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0
030 인생 그렇게 살지 마
수향루,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진무앙은 방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우와! 꺄르르르르!”
소소의 감탄사와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리둥절해졌다.
애늙은이 같은 소소가 제 나이 또래처럼 웃고 있다니.
문을 연 그의 눈이 커졌다.
“……너, 여기서 뭐하냐?”
강석초는 침상에 앉아 있는 소소의 귀 뒤에서 들국화 한 송이를 꺼내는 마술로 아이의 존경 어린 시선을 듬뿍 받고 있었다.
그가 진무앙을 힐끗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보면 모르냐? 소소하고 놀고 있잖아.”
진무앙이 인상을 와락 썼다.
“그러니까, 네가 왜 내 방에서 쟤하고 놀고 있냐고!”
강석초도 질세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위험하게 어린애 혼자 두고 밖으로만 싸돌아다니는 너 대신에 내가 놀아주고 있는 걸 고마워해야지, 오히려 역정을 내?”
“허, 이 자식이 돌았나? 어디서 큰 소리야! 너한테 그런 부탁한 적 없거든. 여기 내 사적인 공간이야, 당장 나가!”
“못 나가!”
“죽을래?”
“이거, 이 낭랑이 시킨 일인데, 날 쫓아내고 감당할 수 있겠어?”
사납던 진무앙의 기세가 대번에 꺾였다.
“……난향이?”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난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내가 석초에게 부탁했어. 문제 있어?”
진무앙이 홱 몸을 돌렸다.
난향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소소를 보며 서 있었다.
“난향이 아무리 여기 주인이라도 이건 아니지. 나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 남자라고. 그리고 내 방에 남자가 발을 딛다니.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냐고!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당장 저 자식 나가라고 해!”
강석초가 통통한 배를 흔들며 코가 떨어져라 코웃음을 쳤다.
“흥! 듣다 보니 진짜 억울하네. 누군 이 방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왔냐? 소소가 여기 없었으면 죽었다 깨도 네 방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다.”
난향이 혀를 찼다.
“다 큰 어른들이 애 앞에서 다투기나 하고, 아주 잘하는 짓이다.”
진무앙이 그녀에게 말했다.
“난향, 이건 양보할 수 없는 내 평생의 지론하고 관련이 있는 상황이잖아. 석초, 저 자식이 내 영역에 들어오다니.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겠냐고.”
난향은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들여. 못하겠으면 그만두고 나가.”
진무앙이 흠칫했다.
난향은 한다면 하는 여자였다.
“아니… 내가 못 받아들이겠다는 건 아니고… 사전에 나하고 상의도 없이 이러는 건 좀 서운하다 뭐 그런…….”
“동의한 걸로 알겠어.”
“……다음부터는 이런 일 있으면 먼저 내 의견을 물어봐 주면 안 될까?”
난향의 눈매가 싸늘해졌다.
“참고는 할게.”
진무앙이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난향, 이건 진짜 고용주의 횡포라구.”
“억울하면 돈 모아서 독립하든지.”
“……내가 낙양에 있는 도박장들을 하루 순회만 해도 하루에 몇천 냥 버는 건 일도 아닌…….”
그의 말을 듣던 강석초의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진무앙에게 눈짓으로 입 닥치라는 신호를 연거푸 보냈다.
말을 하던 무앙도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주워 담는 건 고금제일고수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새 난향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다.
“그럼 가서 주사위를 던져 보시지.”
살얼음이 풀풀 날리는 듯한 어조.
진무앙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미안. 난향, 내가 말을 잘못했다. 어쩌다 보니까 나온 말이지, 진심이 아니야. 내가 도박장을 순회할 리가 없잖아.”
“당신이 진가장에서 주사위 던진 걸 모른 체한 건 의뢰의 일환이었기 때문이야.”
“그럼, 잘 알지.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있겠냐.”
진무앙은 슬금슬금 난향의 눈치를 보았다.
그녀는 가족 중에 가장 사랑했던 막냇동생을 도박장에서 잃었다.
그것을 알게 된 그녀는 동생의 죽음에 연관된 자는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그들이 하던 도박장은 뿌리까지 뽑아버렸다.
풀 한 포기 남지 않았을 정도로 무자비한 복수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죽은 동생이 살아 돌아올 리는 없었다.
그런 과거를 잘 아는, 진무앙을 비롯한 그녀의 친구들은 장난으로도 절대 도박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막냇동생의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짓은 하지 말자는 것이 그들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난향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녀가 말했다.
