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79
279 이래서 하룻강아지가 무서워
주설란이 진무앙이 은신해 있는 나무를 힐끗 보았다.
그녀가 진무앙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건 그가 그녀에게 전음을 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기운을 쏘아 보낸 덕분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조일해와 단옥상이 마을에서 도망 나올 때 난 외곽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두 사람의 앞을 막던 자들을 암월도가 단숨에 처리하더라고. 그걸 보고 알았지. 당신이 본격적으로 이번 일에 개입하고 있다는 걸.] [눈썰미는 귀신처럼 좋다니까.] [칭찬으로 들을게. 그런데 왜 당신이 조일해와 단옥상을 돕는 거야?] [나중에 말해줄게. 이야기하자면 복잡해.]진무앙에게 짜증을 내려던 주설란의 눈빛이 변했다.
사해집마부 세력의 후미를 가르는 한 자루의 도와 그것을 쥐고 있는 진무앙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진무앙이 언제 나무에서 저곳으로 이동했는지 보지도 못했다.
쑤와아아앙-
검푸른 도기를 두른 암월도는 가공할 기세로 집마부 무사들을 베어 넘겼다.
서걱- 서걱- 서걱-
“으악!”
“크억!”
파육음과 처절한 비명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주설란과 대치하던 십이영주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인정사정없이 암월도를 휘두르며 자신의 부하들을 죽이는 죽립인, 진무앙을 본 그의 눈에 긴장된 기색이 떠올랐다.
비록 먼 거리이긴 했지만 십이영주도 마을에서 진무앙이 여인과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가 절정고수라는 알고 있었다.
그가 소리쳤다.
“적이다! 막아랏!”
지시를 받은 사해집마부의 무사들이 진무앙에게 달려들었다.
일 대 수십.
사해집마부는 진무앙에 비해 수적으로 절대 우위였다.
십이영주는 부하들이 진무앙을 공격하자 즉시 주설란을 무시하고 조일해에게 접근하려 했다.
부하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그는 조일해를 손에 넣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합창하듯 터져 나오는 처참한 비명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뒤를 돌아본 십이영주의 안색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저럴 수가…….”
암월도에서 검푸른 도기가 일어날 때마다 처절한 비명이 공터를 떨어 울렸다.
스스스스슷-
“으악!”
“컥!”
“끄악!”
십이영주는 부하들이 진무앙을 죽일 수는 없어도 시간은 벌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것이 그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은 진무앙의 일도를 막기는커녕 피하지도 못한 채 허수아비처럼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사해집마부 무사들의 공격대형이 무너지는 모습은 해일에 휩쓸린 모래성 같았다.
눈 몇 번 깜박할 사이 죽은 자들의 수가 이십여 명을 넘었다.
그리고 파죽지세처럼 그들을 뚫은 진무앙이 조일해와 단옥상의 옆에 섰다.
십이영주와 마찬가지로 경악에 휩싸인 눈으로 자신을 보는 조일해에게 진무앙이 말했다.
“여기서 지체하면 관제묘의 그 마녀에게 뒤를 잡힙니다. 고통스럽겠지만 멈추지 마십시오.”
그가 단옥상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단 낭자, 가시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마시오.”
말을 하면서 그는 단옥상에게 심어술을 시전했다.
그가 전음이 아닌 심어술을 사용한 건 말을 하면서 전음을 동시에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운룡파파가 마련해 주었던 은신처로 가요. 나도 곧 뒤따라가겠습니다.]조일해가 그에게 물었다.
“대협은 누구요?”
“한가하군요. 이야기는 안전해진 뒤에 얼마든지 할 시간이 있습니다.”
진무앙의 말에 조일해는 입을 다물었다.
단옥상이 조일해를 부축해 일으켰다.
진무앙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뒤는 내가 맡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나무 사이로 멀어져 갔다.
사해집마부와 일월단심맹 무사들은 그들을 쫓지 못했다.
그러려면 앞을 막고 서 있는 진무앙을 쓰러뜨려야 하는데, 방금 전 본 그의 무위가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에 대한 공격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된 터라 아무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는 것이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주설란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앙, 우리도 죽일 거야?] [나서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오늘은 너도 고집부리지 말고 그냥 돌아가.] [당신 말처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이번 일은 나한테도 정말 중요하다고.] [계속 고집부리면 너의 부하들은 전부 저승 문턱을 밟게 될 거야.]진무앙의 말투는 덤덤해서 경고나 협박을 받는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주설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야 했다.
두 사람의 관계와 상관없이 진무앙은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도 남을 남자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천에 필요한 능력이야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가는 탄식성과 함께 그녀가 말했다.
[하아, 알았어. 물러날게. 하지만 오늘 일, 그냥은 못 넘어가.]대꾸하는 진무앙의 목소리에 유쾌함이 가득 담겼다.
[이번 결정,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지금 한 약속, 절대 잊지 마.] [응.]주설란이 부하들에게 단호한 음성으로 지시를 내렸다.
“철수한다!”
주설란과 부하들이 썰물처럼 장내를 빠져나갔다.
남은 건 십이영주가 이끄는 사해집마부의 무사들뿐이었다.
일월단심맹이 망설임 없이 철수하는 것을 본 십이영주는 내심 크게 놀랐다.
주설란이 그처럼 과감하게 결정을 내릴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민하는 듯하던 십이영주는 진무앙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도 일월단심맹처럼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만큼 진무앙이 그에게 보여준 신위는 무서운 것이었다.
뒤로 빠졌다가 추적을 개시하면 조일해를 쫓는 게 좀 더 어려워질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편이 이곳에서 진무앙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방법이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은 그가 진무앙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던 망상이었다.
