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24
324 나, 믿지?
탁자로 다가온 사람은 단단한 느낌을 주는 중년 남자였다.
그가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들며 말했다.
“진 호위, 오랜만일세.”
“오랜만에 만나도 별로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군요.”
“초지일관이 지론이라더니 면전에서 사람 면박하는 자네의 태도는 여전하네그려.”
중년인, 무림맹 낙양 분타주 운리금강 주신언은 태연한 얼굴로 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진무앙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앉으라고 한 적 없습니다만?”
주신언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을 받았다.
“비어 있는데 앉지 않으면 의자가 민망하지 않겠는가.”
오청연과 공야무룡, 신완아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들은 진무앙이 말을 높이는 상대를 처음 보았다. 더 놀라운 건 상대가 그를 하대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진무앙의 태도를 볼 때 상대를 약간 꺼리기까지 하는 듯했다.
그러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신언이 다시 일어나 오청연 등 세 사람에게 포권을 했다.
“나는 무림맹 낙양 분타주를 맡고 있는 운리금강 주신언이라 하외다. 세 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소이다.”
오청연 등도 일어나 마주 포권했다.
“분타주님이셨군요. 반가워요. 오청연이라고 해요.”
“공야무룡이외다.”
“신완아예요.”
세 사람의 이름을 들은 주신언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자리에 앉은 그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진 호위는 언제 봐도 신기하군.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낙양제일기녀와 함께 여행하고 있다니. 자네의 넓은 인맥에 이 주모는 정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구만.”
그는 낙양 분타주였던 터라 오청연을 모르지 않았다.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돌아가서 계속 탄복하세요.”
“나는 그냥 여기서 탄복하는 걸 택하겠네.”
“그 운리금강이라는 별호에서 ‘금강’이라는 말, 분타주의 얼굴이 두껍고 단단해서 붙은 거, 맞죠?”
주신언은 크게 경악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림 중에 소문난 적도 없는 그 중차대한 비밀을 자네는 벌써 깨달았단 말인가?”
철판도 이런 철판이 없었다.
진무앙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정말 어울리는 별호네요. 나도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하하, 자네의 높은 평가, 정말 고맙네.”
“어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진무앙이 물었다.
“그런데 낙양 분타주가 이 먼 형주엔 왜 온 겁니까?”
“월봉 받는 일꾼이 놀러 왔겠나? 당연히 일하러 왔지.”
“무슨 일이요?”
주신언이 진무앙을 향해 상체를 굽히며 속삭였다.
“최근 이곳에 강시와 흡혈귀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네.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하는지 알아보러 온 걸세.”
진무앙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강시와 흡혈귀라니? 벌건 대낮에 웬 헛소립니까?”
“흠흠, 내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나 보군. 자네처럼 영민한 사람이 시기를 헷갈리다니. 지금은 저녁이라네.”
주신언이 창밖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보게. 이미 해가 졌지 않은가.”
그의 말처럼 창밖은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다.
“진짜란 말입니까?”
“물론이네.”
믿기 힘든 말이었다.
하지만 진무앙은 더는 주신언에게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주신언이 그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신언이 말한 일에 관심이 생긴 건 아니었다.
무림사를 보면 간간이 사술을 익힌 자들이 만든 강시와 흡혈귀들이 출몰하곤 했다.
즉,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해도 아예 없는 일은 아닌 것이다.
그가 주신언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무림맹의 그 많은 사람 중에 임무를 맡은 사람이 왜 주 대협입니까? 형주 분타주도 있지 않습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네. 하나는 무한의 괴질이 거의 퇴치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무림맹 총타엔 이곳에 사람을 보낼 정도의 여력은 없다는 것일세.”
“두 번째 이유는요?”
“형주 분타가 강시와 흡혈귀에 의해 전멸당해서 이곳엔 사건을 조사할 사람이 없기 때문일세. 그래서 마침 무림맹에 머물던 내가 이곳으로 보내진 거라네. 훌륭한 조력자와 함께 말일세.”
“조력자도 있습니까?”
