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
003 싫어
스팟!
침상 위에 힘없이 늘어져 있던 소녀의 가냘픈 손이 수도의 형태로 진무앙의 사타구니를 향해 날아들었다.
금강불괴가 아닌 한, 맞으면 고자가 되고도 남을 일격이었다.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진무앙은 투덜거리며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동시에 무릎을 곧추세워 소녀의 손목을 쳐올렸다.
쑤왁!
손목을 회수하며 진무앙의 무릎을 피한 소녀가 발끝으로 침상을 박차며 몸을 회전시켰다.
상체를 침상에 둔 채로 몸을 둥글게 말며 끌어당긴 두 발이 연속적으로 진무앙의 머리를 걷어찼다.
변초의 신속함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
몸을 빼지 못한 진무앙은 팔뚝으로 소녀의 두 발을 막았다.
퍼퍽!
머리를 타격당하는 것은 피했지만, 팔뚝을 강타한 각술의 충격으로 진무앙이 상체를 휘청거리며 두 걸음 물러섰다.
소녀의 공격에는 돌덩이도 박살낼 수 있는 내공이 깃들어 있었다.
단 두 번의 움직임만으로 싸움의 우세를 점한 소녀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느 사이엔가 초점이 없던 소녀의 눈도 정상인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가 자신하는 독문의 연환각법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
“삼류, 쓰러져라!”
차가운 일갈과 함께 진무앙의 팔에 막혀 튕겨 나갔던 소녀의 두 발이 이번에는 풍차처럼 회전하며 그의 옆구리를 찼다.
쐐애액!
바람이 갈라지는 파공성과 함께 날아드는 발길질에는 수백 근의 힘이 실려 있었다.
진무앙은 이번에도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며 소녀의 발을 피했다.
방은 좁아서 몇 걸음 물러난 것만으로 그는 출입문에 등을 거의 맞댈 만큼 가까워졌다.
그의 손이 도의 손잡이를 잡아갔다.
소녀의 공격은 매서웠지만, 칼을 잡으면 상황은 단숨에 역전될 터였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쾅!
폭음과 함께 출입문이 통째로 뜯겨 나가며 뒤에서 그를 덮쳤던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공격이라 미처 피하지 못한 진무앙은 문짝에 뒷머리와 등판을 그대로 얻어맞았다.
“억!”
그가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등 뒤로부터 당한 타격으로 인해 앞으로 두어 걸음 밀려 나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소녀의 손끝이었다.
“컥!”
송곳처럼 명치를 파고든 소녀의 손끝에 순간적으로 몸이 마비된 진무앙은 신음을 토하며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털썩!
문짝이 뜯겨 나간 출입문으로 마을 입구에서 만났던 노인이 들어섰다.
진무앙의 앞에 서 있던 소녀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노인이 음충맞은 어투로 말했다.
“칠살, 네 솜씨도 많이 녹슬었구나, 이런 허수아비 같은 놈에게 삼초나 허비하고. 내가 아니었으면 십초가 걸렸을 수도 있겠어, 흐흐흐.”
면전에서 대놓고 하는 비웃음에 칠살이라 불린 소녀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변했다.
“오살, 내 앞에서 혀를 잘못 놀렸던 자들의 말로가 어땠는지를 벌써 잊었다면 곤란해.”
오살은 말을 받는 대신 진무앙의 삿갓을 와락 벗겼다.
숱이 많고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이 푹 숙인 진무앙의 얼굴을 덮으며 출렁거렸다.
오살은 진무앙의 생김새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옆으로 걷어 젖혔다.
그리고 드러난 진무앙의 얼굴을 본 그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그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무시무시하게 잘생긴 놈이로구나.”
오살과 달리 칠살은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가 그녀의 심정을 대신 말해주었다.
꿀… 꺽…….
칠살이 받은 훈련은 혹독하기 그지없어서 사내의 외모 따위에 마음이 흔들린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살은 칠살의 반응이 쉽사리 수긍이 가서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평생 동안 진무앙처럼 잘생긴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오살이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손을 떼자 진무앙의 얼굴이 다시 가려졌다.
“아무래도 이놈 얼굴을 보면서 추궁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이지.”
대상의 눈을 보며 눈동자의 움직임과 기색을 살피는 건 심문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오살은 진무앙의 얼굴을 가렸다.
마주보기 위험할 정도로 진무앙의 얼굴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오살의 말에 칠살은 뭔가 아쉬움이 담긴 눈으로 진무앙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번만은… 동감.”
말과 함께 칠살은 허리춤에서 새끼손가락 굵기의 둘둘 말린 밧줄을 꺼내더니 진무앙의 손목과 발을 묶고 이어서 몸통 전체를 포박했다.
혈도를 짚으면 간단하겠지만 혈도술은 절정고수의 영역에 속하는 무공이라 오살과 칠살이 펼치는 건 꿈에서나 가능했다.
퍼억!
포박을 끝낸 칠살이 진무앙의 가슴을 시원하게 걷어찼다.
“크윽!”
털썩!
답답한 신음과 함께 뒤로 나가떨어진 진무앙이 머리를 흔들며 힘겹게 눈을 떴다.
눈을 뜬 진무앙을 향해 칠살이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지. 너, 누구냐?”
진무앙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순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칠살과 오살을 번갈아 쳐다볼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머뭇거림의 대가는 칠살의 발길질로 돌아왔다.
퍽!
“커컥!”
이번에는 발끝으로 명치를 걷어 채인 진무앙이 새우처럼 상체를 쪼그리며 밭은 숨을 내뱉었다.
