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85
285 개판이네
진무앙은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단옥상을 품에 안았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홍조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내쉬는 숨결은 뜨거웠고, 눈동자는 초점이 풀려 있었다.
진무앙은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크게 심호흡을 해요. 그럼 좀 나아질 겁니다.”
단옥상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방금 전, 정신을 차린 그녀는 진무앙의 부드러운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덮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라 그를 밀어내며 비명을 지른 다음부터 그녀는 멍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기억과 진무앙에 대한 기이한 감정이 해일처럼 밀려와서 그것을 감당하는 것도 벅찼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화등선한 구화진의 감정과 기억이었다.
그때 진무앙의 귀에 오청연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런데 환우지약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는 거예요? 광장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요.]오청연과 몽지림도 공간전이 술법이 펼쳐질 때 광장으로 함께 왔다.
[염려하지 마. 설마 너는 내가 그걸 잊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구화진과의 해후는 제게도 뜻밖일 정도라 혹시 당신도 정신이 나간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군. 입 다물고 보기나 해. 아직 다 끝난 거 아니니까.]진무앙은 오청연과의 대화를 마치고 단옥상에게 말했다.
“단 낭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아직 마무리가 다 된 게 아니거든요.”
그의 말에 마음이 조금 진정된 단옥상은 바닥에 누운 단무군을 돌아보았다. 뒤이어 그녀의 시선이 단양록과 천룡밀문 무사들에게 향했다.
단양록은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진무앙과 단옥상을 보고 있었다.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서 일어난 일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하게 넘어선 것이었으니까.
그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그리고 장보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장보실은 이미 열렸어. 하지만 바로 앞에 있는데도 못 알아보는 걸 보니 너와는 인연이 없는 물건인가 봐.”
“그게 무슨 헛소리냐!”
진무앙은 단옥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헛소리? 열린 장보실을 보지 못하는 건 네가 모자란 놈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구화진의 비전은 이미 주인을 찾았어.”
계속되는 알 수 없는 말에 단양록의 안색이 노기로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조일해의 입에서 분노한 일갈이 터져 나왔다.
“이 미친놈이!”
그가 더는 참지 못하고 진무앙에게 신형을 날리며 일장을 후려갈겼다.
그 순간, 어디선가 푸른빛 물체가 가공할 속도로 뛰쳐나와 조일해의 일장에 부딪쳐 갔다.
휘이익-
쾅!
폭음과 함께 진무앙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청아, 죽이지 마라!”
폭음과 함께 장력의 기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일해의 장력을 막은 존재를 본 사람들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것은 진무앙의 어깨에 올라앉아 있었는데, 복슬복슬한 푸른 털과 홍옥 같은 붉은 눈을 가진, 한 자도 되지 않는 몸집의 여우였기 때문이다.
진무앙이 여우의 턱을 간지럽히며 말했다.
“네가 지금까지 화진이를 지키고 있을 줄을 몰랐어. 고맙다, 청아.”
여우가 혀를 내밀어 진무앙의 손을 핥았다.
단옥상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이 여우는……?”
“청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 보니 아직 구화진의 기억이 전부 복원된 건 아닌 모양이네요. 이 녀석의 이름은 ‘청’이고, 그녀의 친굽니다.”
진무앙은 청아를 한쪽 팔로 안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던 아인데, 이 녀석이 아직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던 건 내게도 의외였습니다.”
단옥상은 진무앙의 어조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청아를 본 건 분명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청아가 이곳에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을 했다.
“청아가 이곳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구양승이 이곳을 찾았다가 치명상을 입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알았습니다.”
“아…….”
진무앙의 말에 담긴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단옥상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듣고 있던 단양록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진무앙에게 물었다.
“그 여우가 구양승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말이냐?”
진무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바보는 아니네.”
“뭐라고!”
진무앙은 분노한 단양록을 가볍게 외면했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단무군의 옆에 쪼그려 앉으며 단옥상에게 물었다.
“단 낭자, 부친의 복수를 원하죠?”
뜬금없는 질문이라 단옥상은 어리둥절해졌다.
“당연히 원하지만… 갑자기 그건 왜……?”
진무앙은 대답을 하지 않고 연이어 물었다.
“대리국도 다시 세우고 싶다고 했죠?”
“예. 하지만 지금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가…….”
“내가 낭자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습니다. 그것을 잡을지 말지는 낭자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여서 단옥상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예?”
듣고 있던 단양록과 조일해 등의 얼굴에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의 손이 단무군의 정수리를 움켜쥐었다.
다음 순간, 그의 손이 은은한 갈색으로 물들었다.
그가 손을 떼자 단무군의 정수리에서 세 개의 방울을 가진 나뭇가지가 솟아나왔다.
신비롭고도 괴기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것을 본 단양록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흡철령?”
진무앙이 씨익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안목이 있네. 역시 문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
불같이 치밀어 오르는 욕심으로 단양록의 눈이 뒤집혔다. 그는 진무앙을 덮쳐 가며 소리쳤다.
“흡철령을 내놓아라!”
진무앙이 단무군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
“능력이 있으면 뺏어봐.”
동시에 그는 팔로 단옥상의 허리를 감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지진이 난 것처럼 광장이 뒤흔들리며 사방이 엄청난 빛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빛에 휩싸인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공간전이 술법이 다시 가동된 것이다.