“물론일세. 나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라는 걸 자네도 알지 않나? 의문스러운 자들이 형주 분타를 궤멸시킨 이런 중대한 사건을 나 혼자 해결할 능력은 없네.”
“그 조력자가 누굽니까?”
대답은 주신언이 아니라 이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쪽에서 들렸다.
“나야.”
차갑지만 맑고 듣기 좋은 젊은 사람의 음성.
단번에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차린 진무앙은 대경실색한 얼굴로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며 소리쳤다.
“휘아?”
계단을 올라온 사람은 영웅건을 두르고 삼 척 장검을 손에 쥔 절세미남, 사마휘였다.
사마휘의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이 오청연과 신완아를 스쳐 지나갔다.
급당황한 진무앙이 정신없이 손사래를 치며 그녀에게 말했다.
“청연하고 완아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냐.”
두서없이 말을 하며 그는 미친 듯이 날짜를 계산했다. 그리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지금… 휘아… 여자네…….’
탁자 앞에서 걸음을 멈춘 사마휘가 물었다.
“진 호위, 그런 사이가 어떤 사이를 말하는 거지?”
“그러니까… 응응응… 한 사이가 아니라는 거야!”
“응응응이 뭔데?”
대답을 잘못하면 당장 칼이 날아올 분위기라 진무앙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임아가 은신해 있는 게 천만다행이네. 걔가 있었으면 뼈도 추리지 못할 뻔했다… 으으으…….’
속으로 신음을 흘린 진무앙이 번개같이 옆 좌석의 빈 의자를 가져와 사마휘의 앞에 놓았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앉아. 앉아서 이야기하자. 내가 다 설명할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진무앙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모두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그가 왜 저렇게 사마휘를 어려워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마휘는 진무앙을 노려보며 의자에 앉았다.
진무앙은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청연은 너도 알지?”
“얼굴은 처음 보지만 이름이야 많이 들어봤지.”
“쟤는 내 친구야, 친구! 우연한 일로 동행하고 있어. 저얼대 한 이불 쓰는 사이가 아니야. 그런 적도 없고.”
“낙양제일기녀하고 그곳의 호위무사가 친구라고?”
“호위무사하고 기녀가 친구가 되지 말란 법도 없잖아.”
진무앙은 바로 손가락으로 신완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얘는 신완아라고 하는데, 저 곰탱이, 아니, 공야무룡의 처야. 둘 다 내가 마부로 고용한 사람들이지.”
“부부라는 말이야?”
“응. 쟤들은 아직 정식으로 혼례는 치르지 않았지만, 부부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집안에서도 허락했고, 잠자리도 같이하는 사이거든!”
설명을 들은 사마휘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반면 사람들의 의혹은 객잔 지붕을 뚫고 구름 위로 올라갈 지경이 되었다.
자신들을 소개하는데 대체 왜 저런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단 말인가.
결국 의혹을 참지 못한 주신언이 물었다.
“자네와 사마 대주, 서로 안면이 있다는 건 아는데… 어떤 사이인가?”
“그건 왜 묻습니까?”
“그냥. 사마 대주에게 일행을 소개하는 자네 태도가 좀 이상해서.”
“휘아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굽니다. 그리고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친구라고?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자네가 마치 바람을 피우다 조강지처에게 걸린 남자처럼 보일까?”
“내가요? 그렇게 보였습니까?”
“그렇게 보였네.”
“잘못 보신 겁니다. 친구라서 상세하게 설명한 것일 뿐이죠. 하.하.하.”
“음, 웃음소리까지 어색하게 들리는군.”
진무앙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이런 대화는 길면 길수록 끝이 좋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마휘에게 물었다.
“휘아, 저녁은?”
“먹었어.”
“아, 그래? 여긴 언제 왔는데?”
“한 시진 전에.”
“얼마 안 됐네. 조사는?”
“오늘 밤은 쉬고, 내일 아침부터 시작할 예정이야.”
“그래야지. 먼길 왔는데 여독은 풀고 시작하는 게 맞아.”
말을 받는 사마휘의 시선이 오청연을 스쳤다.
“왠지 고양이가 쥐를 생각해 주는 느낌이네.”
