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03
303 공포가 지배하는 세상
덜커덩덜커덩-
해가 서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어갈 무렵, 사해집마부가 자리잡은 산악지대로 한 대의 이두 마차가 들어섰다.
진무앙 일행이 탄 마차였다.
마부석에는 공야무룡이 앉았고, 짐칸엔 진무앙과 오청연, 신완아와 맹노광이 타고 있었다.
몽지림은 허공에 은신했고, 신완아의 부하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림현에 남기고 왔기 때문이다.
덜커덩덜커덩-
짐칸에 탄 일행의 몸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맹노광의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공야무룡의 등에 꽂혀 있었다.
어젯밤 공야무룡을 처음 만난 후로 그는 계속 이 상태였다.
신완아도 맹노광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몽롱한 눈길은 공야무룡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두 사람이 이 상태가 된 건 진무앙이 그들에게 공야무룡의 정체를 밝혔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들도 알아야 할 것이었고, 비밀로 할 이유도 없었다.
진무앙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이, 거기 두 사람. 질리지도 않냐? 그만 봐, 곰탱이 닳아 없어지겠다.”
맹노광이 말을 받았다.
“공야 공자는 정말 태상 부주와 판박이입니다. 다만 키가 작은 게 조금 아쉽습니다.”
공야승추는 공야무룡보다 키가 한 자가 더 큰 진정한 거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림에서 가장 거대한 남자라고 불렸었다.
맹노광이 중얼거렸다.
“공야 공자의 무공이 손중악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태상 부주의 손자라고 신분을 밝혀도 되었을 텐데…….”
“그래?”
“예. 공야 공자가 태상 부주의 핏줄임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저 외모는 공야가 사람이 아니면 가질 수 없으니까요.”
“뭐, 그건 그렇지.”
진무앙이 신완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만 보라고 한 내 말, 못 들었냐?”
공야무룡을 힐끔거리던 신완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진무앙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이 잘 풀리면 저 자식을 평생 코앞에서 질리게 볼 수 있을 테니까 너무 티 나게 굴지 마라. 저 곰탱이 자식 입 찢어지게 웃는 꼴 보기 싫으니까.”
“예…….”
“췟!”
오청연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심통이 났어요?”
“누가 심통 났다는 거야?”
“당신이요.”
“안 났거든!”
“천하의 모든 미녀가 당신을 사랑할 거라는 과대망상에서 좀 깨어나는 게 어떨까요?”
“그게 왜 과대망상이야?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명확하게 증명한 진실인데.”
“세상엔 언제나 예외가 존재한다는 걸 당신이 모를 리 없을 텐데요?”
진무앙이 기도 안 찬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마에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네가 지금 날 훈계하는 거냐?”
“설마요. 제가 감히 어떻게 당신을 훈계하겠어요.”
“아무래도 놀림당하는 기분인데 말이지…….”
“놀리다뇨! 피곤해서 생긴 착각이에요. 하루 종일 마차를 타고 왔으니 피곤할 만도 하죠.”
“피곤한 거하고 놀림당하는 기분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착각을 해?”
오청연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야 모르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다고 다 말이 되는 게 아니야.”
“세상에서 그런 식으로 말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 당신 아니었나요?”
“한마디를 안 져요!”
“누굴 닮았나 보죠.”
“어휴…….”
진무앙이 답답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공야무룡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꽤 많은데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우릴 기다리는 거다.”
공야무룡이 진무앙을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를 말입니까?”
“총타에서 십 리 안에 들어섰을 때부터 비마잠혈 애들이 새카맣게 따라붙었다. 걔들이 혈주에게 보고했을 거고, 당연히 손중악도 우리가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맹노광이 끼어들어 진무앙에게 물었다.
“그가 진 호위님의 신분을 알아차렸을까요?”
“당연하지. 그 자식이 어리석지 않다는 건 너도 알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만약 놈이 내가 왔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많이 실망스러울 거다.”
얼마 가지 않아 두 개의 산봉우리를 잇는 엄청나게 커다란 성곽이 일행의 앞을 막았다.
성곽의 높이는 수십 장, 길이는 이백여 장에 달했다.
이곳이 사해집마부의 출입구인 입마관이었다.
성곽을 본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오십 년 전에 봤을 때보다 배는 커진 것 같은데?”
신완아가 대답했다.
“손 부주가 칠 년 전 보수공사를 했어요.”
맹노광이 손을 들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중악이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진무앙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중악은 입마관의 거대한 정문 앞에서 비마잠혈주를 비롯한 십여 명의 핵심 요인과 함께 말에 탄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죽립을 벗어 손에 쥔 진무앙이 짐칸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자 손중악도 기다렸다는 듯 말에서 내리며 소리쳤다.
“모두 하마하라.”
그의 지시를 받은 요인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요인들의 앞에 선 손중악은 진무앙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무…….”
늘 그렇듯 진무앙이 중간에 그의 말을 잘랐다.
“진 공자라 불러라.”
“예, 진 공자님.”
진무앙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호위’라는 호칭을 허락하지 않는다.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손중악에게 말했다.
“그새 많이 컸구나.”
손중악은 진무앙을 만났던 무림의 거물들과 달리 무릎을 꿇지 않고 허리만 숙였다.
진무앙은 그것에 대한 평을 한 것이다.
손중악도 마주 웃으며 말을 받았다.
“칭찬, 감사합니다, 진 공자님.”
“사해집마부의 부주가 되었으니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긴 해야겠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사해집마부의 요인들은 하나같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로 보아 손중악은 그들에게 진무앙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듯했다.
