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25
325 너는 해결할 수 있고?
다음 날 이른 아침, 대운객잔의 별채 앞 정원.
푹 자고 일어난 오청연과 공야무룡, 신완아는 비슷한 시각에 정원으로 나왔다.
별채를 통째로 빌린 터라 담장 안에는 그들밖에 없었다.
몇 걸음 내딛던 사람들은 근처의 나무 그늘에 털퍼덕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가 진무앙이라는 걸 알아차린 신완아가 놀라 그에게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주공, 어젯밤에 별채에서 주무시는 것 같지 않더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얼굴이 왜 그러세요? 눈 아래가 시커멓… 어머, 코피도 나잖아요!”
어느새 진무앙의 앞에 도착한 오청연과 공야무룡도 황당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진무앙의 얼굴은 눈 그늘로 거무죽죽했고, 코 부근은 말라붙은 핏자국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눈썹이 역팔자로 곤두선 공야무룡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떤 개자식이우? 주공, 말해주시오. 내가 가서 당장 놈의 사지를 찢어놓겠수!”
진무앙이 매가리라고는 한 톨도 없는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아서라.”
비틀거리며 일어선 그가 말을 이었다.
“난 방에 들어가서 운기조식 좀 해야겠다. 기운을 회복하지 않으면 오늘은 움직이지도 못할 거야.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구.”
오청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당신이 남에게 당한 건 아닐 테고…….”
“아니긴. 나도 당해. 천하는 넓고, 무서운 사람도 무지막지하게 많다고.”
진무앙은 어기적거리며 별채로 들어갔다.
다리가 풀릴 대로 풀려 있어서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걸음걸이였다.
남은 세 사람은 영문을 알 수 없어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갑자기 공야무룡이 코를 킁킁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매, 그런데, 어디서 밤꽃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
볼이 능금처럼 붉게 물든 신완아가 그의 손등을 살짝 꼬집으며 속삭였다.
“가가, 오 소저도 계신데 그런 말을 막 하면 어떻게 해요! 우리한테서 나는 거잖아요.”
“응? 나는 그냥 냄새가 방에서 맡은 거보다 좀 심해진 거 같아서…….”
신완아가 공야무룡의 팔을 부여잡으며 잇새로 뱉듯이 말했다.
“그만해요, 가가!”
어색해진 공야무룡은 뻘쭘해진 표정으로 먼 산을 보았다.
오청연은 못 들은 척하며 객잔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아침 식사 시간이 다 된 것이다.
나란히 걸으며 신완아가 오청연에게에게 말했다.
“주공의 식사는 제가 챙겨 드릴게요.”
“그렇게 해.”
한 시진 후.
사마휘와 주신언이 별채에 도착했다.
어제 헤어질 때 아침에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한 터라 그들은 바로 진무앙의 방으로 갔다.
이미 진무앙 일행은 모두 방에 모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본 공야무룡이 고개를 갸웃하며 신완아에게 물었다.
“사마휘라는 친구 얼굴이 원래 저렇게 잘생겼었나? 어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오늘은 아주 후광을 두른 것처럼 빛이 나네. 아매 생각은 어때?”
“제 눈에도 그렇게 보여요.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고, 기분도 어제보다 훨씬 좋아 보여요. 그래도 가가보다는 멋있지 않아요.”
“그거야 당연하지. 저런 샌님 같은 친구보다야 내가 백배는 더 상남자지.”
“맞아요!”
진무앙이 기도 안 차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들이 이제는 아주 대놓고 꼴값을 떠네. 그것도 쌍으로!”
공야무룡과 신완아는 즉시 입을 닫았다.
주신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저 두 사람의 말도 틀린 건 아닐세. 나도 오늘 아침 사마 대주를 만나고 그의 미모에 감탄했으니까.”
“남자한테 미모라고 하는 거 아닙니다.”
“그렇긴 하지만 사마 대주의 저 수려한 외모를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지 않은가.”
사마휘가 진무앙을 째려보며 말했다.
“무앙, 내 미모에 불만 있어?”
진무앙은 즉시 고개를 휘휘 저으며 손사래까지 쳤다.
“그럴 리가! 네가 절세미남이라는 건 천하가 인정하는 사실인데, 내가 부인할 리가 있겠냐?”
“진심이라곤 한 올도 느껴지지 않는군.”
진무앙이 바람처럼 의자를 가져와 정중하게 그녀의 앞에 놓으며 말했다.
“나는 언제나 너한테는 진심이야!”
그를 보던 사람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만큼 사마휘를 대하는 진무앙의 태도는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오청연이 심어술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 사마휘에게 약점이라도 잡힌 거 있어요?] [없어.] [그런데 왜 그래요?] [알려고 하지 마. 알면 다쳐.] […….]모두 자리에 앉자 주신언이 말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조사해야 하는 곳은 본 맹의 형주 분타일세. 그곳에서는 오십여 명에 이르는 맹도들이 한날한시에 사라졌네.”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죽은 게 아니라 사라졌다는 겁니까?”
“맞네.”
“어제는 궤멸당했다고 했잖습니까?”
“모두 사라져서 그런 표현을 썼을 뿐이네. 어차피 의미 전달엔 지장이 없으니까.”
“궤멸당한 것과 사라졌다는 건 어감의 차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주신언이 싱긋 웃었다.
“다른 차이를 자네가 찾아줄 거라고 믿겠네.”
“어쩐지 일을 저한테 떠미는 듯한 느낌인데요?”
“그렇지 않네. 나는 그저 자네의 능력을 믿는 걸세.”
“개방과 풍령부운전에서 조사했을 텐데, 아무것도 안 나왔습니까?”
주신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 이런저런 흔적은 남아 있었지만 거기서 추적의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고 들었네.”
