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07
307 년?
화향전.
남수옥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켜진 대전으로 들어섰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향이 그녀의 코끝을 간질였다.
십여 장 맞은편의 의자에 앉아 있던 손철기가 일어나 포권을 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 장로님.”
남수옥은 십 년 전 옥마단주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전통에 따라 장로원에 들어갔다.
장로원은 말이 좋아 ‘원’이지, 현직에서 물러난 사해집마부의 요인들이 하릴없이 시간이나 때우는 곳이었다.
물론 전시 상황에서는 역할이 달라지긴 하지만.
남수옥이 냉엄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소부주가 철이 덜 들었다는 말은 귀가 따갑게 들었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완아는 어디에 있는가?”
손철기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말을 좀 가려서 하시죠? 뒷방에서 죽을 날 받아놓고 살더니 이제는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는 겁니까?”
남수옥의 흑백이 또렷한 눈동자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빛을 발했다.
짝짝짝!
손철기가 그녀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박수를 쳤다.
“육십을 넘었는데도 남 장로님은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특히 그 눈빛은 정말 매력적이군요. 장로가 할머니라는 걸 아는데도 내 몸이 이렇게 후끈 달아오를 정도니 말입니다.”
남수옥의 외모는 삼십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절정에 이른 내공의 힘이 노화를 막아준 덕분이었다.
“흐으…….”
남수옥의 입에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당장에라도 손철기를 때려죽이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느라 그녀의 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소부주,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네. 완아를 내놓게. 그렇지 않으면 부주의 원망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더는 참지 않겠네.”
손철기가 앙천광소를 터트리며 소리쳤다.
“으하하하하하! 참지 마, 할망구야. 누가 너더러 참으라고 한 적 있냐?”
그 말을 들은 남수옥의 눈썹 끝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부주에게 팔 하나를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네게 하늘 높은 줄 알게 해주리라!”
노성이 대전을 울렸지만 손철기는 겁을 먹기는커녕 다시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화내니까 더 예쁘네. 조금 이따가 내 몸 아래에서도 그런 소리를 내주기를 바라. 그럼 더 흥분될 거 같거든.”
“이놈!”
더는 참지 못한 남수옥이 허리춤에서 옥마단의 독문무기인 연화요검을 풀어내며 손철기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그녀는 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손철기가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리 전대 옥마단주님, 예전에는 굉장히 예민했다고 들었는데 늙더니 감각이 예전만 못한가 봐. 환미신향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말이야.”
환미신향이라는 말에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남수옥이 이를 갈며 말했다.
“으드득! 감히 내게 음약을 사용하다니. 아무리 부주의 자식이라 해도 부의 제자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환미신향은 내공을 흩트리는 산공의 공능을 가진 음약이었다.
오래전 사해집마부의 장로 한 명이 강호의 음적을 죽인 후 회수해서 창고에 보관해 온 물건인데, 손철기가 그것을 남수옥에게 사용한 것이다.
물론 손철기는 이 일을 꾸민 자들과 함께 미리 해약을 먹은 상태였고.
그가 남수옥의 오른쪽 가슴을 와락 움켜쥐며 말했다.
“용서? 대산에서 내 위에 있는 분은 아버님 한 분뿐이거늘, 누가 있어 내게 용서 운운할 수 있단 말이냐. 흐흐흐흐흐.”
말을 하며 그는 손에 힘을 주어 남수옥의 가슴을 비틀었다.
“아흑…….”
남수옥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누군가 바람처럼 대전으로 뛰어들어 오며 검으로 손철기의 팔을 베어갔다.
“손을 놓아랏!”
쐐애애액-
검날이 도달하기 전에 먼저 살을 에는 것처럼 날카로운 검풍이 들이닥쳤다.
하지만 손철기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로 검의 주인에게 말했다.
“좀 빨리 오지. 지금 네 사부가 쌀이 익어서 밥이 되기 직전인데, 이제 오면 어쩌자는 거냐?”
“미친놈! 어서 그 더러운 손을 떼!”
악을 쓰는 검의 주인은 신완아였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연화요검으로 손철기의 팔을 그어 내렸다.
금방이라도 손철기의 팔이 잘려 나갈 듯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팟!
천장의 대들보에서 뛰어내린 흑의인이 장난처럼 신완아의 검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 걷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에 일장을 후려쳤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을 수 없는 정확하고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퍽!
“허윽!”
가슴에 일장을 격타당한 신완아가 신음을 토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녀를 후려친 일장은 그리 강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녀는 사지를 바르르 떨뿐 일어서지 못했다.
장력에 격타당할 때 마혈이 제압당했기 때문이었다.
남수옥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완아!”
“사… 사부님…….”
신완아는 힘겹게 남수옥을 불렀다.
그녀가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혈이 제압당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손철기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려운 사제 상봉이로군.”
그러고는 이어서 그는 자신의 옆에 선 남자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혁 장로님.”
중후한 중년인의 풍모를 한 혁군상은 대꾸 없이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남수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혁군상에게 말했다.
“혁… 사형? 당신이 대체 왜?”
혁군상의 눈끝이 일그러졌다.
대답은 그가 아니라 손철기가 했다.
“태상 부주가 은거한 뒤에도 당신은 혁 장로에게 시선 한 번 준 적이 없어. 이분이 그동안 얼마나 남 장로, 당신을 원했는지 알아?”
그때까지 말이 없던 혁군상이 손철기에게 말했다.
“소부주, 더는 그녀를 욕보이지 마시오.”
손철기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그렇게 하죠. 나도 그녀에게 더는 볼일이 없으니. 혁 장로님, 그녀를 데리고 가시오. 가서 수십 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푸시구려. 흐흐흐흐흐.”