“앞으로 석초도 수향루에서 지낼 거야. 방은 당신 옆에 있는 걸 쓸 거고. 소소도 있으니까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도록 노력해 봐.”
진무앙이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응? 여기서 지낸다고? 책방은 어쩌고?”
강석초가 대답했다.
“전에 네가 말했잖아. 책을 사는 사람이 없어서 목구멍에 풀칠하기 어렵지 않냐고. 맞아. 책방 붙들고 있다가는 굶어 죽을 판이라 때려치우고 여기 들어온 거야.”
진무앙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강석초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우는소리를 하고 있지만 강석초가 굶어 죽을 리는 없었다.
그에겐 정보 상인이라는 본업이 따로 있으니까.
난향이 마무리를 지었다.
“무앙, 아무튼 석초는 여기서 지낼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내가 부른 거니까 당신이 신경쓸 일 없을 거야. 소소에 대한 건 당신이 양보해. 당신이 없을 때는 석초가 소소를 챙길 거니까. 이의 있어?”
“……없어.”
“좋아. 그럼 갈게.”
난향과 석초가 방을 나갔다.
진무앙은 침상 턱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소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아저씨나 강 아저씨나 서로를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왜 험한 말을 하는 거예요?”
진무앙은 소소에게 고개를 돌렸다.
“꼬맹아,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네가 어떻게 아냐?”
“그냥… 느껴져요, 두 분의 감정이.”
“그것도 네가 가진 괴상한 능력 중의 하나냐?”
“그런 거 같아요. 예전에는 어렴풋하게밖에 느끼지 못했었는데, 아저씨를 만나고 나서는 굉장히 선명하게 느껴져요.”
“악의도 느껴지냐?”
“그건 잘 모르겠어요. 지금 제 주변엔 악의를 가진 사람이 없어서…….”
“나 있잖아.”
“아저씨요? 아닌데…….”
소소가 말꼬리를 흐렸다.
“네 능력, 별 볼 일 없는 거네.”
진무앙의 시선이 소소의 얼굴을 훑어 내렸다.
소소의 안색은 아침에 보았을 때보다 좋아진 것 같았다.
볼도 발그레했고, 푸석하던 피부에도 윤기가 돌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소소의 손을 보았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전과 다를 바 없는 손으로 보이겠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소소는 손에 매미의 날개보다도 얇고 투명한 장갑을 끼고 있었다.
진무앙이 물었다.
“그 장갑, 난향이 준 거냐?”
“예.”
“불편하지는 않냐?”
“끼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정말 편해요.”
“손 줘봐라.”
소소는 스스럼없이 진무앙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사리처럼 작은 손을 잠시 어루만진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그놈, 진짜 솜씨가 많이 늘었네. 그런데 이거 무엇으로 만든 거지? 피독과 피화의 공능도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무가지보 수준이잖아……. 팔면 꽤 받겠어. 그러면 독립도 가능하겠는데……. 아서라, 독립하기도 전에 난향한테 먼저 맞아 죽을 거다.”
그가 소소에게 말을 이었다.
“꼬맹아, 이 장갑에 대해서 절대 남에게 말하면 안 된다. 알았냐?”
소소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저씨.”
“누워라.”
“예?”
“석초가 괴롭혀서 기력이 많이 빠져나갔잖아. 잠을 자야 빨리 그걸 보충하지.”
“괴롭힌 거 아닌…….”
“네가 어려서 잘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다. 석초, 그 자식 취미가 어린애들 괴롭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놈하고 놀지 마라. 널 치료하려고 내가 쏟아붓고 있는 돈이 얼만데, 그놈한테 기력을 소모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강 아저씨하고 놀면 재미있어요…….”
진무앙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재미 찾다가 골로 가는 수가 있다. 말 들어.”
소소가 시무룩해진 얼굴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소소는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것을 보고 난 후에야 진무앙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났다.
이틀 뒤 곡난난을 만날 때까지 그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물론 호위무사의 일은 해야 하지만.
소소를 힐끗 보고 몸을 돌리던 그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소리없이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왈칵 열었다.
문에 귀를 대고 있던 강석초가 화들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쿵!
진무앙이 그를 보며 혀를 찼다.
“아주 여러 가지 하는구나.”
엉덩이를 털며 일어난 강석초가 진무앙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내 취미가 어린애들 괴롭히는 거라고? 소소한테 내 모함하니까 좋냐?”
진무앙이 되물었다.
“그래서 엿들은 거냐?”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참아!”
