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27
327 왜 친구를 합니까?
어두운 밤, 형주부 관아 근처의 허름한 창고 안.
구예는 아무렇게나 쌓인 잡동사니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덜덜덜-
소녀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팔짱을 끼고 새우처럼 웅크렸다.
꼬르륵- 꼬르륵-
허기진 배에서는 쉴 새 없이 소리가 났다. 하지만 소녀는 밖으로 나가 음식을 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악귀처럼 웃는 그가 나타나 부모님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의 심장에도 칼을 꽂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흑흑… 흑흑…….”
억눌린 흐느낌과 함께 소녀의 크고 맑은 눈에 차오른 눈물이 넘쳐흘렀다.
하룻밤 새에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진 얼굴은 얼마 가지 않아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아빠… 엄마…….”
소녀의 눈에 부모님을 죽인 범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자 분노보다 두려움과 절망이 작은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어제 처음 범인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전에도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큰 두려움과 절망을 느꼈다.
구예는 열네 살이 될 때까지 동네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와 이웃들이 감탄할 만큼 영리했고, 생각이 깊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범인을 피해 도주할 수 있었다.
힘든 도주의 와중에도 그녀는 이웃이나 부모님의 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것을 본 순간부터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도움을 청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은 그녀를 안전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건 그녀가 본 범인의 얼굴 때문이었다.
구예의 입술 사이로 깊은 절망에 빠진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줘요…….”
숨죽인 흐느낌, 하지만 그 안에는 절망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처절한 한과 강렬한 증오가 담겨 있었다.
“엄마하고 아빠는 날 지키려다 돌아가셨어……. 내가 꼭… 꼭… 그 악마를 죽여 버릴 거야……. 흑흑흑.”
* * *
어둠이 내린 형주부 내 거리.
죽립을 삐딱하게 쓰고 휘적휘적 걷던 진무앙이 걸음을 멈췄다.
당연히 말없이 그의 뒤를 따르던 오청연과 공야무룡, 신완아도 흠칫하며 섰다.
구칠의 집을 나온 그들은 벌써 두 시진째 거리를 수색하고 있었다.
오청연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왜 서요? 뭐라도 찾은 거예요?”
진무앙이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아니, 목이 말라서.”
진무앙은 근처에 있는 다루로 갔다. 그리고 가게 밖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죽립을 벗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의 곁에 앉았다.
주문을 받은 점소이가 차가 가득 든 주전자와 네 개의 잔을 탁자 위에 놓고 갔다.
오청연이 말했다.
“아이가 언제 범인에게 발견될지 알 수 없는데 이러고 있을 시간 있어요?”
“쉽게 잡힐 아이가 아니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차를 홀짝이며 거리의 양옆으로 거미줄처럼 난 골목을 훑어보던 진무앙이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정말 귀찮네.”
“뭐가요?”
“구예라는 그 아이, 너무 똑똑해. 그래서 귀찮아.”
구칠 부부의 아이가 열네 살 된 구예라는 딸이라는 걸 알아내는 건 아주 쉬웠다. 이웃 중에 아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오청연이 물었다.
“그 아이가 당신이 추적에 애를 먹을 정도로 영리하다는 거예요?”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추종술을 배웠을 리가 없는데도 기가 막힐 만큼 흔적을 잘 지워. 추적에 혼란을 주는 짓도 잘하고.”
“당신을 귀찮게 만들 정도면 범인도 아직 아이를 찾아내지 못했겠네요.”
“그럴 거야. 하지만 아이의 재능이 아무리 출중해도 계속 그놈의 마수를 피해 도망 다니지는 못해. 결국 잡힐 거야.”
같은 생각이었던 터라 오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앙의 말이 이어졌다.
“얘는 지금 고립무원의 상태로 보여.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 같아.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요?”
“아마도 그렇겠지. 그리고 아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칭찬받을 만해. 하지만 이대로는 오래가지 못하고 잡힐 거야. 도주는 한 사람의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안전한 도주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재능 외에도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
지리에 익숙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몸을 숨길 은신처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도 필요했다.
즉, 자금과 믿을 수 있는 조력자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구예는 두 가지 모두 갖고 있지 않았다.
오청연이 말을 받았다.
“아이가 가장 참기 힘든 건 배고픔일 거예요. 벌써 하루가 지나고 있으니 어떻게든 음식을 구하려고 할 거예요.”
“지금까지 아이가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설령 돈이 있어도 음식을 사 먹으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동감이에요. 어디선가 훔치려고 하겠죠. 아이가 당장 허기를 면할 수 있는 양만 훔칠까요? 아니면 한 번에 여러 날을 버틸 수 있는 양을 훔칠까요? 당신은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후자.”
“다량?”
“응.”
“왜요?”
“도주 경험이 없는 데다 형주부를 벗어날 생각도 갖지 않은 것 같으니까.”
오청연의 눈가에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
“위험해지겠군요.”
“그렇겠지.”