풍정도의 중앙.
갑자기 나타난, 폭이 수장에 이르는 원형의 빛기둥이 하늘 끝까지 솟구쳤다.
화아아악-
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빛의 기둥을 향했다.
하지만 빛이 너무 강렬해서 그들은 그것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런 그들의 귀에 풀숲에 바람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슷-
빛의 기둥이 사라졌다.
그리고 눈을 뜬 사람들은 십수 명이 두 무리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대치하고 있는 두 무리는 진무앙 일행과 단양록 일행이었다.
주변을 돌아본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개판이네.”
그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방은 시산혈해였다.
아니, 좁은 풍정도 전체가 시체로 뒤덮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천룡밀문 무사들은 공간전이 술법이 시전된 공터를 중심으로 방어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여 명이던 그들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그들 절반을 죽인 자들은 점창파와 관부의 연합 세력이었다.
물론 진무앙과 단양록 일행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싸움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연합 세력 중 가장 앞장서서 천룡밀문 무사들과 싸웠던 사람은 점창파 장문인 단양천이었다.
그래서 그는 진무앙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가 단양록과 단옥상, 단무군을 돌아보며 말했다.
“단 문주, 단무군을 손에 넣은 사람이 그대였군.”
그는 단양록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것은 헛된 것이었다.
단양록은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무앙! 그것을 내놔!”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친 그는 무서운 속도로 진무앙에게 다가섰다.
오므린 그의 손끝에서 뼈를 깎는 경풍이 일어났다.
천룡밀문의 문주에게 비전되는 천룡나백수라는 금나수법이었다.
그가 노리는 건 당연히 흡철령이었다.
진무앙은 그를 무시하고 단옥상에게 말했다.
“단 낭자, 이제부터는 낭자의 시간이오.”
“예?”
단옥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밖으로 나와서도 그의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답 대신 진무앙은 그녀의 등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단양록의 앞으로 확 밀어버렸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단옥상은 물론이고, 공격을 하던 단양록도 크게 놀랐다.
하지만 단양록은 공세를 거두지 않았다.
천룡나백수는 포박과 점혈에 특화된 단순한 금나수가 아니라 내가중수법이 포함된 공격 무공이기도 했다.
단옥상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일류고수였지만 절정고수인 단양록을 상대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절정고수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변절했지만 그는 대리국 복국 활동을 하며 수십 년 동안 관부와 싸워온 사람이었다.
게다가 운남 무림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인 사해집마부와도 적지 않은 싸움을 했다.
그는 무공의 강약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인 실전 경험이 풍부한 무인인 것이다.
단양록의 천룡나백수가 단옥상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저 손아귀에 잡히기만 하면 그녀의 목은 수수깡처럼 꺾일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단옥상은 상체를 뒤로 젖히며 수도로 단양록의 손목을 끊어갔다.
쉬쉿-
천룡나백수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단옥상의 목을 스치며 헛손질을 했다.
공격이 빗나갔을 뿐만 아니라 단숨에 손목이 부러질 지경에 처한 단양록의 얼굴에 놀람의 기색이 떠올랐다.
손을 거둔 그는 팔꿈치로 상체를 뒤로 젖힌 단옥상의 가슴 명문혈을 송곳처럼 내리찍었다.
그 순간, 단옥상이 쓰러지듯 뒤로 꼿꼿이 넘어갔다.
그러나 그녀의 신체 중 땅에 닿은 건 발뒤꿈치뿐이었다. 다른 부분은 모두 두 치가량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는 발뒤꿈치를 땅에 고정한 채 빙글 반 바퀴 돌고는 용수철이 튕기듯 벌떡 일어나 단양록의 측면을 바람처럼 파고들었다.
철판교에 이은 이어타정이었다.
그녀의 일권이 단양록의 관자놀이 태양혈로 날아들었다.
그 일권은 변식이 일체 배제된 직도황룡의 삼류 권법이었다.
쐐애애액-
하지만 단옥상의 움직임을 코앞에서 놓치고 수세에까지 몰린 단양록의 안색이 확 변했다.
단옥상이 펼친 건 일류라면 누구나 펼칠 수 있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녀처럼 자연스럽고 신속한 운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피할 틈이 없다는 걸 직감한 그는 그녀의 공세를 향해 오른손으로 마주 일장을 후려쳤다.
뜨거운 열기를 품은 그의 손바닥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져 있었다.
그가 펼친 것은 천룡밀문 최강의 절기인 천룡건양장이었다.
이 장법은 포달랍궁의 절기인 밀종대수인의 영향을 크게 받아 창안된 무공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단양록의 손바닥이 두 배로 부풀어 오른 것이고.
무엇보다도 천룡건양장은 단옥상의 부친인 단양풍을 쓰러뜨린 무공이었다.
후우우웅-
막강한 천룡건양장의 기세가 일어나 단옥상의 권세를 집어삼켰다.
누가 봐도 우열이 분명한 광경이어서 그녀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건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진무앙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싸움을 지켜보기만 할 뿐, 그녀를 도우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단옥상의 주먹과 단양록의 일장이 무서운 기세로 충돌했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