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22
322 실화냐?
공야무룡의 손에 손중악이 목숨을 잃은 순간, 대연무장의 상황이 급변했다.
삼백여 명이 넘는 사해집마부의 핵심 요인이 일제히 애병을 꽉 움켜쥐었다.
그들은 대연무장으로 오기 전 손중악으로부터 절대 나서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명령의 효력은 사라졌다.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공야승추와 공야무룡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휘휘휘휘휘휙-
일류 이상의 고수 삼백여 명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신형을 날리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장쾌함이 아니라 진득한 살기와 독기였다.
“죽여!”
“저들이 죽어야 우리가 산다!”
“손에 사정을 두지 마!”
자신과 동료들을 독려하는 악에 받친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라 공야승추의 성격을 잘 안다.
그가 자신들을 살려두지 않을 거라는 것도.
게다가 그는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이 승리하면 손중악을 따르는 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공언하지 않았던가.
그때였다.
“이미 승부가 났거늘, 엎드려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감히 불복하겠다는 것이냐!”
대로한 일갈과 함께 바람처럼 날아든 맹노광이 공야무룡의 앞을 막아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천 명을 훌쩍 넘는 수의 사람들이 공격을 하는 자들과 공야 조손 사이로 뛰어들며 인의 장벽을 만들었다.
손중악이 죽자 공야승추를 숭앙하는 사람들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양측 모두 지금까지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근본이 마도인, 서로를 바라보는 눈엔 살기만이 번뜩일 뿐이었다.
공야 조손에게 달려드는 자들의 눈에 핏빛 증오가 어렸다.
이미 그들은 비교하는 게 무의미한 수적 열세에 처해 있었다. 공야 조손을 제거할 명분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세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이었다.
싸우다 죽든, 공야승추의 손에 숙청당하든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우우우우우!”
“죽여!”
“막아라!”
각기 다른 외침과 함께 양측이 서로를 향해 밀려갔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옅고 진한 핏빛의 기운이 대연무장의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사해집마부 사람들은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팔단계로 이루어진 강마혈신공을 배운다.
자질과 직위에 따라 배우는 단계가 다를 뿐이다.
그러니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모두 같은 빛을 띠고 있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양측이 무서운 기세로 충돌하려는 순간,
콰우우우우우우-
어디선가 듣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괴성과 함께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놀라 고개를 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가셨다.
그들의 머리 위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흑백쌍두사 한 마리가 떠 있었다.
삼색이였다.
“내려가자, 삼색아.”
대연무장에 여인의 부드러운 음성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아래 있는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았지만 삼색이의 검은 머리 위엔 오청연이 서 있었다.
여기저기서 기절초풍한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 저…….”
“괴… 괴물이다!”
“설마… 흑백쌍두사?”
“으헉!”
“꺄악!”
사람들 중엔 흑백쌍두사를 알아본 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삼색이의 정체가 뭔지도 몰랐다.
“피… 피해!”
“떨어진다!”
“으헉!”
“깔리면 죽어!”
꼬리에 불이 붙은 망아지처럼 사람들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삼색이가 그 육중한 거체를 자랑하며 그들의 머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하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내는 단숨에 난장판이 되었다.
공야승추를 따르는 사람들과 손중악의 추종자들이 뒤엉켜 버려서 적아 구분조차 쉽지 않을 정도였다.
쿠! 콰쾅!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삼색이가 대연무장에 거체를 내렸다.
흙먼지가 산더미처럼 피어오르고, 무공을 모르는 사람은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강한 진동이 수백 장 이내를 뒤흔들었다.
오청연이 삼색이에게 말했다.
“죽여야 할 자들이 누군지 전부 봐뒀지?”
[물론이죠.]삼색이의 대답이 그녀의 뇌리를 울렸다.
“모두 죽여.”
[알았어요.]“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빠져나가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네 주인이 짜증을 많이 낼 거야.”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힘차게 대답한 삼색이의 머리 두 개가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그 벌린 입 사이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검은 빛의 덩어리가 수백 개나 생성되었다.
그것은 오청연조차 상대하기 까다로워했던 흑백화혈독의 정수로 만들어진 독탄이었다.
하지만 독탄의 크기는 그녀와 싸웠을 때에 비하면 백분지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상대할 자들이 그만큼 약하다는 방증이었다.
삼색이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벼락처럼 독탄을 토해냈다.
슈슈슈슈슈슈슈슉-
그 광경은 마치 하늘에서 검은빛의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했다.
기함할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일직선으로 쏘아진 것처럼 보였던 독탄이 바닥과 이 장 떨어진 곳에 도달하자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공야승추를 따르는 사람들 사이를 춤추듯 통과하며 손중악의 추종자들을 쫓아갔다.
가장 먼저 독탄에 당한 건 발이 느린 자들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거리를 좁힌 독탄이 표적의 등을 강타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요란한 타격음이 이어지며 곳곳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독탄에 격중당한 자들은 시신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들은 찰나지간 한 가닥 검은 연기로 화했다가 삼색이의 입으로 흡수되었다.
반각도 지나지 않아 대연무장은 정리되었다.
어디에서도 학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손중악의 추종자들은 시신은커녕 한 방울의 피조차 남기지 못하고 전멸당한 것이다.
그리고 공야승추를 따르는 사람들은 더 이상 삼색이를 피해 도망가지 않았다.
괴물(?)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쿠르르르르르르-
삼색이가 느릿하게 거체를 움직여 공야승추와 공야무룡의 뒤로 이동했다.