칠살은 허리춤 뒤쪽에서 일곱 치가량 되는 단검을 꺼냈다. 날이 새파랗게 선 칼이었다.
“대답이 늦어질 때마다 고통이 배가될 거야!”
칠살이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어조로 재촉하자 진무앙은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소화의 아버지 장운과 일 년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료라는 건 비밀도 아니오. 당신들은 누군데 소화 흉내를 내고, 내게 이런 짓을 하는 거요?”
퍽!
“커컥!”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발을 거둔 칠살은 새파란 날을 진무앙의 뺨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질문은 우리가 해. 한 번만 더 쓸데없는 말을 하면 그때는 이게 네 몸에 흔적을 남기게 될 거야.”
칠살이 연이어 물었다.
“내가 소화가 아닌 걸 어떻게 알았지?”
“소화는… 내가 누군지 아오. 그런데 당신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소.”
“이곳에 온 이유가 뭐지?”
“장운이 죽어가며 소화를 내게 부탁했소. 나는 그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왔을 뿐이오.”
“죽은 동료의 자식을 돌봐주러 청해성에서 낙양까지 왔다… 눈물겨운 동료애로군.”
칠살의 어조는 빈정거림이 완연했다.
그녀는 진무앙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말을 잇는 그녀의 목소리에 진한 살기가 실렸다.
“장운이 용병이 된 건 이 년 전이야. 우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년 동안 이 마을을 찾아왔던 그의 동료는 한 명도 없었고. 너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놈이 왔었다면 마을 사람 중에 널 기억하는 자가 있었겠지. 하지만 아무도 널 몰라. 그러니 너는 이곳에 온 적도 없고, 소화가 널 안다는 말도 거짓이야.”
그녀의 추궁에 겁에 질린 것처럼 진무앙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그는 속으로 웃고 있었다.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모양새(?)로 이루어진 짧은 대화였지만 그것을 통해 그의 궁금증은 많이 해소되었으니까.
칠살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단검을 진무앙의 목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얼굴을 진무앙의 코앞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자, 이제 말해봐, 네 정체와 네가 아는 모든 것을. 우리는 장소화를 찾고 있어. 너라면 그녀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알고 있을 듯한데?”
“그런 게 있었다면 내가 미쳤다고 여기 와서 이러고 있겠소?”
칠살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용병질을 좀 한 듯한데, 객기도 부릴 데서 부려!”
그 순간 진무앙이 진저리치듯 몸을 미미하게 떨었다.
동시에 그를 묶고 있던 밧줄이 누가 풀어주기라도 한 것처럼 스르르 흘러내렸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오살과 칠살의 얼굴에 경악의 기색이 떠올랐다.
“헉!”
“어떻게!”
오살과 칠살의 입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일말의 경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크게 놀랐다고 그들이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었다.
칠살은 진무앙의 목젖에 닿아 있던 단검을 목안으로 쑤욱 밀어 넣었고, 오살은 활짝 편 쌍장으로 그의 뒷머리를 눌러갔다.
놀랄 만큼 신속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작정하고 준비하고 있던 진무앙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진무앙은 상체를 우측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며 몸을 반회전했다. 그리고 무릎을 펴고 일어서며 움켜쥔 주먹으로 좌우를 쳤다.
칠살의 단검은 그의 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치며 지나갔고, 그의 주먹은 칠살의 관자놀이와 오살의 옆구리를 거대한 망치처럼 후려갈겼다.
콰직, 퍽!
“큭!”
“흐읍!”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거친 신음 소리가 어지럽게 얽히며 칠살과 오살이 무너져 내렸다.
뼈만 남은 듯하던 칠살의 얼굴은 광대뼈와 안와골이 으스러지며 엉망이 되었고, 오살의 으스러진 옆구리에서는 시뻘건 핏물과 함께 끊어진 내장이 흘러나왔다.
타격을 당한 뒤에도 두 사람은 마지막 한 줌의 내공까지 끌어올려 몸을 움직이려 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이보다 더한 상처를 입고도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받은 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그냥 시도로 끝이 났다.
그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한 채로 자신들의 목을 움켜잡아 오는 진무앙의 손을 멀거니 쳐다보기만 해야 했다.
그들의 안면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몸이 거대한 쇳덩어리에 짓눌리는 것처럼 무거웠고, 내부 경락은 물먹은 솜처럼 늘어졌다.
타격당한 지점으로 파고든 경력이 그들의 내부를 엉망으로 헤집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 몸 상태가 이렇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 어린 것은 절망과 공포였다.
‘내가중수법.’
그들은 서로의 눈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자신들이 당한 무공은 절정의 고수가 아니라면 펼칠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내가중수법이었다.
눈앞의 사내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의 고수였던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깨달았다.
이 사내가 그들에게 잡힌 게 아니라 잡혀준 것이었다는 걸.
그가 저항했다면 사로잡는 건 불가능했으리라.
진무앙은 오살과 칠살을 잡은 손을 들어올렸다.
두 사람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며 힘없이 건들거렸다.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진무앙의 입술 부분에 흰빛이 떠올랐다.
그는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대답할 사람?”
칠살과 오살의 굳게 다물린 입술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살의 눈을 보며 물었다.
“싫어?”
오살은 게워낸 핏물로 범벅이 입을 움직여 말했다.
“쓸데없는 짓. 죽여라.”
오살의 죽은 눈과 진무앙의 미소 띤 눈이 마주쳤다.
진무앙이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