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08
308 운우지락!
십만대산의 최고봉인 절인봉의 기슭.
사해집마부의 본궁인 태마궁은 어두운 달빛 아래 검은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구층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궁의 뒤쪽은 바닥부터 정상까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높이가 수백 장에 달하는 절벽은 날개가 달리지 않은 한 침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론, 그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절벽의 중간에 나 있는 일 장 길이의 소나무 가지 위, 진무앙이 느긋하게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었으니까.
“아직 조용한 걸 보니 화향전의 사태가 본궁에 전달되진 않은 모양이네.”
그는 시선을 들어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전각을 보았다.
하지만 그가 보고 있는 건 전각이 아니라 그곳의 십여 장 위에 둥둥 떠 있는 한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물론 오청연이었다.
그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일까.
오청연이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진무앙이 혀를 찼다.
“손까지 흔드는 걸 보니까 상황이 꽤나 재미있나 보네.”
그 순간, 화향전에서 엄청난 폭음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화향전의 절반이 폭삭 주저앉으며 어마어마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먼지 폭풍 사이로 굵은 도강이 유성처럼 번뜩이는 게 보였다.
벌떡 일어나 앉은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곰탱이 자식, 제대로 열받은 모양이네.”
잠시 후, 태마궁의 곳곳에 촛불과 횃불이 켜졌다.
이제야 화향전에서 일어난 소란이 전해진 듯했다.
진무앙이 느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나도 슬슬 준비해 볼까.”
* * *
일각 전.
쾅-
무시무시한 충돌음과 함께 거령도강과 장력이 부딪친 손철기의 신형이 뒤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그의 상의는 걸레처럼 찢어졌고, 입과 코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렀다.
그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양회! 류인! 저자를 죽여!”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방에서 이십여 명의 흑의인이 공야무룡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들은 달려들며 한 자 길이의 단검 수십 자루를 던졌다.
휘휘휘휘휘휙-
손철기를 죽이려고 거령도를 휘두르던 공야무룡은 난데없이 등장한 방해자들을 보고 대로했다.
그가 분노에 찬 웃음을 미친 듯이 터트리며 소리쳤다.
“우하하하하! 죽고 싶은 개잡놈들이 한 무더기로구나!”
거령도에서 막강한 선풍이 일어났다.
거령참마도법의 방어초식 중 하나인 거령선풍세였다.
쑤와아아아앙-
도세에 휘말린 단검들이 태풍에 휘말린 갈대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단검을 던지고 각자의 무기로 공야무룡을 공격해 들어가던 흑의인들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공야무룡의 거령도에서 무시무시한 도강이 일 장이나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면으로 부딪쳐서는 승산이 전혀 없다는 걸 직감한 양회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피해!”
그의 지시는 적절한 것이었지만, 공야무룡의 손이 그보다 한 발 빨랐다.
쿠와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일어난 거령폭참세의 도강이 수백 줄기로 나뉘는가 싶더니 흑의인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피할 틈이 없다는 걸 직감한 흑의인들은 전력을 다해 자신이 익힌 최고의 무공을 펼쳐 냈다.
하지만 그들의 대응은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의 허망한 몸짓에 불과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퍽!
흑의인들의 무기가 먼저 장난감처럼 터져 나갔고, 뒤이어 그들의 몸이 바위에 뭉개진 것처럼 박살이 났다.
“으악!”
“아악!”
“끄억!”
푸화화화확!
끔찍한 비명과 시뻘건 피분수, 짓이겨진 살과 뼈들이 대전을 뒤덮었다.
손철기는 양회와 류인, 그리고 소마대가 전멸하는 틈을 타 대전의 뒤에 있는 창문으로 도주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막 창턱을 넘으려는 그를 정체모를 미증유의 거력이 다시 대전 안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화향전 상공에서 지켜보던 오청연이 손을 쓴 것이었지만, 손철기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화향전에 쳐들어온 건 공야무룡과 맹노광만이 아니라는 것을.
‘진무앙, 그가 온 건가?’
부친도 두려워하는 남자를 떠올리자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상념을 붙들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안으로 들어온 그를 공야무룡의 거령도가 맞이했기 때문이다.
공야무룡은 손철기에게 거령도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뒈져라, 잡놈!”
쿠와와와앙-
분노로 이성을 잃은 손철기가 이를 갈며 악을 썼다.
“이 끈 떨어진 곰새끼가 누구더러 잡놈이라는 거냐!”
이미 도주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터라 그는 진원까지 끌어올려 광마곤룡장을 펼쳤다.
쑤와아아앙-
그의 양손에서도 거령도강에 못지않은 위세가 담긴 장세가 쏟아졌다.
공야무룡은 이미 손철기를 죽여 버리겠다고 작정한 터라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십이성 전력을 실었다.
거령도강과 곤룡장세가 부딪치며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전각의 일부가 화탄에 맞은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거령도강을 버티지 못한 손철기의 왼팔이 으스러지며 뒤로 튕겨 나갔다.
공야무룡이 그 뒤를 쫓으며 재차 거령도를 휘둘렀다.
쿠우우우우우-
해일처럼 일어난 무시무시한 도강이 손철기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것을 맞는다면 대라신선이라도 시신을 온전히 보존하기 어려울 게 뻔한 공세였다.
그 순간,
맹노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혁군상이 그를 공격하는 혈천검을 무시하고 손철기의 앞으로 신형을 날렸다.
동시에 거령도의 측면에 일장을 후려쳤다.
쾅!
굉음과 함께 거령도강의 방향이 뒤틀렸다.
