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90
290 그거, 농담 아니었어?
대리시, 운룡파파의 거처.
사해집마부를 제거한 후 진무앙은 동굴에서 사흘을 보냈다.
단옥상이 구화진의 비전을 조금이라도 얻을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녀와 단무군을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동굴은 장기간 폐관할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운룡파파라면 폐관에 적당한 장소를 알고 있을 터였다. 그녀에게 맡겨야 할 일도 있었고.
운룡파파와 곽삼은 진무앙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대형이 꾸민 일이죠?”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마자 곽삼이 호기심을 참을 수 없다는 얼굴로 진무앙에게 물었다.
“뭘?”
“풍정도하고 지금 운남 총독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요. 그 때문에 운남 전체가 난리도 아닙니다.”
“뭐, 내가 시키긴 했지.”
“역시! 대형이 아니면 천하에 이런 깽판을 칠 사람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진무앙이 곽삼을 째려보며 말했다.
“그거, 아무래도 욕 같다?”
“욕이요? 그럴 리가요!”
펄쩍 뛴 곽삼은 슬그머니 그의 시선을 피했다.
혀를 찬 진무앙이 물었다.
“총독부 상황은 어떠냐?”
“총독 마유숭은 첫날 사망했고, 성안에 있던 관료와 병사들도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잘했군.”
“총독부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대리의 유력자들이 총독을 구하기 위해 부하들을 이끌고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역시 잘했군.”
“지금은 대리 외부에 있던 병사들과 제국에 충성하는 호족들이 성으로 들어가 싸우는 중입니다. 살아서 성을 빠져나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 그곳은 시산혈해라고 하더군요.”
“당연히 그렇겠지. 저항하는 자는 모조리 죽이라고 했으니까.”
“대형, 그런데 대체 혈겁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은 누굽니까? 가공할 고수라고는 하는데 소문만 무성할 뿐, 정체는 물론이고 몇 명인지 숫자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다.”
“차라리 알고 병을 앓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너무 궁금해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입니다. 말씀해 주시면 안 됩니까?”
“안 돼.”
진무앙의 대답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곽삼은 시무룩해졌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운룡파파가 물었다.
“진 호위님께서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건지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별거 없어. 운남엔 독립을 원하는 백성들이 있어. 그리고 그들을 이끌 단옥상이라는 지도자도 있지. 그래서 대리가 독립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조금 도움을 주고 있을 뿐이야.”
“엄청난 피가 흐를 것입니다.”
진무앙의 시선이 단옥상을 향했다.
“그거야 당사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고.”
“끝까지 돌봐주실 생각은 없는 것입니까?”
“내가 왜?”
“사람들을 부추기고 소원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주셨으니 마땅히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운룡파파의 말을 끊었다.
“할멈, 나, 사람 아니야.”
“예?”
“신무제는 앞으로 운남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힘들 거야, 내가 손을 쓸 거니까. 하지만 내 역할은 거기까지야. 궁극적인 책임은 이 시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져야지. 떠돌이 낭인인 내게 무한책임을 지라고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야.”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외부의 힘에 의지해서 큰일을 도모하면 자생력이 안 생겨.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사분오열된다구. 그 꼬라지 나기 싫으면 피가 아무리 흘러도 난관은 당사자들이 헤쳐 나가는 게 최선이야.”
말은 운룡파파에게 하고 있었지만 단옥상에게 새겨 들으라고 하는 소리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단옥상은 이를 꽉 물고 진무앙을 바라보았다.
각오와 결의가 가득한 눈이었다.
진무앙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운룡파파에게 말했다.
“다녀올 데가 있어. 그동안 단 낭자가 폐관수련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 좀 찾아놔. 풍정도와 운남 총독부 사건이 단 낭자가 일으킨 거라는 소문도 내고. 나중에 낭자가 빈집털이하려면 여기저기 손 좀 써둬야 할 거야.”