“그들이 찾지 못했다면, 이번 일 그렇게 쉽지는 않겠네요.”
“쉬웠다면 내가 자네에게 말을 했겠는가.”
주신언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찾지 못했다고 우리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지. 가보세. 그 많은 숫자가 동시에 사라졌으니 분타에 뭐라도 남아 있을 걸세.”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건의 끝을 빨리 보려면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폭주가 조금 늦춰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무한정 머물 수는 없었으니까.
무림맹 형주 분타는 수많은 상가가 밀집해 있는 북쪽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규모가 상당히 커서 오십 명이 아니라 백 명이 머물러도 될 것 같았다.
입구엔 출입금지라고 쓰인 팻말이 붙어 있었고, 두 명의 하급 관원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진무앙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경계했다.
하지만 주신언이 무림맹 분타주의 증명하는 철패를 꺼내 보이자 두말없이 통과시켜 주었다.
분타의 내부는 어지러웠다.
깨진 기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검게 말라붙은 핏자국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가볍게 사방을 돌아본 주신언이 진무앙에게 말했다.
“변고를 듣고 조사했던 풍령부운전 협인들의 보고에 의하면, 이런 소란이 일어났는데도 목격자는커녕 심지어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조차 없다고 하네.”
풍령부운전은 무림맹의 정보 조직으로 협인은 그곳에서 일하는 최하급 무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최하급이라고는 하지만 협인은 유사시에 해당 지역 분타주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만큼 풍령부운전의 권력은 막강했고, 그 힘은 천하최강이라고 인정받는 그들의 정보력에서 나왔다.
“흠…….”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은 상가 밀집 지역의 한복판이었다.
유동 인구는 물론이고, 거주자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목격자가 없다는 건 기이한 일이었다.
“협인들이 따로 조사도 진행했습니까?”
“물론일세. 하지만 그들도 건진 건 없었네.”
오청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진무앙에게 말했다.
“누군가 단음강벽으로 소음을 통제했던 걸까요? 그렇지 않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잖아요.”
“네 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범인이 형주 분타 전체를 단음강벽으로 차단할 무공의 소유자여야 해. 그건 천하삼정의 주인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거야. 강시나 흡혈귀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짐작이 가는 게 있어요?”
“글쎄…….”
진무앙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끝을 흐렸다.
뭔가 생각하는 기색이라 오청연은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잠시 후 진무앙이 불쑥 주신언에게 물었다.
“무림맹은 이 사건의 범인이 강시나 흡혈귀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다네.”
“다른 사건의 목격자를 확보했기 때문이겠죠?”
“역시 자네하고는 말이 잘 통해. 맞네.”
“피해자도 확보했습니까?”
주신언은 고개를 저었다.
“피해자는 이곳과 마찬가지로 연기처럼 사라졌네. 그래서 확보할 수 없었네.”
“목격자는 뭐라고 합니까? 범인이 피해자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았을 거 아닙니까?”
“범인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찰나지간에 강시나 흡혈귀로 변했다더군. 그러고는 그들도 범인과 함께 다른 피해 대상을 찾아다녔다고 하네.”
“목격자가 본 겁니까?”
“맞네.”
“그래서 피해자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거로군요.”
“그렇네.”
진무앙이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생각보다 피곤한 일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주신언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했다.
“기운 내게. 나는 자네를 굳게 믿고 있다네.”
진무앙의 눈이 별처럼 번뜩였다.
“감격스럽습니다.”
“뭐가 말인가?”
“나를 믿는다는 말을 듣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안 날 지경이거든요.”
주신언이 격정적인 어조로 말을 받았다.
“그럴 수가! 자네처럼 능력이 탁월하고 협의심이 넘치는 사람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는단 말인가!”
진무앙의 얼굴에서 감격한 표정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눈살을 가볍게 찌푸린 그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주 대협, 아무리 부려 먹기 위해서라고 해도 적당히 하세요. 그렇게 선을 확 넘어버리면 거짓말이라는 게 너무 잘 보이잖습니까.”
그래도 주신언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티가 났나?”
“내가 어린앱니까?”
“험험…….”
진무앙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잠시 둘러보죠. 협인들이 찾지 못한 걸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자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게나.”
분타 내부를 천천히 돌아보는 진무앙의 눈에서 검푸른 빛이 일렁였다.
다른 장소에도 핏자국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집중적으로 남아 있는 곳은 정문과 지부 건물 사이에 있는 연무장이었다.
진무앙은 연무장 중앙에 섰다. 오청연과 사마휘가 그중 가운데 두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그런데 바닥을 훑어보는 오청연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진무앙이 그녀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너도 느낀 모양이네?”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어요?”
“아마도.”
“그럼… 정말 혼돈성흔과 결계?”
진무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일, 그냥 피곤한 일 정도가 아닐 것 같다.”
혼돈성흔과 결계는 구화산의 무저불회곡에 나타났던 다른 세상의 힘이다.
고개를 갸웃한 사마휘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혼돈성흔? 결계? 처음 듣는 건데, 그게 뭐야?”
“그런 게 있어.”
사마휘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대충 넘어갈 상황이 아니잖아.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거야?”
“맞아.”
“그럼 그게 무엇인지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지금 그것에 대해 말을 해줘도 너는 이해하지 못해.”
“그래서 말을 안 하겠다는 거야?”
“나중에 직접 네 눈으로 봐. 지금 네게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그게 더 나아.”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그게 뭔데?”
“이 사건, 무림맹은 해결하지 못해.”
“너는 해결할 수 있고?”
진무앙이 힘차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오청연이 진무앙에게 불쑥 물었다.
“그런데 그게 왜 여기에 나타난 거죠? 아니, 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던 거죠?”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