실제로 손중악은 이 자리에 오기 전 요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손님이 오고 있으며, 절대로 그에게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주었다.
그러니 요인들이 하늘처럼 섬기는 손중악이 정체를 모르는 약관의 미청년에게 하는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손중악의 시선이 신완아와 맹노광을 거쳐 공손무룡에 닿았다.
“저 친구가 사부님의 손자인 겁니까?”
“알고 있었냐?”
“제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존재였으니까요.”
“지금은 경쟁자가 아니라는 말로 들리는데?”
“저 친구에게 주어졌던 기회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공야승추가 은퇴하면서 말이냐?”
“예.”
손중악이 진중한 표정으로 진무앙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엇이 진 공자님을 이 먼 곳까지 걸음하게 만든 것인지요?”
진무앙이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했다.
“너의 조급함은 여전하구나. 날 여기 세워두고 계속 질문만 할 거냐?”
‘아차…….’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손중악의 눈 끝이 가늘게 흔들렸다.
진무앙 일행을 맞았을 때 그는 먼저 그들을 안으로 들였어야 했다. 그것이 당연한 절차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질문부터 했다.
그것은 진무앙을 앞에 둔 그가 극도로 긴장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진무앙은 그런 그의 상태를 한눈에 꿰뚫어 본 것이다.
손중악이 정중하게 진무앙에게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마차에 오르시지요.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이다, 흐흐흐.”
진무앙은 낮게 웃으며 다시 마차에 올랐다.
역시 말에 오른 손중악이 마차의 앞에서 일행을 안내했다.
마차의 뒤에는 말을 탄 요인들이 따랐다.
사해집마부는 이백오십 년의 역사가 있는 마도 무림 최강의 문파였다.
당연히 내부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안에 수십 개의 하천과 큰 강이 있었고, 계곡과 분지엔 여지없이 마을이 보였다.
그리고 봉우리와 절벽엔 예외 없이 망루가 빼곡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사해집마부의 규모는 문파라기보다 하나의 작은 왕국에 가까웠다.
산악지대임에도 정문에서 총타에 이르는 대로는 평지의 것에 비견될 만큼 잘 정비되어 있었다.
폭이 오 장에 달했고, 땅을 덮고 있는 것은 단단하게 다져진 황토였다.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천무제가 보낸 제국군에게 파괴당하기 전보다도 거주민이 더 많아진 것 같구나. 그때도 거주하는 사람의 수가 십만에 가까웠는데.”
손중악이 대답했다.
“남해의 왜구들을 피해 찾아온 백성들이 많습니다. 사부님은 그들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죠. 그래서 무공을 익히지 않은 백성들의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백성? 얼마나 되냐?”
“이십만 명이 좀 넘습니다.”
“무공을 익힌 무인은?”
“삼만가량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세워도 되겠다.”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본부는 나라의 이름만 없을 뿐, 이미 왕국입니다.”
“너의 왕국?”
“저와 사해집마부 모든 사람의 왕국이지요.”
“너도 거짓말이 많이 늘었구나.”
일행이 대로에 들어서자 오가던 사람들이 길가로 물러나며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댔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손중악을 본 자들은 모두 오체투지를 했다.
허리를 펴고 있는 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리며 손중악에게 물었다.
“쟤들 왜 저래? 손 부주, 네가 예법을 바꾼 거냐?”
손중악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예. 전보다 보기 좋지 않으십니까?”
“난 별로야. 공야승추 때가 나한테는 더 맞았다.”
공야승추는 격식을 따지는 건 위선적인 정파인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혐오했었다.
당연히 그가 지배할 때의 사해집마부는 예의와 격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시 집마부의 분위기는 거칠고, 자유분방하며, 난폭하고 격렬했다.
손중악이 말했다.
“마도 무림은 강자존, 승자 군림의 세계입니다. 그러니 약자는 강자를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늘 행동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강자들이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냐?”
진무앙은 심드렁하게 한마디를 한 후 입을 닫았다.
이곳에서 가장 존엄한 자가 자신의 지배 철학을 말하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외부인인 자신이 거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적질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럴 마음도 없었고.
일행은 해가 완전히 졌을 때 총타에 도착했다.
직후 진무앙 일행은 손중악과 헤어져 본궁에서 이백여 장 떨어져 있는 별궁으로 안내되었다.
일행이 먼길을 왔으니 잠시 씻으며 쉰 후에 함께 식사를 하는 게 좋겠다는 게 손중악의 의견이었다.
진무앙이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백여 장의 규모의 별궁 정원은 아름다웠고, 건물은 화려했다.
마당에 세운 마차에서 내린 진무앙은 혀부터 찼다.
“사부와 제자의 성향이 이렇게나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서야…….”
그가 공야무룡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곰탱아, 사해집마부에 들어온 감상을 말해봐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라 움찔한 공야무룡은 커다란 눈을 껌벅거렸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답답하고 껄끄럽습니다.”
“뭐가?”
“전부 다요. 이곳은 저와 맞지가 않습니다. 강자는 약자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그들을 지배합니다. 그런데 약자는 반항은커녕 강자를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였냐?”
“예. 이곳의 모든 건 화려하고 거대하며, 또 웅장합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물이 고인 늪처럼 음침하고 어두워 보였습니다.”
맹노광이 무거운 표정으로 거들었다.
“진 호위님, 사해집마부는 예전의 생기를 모두 잃었습니다.”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공포가 지배하는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