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78
278 진심이 담긴 것 같던데?
관제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쾅!
화탄이 터질 때나 날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엄청난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마을에 진입해 있던 모든 세력의 움직임이 급박해졌다.
점창파 검수들은 물론이고 은밀하게 마을을 수색하던 비마잠혈의 무인들이 관제묘를 향해 경공을 펼쳤다.
외곽을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과 출입로를 차단했던 사해집마부의 무사들까지 달려왔다.
그들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그러나 일을 꾸민 진무앙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진무앙과 단옥상이 도착했을 때 조일해는 오청연의 일장에 가슴을 얻어맞고 무너진 관제묘에 거꾸로 처박히고 있었다.
콰쾅!
오청연을 한눈에 알아본 단옥상의 눈에 어리둥절한 빛이 떠올랐다.
그녀가 아는 오청연의 무공으로 조일해를 단숨에 사로잡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조일해를 바로 제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번거롭게 그를 쓰러뜨리고 있었다.
분명 연출된 광경이었다. 그러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진무앙이 누가 들으라는 듯 단옥상에게 크게 소리쳤다.
“단 낭자, 조 대협을 구해요!”
“아… 알았어요.”
단옥상은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 조일해에게 달려갔다.
사전 설명이 전혀 없던 터라 단옥상은 진무앙과 오청연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과 동행한 그녀는 두 사람을 굳게 믿었다.
그들은 신비롭고 종잡기 힘든 사람들이었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절세고수였다.
그런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지 않을 거라는 게 그에 대한 믿음의 근거였다.
울컥-
“크윽!”
조일해는 핏덩이를 토하며 일어나려 버둥거리다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단옥상을 보았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 옥상?”
천룡밀문과 점창파 속가무맥은 이백여 년이나 한 집안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러니 그가 단옥상을 한눈에 알아보는 건 당연했다.
단옥상이 그의 상체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예, 저예요, 조 대협.”
“크으…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임기응변을 할 수밖에 없는 단옥상의 머리가 무서운 속도로 돌아갔다.
그녀가 말했다.
“조 대협을 노리는 자들이 이 마을로 가고 있다는 정보를 얻고 경고를 해주러 왔어요. 그런데 늦은 것 같네요.”
그녀와 조일해의 시선이 진무앙을 향했다.
그는 오청연과 무서운 기세로 부딪치고 있었다.
쾅쾅쾅!
두 사람이 충돌할 때마다 거창한 폭음과 함께 살을 에는 듯한 기파가 태풍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으으… 저 사람은 누구냐?”
“아버님과 친분이 있는 분인데, 요즘 저를 도와주고 계세요.”
단옥상의 부축을 받은 조일해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싸움을 지켜보는 조일해의 눈이 어두워졌다.
다짜고짜 나타나 관제묘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공격한 여인은 가공할 고수였다.
단옥상의 지인이라는 죽립인의 무공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여인을 상대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죽립인이 소리쳤다.
“단 낭자, 내가 이 여자를 막는 동안 조 대협과 빠져나가시오! 나도 곧 뒤따라가겠소!”
진중하면서도 강한 힘이 실린 목소리여서 듣는 것만으로도 신뢰가(?) 갔다.
하지만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며 한눈을 파는 건 위험천만한 짓이다.
조일해의 눈에 여인의 손이 스친 죽립인의 오른쪽 어깨가 찢어지며 피가 튀는 것이 보였다.
비틀거리며 여인의 이어지는 공격을 피한 죽립인이 다시 악을 쓰듯 소리쳤다.
“어서 가시오. 적은 이 여자만이 아니오! 꾸물거리다가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거요!”
그의 말처럼 사방에서 무인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단옥상은 입술을 깨물며 조일해를 돌아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그가 헐떡이며 말했다.
“크으… 저 사람의 말이 맞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으으…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야. 우리가 이곳을 벗어나면 그도 몸을 뺄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다.”
고개를 끄덕인 단옥상은 조일해를 부축하며 경공을 펼쳤다.