정보 계통에서 최고라 불리는 사람답게 운룡파파는 진무앙의 말에 담긴 뜻을 대번에 깨달았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할멈이라면 잘할 거라고 믿어. 참, 단무군을 낙양까지 보내야 해. 아이의 호위 적임자를 찾아봐. 장기 여행 준비도 해주고.”
“알겠습니다.”
진무앙은 단옥상에게 싱그러운 미소를 남기고 거처를 나섰다.
그들만이 남자 곽삼이 슬금슬금 단옥상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단 낭자, 혹시 대형이 총독부에 보낸 부하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단옥상이 물끄러미 그를 보며 대답했다.
“제가 말해도 믿지 못할 거예요.”
“하하하하, 저는 엄청 열린 마음의 소유자고, 대형을 겪은 세월이 이십 년을 넘습니다. 그러니 낭자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있습니다.”
단옥상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요괴와 신수요.”
곽삼은 멍한 눈을 껌벅이며 되물었다.
“예?”
“진 호위님이 총독부에 보낸 건 검은 요괴와 푸른 신수예요.”
“아… 하하하… 농담도…….”
“거봐요. 믿지 않으시잖아요.”
단옥상도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곽삼이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운룡파파에게 말했다.
“할멈, 단 낭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었어?”
“당연히 알아들었다.”
“진짜?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검은 요괴와 푸른 신수라니. 지금이 무슨 이매망량이 판을 치던 신화 시대도 아니고. 대형이 요괴와 신수까지 부린다고? 그럼 그게 사람이야?”
“조금 전에 진 호위님이 하신 말씀을 벌써 잊은 거냐?”
“무슨 말?”
“당신이 사람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
“…그거, 농담 아니었어?”
“네게만 농담으로 들린 것 같구나.”
“……!”
곽삼은 말을 잃었다.
* * *
죽립을 깊게 눌러쓴 진무앙은 휘적휘적 거리를 걸었다.
그의 주위는 굉장히 어수선했다.
총독과 고위 관료들이 몰살당하면서 사실상 총독부가 붕괴된 상태였다.
거기에 외부에서 지원을 온 병사와 호족들에 의해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는 중이었다.
그러니 거리가 안정되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은 태연하게 걷다가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고 있는 작은 주점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볼 때는 텅 빈 것 같았지만 주점 안에는 선객이 한 명 있었다.
진무앙은 그 손님의 자리로 걸어가 맞은편에 편하게 앉았다.
선객, 평범한 이십대 여인의 인피면구를 쓴 주설란이 그를 째려보며 물었다.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냄새로.”
“개코야?”
“말 좀 예쁘게 하면 어디 덧나냐? 내 후각은 내 여자의 냄새만 족집게처럼 골라서 찾아내는 놀라운 놈이라고.”
“평소에는 발동하지 않나 봐.”
“아무 때나 발동하면 내가 사는 게 너무 피곤하잖아.”
“참 편리한 후각이네.”
주설란의 어조엔 빈정거림이 가득했다.
진무앙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삐쳤어?”
“난리가 났는데 나는 당신 때문에 손가락만 빨고 있어. 그러니 안 삐치게 됐어?”
“손가락 내밀어봐.”
“왜?”
“내가 빨아줄게.”
주설란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위로 치솟았다.
“지금 농담이 나와?”
“진담인데?”
“하아… 당신하고 진지한 대화를 하려고 한 내가 미친년이지.”
“자학하지 마. 마음 아프니까.”
“거짓말을 하려거든 입술에 침부터 발라.”
진무앙은 재빨리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바르다가 움찔했다.
난향에게 하도 당했더니 이제는 비슷한 말만 들어도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험험…….”
헛기침을 한 진무앙이 화제를 바꿨다.
“풍정도하고 해안 동굴에 왜 안 왔어?”