솨아아아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대연무장을 휘돌아 나갔다.
장내는 깊은 침묵에 잠겼다.
사람들은 떨리는 눈으로 공야승추를 바라보았다.
전설에나 나올 법한 괴물을 뒤에 두고 우뚝 선 그를 보는 그들의 마음이 벅차올랐다.
공야승추가 주먹을 꽉 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돌아왔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수만 명이 내지르는 엄청난 함성에 대연무장이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다.
지붕 위에서 대연무장을 지켜보던 진무앙이 구시렁거렸다.
“큰 곰탱이 자식, 있는 대로 기분을 내고 있구만.”
오청연이 생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부러워요?”
“뭐가?”
“지금 큰 곰이 받는 수많은 사람의 추앙이요.”
“누가 들으면 내가 저런 시절을 보낸 적이 없는 사람인 줄 알겠다. 내가 온 세상을 지배한 게 한두 번이 아니야. 너도 본 적이 있잖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깜박했어요.”
“그걸 잊었다고? 내 앞에서 백만 명이 오체투지하던 그 광경을?”
“너무 끔찍했던 기억이라 무의식중에 봉인했었나 봐요.”
“일대 장관이던 그 광경이 끔찍했다고?”
“그때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설마 잊었다는 건가요?”
진무앙은 움찔하며 오청연의 빛나는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오청연이 말을 이었다.
“이마에 피가 나도록 머리를 숙이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들을 모조리 학살했잖아요.”
“내가?”
“예, 당신이요.”
“네 기억이 잘못된 거겠지.”
“선계에서도 기억력으로는 첫손가락에 꼽히던 사람이 저예요.”
진무앙은 먼 산을 보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했다.
“아무튼 몰라. 암혼을 소환했을 때는 기억이 불완전해져서 당시 내가 뭘 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거든…….”
진무앙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오청연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할 말 없으니까 피하는 거죠?”
“천만에.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이어서 일어났을 뿐이야. 가자, 곰탱이들이 기다린다.”
진무앙은 서둘러 허공을 밟았다. 오청연이 그의 뒤를 따랐다.
쑤와아앙-
두 개의 유성이 허공을 가르며 대연무장으로 날아갔다.
절인봉의 별궁 대전.
진무앙과 공야승추를 비롯해 이번 일의 관련자 모두가 산해진미가 쌓인 초대형 탁자 주변에 앉아 있었다.
이별 만찬이었다.
“우걱우걱… 우물우물…….”
장내에 있는 사람들 중 음식에 손을 대는 건 진무앙이 유일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입안으로 음식을 쓸어 넣던 진무앙이 손을 멈추며 트림을 했다.
“꺼억!”
포만감이 가득 한 얼굴로 사람들을 돌아본 그가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구경났냐? 내가 음식 먹는 걸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러고 있어?”
그의 시선을 받은 공야승추가 말문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해.”
“정말 룡아를 데리고 가실 겁니까?”
“아까 말했잖아.”
만찬이 시작되기 전 진무앙은 공야무룡을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바로 음식을 폭풍흡입하기 시작해서 공야승추는 이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
진무앙이 음식을 먹을 때 방해받으면 엄청나게 짜증을 낸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룡아는 제 뒤를 이어 사해집마부주를 해야 하는데요.”
“네가 해.”
“저는 아시다시피 몸이 많이 상했고, 늙어서 기운도 예전 같지가…….”
“지금 네가 내 앞에서 나이 많이 먹었다고 유세하는 거, 실화냐?”
“…….”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여 사죄한 공야승추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용아는 왜 데리고 가시려는 겁니까? 호위가 필요한 분도 아니고, 밥값만 엄청나게 들 텐데요?”
“돈 없으니까 작은 곰탱이 밥값은 출발할 때 네가 챙겨줘. 그리고 나도 호위 필요해.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이 연약한 절세미남의 호위로 작은 곰탱이가 딱이야. 쟤하고 내가 대평원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같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봐. 그림이 확 살지 않냐? 게다가 마차를 몰 마부도 필요하고.”
공야승추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
아연실색한 사람들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하아…….”
“어휴…….”
공야무룡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진무앙에게 물었다.
“주공, 할아버지를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생이별시키려는 건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유?”
“큰 곰탱이하고 같이 있으면 뭐 할 건데?”
“그야…….”
“강마혈신공의 구결도 다 배웠고, 나머지 무공들이야 어차피 내가 큰 곰탱이한테 가르친 것이니 널 데리고 다니면서 전해주면 될 일이고. 뭐가 문젠데?”
“아니… 그게 문제라는 거보다… 생전 처음 만난 할아버지와 며칠 만에 헤어진다는 게…….”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구박을 했다.
“솔직히 말해, 새끼야. 완아하고 헤어지기 싫어서 그런 거잖아!”
“…….”
진무앙이 신완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기 있을래? 아니면 작은 곰탱이 하고 같이 떠날래?”
신완아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같이 가겠어요.”
진무앙이 다시 시선을 공야무룡에게 주며 물었다.
“됐지?”
공야무룡이 힘차게 대답했다.
“됐수!”
진무앙이 공야승추에게 말했다.
“저 자식도 찬성이야. 넌 여전히 보내기 싫으냐?”
공야승추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제 손주 녀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진무앙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그가 커다란 멧돼지의 뒷다리를 집어 들며 말했다.
“정리 끝.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