그녀가 향한 곳은 그나마 포위망이 가장 얇은 곳이었다.
하지만 사방에서 적이 몰려들던 상황이라 그곳에도 당연히 그들의 앞을 막는 자들이 있었다.
적은 점창파의 검수 둘과 사해집마부의 무인 셋, 관부의 병사 다섯 명이었다.
중상을 입은 조일해와 단옥상의 무공으로 단숨에 그들을 통과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때 진무앙의 강렬한 외침이 두 사람의 귀를 파고들었다.
“신경쓰지 말고 달려요!”
동시에 검푸른 도기에 휩싸인 한 자루 도가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며 그들을 막아선 자들에게 날아갔다.
암월도였다.
촤촤촤촤촤촤촤촤-
점창의 검수, 사해집마부의 무사, 관부의 병사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어 암월도를 막아갔다.
하지만 암월도는 그들의 병기를 두부처럼 잘라 버렸다.
서걱- 서걱- 서걱-
그러고도 힘이 남은 암월도는 병기의 주인들까지 무자비하게 썰어버렸다.
“으악!”
“컥!”
“끄아아!”
처절한 비명과 함께 양단된 자들의 몸에서 피분수가 폭발하듯 치솟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단옥상과 조일해는 결이 조금 다른 폭음과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펑!
“큭!”
힐끗 돌아본 그들의 눈에 등에 여인의 일장을 맞고 피를 토하는 진무앙의 모습이 들어왔다.
조일해는 이를 악물었다.
죽립인은 그와 단옥상의 앞을 막은 적을 처리하느라 여인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사이 단옥상은 조일해를 부축하며 피로 물든 자리를 통과했다.
조일해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운남 총독부와 수십 년을 싸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떤 싸움에서도 오늘처럼 일방적으로 당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신비여인 오청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엄청난 분노와 살기로 이글거렸다.
“이 빚은… 크으… 반드시 갚아주마…….”
단옥상이 말을 받았다.
“조 대협, 어서 가요.”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뒤로 진무앙과 오청연이 충돌하는 굉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콰콰콰콰콰쾅-
단옥상과 조일해가 마을을 벗어난 것을 확인한 진무앙과 오청연이 동시에 손을 거뒀다.
겉으로만 보면 두 사람은 잠시 싸움을 멈추고 서로의 약점을 찾는 것 같았다.
진무앙이 피가 흐르는 어깨를 힐끗 보며 오청연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네 일장에 아무래도 진심이 담긴 것 같던데?] [그랬으면 당신 팔이 그렇게 멀쩡하겠어요? 벌써 먼지가 되었겠죠.]두 사람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백여 명이 넘는 무인이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병사와 점창의 검수들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라 그들은 인의 장벽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들 중 사해집마부의 무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무리 중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건 사해집마부였다.
관부와 점창파는 이곳에서 중대한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만 알 뿐, 그 내용은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정보를 준 주설란도 모르는 걸 그들이 알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반면 사해집마부의 십이영주는 조일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도주를 알아차리자마자 즉시 모든 부하에게 추적 명령을 내렸다.
명령은 받은 자들은 일제히 마을을 떠난 조일해를 추적했다.
그래서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진무앙이 오청연에게 말했다.
[너는 점창파 제자들이 그들을 추적하지 못하게 손을 쓰고 빠져.] [당신은요?] [그들을 쫓아간 놈들을 처리할 거야. 그 뒤에 단옥상에게 합류할 거고. 너는 곽삼을 할멈에게 데려다주고 내 뒤를 쫓아와.] [알았어요.]진무앙이 눈짓으로 허공에 은신해 있는 몽지림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임아하고 같이 있어.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하게 움직이라고. 알았지?] [당신은, 일할 때 보면 평상시와 달리 참 꼼꼼한 구석이 있어요.]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마음대로 생각해요.] [쩝, 이제 여기도 마무리 짓자. 지금쯤 단옥상은 추적자들에게 따라잡혔을 테니까. 청연, 나한테 일장을 날려.]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청연은 번개처럼 진무앙과의 거리를 좁히며 그의 가슴에 일장을 날렸다.