소량을 훔치면 도난당한 피해자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다량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진짜 둔하거나 음식을 산처럼 쌓아놓고 산다면 몰라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도주하며 추적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아이라면, 오히려 다량의 식량을 한 번에 손에 넣어 여러 날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숨어 있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단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훔쳐 형주를 빠져나간다면 후자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예가 도주한 경로를 추적한 진무앙은 아이가 형주를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렇다면 아이가 한 번에 다량의 음식을 훔치는 건 정말 위험했다.
“아이가 그런 짓을 하기 전에 찾았으면 좋겠는데… 힘들겠죠?”
진무앙은 혀를 차며 대답했다.
“응. 애가 너무 잘 숨어.”
구예는 구칠 부부나 자신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접근하지 않았다.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관련이 있는 지역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진무앙이 잘 숨는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쫓는 건 시간 낭비가 너무 심해. 방법을 좀 바꿀 필요가 있겠어.”
“어떻게요?”
“그 아이가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생각해 보자. 정확하게 그것을 예측할 수 있다면 아이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진무앙이 오청연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 왜 형주를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걸까?”
“글쎄요…….”
오청연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천천히 거리를 훑어보았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은 하잖아요. 혹시 그 아이는 복수를 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요?”
“복수라…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제가 구예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닌데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좋아. 만약 복수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려고 할까? 열네 살 여아가 무공을 익힌 자를 직접 죽이려고 하지는 않을 텐데. 곰탱이하고 완아도 생각해 봐.”
오청연과 공야무룡, 신완아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는 동안 진무앙은 말없이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신완아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아이가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면 먼저 범인이 어떤 놈인지부터 알아내야 할 것 같아요.”
“좋은 지적이다. 완아는 놈이 어떤 개자식 같냐?”
“음… 구칠 부부가 놈을 방에 들인 걸 보면, 면식범이거나 함부로 무시하기 힘든 신분의 소유자일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은 놈의 얼굴은 알아도 친분이 깊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부부가 죽은 자리에 구예가 없었으니까요. 만약 부부가 그와 친분이 있었다면 아이도 그 자리에 있었을 거예요. 그에게 인사시켰을 테니까요.”
“친분은 없고, 얼굴만 아는 자, 하지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부부가 거절할 수 없었던 자, 그러니 신분이 높은 놈일 것이다?”
“예. 어린아이임에도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도 추측의 근거 중 하나예요.”
“도움을 청한 사람들이 잡을 수 없을 만큼 범인의 신분이 높다?”
“예.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오히려 범인에게 자신의 행적이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네 추측이 맞다고 치자. 그럼 아이는 놈에게 어떤 식으로 복수하려 할까?”
“말씀하신 것처럼 굉장히 똑똑한 아이라 직접 그를 죽이려는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겠지.”
“그럼 남는 방법은 한 가지뿐인 것 같아요.”
“그게 뭔데?”
“차도살인이요.”
“남의 손을 빌려 복수하려 한다는 거냐?”
“예.”
“좋아. 그럼 아이가 빌릴 수 있는 손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 손을 어떻게 빌릴까?”
“죄송해요. 그건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진무앙이 오청연을 돌아보았다.
“너는?”
그때 공야무룡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주공, 나한테는 왜 안 물어보슈?”
“물어봐야 되는 거였냐?”
“당연한 거 아니우? 나도 의견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란 말이유.”
“그래? 그럼 들어보자. 네 의견은 뭐냐?”
공야무룡이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음… 그게 그러니까… 애가 우리를 찾아오거나 하지 않겠수? 걔가 살 수 있는 길은 우리를 만나는 것뿐이잖수.”
진무앙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죽을래? 우리가 누군지 알고 애가 찾아와!”
신완아가 슬그머니 공야무룡의 앞을 막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주공.”
그걸 본 진무앙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곰탱아, 완아 덕분에 산 줄 알아라.”
공야무룡이 지지 않고 한마디를 하려고 하자 신완아가 손톱으로 그의 팔뚝을 있는 힘껏 꼬집으며 눈을 흘겼다.
그때였다.
“여기 있었구먼.”
반가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사마휘와 주신언이 나타났다.
아무도 권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근처의 의자를 가져와 태연하게 앉았다.
그리고 주신언이 말문을 열었다.
“내가 어떤 정보를 가져왔는지 짐작할 수 있겠나?”
“주 대협도 내가 점쟁이인 줄 아는 겁니까?”
“험험, 물론 아닐세.”
“시답잖은 소리는 하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십시오. 저 곰탱이 때문에 내 심사가 편치 않으니까요.”
“허, 공야 공자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
“주 대협하고는 관련 없는 거니까 호기심은 거두시죠.”
“매정한 친구 같으니라고.”
진무앙은 의자에 등을 묻은 불량한 자세로 심드렁하게 말을 받았다.
“친구라는 말은 사양합니다. 난 남자하고 친구 같은 거 안 합니다.”
“그럼 여자하고는 친구를 맺는다는 말인가?”
진무앙은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여자하고는 연애를 해야지, 왜 친구를 합니까?”
“그럼 자네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없습니다.”
“음… 알고 보니 자네는 불쌍한 남자였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