진무앙이 고개를 저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희는 못 가.”
안색이 변한 십이영주가 물었다.
“굳이 우리와 적대하겠다는 것이냐?”
진무앙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적대? 이래서 하룻강아지가 무서워. 공야승추도 나한테 감히 하지 못할 말을 비마잠혈의 일개 영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말이지.”
십이영주와 사해집마부 무사들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당대 마도 무림의 지배자인 사해집마부의 태상 부주 이름을 진무앙이 동네 강아지 취급하자 살심이 동한 것이다.
그들의 눈빛을 본 진무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좀 전까지는 겁먹은 생쥐 같더니 이제 눈빛이 좀 볼만해졌군. 그렇다고 내가 봐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 그럴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거든.”
진무앙의 계속되는 아무 말 대잔치에 십이영주는 속이 뒤집혔다.
마도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분노가 한계를 넘어서면 합리적인 판단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들은 꼭지가 돌면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다.
십이영주가 살기 띈 목소리로 외쳤다.
“저자를 죽여라!”
말과 동시에 그는 전력을 다해 진무앙에게 다가서며 소맷자락을 떨쳤다.
독이 발려 있는 듯 앞부분이 녹색으로 물든 수백 개의 비침이 진무앙의 전신을 뒤덮었다.
스스스스슷-
그의 부하들도 갖고 있던 단검과 표장 같은 암기를 모조리 꺼내 진무앙에게 던졌다.
쉬잇- 스팟!
진무앙은 혀를 찼다.
대혼돈 시대 때 사해동도관에서 그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정도 무림의 후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정사마를 구분하지 않고 후인들을 받아들여 가르쳤고, 그들이 세력을 만들 수 있도록 기틀까지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한 것은 무림의 세력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쏠렸을 때 그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다.
그때 그가 가르쳤던 아이들 중에는 후일 사해집마부와 일월단심맹을 만든 중추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지금 십이영주와 무사들이 사용하는 암기술이 그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그의 손이 전방에 둥근 원 하나를 그렸다.
그와 함께 일어난 가공할 흡인력이 날아드는 암기들을 빨아들였다.
혈우팔법의 하나인 흡룡와류폭이었다.
종류를 헤아리기 힘든 암기들이 공처럼 뭉친 채 허공에 못 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고정되었다.
다음 순간,
펑!
북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뭉쳐 있던 암기들이 날아들 때보다 수십 배는 더 빠른 속도로 튕겨 나갔다.
쐐애애애액-
암기의 폭풍이 사해집마부 무사들을 휩쓸었다.
“으악!”
“컥!”
“켁!”
처절한 비명과 함께 온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뚫린 무사들이 나뒹굴었다.
그들은 땅에 몸이 닿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다.
십이영주는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수십 명의 부하가 단 일초에 전멸하는 것을 보자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냐?”
심장이 떨어질 지경으로 놀란 상태라 그의 말투는 반존대와 평어가 뒤섞여 있었다.
진무앙은 그의 질문을 무시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네가 능력이 있어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는 거 알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십이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해집마부는 이 시간부로 이 사건에서 손을 뗀다. 그렇게 위에 보고해. 알았냐?”
십이영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에겐 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으니까.
그것을 모를 진무앙이 아니었다.
“상부에 보고할 때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고 하면 공야승추도 군소리하지 않을 거다.”
“태상… 부주님을 아십니까?”
진무앙은 계속 공야승추와 아는 사이인 것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무공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했다.
그러니 십이영주의 말투가 존칭으로 변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렸다.
“잘 알아. 그런데 태상 부주? 공야승추가 은퇴하기라도 한 거냐?”
“몇 년 전 은퇴하시면서 자리를 현 부주님이신 대제자 육지마백 손중악 님께 넘기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진무앙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공야승추가 손중악한테 부주 자리를 넘겼다고? 둘째인 능세봉이 아니고?”
“예.”
무림에 공야승추가 은퇴하고 그의 대제자인 손중악이 사해집마부의 부주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건 이유가 있었다.
사해집마부와 일월단심맹은 비밀이 많은 조직이라 내부 사정은 물론이고 수뇌부에 대한 소문도 거의 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소문이 있었다 해도 무림의 사정에 관심이 없는 진무앙은 몰랐을 테지만
“이상하네. 중악이 자식은 재질은 뛰어나지만 피를 너무 탐하는 데다 반골 기질이 있어서 공야승추가 영 탐탁지 않아 했었는데…….”
십이영주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진무앙이 중얼거린 내용은 사해집마부 내에서도 비마잠혈의 영주 급 이상이나 핵심 요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초특급 정보였기 때문이다.
완전히 저자세가 된 십이영주가 말했다.
“제가 보고를 올린다고 해도 태상 부주님은 은퇴하신 상태라 보지 못하실 겁니다.”
“공야승추가 아니라 중악이한테 보고를 해도 상관없어. 결과는 마찬가지일 테니까. 보고서에 흑암주의 주인이 이번 사건에서 손떼라고 했다는 말을 적어. 그걸 보면 너한테 뭐라고 하지 못할 거야.”
“알겠습니다.”
“가봐.”
십이영주는 바람처럼 공터를 떠났다.
진무앙의 눈길이 관도 쪽을 향했다.
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관부의 병사들이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진무앙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대충 추적자들이 정리된 터라 이제는 급할 게 없었다. 더는 연기를 할 필요도 없었고.
그가 공터를 떠나고 반각 정도가 지났을 때 관부의 병사들이 도착했다.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건 수십 구의 시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