진무앙도 그녀에게 뒤지지 않는 속도로 마주 일장을 펼쳤다.
두 사람의 장력이 무서운 기세로 충돌했다.
쾅!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새처럼 그들의 머리 위를 훨훨 뛰어넘은 진무앙이 순식간에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제야 그가 도주한다는 것을 깨달은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자를 막앗!”
하지만 이미 오청연이 그들을 막기로 한 이상 그건 실현 불가능한 명령이었다.
십여 명의 병사와 점창파의 검수들이 명령에 따라 진무앙이 도주한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가공할 위세를 품은 일장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콰콰쾅!
“으악!”
“크악!”
“끄억!”
처참한 비명과 함께 움직이려던 자들의 몸이 화탄에 맞은 것처럼 폭발하며 엄청난 피보라가 일어났다.
오청연이 담담한 어조로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모두 죽일 거예요. 내 말이 의심스러운 사람은 움직여도 좋아요. 대신 날 원망하지는 말고요.”
귀가 즐거울 정도로 맑고 고운 목소리였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들의 수는 백여 명이 넘었다. 그러나 그들 중 움직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청연이 펼친 일장의 위력을 본 뒤라 누구도 감히 그것을 시험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귀영신행신법을 펼친 진무앙은 숨 두어 번 내쉴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마을을 벗어났다.
그가 가장 먼저 맞닥뜨린 건 수십 필의 말이었다.
말을 지키는 병사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단옥상과 조일해는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관도가 아닌 숲으로 뛰어들었다.
기마병을 피하기 위해서는 말이 움직이기 힘든 숲으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으니까.
병사들 대부분이 그런 그들을 추적하기 위해 말을 두고 숲으로 들어간 것이다.
유령처럼 말과 병사들을 지나친 진무앙의 신형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백여 장을 전진하자 한 무리의 병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단서로 추적을 하고 있었지만 속도가 느렸다.
진무앙은 그들을 무시하고 달렸다.
그의 귀에는 은은한 병장기들의 충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물론 그건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들을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멀리서 나는 것이었다.
다시 오백여 장을 더 전진했을 즈음 그의 앞에 공터가 나타났다.
진무앙은 그곳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나무의 나뭇가지를 밟고 섰다.
공터에 펼쳐진 광경을 본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조일해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있었고, 단옥상이 한 자 길이의 단검을 꺼내 쥐고 그를 보호하는 중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앞에는 두 무리로 나뉜 수십 명의 복면인이 무서운 기세로 싸우고 있었다.
챙챙챙챙챙-
푸푹!
서걱! 서걱!
“으악!”
“컥!”
금속음과 파육음, 그리고 비명소리가 쉴 새 없이 공터를 울렸다.
진무앙은 한눈에 복면인들의 정체가 비마잠혈과 구유밀령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비마잠혈의 수뇌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구유밀령을 이끄는 복면인은 주설란이었다.
그녀도 복면을 하고 있었지만 헝겊 따위를 뒤집어썼다고 진무앙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리 있겠나.
두 사람은 단옥상과 조일해 앞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십이영주가 주설란에게 말했다.
“주 단주, 여기서 물러나면 더는 죄를 묻지 않겠다. 하지만 그대가 저들을 계속 욕심낸다면, 그대뿐만 아니라 운남에 있는 모든 일월단심맹도를 죽일 것이다.”
복면 속 주설란의 눈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심 영주, 의욕이 넘치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일을 주재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에요. 당신은 그저 장기판의 졸에 불과해요. 그러니 협박은 내게 통하지 않아요.”
주설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십이영주, 심재홍의 눈에 어이가 없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이 일의 주재자가 내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해괴한 말이냐?”
어깨를 으쓱하며 무어라 대답을 하려던 주설란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귀에 낯익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쩝… 설란, 내가 개입했다는 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