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68
268 미치겠네
눈이 휘둥그레진 여인은 일월단심맹 구유밀령의 제오단주 주설란이었다.
그녀는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지만 진무앙이 그녀를 알아보는데 장애가 될 수는 없었다.
주설란이 얼떨떨한 어조로 물었다.
“당신이 여기에 왜 있어?”
진무앙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까 여기 있더라.”
“수향루 호위무사는 때려치우고 온 거야?”
“아니. 음… 잠시 휴직 중이라고나 할까.”
그제야 죽립을 쓴 오청연이 눈에 들어온 듯 주설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 여자는 누구야?”
“질문은 얼마든지 받아도 좋은데 일단 앉는 게 어떨까?”
이층에 있는 손님들이 전부 그들을 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점소이가 다가와 주문을 받아갔다.
그때까지도 주설란의 시선은 여전히 오청연에게 꽂혀 있었다.
오청연이 죽립을 벗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주설란의 눈에 놀람과 의혹이 떠올랐다.
“자양화 오청연?”
그녀는 낙양의 송옥루에서 육 개월이나 기녀로 위장취업(?)을 했었다.
그러니 낙양제일기녀라 불리던 오청연을 모를 리 없었다.
오청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받았다.
“당신은 누구신데 나를 알죠?”
대답은 진무앙이 했다.
“주설란이라고 내 친구야. 너와 설란은 서로를 잘 알수록 관계가 악화될 거야. 그러니까 두 사람 다 상대를 깊게 알아볼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마.”
그의 말을 들은 두 여자의 눈에 강렬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주설란이 물었다.
“무앙, 알아듣기가 어려워. 설명을 해주겠어?”
진무앙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방금 신경 끄라고 한 내 말은 어디로 들은 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더 호기심이 동하잖아.”
“호기심 접어. 내가 서로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고 한 건 누구 한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야.”
“우리 모두를 위한 말이라는 거야?”
“응. 그리고 청연이는 내 여자가 아니야.”
주설란의 눈에 드리워진 의혹의 기색이 더 진해졌다.
현장에서 단련된 그녀의 육감은 진무앙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 궁금해졌다.
대체 기녀였던 오청연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이기에 진무앙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주설란에 대해 궁금한 건 오청연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진무앙은 그런 두 여인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는 화제를 바꾸어 주설란에게 물었다.
“낙양을 떠날 때 단심맹의 총타로 간다고 하더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윗분들이 나처럼 능력 있는 현장 재원을 총타에만 둘 리가 없잖아.”
“임무수행 중이라는 말이네.”
“응.”
“조심해. 여긴 사해집마부의 영역이야. 그들의 눈에 띄면 바로…….”
진무앙이 수도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저승 문턱 밟을 거야.”
“그건 당신보다 내가 더 잘 알거든.”
“흐흐흐.”
진무앙은 낮게 웃으며 은근슬쩍 주설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여자들은 그와 신체를 접촉하면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참지 못한다.
하지만 진무앙이 권능을 통제하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눈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무수히 벌어졌을 것이다.
주설란이 손을 뒤집어 그의 손바닥을 손끝으로 살살 긁으며 말했다.
“당신, 정말 오 낭자와 깊은 관계가 아니구나.”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같이 다니는 거야?”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당신이 ‘어쩌다’라는 말을 너무 자주 하니까 더 호기심이 동하잖아.”
“과한 호기심은 직업병이야.”
“새삼스럽기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나는 직업병 환자였어.”
주설란이 묘한 눈으로 진무앙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당신 성격에 ‘어쩌다’와 같은, 그런 어정쩡한 상황을 허락할 리가 없는데…….”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때 점소이가 음식을 가지고 왔다.
세 사람은 바쁘게 수저를 놀렸다. 그 덕분에 대화가 잠시 끊겼다.
그릇이 거의 다 비어갈 즈음, 마의를 입은 왜소한 체구의 장년인이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가 진무앙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진 호위님이시죠?”
수저를 내려놓은 진무앙이 되물었다.
“할멈이 보낸 사람이오?”
그의 말투에서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걸 안 장년인의 안색이 환해졌다.
“그렇습니다요.”
“할멈은 점창산 부근의 어촌 마을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중년인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쪽이라면 저보다 잘 아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요. 제 고향이 그곳이거든요.”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뭐, 그렇겠죠. 할멈이 잘 골라서 보냈을 테니까. 이름이 뭡니까?”
“공회라고 부르시면 됩니다요, 진 호위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설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무앙에게 물었다.
“어촌? 거긴 왜 가려고? 휴직 중이라고 했잖아.”
“휴직은 맞는데, 근무 중일 때보다 더 바쁜 휴직이다.”
“무슨 일인데?”
진무앙이 상체를 기울여 입술을 주설란의 귀에 바짝 대고 말했다.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 명의 여자 중 한 명이 정체를 감추고 그곳에서 숨어 지내는 중이래. 그런 말을 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못 본 척할 수 있겠냐.”
주설란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방금 나한테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한 거야? 영원히 쉬게 해줘?”
그녀의 사나운 기세에 진무앙이 흠칫하며 재빠르게 상체를 뒤로 물렸다.
“설란, 진정해. 뭔가 오해한 모양인데, 내가 그녀를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야.”
“당신 말을 믿느니 차라리 고양이가 생선을 먹지 않겠다고 하는 말을 믿겠다.”
“고양이는 말을 못 한다구.”
진무앙을 노려보던 주설란이 물었다.
“꼬시려는 게 아니면 당신이 그녀를 왜 찾아?”
“다음에 만나면 말해줄게. 사정이 복잡해서 이야기하려면 오래 걸리거든. 아무튼 믿어줘. 난 순수하게 그녀를 도와주려고 찾는 거야.”