혁군상이 남수옥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남수옥이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멈춰라, 혁가야! 후일 태상 부주가 돌아와 네가 한 짓을 알게 되면 혁 씨 가문은 씨가 마를 것이야!”
혁군상은 쇳덩이 같은 팔뚝으로 남수옥의 허리를 휘감으며 말했다.
“옥매, 그런 게 두려웠다면 소부주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다.”
그때였다.
휘우우우우우웅-
대전을 가득 채우고 있던 향이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창밖으로 빨려 나갔다.
그리고,
“혁군상, 이 똥통에 거꾸로 처박아 죽여도 시원찮을 개 호로새끼야!”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폭갈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대전으로 날아들었다.
가공할 힘이 담긴 핏빛의 검강이 혁군상의 상체를 휩쓸어갔다.
남수옥의 허리를 계속 잡고 있다가는 몸이 두 쪽이 날 수도 있다는 걸 직감한 혁군상은 남수옥을 옆으로 내던지며 쌍장을 휘둘렀다.
그의 독문무공인 흑무철엽장의 막강한 기세가 공격해 오는 검강을 마주쳐 갔다.
콰콰쾅!
벼락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혁군상은 세 걸음 뒤로 밀려났다.
그의 안색이 변했다.
사해집마부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장법의 절정고수인 그가 밀린 것이다.
어느새 남수옥을 품에 안은 검강의 주인을 본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맹 노야?”
석 자 다섯 치의 핏빛 검을 쥐고 남수옥을 안고 있는 사람은 맹노광이었다.
그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혁군상을 보며 소리쳤다.
“마도의 군자라고까지 불리던 네가 되먹지 못한 꼬마의 해괴한 짓거리에 동참하다니. 내 오늘 널 저 손가 꼬마와 함께 저승으로 보내주마. 그게 본부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
“맹 노야,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맹노광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함부로 어째? 아무리 내가 부를 떠난 지 삼십 년이 넘었다지만, 명색이 장로라는 놈이 선배도 몰라보는 거냐?”
혁군상은 이를 악물었다.
맹노광은 공야승추의 최측근일 뿐만 아니라 전대 장로원주이기도 했다.
게다가 배분도 그와 남수옥보다 한 세대나 높았다.
혁군상이 소리쳤다.
“옥매를 내려놓으시오!”
“옥매? 음약으로 무력화시킨 놈이 그런 호칭을 써? 이 개 호로잡놈아!”
“고집부리면 노야라도 죽일 수밖에 없소.”
“능력이 있으면 죽여봐라, 이 호로새끼야!”
두 사람 사이에 무서운 살기가 흘렀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혁군상이었다.
그는 번개처럼 맹노광의 측면으로 접근하며 오른손으로 흑무철엽장을 펼쳤다.
쑤와아아앙-
목표는 남수옥을 안고 있는 맹노광의 왼팔이었다.
맹노광이 광소를 터트리며 애검인 혈천검을 휘둘렀다.
“으하하하하하, 가소로운 놈!”
쐐애애액-
두 사람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뒤엉켜 돌아가기 시작했다.
손철기는 굳은 표정으로 그 싸움을 지켜보았다.
맹노광이 온 것을 보면 부친 손중악이 두려워하는 진무앙도 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진무앙은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빠르게 신완아에게 다가갔다.
그의 목적은 그녀뿐이었다.
남수옥은 신완아를 이곳까지 부르기 위한 이용 수단에 불과했다.
그가 신완아와 일 장가량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한 걸음만 더 움직여 봐. 바위에 짓눌린 개구리 꼴로 만들어줄 테니.”
고개를 홱 돌린 손철기는 칠 척의 대도를 어깨에 턱 걸친 공야무룡을 볼 수 있었다.
공야무룡은 분노가 들끓는 눈으로 그를 보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손철기의 눈에도 소름끼치는 살기가 어렸다.
“네놈이 태상 부주의 손자라고 했던가?”
신완아의 옆에서 걸음을 멈춘 공야무룡이 말을 받았다.
“지금 내가 그분의 손자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그럼 뭐가 중요하다는 말이냐?”
“신 소저가 나의 여자라는 게 중요하지.”
손철기의 눈에서 광포한 살기가 쏟아졌다.
“누가 누구의 여자라는 것이냐! 이년은 내 것이다.”
“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내뱉은 공야무룡은 입을 꾹 다물고 거령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쿠와아아아앙-
가공할 풍압을 동반한 칠 척의 대도가 손철기에게 날아들었다.
거령참마도법이 펼쳐진 것이다.
손철기도 물러서지 않고 쌍수를 휘둘렀다.
첩첩이 일어난 손 그림자와 함께 막강한 경력이 거령도의 공세에 부딪쳐 갔다.
쐐애애애액-
손중악이 그에게 전수한 무공 중 가장 위력이 강한 광마곤룡장법이었다.
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손철기가 피화살을 뿜으며 뒤로 일 장이나 날아갔다.
“크윽!”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공야무룡을 바라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리는 거구의 남자는 뒤로 물러난 그를 따라 붙으며 다시 거령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광마곤룡장과 거령참마도는 모두 공야승추로부터 나온 무공들이었다.
그러니 위력은 비슷했다. 그런데도 결과가 이처럼 극명하게 갈린 것은 내공 때문이었다.
손철기는 젊은 나이에 절정의 반열에 올랐지만 흑백쌍두사의 내단을 먹은 공야무룡에 비하면 내공이 한참 뒤질 수밖에 없었다.
그 차이가 이런 결과를 빚은 것이다.
그를 보는 공야무룡의 눈에서 살벌한 광기가 흘러나왔다.
그가 이를 갈며 말했다.
“신 소저를 탐내? 손철기, 곱게 죽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쿠와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대전의 허공을 뒤덮은 거령도의 그림자를 보는 손철기의 표정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