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81
281 그래도 할 겁니까?
덜커덩- 덜커덩-
몸에 전해지는 마차의 진동이 점점 약해지더니 곧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한 듯했다.
대리시 외곽에 있는 천룡밀문의 거점에서 마차를 탄 지 여섯 시진 만이었다.
검은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는 진무앙과 단옥상의 귀에 조일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 소협, 단 낭자. 드디어 본거지에 도착했소. 고생 많으셨소이다.”
말을 하며 조일해는 두 사람의 두건을 벗겼다.
그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진무앙에게 말했다.
“보안을 위해서이긴 했지만 생명의 은인인 진 소협에게 이런 불편을 끼쳐서 정말 미안하오.”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런 생각하지 마십시오. 총독부가 집요하게 천룡밀문의 뒤를 추적하고 있다는 걸 잘 압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오. 내립시다. 두 분을 모시고 가겠다는 전언을 드렸으니 문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세 사람은 마차에서 내렸다.
그들이 타고 온 건 두 필의 말이 끄는 허름한 마차였다.
진무앙은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마차가 있는 곳은 작은 장원의 후원이었다.
사방은 환했다.
그들이 거점을 출발할 때는 깊은 한밤중이었는데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다섯 명의 무사가 조일해에게 포권을 했다.
조일해가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문주님을 뵈어야겠다.”
다섯 무사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남자가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세 분이 도착하는 즉시 모시고 오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무사의 안내를 받으며 장원의 심처로 향했다.
단양록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일해가 그에게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문주님, 다녀왔습니다.”
“고생했다. 내상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괜찮은 것이냐?”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다행이구나.”
“문주님, 단 낭자는 아시죠?”
조일해의 말에 단양록의 눈길이 단옥상을 향했다.
단옥상이 포권했다.
“단 숙부님, 오랜만에 뵈어요.”
단양록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래.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삼 년 전이었는데, 그새 많은 일이 있었구나.”
단옥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진무앙에게서 부친인 단양풍을 죽이고 단무군을 납치한 범인이 단양록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눈앞에서 그를 보니 단옥상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살심을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동생인 단무군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는 지금은 무조건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단양록이 진무앙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천룡밀문의 문주를 맡고 있는 단양록이라 하오. 그대가 진무앙 소협이겠구려.”
그가 포권을 하며 말을 이었다.
“조 사제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고 들었소. 문주라는 신분을 떠나 그의 사형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진무앙도 마주 포권하며 말했다.
“운남의 무인 중 천룡밀문이 오랫동안 강대한 제국과 싸우며 백성을 위해 헌신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문파의 무인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제가 오히려 고마워할 일입니다.”
“고맙소.”
인사를 나눈 네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하녀가 차를 내왔다.
단양록이 진무앙과 단옥상에게 말했다.
“귀한 분들이 오신다기에 준비한 차요. 이 차는 향이 좋고 피로를 푸는 효과가 탁월해서 두 분의 입에 맞을 거요.”
진무앙과 단옥상은 차를 마셨다. 하지만 조일해는 차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단양록이 조일해에게 물었다.
“사제, 서민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조일해는 그에게 자신이 서민촌에서 겪은 일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가볍지 않은 내용이어서 이야기를 듣는 단양록의 표정은 심각했다.
하지만 진무앙은 그가 조일해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단양록의 시선이 자신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일해의 이야기가 끝나자 단양록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소협이 운남어은 구양 대협의 제자라는 조 사제의 말이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인연이 있어 선사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혹시 소협은 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시오?”
“물론입니다. 하지만 선사의 죽음은 사문의 비밀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상세한 말씀을 드리지 못합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양록의 눈이 번뜩였다.
“사문의 비밀이라… 정말 듣고 싶지만 그런 것이라면 내가 어떻게 계속 고집을 부릴 수 있겠소.”
“감사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선사와 단 낭자의 부친 되시는 단양풍 대협은 친분이 깊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그녀를 돕는 것이고요.”
단양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구려.”
장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사이 진무앙은 심어술로 오청연을 불렀다.
[청연, 단무군을 찾았냐?] [아직이요. 장원과 마을에는 없는 것 같아요.] [확실해?] [예. 호도협에서 느꼈던 기운을 찾기 위해 지하까지 샅샅이 수색했어요. 그런데 없어요.]오청연이 이렇게까지 말하면 단무군은 마을 안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진무앙의 얼굴에 얼핏 떨떠름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단양록이 물었다.
“진 소협,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도 있소?”
진무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차 맛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요. 향은 좋은데 마실 때마다 뭔가가 혀를 톡톡 쏩니다. 꼭 어렸을 때 독초를 잘못 먹었을 때와 같은 느낌입니다.”
단양록이 눈가에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소협은 무공만 높은 게 아니라 미각도 놀라울 만큼 예민하구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단양록은 진무앙의 질문을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미각은 예민한데, 분위기 파악이 아주 늦다는 것이오.”
“예?”
반문하던 진무앙이 상체를 비틀거렸다.
이미 옆에 앉은 단옥상은 정신을 잃고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단 낭자!”
벌떡 일어난 진무앙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양록을 돌아보며 물었다.
“내게 독을……? 왜… 왜… 이런 짓을……?”
