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34
334 안 그래도 수월해
덥석.
진무앙은 상철의 멱살을 한 손으로 거머쥐었다.
“캑… 캑… 놔라… 감히 내 몸에 천한 손을 대다니… 캑캑… 죽고 싶지 않으면… 캑캑… 어서 나를 놔라… 캑캑…….”
물론 진무앙은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고 있지 않았다.
“개도 아닌 것이 왜 이렇게 짖어대?”
그는 구시렁거리며 손에 힘을 주었다.
꾸욱!
숨골이 막힌 상철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마저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진무앙이 마혈을 짚어버렸기 때문이다.
오청연이 그에게 물었다.
“어쩌려고요?”
“뭘 어째? 이렇게 하는 거지.”
심드렁하게 대답한 진무앙은 상철을 구예의 앞에 휙 하고 집어던졌다.
무기력하게 허공을 가로지른 상철이 나무토막처럼 나뒹굴었다.
데굴데굴-
구르기가 멈춘 곳은 구예의 발 바로 앞이었다.
진무앙이 손을 가볍게 휘젓자 상철의 상의 자락이 술술 풀어 헤쳐졌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허공섭물 신공에 반쯤 넋이 나가 있던 구예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상철의 풀어 헤쳐진 가슴팍을 보는 소녀의 눈매가 격렬하게 떨렸다.
그곳에는 한 자루 단검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구예는 그 단검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부모님을 살해한 흉기를 어떻게 몰라 볼 수 있겠나.
진무앙이 구예에게 말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게 있어서 내 손으로 저놈의 목을 꺾어버릴 생각이었는데, 염왕시가 되지 않은 널 보고 마음이 변했다.”
구예는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상철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진무앙을 보며 귀를 기울였다.
“구예, 네게 직접 부모님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물론, 네가 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저놈은 내 손에 죽을 테니까. 어떻게 하겠냐?”
오청연은 놀란 눈으로 진무앙을 돌아보았다.
설마 그가 구예에게 이런 선택권을 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아이는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았다고요.”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잊었냐? 이 장원에서 너와 내 손에 죽은 사람들이 누구 때문에 염왕시가 되었는지? 그들이 괴물이 될 만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었냐?”
오청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염왕주를 발동시켰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구예가 예상하고 있었는지는 미지수였다.
아직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소녀의 대답과 상관없이 결과는 명확했다.
많은 사람이 염왕시가 되었고, 그중 상당수가 진무앙과 그녀의 손에 죽은 것이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여기서 저놈을 죽이지 않는다고 저 아이의 손에 묻은 핏물이 사라지겠냐?”
오청연뿐만 아니라 구예도 진무앙의 말을 들었다.
안개의 벽에서 아우성치는 염왕시들을 돌아본 소녀의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구예는 옆에 있는 소년에게 구함(?)을 받은 후 계속 바위 뒤에 숨어 있어서 상황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또렷하게 자각한 것이다.
입술을 질끈 깨문 구예의 눈에 새파란 독기가 피어올랐다.
마음을 굳힌 소녀는 상철의 가슴팍에 놓인 단검을 집어 들었다.
입술이 파랗게 질린 상철이 다급하게 구예에게 말했다.
“제발… 제발 살려줘! 네 부모는… 그때는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살려주면…….”
그의 말은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구예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검으로 상철의 심장을 연거푸 내리찍었기 때문이다.
푹푹푹!
“으아악!”
붉은 피가 튀고, 처절한 비명이 정원을 뒤흔들었다.
끄아아아아-
피냄새를 맡은 염왕시들이 안개를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며 괴성을 질러댔다.
푸푸푸푹!
계속 움직이던 구예의 손이 어느 순간 아래로 축 늘어졌다.
눈을 부릅뜬 상철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소녀의 손가락이 힘없이 풀리며 단검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챙그랑.
묵묵히 지켜보던 진무앙이 손을 움직였다.
상철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안개의 장벽으로 날아갔다.
슈욱-
끄아아아아-
염왕시들이 미친 듯이 손을 휘저으며 안개를 파고드는 상철의 사지를 부여잡았다.
