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05
305 무한금지
별궁의 대전 안.
손중악이 진무앙의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공자님께서 공야 사질과 맹 장로, 거기에 옥녀인 완아와 함께 오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가 공야무룡을 사질이라 부른 것은 무림의 항렬 때문이었다.
공야무룡은 그의 사부인 공야승추의 손자이니 무림의 항렬로 따지면 사질 뻘인 것이다.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예측하기 어려우니까 인생이 흥미진진한 것 아니겠냐.”
“그렇긴 합니다.”
손중악이 연이어 물었다.
“얼마 전 운남에서 비마잠혈의 십이 영주가 공자님을 뵈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즉시 부하들에게 대리에서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미처 제 지시가 도착하기 전에 공자님께 실수한 놈이 있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는 풍기량이 진무앙과 단옥상을 공격한 걸 말하고 있었다.
진무앙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용서하고 말 것도 없다.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놈들을 전멸시킨 싸움이니까.”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슬쩍 진무앙의 기색을 살핀 손중악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진 공자님, 이제 본부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곳에서밖에 얻을 수 없는 물건을 구하려고 온 거야.”
손중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셨습니까? 직접 이렇게 먼 길을 오실 필요 없이 사람만 보냈어도 될 일을……. 그럼 제가 당장 그 물건을 찾아서 보내 드렸을 테니까요.”
“남에게 가져오라고 시킬 물건이 아니야.”
“그게 무엇인지요?”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금강혈정액.”
손중악의 안색이 변했다.
“내가 왜 사람을 시키지 않았는지 이제 알겠지?”
손중악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금강혈정액은 사해집마부의 최고위 층 몇 명 외에는 무림을 통틀어도 아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 절세의 보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보물은 오직 사해집마부 내에서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금강혈정액은 사해집마부의 비전인 강마팔단공을 칠단공 이상 익힌 자들의 피였다.
강마팔단공은 칠단공에 막 올랐을 때 손톱 끝에 한 방울의 피가 생성되는데, 사해집마부는 지난 백여 년 동안 그것을 모아놓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금강혈정액이었다.
금강혈정액은 금강주라고 부르는 어른 주먹만 한 구슬 안에 담겨 있었다.
그것은 사해집마부주만이 익힐 수 있는 강마혈신공의 기운을 받으면 일정한 공간을 피안개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수련자는 그 안에서 백 일 동안 운기조식을 하면 피부가 금강불괴처럼 단단해지는 공능을 얻을 수 있었다.
손중악이 곤혼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진 공자님, 죄송합니다만 금강혈정액을 드리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손중악이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은퇴하실 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모른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진무앙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 초대형 곰탱이 자식, 왜 금강혈정액에 대한 정보도 넘기지 않은 거야? 그게 뭐 그리 귀한 거라고.’
환우지약이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야승추가 금강혈정액에 대한 정보도 손중악에게 넘겨주지 않은 건 뜻밖이었다.
‘염병, 이곳에서 할 일 네 가지 중 첫 번째 것부터 어긋나 버렸네. 결국 공야승추를 찾아야 뭐든 할 수 있다는 건데…….’
진무앙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연신 잔을 비웠다.
‘이놈은 내가 미행할까 두려워 공야승추를 찾아가지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려고도 하지 않을 거야.’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흔들어볼까?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자극을 하면 저 자식이 자제력을 잃고 공야승추에게 조치를 취할 수도 있으니까.’
마음을 정한 그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손중악에게 물었다.
“초대형 곰탱이 자식 어디에서 지내냐? 설마, 그것도 모르는 거냐?”
손중악의 대답은 그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모릅니다.”
“입만 열면 십만대산에 뼈를 묻겠다고 했던 놈이라 다른 지역으로 가지는 않았을 텐데, 찾아는 봤냐?”
“물론입니다. 하지만 사부님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덩치로 숨어 지내는 게 가능해?”
“사부님이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 하면 누가 그분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런데… 무한금지는 뒤져 봤냐? 다른 놈들은 못 들어가도 넌 갈 수 있잖아.”
손중악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러 번 가봤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계시지 않더군요.”
“그래?”
인상을 찡그린 진무앙이 문득 생각난 듯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무저심연도 뒤져 봤냐?”
손중악의 눈동자가 보일 듯 말 듯 미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나타나자마자 사라질 정도로 짧았다.
찰나지간 평온을 회복한 그가 대답했다.
“그곳은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이 빛도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 은거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 식충이 자식이 먹을 게 버섯밖에 없는 곳을 은거지로 택할 리 없지.”
손중악이 화제를 바꾸어 물었다.
“그런데 반드시 금강혈정액이어야만 하는 겁니까? 본부의 약재 비고를 뒤져 보면 그것과 효과가 비슷한 영약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건 안 돼.”
“죄송합니다. 금강혈정액은 사부님이 와서 보관 장소를 말해주기 전에는 저도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사과하지 마라. 네 잘못도 아니잖냐.”
“그런데 금강혈정액은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 건지요?”
“네가 알 필요 없는 일이야.”
“아… 예.”
진무앙이 입을 다물고 잔을 비우자 손중악은 또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공야 사질과 완아가 보이지 않는군요.”
“밖에서 놀고 있겠지.”
