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94
294 일타쌍피, 꿩 먹고 알 먹고
쏴아아아아-
하늘에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 것일까.
새벽부터 쏟아진 비 때문에 마령하대협곡은 은빛의 주렴이 쳐진 것처럼 수백 개의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협곡을 찾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은 진무앙 일행이었다.
그들은 옷에 비 한 방울 묻지 않은 채 협곡의 절벽에 난 좁은 길을 원숭이처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런 일행을 맨 앞에서 안내하는 사람은 거도를 등에 메고, 손에는 한 자가량 되는 나무판자를 든 공야무룡이었다.
그가 전진하는 모습은 가슴이 조마조마할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길의 폭은 한 자도 채 되지 않는데 그는 구 척의 거인이었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협곡 사이로 흐르는 남반강에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초상비를 펼칠 수 있는 절정고수였으니까.
그의 바로 뒤에서 뒷짐을 지고 걸음을 옮기던 진무앙이 물었다.
“얼마나 남은 거냐?”
“오 리 정도만 더 가면 되우.”
“아직도? 속도 좀 높여봐.”
“그러면 아무리 나라도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우. 당연히 강으로 떨어질 거고.”
“쯧, 하인이 주인보다 능력이 떨어지면 그걸 어디다 써.”
“싫으면 마시든가.”
“진짜?”
“나야 팔자에 없는 마부에, 하인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잖수?”
“지금 네가 나한테 을질을 시전하는 거냐?”
공야무룡이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주공이 갑이었수?”
“그럼 네가 갑인 줄 알았냐?”
“난 무식해서 갑을 구분을 못하우.”
진무앙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어우… 이 곰탱이 자식이!”
그의 뒤에 딱 붙다시피 하며 걷고 있던 오청연이 끼어들었다.
“훗, 당신, 임자 만난 것 같은데요?”
“재밌냐?”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너무 즐기지 마라. 그러다 코가 깨지는 수가 있다.”
“설마요, 호호호.”
“아으… 이것들이 앞뒤에서…….”
진무앙이 구시렁거리는 동안에도 일행은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다.
얼마나 갔을까.
공야무룡이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왔수.”
그는 절벽에서 흘러내리는 커다란 폭포를 보고 있었다.
일행과 폭포의 거리는 삼십여 장.
상당한 거리였다.
하지만 진무앙은 폭포 너머에 폭이 사오 장쯤 되는 커다란 동굴이 있다는 것을 즉시 알아보았다.
그런데 일행이 있는 곳에서 동굴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애초에 경공을 익힌 무인이 아닌 일반인은 아무리 몸이 날랜 사람이라 해도 이곳까지 오지도 못할 지형이었지만.
진무앙이 물었다.
“저 동굴이냐?”
“그렇수.”
“가자.”
진무앙은 망설임 없이 신형을 허공으로 띄웠다.
오청연과 몽지림이 그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단 일보에 삼십 장을 가로질렀다.
그것을 본 공야무룡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인간이 아니야…….”
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음 순간, 그는 지면을 박차며 거대한 붕새처럼 날아올랐다.
대붕전시의 경공이었다.
십여 장을 가로지른 그는 들고 있던 나무판자를 오 장 앞에 던졌다. 그리고 그것을 밟고 다시 십오 장을 날았다.
쿠쿠쿠쿠쿠쿠쿠-
푸확-
온몸으로 폭포수를 맞으며 통과한 공야무룡은 동굴에 발을 딛자마자 공처럼 바닥을 두어 바퀴 굴렀다.
우당탕탕- 쿠당탕-
구르던 그는 벌떡 일어났다.
팔짱을 끼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진무앙이 혀를 차며 한마디 했다.
“곰탱아, 정말 여러 가지 하는구나.”
반면 오청연은 환하게 웃으며 가볍게 손뼉까지 쳤다.
짝짝짝!
“재미있는 광경이었어요. 곰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거든요.”
물에 빠진 생쥐처럼 변한 공야무룡과 달리 그들의 옷은 물기 하나 없이 보송보송했다.
진무앙을 대할 때와는 달리 공야무룡은 오청연에게 멋쩍게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오 소저가 재미있었다면 됐습니다.”
말투까지 달랐다.
진무앙이 누군데 그런 차이를 느끼지 못할까.
그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치솟았다.
“곰탱아, 청연이하고 나를 대하는 게 왜 이렇게 달라?”
공야무룡이 큰 눈을 껌벅이며 되물었다.
“뭐가 말이우?”
“청연이와 나를 대하는 눈빛, 표정, 말투까지 전부 다르잖아.”
“남자를 대할 때하고 여자를 대할 때하고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수? 설마 주공은 남녀를 똑같이 대하는 사람이었단 말이우?”
“…….”
진무앙은 할 말을 잃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는 입이 백 개라도 대답할 말이 없는 질문이 아닌가 말이다.
“호호호호호호호!”
오청연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눈물을 찔끔거릴 정도로 웃던 그녀가 말했다.
“아무리 봐도 당신, 임자 만난 게 맞는 것 같네요.”
진무앙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즐기지 말라니까!”
그는 있는 대로 짜증을 내며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청연은 웃음을 참으며 몽지림과 함께 그를 따랐다.
그리고 공야무룡은 품에서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을 꺼내 손에 쥐고 그 뒤를 따랐다.
빛이 없는 동굴은 어두웠지만 일행 중 그런 것에 구애받을 사람은 없었다.
가장 약한 공야무룡조차도 어렴풋하게나마 사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
안으로 십여 장쯤 들어갔을 때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지독한 독이네. 독공을 익힌 칠살독문 사람들이 흑백쌍두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곳에 올 엄두를 내지 못할 만하네.”