주설란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진무앙이 말을 돌렸다.
“설란은 어디에 머물고 있어?”
“그건 왜 물어?”
“몰라서 그러는 거야?”
눈매가 은근히 촉촉해진 주설란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천심객잔 별채 모란실.”
말을 받는 진무앙의 목소리도 작아졌다.
“최대한 빨리 찾아갈게.”
“헛걸음할 수도 있어. 바빠서 없을 때가 더 많거든.”
“흐흐흐. 내가 알아서 찾아갈 테니까 일부러 기다리진 마. 창문을 넘는 정확한 시점을 잡아내는 데는 천하에서 나보다 뛰어난 남자가 없다고.”
그의 말을 들은 주설란의 눈에 열기가 떠올랐다.
진무앙이 자리에서 일어나 죽립을 쓰며 말했다.
“갈게.”
그와 오청연은 바로 객잔을 떠났다.
혼자가 된 주설란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천상십화 중 한 명이라면… 설연화 단옥상이 점창산 아래 어촌마을에 은신해 있다는 말이잖아. 그런데 무앙이 그런 고급 정보를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그가 왜 단옥상을 찾는 거지?’
가슴에 의문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났다.
‘흘려보내기 아까운 정보이긴 한데, 말을 한 사람이 무앙이라 고민되네…….’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이 그녀의 뇌리에 떠올랐다.
수년 전, 그녀는 변황제일고수라 불리는 혈수광랑의 정체를 밝히라는 밀명을 받고 청해로 갔었다.
수개월의 끈질긴 추적 끝에 마침내 혈수광랑을 만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만난 혈수광랑이 진무앙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암월도를 어깨에 턱 걸친 채 자신을 보며 웃던 진무앙은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율스러울 만큼 공포스러운 남자이기도 했다.
주설란이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청해를 휩쓸던 마적집단 광마방이 궤멸당한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진무앙이 싸우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강하고 적에게 무자비한지를 아는 것이다.
주설란은 가볍게 도리질을 했다.
‘내가 직접 나설 수는 없어. 무앙은 화가 나면 통제 불능이 되는 남자야. 손을 쓴 사람이 나라고 해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문제가 커지면 그가 본 맹과 적대할 수도 있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
결론은 어렵지 않게 났다.
어차피 그녀가 아니라도 대리에는 단옥상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개입하는 자들이 많아지면 무앙이 단옥상을 찾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야. 앞으로의 일은 상황이 돌아가는 걸 지켜보면서 결정하자. 그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남자라 사전에 계획을 세우는 건 의미가 없어.’
머리는 냉철하게 돌고 있었지만 반대로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
진무앙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주설란의 몸이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달뜬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아… 미치겠네…….’
* * *
그 시각.
진무앙과 오청연은 공회의 뒤를 따라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오청연이 휘적휘적 걷는 진무앙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그녀의 정체가 뭐예요?] [누구? 설란?] [예.] [구유밀령이라고 알지?] [물론이죠. 저번에 당신이 말해줬잖아요. 일월단심맹이라는 사도 세력의 정보기관이라고.]진무앙은 오청연과 동행하면서 최근 강호 정세와 방파, 사람에 대해 자신이 아는 걸 말해줬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강호행도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을 뿐.
오청연이 이어서 물었다.
[그녀가 구유밀령 사람이에요?] [응. 그것도 상당한 고위직 요인이야.] [그럼 더 말을 조심했어야 하잖아요.] [무슨 말을 조심해?] [단옥상의 존재와 그녀의 행적 말이에요. 그걸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고급 정보를 그렇게 막 주면 안 되잖아요.] [난 또 뭐라고. 줘도 돼.] [그녀를 너무 믿는 거 아니에요?]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안 믿는데?] [예?] [내가 설란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건 맞지만, 그녀를 믿지는 않아.] [그런데, 왜 그렇게 귀한 정보를 줬어요?] [일부러 준 거야.] [예?] [아까 말하는 거 들어서 너도 알 거 아냐. 운남 무림은 사해집마부의 세력 범위 안에 들어가. 일월단심맹의 첩자가 활동하고 있기는 해도, 그건 최하급 말단 요원 정도야. 설란 같은 거물급 요인은 초대형 사건이 벌어졌을 때나 여기 오지, 평소엔 코빼기도 안 비쳐.]오청연의 눈이 반짝였다.
[이곳에 그녀가 처리해야 하는 큰 사건이 있다는 말이죠?] [응.]고개를 끄덕인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그녀가 여기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너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텐데?] [환우지약…….] [맞아. 지금 대리에서 그것보다 큰일이 뭐가 있겠냐.]공회는 배를 타려는 듯 이해의 호숫가로 접어들고 있었다.
오청연이 물었다.
[그럼 정보를 준 건 그녀를 움직이기 위해서였어요?]진무앙의 대답은 오청연의 예상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아니. 설란은 나를 잘 알아. 내가 단옥상을 찾고 있다고 들었으니 절대로 직접 나서지 않을 거야. 뒷감당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럼, 다른 자들을 움직이겠군요.] [네 머리도 그리 나쁘지는 않네, 흐흐흐.] [칭찬이에요, 욕이에요?] [칭찬이야. 아무튼 단옥상을 찾으러 오는 자들을 보면 이번 일에 그녀가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운이 좋으면 단무군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도 있고.]공회가 커다란 고깃배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게 보였다.
오청연이 말했다.
[일이 꼬이지 않게 하려면 단옥상은 무조건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하겠군요.] [뭐, 꼬여도 풀어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러는 게 덜 귀찮긴 하겠지.]진무앙과 오청연은 공회와 함께 고깃배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