진무앙의 대꾸에 손중악의 눈에 불쾌해하는 듯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을 보지 못할 진무앙이 아니었다.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완아 말로는 공야승추가 자신을 곰탱이의 배필로 정해놨다고 했거든.”
“저는 사부님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 완아가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
손중악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거짓말을 했다고 하면 신완아가 진무앙을 무시한 것이 된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신완아는 공야무룡의 배필로 정해졌다는 것이 된다.
어느 쪽이든 적절한 대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진무앙이 술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남녀가 서로를 좋아하면 그냥 두는 게 제일 좋아. 그거 막으려다가는 온갖 사달이 생겨. 그러니까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들지 마라.”
“…예.”
대답은 했지만 손중악의 어조는 붕 떠 있었다.
진심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진무앙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았다.
손중악은 잔을 비웠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이십대 중반의 굉장한 미청년이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미청년은 손중악과 함께 왔다. 하지만 식사가 중반에 접어든 지금까지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가 끼어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진무앙과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진무앙은 손중악에게 그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미청년이 손중악의 아들이자 신완아와 혼인 예정이던 손철기였다.
손중악이 그를 힐끗 한번 본 후 진무앙에게 말했다.
“공자님, 제 아이를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진무앙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아들이냐?”
“예.”
미청년이 일어나 진무앙에게 포권하며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손철기라고 합니다, 진 공자님.”
“앉아. 난 올려다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예.”
대답을 한 손철기는 즉시 자리에 앉았다.
손중악이 말했다.
“진 공자님, 많이 모자란 녀석입니다. 앞으로 보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진무앙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쟤를?”
그의 말투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손중악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진무앙은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싫어. 너, 내가 남자 보살피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새 잊은 거냐?”
“…잊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 아이는 제 아들이라 다른 남자와는 경우가…….”
“다를 게 뭐 있냐. 그리고 쟤는 네 아들이지, 내 아들은 아니잖아.”
“공야 사질은 보살펴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진무앙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공야승추와 네가 같아?”
고개를 숙인 손중악은 입술을 악물었다.
그가 물었다.
“사부님과 저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까?”
진무앙이 풀썩 웃으며 말을 받았다.
“부주가 되더니 머리까지 어떻게 된 거냐? 주제 파악 좀 해, 새끼야. 초대형 곰탱이는 내가 사해동도관에서 직접 가르쳤어. 당시 넌 걔의 시동에 불과했고. 이제 차이를 알겠냐?”
“…….”
손중악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진무앙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답을 안 해? 이 자식 봐라? 너,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 거냐?”
손중악이 더욱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말문을 열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실망한 제 표정을 공자님께 보여 드리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진무앙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네가 그러고 있으니까 밥맛 떨어진다. 분위기 잡치지 말고 돌아가. 갈 때 악사와 무희도 데려가는 거 잊지 말고.”
“예, 진 공자님.”
포권을 한 손중악은 손철기와 함께 등을 돌렸다.
그때까지도 그는 고개를 들어 진무앙을 보지 않았다.
문으로 걸어가는 그의 앞에서 춤을 추고 연주하던 무희와 악사들이 뱀을 만난 개구리처럼 표정이 창백하게 변하며 몸이 굳었다.
진무앙은 손중악의 등을 보고 있었지만 무희와 악사들은 그의 얼굴을 보았다.
손중악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고, 눈에선 소름끼치는 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놀라운 건 살기가 강렬한데도 불구하고 그의 몸 밖으로는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살기를 통제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손 씨 부자가 무희와 악사들을 데리고 대전을 나가자 오청연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그래도 이곳의 왕이나 다름없는 자인데 말을 너무 심하게 한 거 아니에요?”
진무앙이 코웃음을 쳤다.
“흥! 심하긴. 아들 앞이 아니었으면 벌써 한 대 걷어차고도 남았다.”
“하여튼…….”
오청연이 가늘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무앙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녀를 타박했다.
“하여튼 뭐? 말을 하려면 끊지 말고 끝까지 하란 말이야. 사람 궁금하게 하지 말고.”
“할 말이 없으니까 끊은 거죠. 있었으면 끊었겠어요?”
“할 말 없는 말투가 아니었잖아?”
“당신은 있는 할 말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남자잖아요.”
“췟!”
“그나저나 공야승추를 빨리 찾아야 할 텐데…….”
“손중악이 초대형 곰탱이를 어디에 숨겼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곳이 있다.”
“정말요? 조금 전까지 감도 못 잡더니 어떻게 된 거예요?”
“손중악을 떠봤는데 걸려들었거든.”
“아! 아까 그 무한금지와 무저심연에 대한 질문이 떠본 것이었어요?”
“맞아.”
“그래서 짐작 가는 곳이 어딘데요?”
진무앙은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무한금지.”
오청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눈빛이 바뀐 건 당신이 무저심연이라는 말을 했었을 때 아니었나요?”
“그랬지.”
“그런데 왜 그곳이 아니라 무한금지라는 거죠?”
“놈의 눈빛이 변한 게 마음에 걸려. 아무리 놀랄 만한 질문을 받아도 그렇게 감정을 쉽게 드러낼 놈이 아니거든.”
“쉽게 드러낸 건 아닌 것 같았는데… 무한금지는 어디에 있어요?”
진무앙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 본궁인 태마궁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다.
그가 턱짓으로 태마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