“석초야, 아무리 직업 때문에 귀가 밝다고 해도 일과 관련 없는 사람들 얘기 몰래 엿듣는 거, 악취미라는 생각 안 드냐?”
“안 들어.”
“얼굴에 철판 깐 자식.”
“인피면구를 뒤집어쓴 놈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짜리몽땅한 누구하고는 달리 난 너무 잘생겨서 이거 안 쓰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막대하거든.”
강석초가 그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개자식.”
진무앙은 태연하게 귀를 후비며 말했다.
“고맙다. 갑자기 면전에서 욕먹으면 오래 산다고 한 놈이 생각나네.”
“어떤 놈이 그런 개소리를!”
강석초가 씩씩거리자 진무앙이 풀썩 웃었다.
“새대가리 자식. 자기가 했던 말인데 기억도 못해요.”
“어디서 씨도 먹히지 않을 개구라를!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단 말이다!”
“육 년 전 가을, 광서성 십만대산, 혈수미랑.”
“……더럽게 기억력 좋은 자식.”
“그래서 가끔 얼굴도 모르는 어머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곤 하지.”
“아버지한테는?”
강석초가 농담처럼 툭 던진 한마디에 진무앙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석초야, 선 넘지 마라.”
강석초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았다.
“미안하다…….”
그는 입을 다물며 진무앙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역린이 있다.
난향에게는 막냇동생이 그랬고, 진무앙에게는 부친이 그랬다. 물론 강석초에게도 있다.
다행히 진무앙의 눈빛은 금방 평소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그가 강석초에게 물었다.
“야, 그런데 정말 수향루에는 왜 들어온 거야?”
“이 낭랑이 불렀다니까.”
“무슨 일로?”
“비밀이다.”
“석초야, 우리 사이에 서운하게 비밀이 웬 말이냐?”
“우리 사이 별거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을 건데?”
“네가 평생 말해도 못 알아들을 생각이다.”
“후우… 내가 진짜 앓느니…….”
강석초는 구시렁거리며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진무앙은 고개를 갸웃했다.
“난향이 뭘 시키려고 저 자식을 부른 거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방으로 가는 대신 난향을 찾아갔다.
그녀는 후원 연못의 정자에 있었다.
느긋하게 장죽을 태우고 있던 그녀는 진무앙이 걸어와 맞은편에 앉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진무앙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얼굴이네?”
“생각보다 늦었어. 석초하고 다퉜지?”
“족집게가 따로 없군. 돗자리 펴고 점집 차릴 생각 없어? 기루 경영하는 것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 거 같은데.”
“헛소리하려면 돌아가.”
“석초 왜 불렀어?”
“이미 짐작하고 있잖아.”
“정말 꼬맹이 주변 조사시키려는 거야?”
“응.”
난향은 깊어진 눈으로 진무앙을 보며 말을 이었다.
“소소를 쫓고 있는 놈이 누군지를 알아야겠어.”
“왜? 그건 내 일인데?”
난향의 두 눈이 둥글게 휘었다.
“소소가 내 집에 있는 한 내 일이기도 해. 주인이 손님을 보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그뿐?”
“더 뭐가 있겠어?”
진무앙은 미쩍다는 표정으로 난향을 보며 되물었다.
“아닌 거 같은데?”
“마음대로 생각해.”
난향이 생긋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은설이와 위 호위는 사흘 뒤에 떠나기로 했어.”
“그래?”
사흘 뒷면 곡난난이 시장을 보러 나온다고 한 날의 다음 날이다.
곡은설은 진무앙과 곡난난의 만남을 주선한 후 바로 하남성을 떠날 예정인 듯했다.
“그런데 당신, 양일청이 정말 은설이를 포기했다고 생각해?”
“사마휘가 모든 걸 지켜봤어. 허튼짓은 못할 거야.”
“과연 그럴까? 사마휘는 양일청에게 당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만 했다던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진가장에서 딴 돈, 모두 전표로 바꾼 거 아니지?”
움찔.
“…….”
“오십 냥을 따로 챙긴 거 알아.”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오십 냥어치의 사후 봉사. 걔들 하남성을 벗어날 때까지 보호해 줘.”
“난향은… 정말 악덕 고용주야.”
“억울하면 내 집에서 나가든지.”
“인생 그렇게 살지 마. 언젠가 난향도 갑질당할 날이 올 거야.”
“그래? 많이 분발해야 할 거야. 아무튼, 그날을 기대하고 있을게, 무앙.”
본전도 찾지 못한 진무앙은 힘없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