칠흑처럼 어두워 일반인은 볼 수 없었지만 동굴 내부는 흑백이 은은하게 뒤엉킨 빛을 띤 독 안개로 꽉 차 있었다.
공야무룡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그에게 물었다.
“주공, 정말 괜찮겠수? 나한테는 피독주가 있지만 주공과 소저들은 아무것도 없잖수.”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피독주? 우리한테는 그런 거 필요 없어. 흑백화혈독은 너처럼 못난 놈들한테나 통하는 거야.”
흑백화혈독은 흑백쌍두사가 뿜어내는 독으로 한 모금이면 백 명을 즉사시킬 수 있다고 알려진 절독이었다.
진무앙은 거침없이 독 안개를 뚫으며 전진했다.
오청연과 몽지림도 독을 꺼리는 기색은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공야무룡의 눈에는 진한 경외감이 떠올라 있었다.
그가 진무앙에게 툴툴거리는 건 드센 천성 때문이었지, 그를 가볍게 여겨서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진무앙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형언하기 어려운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행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동굴을 백여 장쯤 걸어가자 은은한 빛이 보였다.
동굴의 끝이었다.
끝자락에서 걸음을 멈춘 오청연이 탄성을 토했다.
“아, 정말 절경이네요!”
들어온 곳과 마찬가지로 동굴의 끝은 까마득한 절벽의 중간에 나 있었다.
그리고 동굴 아래는 높이가 수십 장에 이르는 거목들이 가득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폭우와 물안개에 휩싸인 거목들의 숲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장엄했다.
진무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공야무룡이 말했다.
“여기가 놈이 사는 천외별부요. 곧 놈이 나타날 거유.”
말을 하는 그의 눈에는 지독한 분노와 한이 어려 있었다.
지난밤 공야무룡이 해준 뒷이야기는 처절한 것이었다.
모친 서릉은 죽기 전 공야진승과 그녀가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 부부는 우연히 천외별부에 살고 있는 흑백쌍두사에 대한 전설을 알게 되어 이곳으로 왔다.
당연히 그들은 흑백쌍두사가 한 마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다.
부부가 한 마리를 죽여 내단을 취했을 때 다른 놈이 나타났다.
공야진승은 간신히 서릉을 탈출시키고 놈에게 죽었다.
공야무룡은 서릉이 죽어가며 남긴 말로 천외별부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그는 내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 바로 이곳으로 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부친의 시신을 찾고, 부모님의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그는 이곳에 세 번을 왔었다. 그리고 세 번 다 초주검이 되어 도망쳤다.
흑백쌍두사는 그 정도로 가공할 힘이 있는 괴물이었다.
이것이 절정고수인 공야무룡이 척박한 귀주를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이유였다.
오청연이 천외별부를 내려다보며 진무앙에게 말했다.
“인연이 참 묘하죠?”
진무앙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운남을 떠난 그가 사해집마부로 가기 전 귀주를 먼저 들른 이유도 흑백쌍두사 때문이었다.
그것을 죽여달라는 것이 운룡파파의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진무앙은 그녀의 도움을 받으며 칠살독문의 재건을 제외한 소원이라면 가능한 한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 그에게 운룡파파가 요구한 것이 흑백쌍두사를 죽여달라는 것이었다.
진무앙은 기꺼이 그 소원을 수락했다.
흑백쌍두사의 내단은 소소에게 먹일 무령보천신단의 재료이기에 어차피 손에 넣어야 하는 물건이었다.
이런 걸 두고 일타쌍피, 혹은 꿩 먹고 알 먹고라 하지 않던가.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여기 사는 그 독물이 칠살독문의 전대 문주를 죽였단 말이지…….”
운룡파파의 말에 의하면, 삼십 년 전 칠살독문은 대혼돈 시대에 궤멸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재기에 거의 성공한 상태였다.
신임 문주가 놀라운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칠살독문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다.
인접한 사해집마부가 집요하게 자신들에게 복속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견디다 못한 신임 문주는 모험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칠살독문에 전해 내려오는 고서엔 흑백쌍두사가 살고 있는 천외별부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었다.
그는 흑백쌍두사를 잡아 내단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성공만 한다면 사해집마부의 위협에 대항할 힘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칠살독문을 묘강제일문파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천외별부로 떠났다. 그리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와 함께 갔던 십여 명의 요인 중 문파로 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운룡파파를 비롯한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문주님은 흑백쌍두사에게 죽임을 당했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당시 문주가 흑백쌍두사를 잡기 위해 데리고 갔던 사람들은 칠살독문 최고의 고수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칠살독문은 사해집마부의 압박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멸문당했다.
참화 속에서 운룡파파는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간신히 운남성으로 피신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녀가 진무앙에게 흑백쌍두사를 죽여달라고 한 것이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빛줄기는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던 진무앙의 눈에서 은은한 묵청빛 신광이 흘러나왔다.
그가 시선을 내려 숲을 보며 말했다.
“놈이 오는 모양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행은 발밑에서 전해지는 은은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쿠르르르르르르-
멀리 수십 장 높이의 아름드리 거목 수십 그루가 태풍에 휘말린 갈대처럼 출렁이는 것이 보였다.
쿠르르르르르르르-
숲의 출렁임이 동굴에 가까워지자 일행은 몸이 흔들릴 정도로 강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드드드- 콰지지직-
수십 그루의 나무를 수수깡처럼 으스러뜨리며 거대한 존재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것을 본 오청연이 탄성을 토하며 말했다.
“크네요!”
진무앙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청난 놈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