그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눈을 감으며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털썩!
단양록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짓도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진다네. 그것이 세상사지.”
조일해의 표정도 가볍지는 않았다.
생명의 은인을 독으로 쓰러뜨린 것이니 마음이 편할 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곧 사라졌다.
그들이 하는 일의 성공 여부에 따라 개인의 영광뿐만 아니라 천룡밀문의 미래도 결정될 터였다.
그처럼 중대한 일을 하면서 감정에 휘둘릴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렇게 감상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단양록이 조일해에게 말했다.
“사제는 내상 치유에 전념하게. 진무앙이라는 자에게서 비밀을 알아내는 대로 움직일 것이니.”
“알겠습니다, 사형.”
조일해가 나가자 단양록은 부하들을 시켜 진무앙과 단옥상을 장원의 지하뇌옥에 가두었다.
쿵!
지하뇌옥의 문이 닫히자 진무앙은 길게 하품을 하며 일어나 앉았다.
단옥상은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혼절한 상태에서도 자체발광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그녀를 보며 진무앙은 혀를 찼다.
“피바다에 핀 한 송이 연꽃 같은 여자야.”
[하아, 비유를 해도 그렇게밖에 못해요?]나직한 한숨과 함께 오청연의 전음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훌륭한 비유인데?] [당신은 정말 만나기 힘든 유형의 남자예요.] [만나기 힘든 유형이 아니라 천하를 통틀어도 다시 만날 수 없는 남자라고 해야지. 나처럼 불멸의 권능을 가진 절.대.미.남.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진무앙이 한 말의 강조점은 불멸이 아니라 절대미남에 있었다.
[당신은 자기 얼굴에 금칠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금칠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야.] [하아…….]오청연은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거기서 계속 궁상떨고 있을 거예요?] [구… 궁상?] [그걸 궁상떠는 게 아니면 뭐라고 해요?] [내 깊고 오묘한 계획이 궁상으로 보인다고?] [예. 그냥 단양록을 제압하고 그에게 단무군이 있는 곳을 추궁하는 게 낫지 않아요? 훨씬 빠르고 쉬운 방법을 놔두고 왜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네 말처럼 빠르고 쉽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놈들을 처리하기가 어려워지잖아.] [정말 한 번에 모아서 쓸어버리려고요?] [응. 서로 뒤통수칠 궁리나 하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역겨워. 단 낭자를 위해서도 위험이 될 만한 것들을 미리 치울 필요가 있고.]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여자를 참 각별하게도 생각하네요.] [단옥상처럼 아름다운데다 성격까지 매력적인 여자가 천하에 얼마나 드문 줄 알아? 그녀는 내게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어.] [그런데 나한테는 왜 그래요?] [넌 사람이 아니니까.] [하여튼 당신은 너무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잔소리는 그만하고 단무군이나 찾아.] [하아, 알았어요.]한숨 섞인 대답을 끝으로 오청연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진무앙은 단옥상을 반듯하게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하단전에 장심을 올려놓았다.
셋을 세기도 전에 그녀의 모공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손을 뗀 진무앙은 묵묵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천상십화 중 한 명…….”
보고 또 봐도 흠잡을 데가 없는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때 단옥상의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며 맑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단 낭자, 정신을 차렸군요.”
사물이 잘 보이지 않는 듯 단옥상은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잠시 후, 초점이 또렷해진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진무앙을 발견하고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물었다.
“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진무앙은 그녀의 상체를 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하며 대답했다.
“단양록이 차에 산공독과 미혼향을 탔습니다. 그래서 낭자가 정신을 잃은 겁니다.”
“진 호위님은……?”
진무앙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내가 그런 하찮은 독에 당하겠습니까. 그래도 낭자의 동생을 찾을 때까지는 단양록이 어떻게 하나 보려고 당한 척한 겁니다.”
“아……!”
“낭자의 몸에 있는 독은 제거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옥상의 눈끝이 가늘게 떨렸다. 감동한 것이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말을 할 때까지는 산공독에 당한 척하십시오. 낭자의 동생을 찾으려면 단양록을 속일 필요가 있으니까요.”
단옥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진무앙이 그녀에게 물었다.
“낭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제가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대답해 드릴게요.”
“훗, 어려운 질문은 아닙니다. 낭자는 동생을 구하고, 구화진의 비전을 얻는다면 그 뒤에 어떻게 살 겁니까?”
단옥상은 눈을 반짝이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먼저 단 씨 혈족 내부를 정리할 거예요.”
“먼저라면… 그 뒤에 할 일도 있습니까?”
“아버님의 유지를 이어 대리국을 다시 세울 거예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제국은 낭자의 복국 활동을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강대한 그들과의 싸움에서 낭자가 뜻을 이룰 가능성은 정말 희박합니다. 그래도 할 겁니까?”
단옥상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은 대리국을 무너뜨린 후 운남의 백성들을 노예처럼 부려왔어요. 우리가 이곳에 독립된 왕국을 세우지 않는 한, 그들의 폭정은 계속될 거예요.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저는 그들과 싸울 거예요.”
진무앙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낭자의 의지가 그처럼 굳은 걸 보았으니 나도 돕겠습니다.”
단옥상의 얼굴이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