그런 혁군상의 뒤로 맹노광이 따라붙으며 소리쳤다.
“한가하구나, 혁군상!”
말과 함께 혈천검에서 뻗어 나온 핏빛의 검강이 혁군상의 등을 강타했다.
혁군상을 번개같이 뒤로 돌아서며 혈천검을 향해 혼신의 일격을 날렸다.
그의 쌍수에서 흑무철엽장의 검은 기운이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혈천검강과 그의 필생 공부가 담긴 장세가 부딪쳤다 .
콰콰쾅!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화향전의 절반이 폭삭 주저앉으며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무너진 화향전만큼이나 손철기와 혁군상의 상태는 처참했다.
손철기의 왼쪽 어깨는 팔과 함께 박살이 나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만약 혁군상이 거령도강을 막지 않았다면 그 정도 상처로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
손철기는 박살이 난 어깨를 부여잡은 채 혁군상의 뒤에 숨어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혁군상의 상처는 손철기보다 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른의 주먹만큼이나 커다란 구멍이 난 복부를 꽉 부여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꿀렁거리며 흘러나온 피와 내장이 바닥을 붉게 적셨다.
혁군상이 일그러진 얼굴로 일 장 앞에 서 있는 맹노광에게 말했다.
“맹 노야… 소부주만은… 그를 죽이면… 절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소…….”
맹노광은 서늘한 눈으로 그를 보며 말을 받았다.
“네가 우리와 함께 온 분이 누군지 알았다면 이런 짓도, 그런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누구이기에…….”
맹노광의 입술이 달싹였다.
전음입밀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혁군상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충격과 공포, 두려움과 경외심이 복잡하게 뒤얽힌 표정이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나는 후회하지… 않소…….”
맹노광은 굳은 표정으로 혈천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어떤 이유로든 네가 태상 부주의 여인을 탐한 건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다.”
“용서받겠다는 생각… 한 적… 없소.”
맹노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럼 죽어라.”
무심한 한마디와 함께 혈천검이 한 가닥 유성처럼 날아와 혁군상의 목을 베어버렸다.
서걱!
푸확!
목이 잘린 혁군상이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앞으로 쓰러졌다.
콰당-
혁군상의 뒤에 숨어 있던 손철기의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공야무룡이 그에게 소리쳤다.
“쥐새끼도 너보다 낫겠다. 사내 놈이 부하 뒤에 숨어 연명하다니, 나 같으면 수치스러워서 차라리 혀를 물고 자결했을 거다.”
그 말에도 손철기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공야무룡이 거령도를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네 아버지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꿈 깨라. 그가 온다고 해도 너는 죽어.”
말과 함께 그는 가공할 기세로 손철기의 머리를 향해 거령도를 내리찍었다.
쑤와아아앙-
이미 한쪽 팔을 잃은 데다가 내부 경락까지 엉망으로 뒤엉킨 손철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그러니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거령도를 쳐다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거령도가 손철기를 으깨 버리려는 순간,
쐐애애액-
어디선가 날아든 가공할 힘을 품은 장력이 거령도의 측면을 강타했다.
쾅-
거령도가 다섯 자나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두 걸음이나 옆으로 움직인 공야무룡이 무서운 눈으로 장력을 날린 자를 쳐다보았다.
그자는 이미 손철기의 앞을 막아선 상태였다.
자신을 방해한 자를 보는 공야무룡의 눈동자가 야수처럼 이글거렸다.
그자는 바로 손중악이었다.
공야무룡이 거령도를 곧추세우며 소리쳤다.
“비키시우!”
손중악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눈앞에서 그의 죽음을 지켜보고만 있을 부모는 없네.”
“그가 부주의 아들이 아니라 황자라도 죄를 지었으면 목숨으로 값을 치러야 하는 거유. 나는 그것이 마도의 법도라고 배웠수.”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어떤 법도가 천륜보다 앞설 수 있단 말인가.”
공야무룡의 눈이 용암을 담은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의 전신에서 무서운 기세가 흘러나왔다.
맹노광은 그것을 지켜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손철기의 처리는 그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완아는 공야무룡의 배필로 정해진 여인이 아닌가.
그러니 그녀가 당한 치욕은 부군이 될 공야무룡이 갚아야 하는 것이 마도의 법도였다.
손중악이 말했다.
“아들이 저 지경인데도 내가 참는 것은 자네가 두려워서가 아닐세, 그분의 체면을 생각해서일 뿐.”
그가 공야무룡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 그분 앞에서 잘잘못을 가릴 것이니 자네는 이만 물러가게.”
공야무룡이 발작을 하려 할 때 아름다운 섬섬옥수가 그의 팔을 잡았다.
“참아라.”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낸 오청연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부주의 말이 아니라도 지금은 그와 싸울 때가 아니다.”
“왜 안 된다는 거유?”
“싸우는 동안 완아가 죽을 테니까.”
“헉!”
놀란 공야무룡이 고개를 돌려 신완아를 보았다.
입에 거품을 문 그녀는 안색이 납빛으로 변한 채 누워 있었다. 게다가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대경실색한 공야무룡이 신완아를 품에 안았다.
“신 소저!”
오청연이 말했다.
“음약의 기운이 그 아이의 골수에 침입했다. 빨리 그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살아도 백치를 면치 못할 거야.”
“손철기가 해약을 갖고…….”
“해약으로 치료하기엔 이미 늦었다.”
사색이 된 공야무룡이 오청연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란 거유?”
오청연은 그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예로부터 음약의 가장 확실한 치료 방법은 하나뿐이지.”
“그게 뭐유? 얼른 말해주시유!”
오청연은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운우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