면 당신을 죽이고 싶어 하지, 욕을 할 거 같지는 않거든요.”
“…내가 그 정도로 증오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에요? 당신이 하고 다니는 짓을 보면 내가 남자라도 죽이고 싶을 것 같은데.”
“너 말이야. 나하고 얼마나 같이 있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정말 무례한 거야.”
“당신도 그렇게 예의가 있는 남자는 아니잖아요.”
“…음…….”
진무앙은 나직한 신음을 흘리며 오청연을 째려보았다.
그녀는 그걸 못 본 척 외면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왠지 네게서 내 여자의 향기가 난다.”
“내 여자라니요? 누굴 말하는 거예요?”
“난향…….”
“그녀가 누군데요?”
“있어.”
진무앙은 짤막하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난향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마자 그녀가 엄청나게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진무앙이 대답할 기미를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자 오청연이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아직 멀었나요?”
진무앙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대답했다.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전에 왔을 때와 거리가 많이 변해서 좀 헷갈린다.”
“언제 왔었는데요?”
“구십사 년 전.”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는데 그때도 여기가 시장이었어요?”
“원래 서민들이 많이 사는 이런 지역은 잘 안 바뀌어.”
덤덤하게 말을 받아주던 진무앙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여기다.”
말을 하며 그는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삼십여 장 걸은 그는 허름한 흙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곳이에요?”
“응.”
“안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가 깊고 느려졌어요. 우리가 온 걸 알아차렸나 봐요.”
그들과 같은 절대초강고수에게 문 너머의 기척을 느끼는 건 일도 아니다.
“저 자식은 천하에 적이 산더미처럼 많은 놈이라 조심성이 몸에 뱄어.”
말을 한 진무앙은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조심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태도였다.
“곽삼, 나다. 문 열어.”
곧 안에서 놀란 중년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무앙?”
“그래, 임마. 나야.”
대뜸 안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야, 이 뒈지지도 않는 개 쌍놈의 새끼야. 여기가 어디라고 와! 꺼져!”
욕설에 담긴 격렬한 분노는 무심코 듣고 있던 오청연이 흠칫할 정도 어마무시하게 강했다.
하지만 진무앙은 이미 그런 반응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는 길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오랜만에 네 구수한 욕을 들으니까 더 반갑네. 더 듣고 싶긴 하지만 먼길 왔더니 피곤해서 계속 듣고 있기는 힘들겠다.”
그래도 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열어. 안 열면 부수고 들어갈 거다. 나중에 변상하라고 지랄하지 마.”
“이 얼굴에 철판을 열 겹으로 깔고, 양심을 털로 채운 새끼! 네 상판대기 볼 일 없으니까 빨리 꺼지라고!”
혀를 차며 고개를 휘휘 저은 진무앙은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와 걸쇠가 찰나지간 가루로 변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이이익-
문이 열렸다.
그 순간,
슈슈슈슈슈슉!
미세한 파공음과 함께 수십 자루의 비수가 번개처럼 진무앙의 이마와 목, 심장으로 날아들었다.
진무앙은 피하지 않았다.
퍼퍼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