“당신이 학살을 벌이고 있는 곳에 내 부하들을 들여보내라고? 내가 결과가 뻔한 싸움을 벌일 바보로 보여?”
“설란이 얼마나 현명한지는 천하에서 내가 제일 잘 알지. 어떤 놈이 이렇게 능력 있는 여자를 변방으로 보낸 거야!”
끝말은 언성이 상당히 높았다.
그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나중에 단심맹주의 주리를 틀어줄까?”
“말 좀 조심하면 안 돼? 당신에게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나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하늘 같은 맹주님이야.”
“생살여탈권은 개뿔이… 네 털끝 하나 건드렸다가는 단심맹을 세상에서 지워 버릴 거다.”
“날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몰랐네.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요.”
“이것도 진담이야. 나는 거짓말과 농담이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는 진실한 남자라구.”
“더하면 진짜 화낼 거야.”
“…….”
“무앙, 이제 본론을 말해. 왜 날 찾아온 거야?”
“약속 지키려고.”
“약속이라면… 서민촌 부근의 숲에서 했던 그거?”
“응.”
진무앙을 보는 주설란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당시 진무앙은 그녀에게 ‘철수’하면 후회하지 않게 해준다고 약속했었다.
진무앙이 그녀에게 한 장의 서신을 건네며 말했다.
“당장 이곳을 떠나서 총타로 가. 그리고 이걸 맹주에게 전해. 다른 사람을 통하지 말고 직접.”
“내 지위로는 합당한 사유 없이 맹주님과 독대하는 건 불가능해.”
“걱정하지 마. 흑암주의 주인이 준 서신을 갖고 왔다고 말하면 그녀는 독대를 허락할 거야.”
“흑암주의 주인?”
“응.”
“흑암주가 뭔데?”
“그런 게 있어.”
“당신이 흑암주의 주인이야?”
“맞아.”
“그러면 맹주님이 날 독대할 거라고?”
“응.”
“왜?”
“묻지 마. 하여튼 그녀가 널 만나줄 거니까 그때 서신을 주면 돼.”
“이걸 전하면 뭐가 바뀌는데?”
“그녀는 널 중앙으로 바로 복귀시킬 거야.”
주설란은 멍한 얼굴로 진무앙과 서신을 번갈아보다가 물었다.
“무앙…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모르면 약이지만 정체를 알면 병이 되는 남자.”
“하아…….”
주설란의 입에서 긴 한숨을 새어 나왔다.
진무앙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것도 진담이야. 정말 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좋아.”
“호기심은 내 직업병이야.”
진무앙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입을 열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은 주설란은 호기심을 접었다.
그녀는 그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대답을 듣지 못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진무앙은 주설란이 서신을 품에 갈무리하는 걸 보면서 총독부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있는 곳에서도 검은 연기가 보일 정도인 걸 보면 총독부에 꽤나 큰 불이 난 것 같았다.
그가 중얼거렸다.
“이제 이곳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네.”
“어디로 가려고?”
“십만대산.”
주설란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해집마부에?”
“거기도 들를 생각이긴 한데, 진짜 할 일은 따로 있어.”
“그게 뭔데?”
“십만대산에서 구해야 하는 약재가 있어.”
“약재? 누가 아파?”
“응.”
“당신이 직접 약재를 구하러 다닐 정도면… 그 사람이 누군데?”
“예의바르고, 잔소리 많고, 재수도 없는 꼬맹이.”
“소소?”
그녀도 얼마 전까지 낙양에 머물렀던 터라 진무앙이 소소와 함께 다니는 걸 여러 번 봤었다.
진무앙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 아픈데?”
“병명 미상.”
주설란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소소가 그와 가까운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직접 약재를 찾아다닐 정도로 아이를 아끼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진무앙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설란,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여기서 계속 시간 죽일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주설란의 눈가가 은은한 홍조로 물들었다.
그녀가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당연히 아니지.”
마주친 그들의 눈에서 뜨거운 불꽃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