대화의 방향이 또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듯하자 진무앙이 소리쳤다.
“나도 그 조사, 도울게!”
사마휘는 뭔가 미심쩍은 것처럼 눈이 가늘어졌지만 주신언의 표정은 눈에 띌 정도로 확 밝아졌다.
그가 마차에서 내리는 진무앙을 멀리서 보고 득달같이 달려온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자네라면 분명 나를 도와줄 거라고 믿었네. 역시 자네는 협의가 무엇인지 아는 남자야.”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진무앙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말했다.
“분타주님은 정말 사람을 다룰 줄 아십니다.”
“그래서 분타주가 된 것 아니겠는가.”
그때까지 가만있던 공야무룡이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주신언에게 물었다.
“주 대협, 주공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성격이셨수?”
“물론일세. 그걸 모르는 걸 보니까 자네는 진 호위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로군.”
공야무룡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아닌데…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진무앙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뭐가 아니라는 거냐, 곰탱아?”
“아니… 뭐…….”
우물우물하던 공야무룡이 불쑥 물었다.
“그런데 주공, 오늘밤은 아매하고 같이 자도 되는 거죠?”
뜻밖의 질문을 받은 진무앙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하.하.하… 이 곰탱이 자식이 내가 언제 동침을 막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하네? 자, 임마. 얼마든지 같이 자라고!”
공야무룡과 신완아의 얼굴에 미소가 햇살처럼 번졌다.
“고맙수.”
“감사해요.”
공야무룡이 신완아의 손을 잡고 벌떡 일어섰다.
진무앙이 멍한 얼굴로 공야무룡에게 물었다.
“왜 일어나냐?”
공야무룡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주공은 밤이 얼마나 짧은지 아슈?”
“뭐?”
“눈 감으면 어느새 아침이라우. 그러니 여기서 헛되이 시간을 보낼 수는 없수. 언제 주공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고.”
쿵쿵.
공야무룡은 진무앙이 잡을까 봐 겁이 나는 듯 신완아와 함께 쿵쾅거리며 뛰듯이 계단을 내려갔다.
이미 들어올 때 별채를 잡아둔 터라 두 사람이 어딜 가는지는 보나마나였다.
진무앙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저 곰탱이 자식이!”
꽉 쥔 그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주신언이 말했다.
“진 호위, 자네의 마부는 성격이 정말 급하구만.”
오청연이 빙그레 웃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받았다.
“성질이 급하다기보다 신혼이라 그런 것 아닐까요?”
주신언이 맞장구쳤다.
“흠, 오 소저의 말이 맞소. 생각해 보니 나도 신혼 때는 저랬던 것 같구려. 하하하.”
오청연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정말 주 대협의 일까지 돕고 갈 거예요?”
“남아일언중천금. 빨리 처리하고 출발하면 늦지 않을 거야.”
“당신이 말을 그처럼 중하게 여기는 남자라는 건 처음 알았네요.”
“네가 모르는 모습이 많지. 나는 신비 그 자체거든.”
“하아… 미안해요. 내가 말을 잘못했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녀가 일어나며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분이니 회포를 푸세요. 나는 가서 쉴게요. 내일 아침에 봐요.”
그녀는 주신언과 사마휘에게 포권을 한 후 별채로 갔다.
진무앙이 주신언에게 말했다.
“주 대협은 안 갑니까?”
“사마 대주와 같이 갈 걸세.”
“휘아는 나와 할 얘기가 남았습니다.”
사마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신언에게 말했다.
“저는 무앙과 좀 더 이야기를 하고 가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세요.”
“그러겠나? 그럼 아쉽지만 먼저 가야겠군.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네. 그때 보세.”
주신언이 떠나자 진무앙의 눈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는 탁자 밑으로 은근히 사마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휘아, 장소를 옮기자.”
“어디로?”
“여긴 보는 눈이 많으니까… 음… 다른 객잔의 별채를 잡아서 밤새도록 못다 한 이야기를 하자.”
“이야기만?”
“그럼! 나 믿지?”
사마휘가 진무앙의 손을 마주 꽉 잡으며 되물었다.
“믿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