오청연이 가늘게 한숨을 내쉬며 구예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오청연은 구예를 잡아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구예의 마음에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진무앙은 안개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정자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일비영은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진무앙이 흰 이를 드러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거기 복면 쓴 떨거지. 염왕주를 만든 게 너냐? 음, 혼자 할 만한 일은 아니니까… 네가 속한 조직이 벌인 짓이겠지?”
일비영의 굳게 다문 입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형주에 들어오는 걸 본 것도 너희지? 그래서 내가 염왕주에 대해 알아내기 전에 그걸 빨리 되찾으라고 상철을 닦달했을 거고.”
일비영은 묵묵히 진무앙을 보았다.
“입 다물면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진무앙은 한 걸음을 내딛었다.
다음 순간, 그는 정자 안에서 일비영을 마주보고 있었다.
일비영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이미 진무앙이 신기한 무기로 결계의 안개를 밀어내는 것도 봤고, 가공할 허공섭물로 상철을 처리하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도 그의 경이로운 보법을 보니 다시 심장이 떨렸다.
진무앙이 일비영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저항을 포기한 걸 보니까 내 성격을 아주 잘 아는 놈이네. 누구냐, 너?”
우두두두둑-
입을 꾹 다문 일비영의 어깨가 푹 내려앉으며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를 악문 그가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말 안 해?”
진무앙은 일비영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일비영의 몸 안을 무인지경처럼 흘러다녔다.
셋을 셀 시간이 지나기 전에 일비영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하며 칠공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진무앙이 펼친 것은 ‘단심루’라는 암왕사신류의 고문 수법이었다.
무림 최고의 고문수법이라는 사해집마부의 ‘혈루지’가 이것에서 파생된 무공일 만큼 단심루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펼쳤는데도 진무앙은 일비영의 입에서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푸확!
검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한 일비영이 앞으로 픽하고 고꾸라졌다.
그런 그의 숨은 바닥에 닿기 전에 끊어졌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갑작스러운 일비영의 죽음에도 진무앙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어느새 구예를 안고 정자 앞에 도착한 오청연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어떻게 돼. 죽은 거지.”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아요. 왜 죽은 거예요? 당신이 공력 조절을 잘못했을 리도 없는데.”
“섭혼술이나 고문을 받으면 심맥이 끊어지는 심공을 익힌 놈이야. 고문을 당하니까 그게 반사적으로 발동된 거지.”
“당신의 고문술로도 그 심공을 견제하지 못한 거예요?”
“응. 하지만 상관없어. 필요한 단서는 얻었으니까.”
“그는 말을 하지 못하고 죽었잖아요?”
“단서는 말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오청연의 눈이 반짝였다.
“얻은 게 뭔데요?”
“이놈이 익힌 심공의 기반이 된 무공, 나한테 꽤 익숙한 거야. 예전에 그걸 익힌 놈들하고 드잡이질도 여러 번 했지.”
“당신도 아는 무공에서 저자의 심공이 유래되었다는 거예요?”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무공인데요?”
“대역천혈신마마공.”
오청연의 안색이 굳어졌다.
“마계종가의 그 끔찍한 마공을 말하는 건가요?”
“응.”
오청연이 놀란 얼굴로 일비영을 보며 물었다.
“저자가 어떻게 그 마공을……?”
“십만대산에서 전신마가의 흔적도 보았으면서 뭘 그렇게 놀라?”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전신마가뿐만 아니라 종가도 이곳에 터전을 마련한 모양이야. 어쩌면 성혈마가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호박씨를 까고 있을지 모르지.”
“마계 삼가가 모두 이곳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정황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진무앙이 연이어 물었다.
“구예는?”
“탈진해서 정신을 잃었어요.”
“며칠 전까지 장신구를 갖고 놀던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긴 했지.”
중얼거린 진무앙의 시선이 오청연의 옆을 향했다.
그곳엔 구예와 함께 있던 소년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보며 서 있었다.
진무앙이 말했다.
“무량철척을 들고 있는 거 보니까 모산파 제자인 것 같은데, 맞냐?”
소년은 손에 길이가 석 자에 달하는 철척(쇠로 만든 자)을 들고 있었다.
소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저는 모산파 제자 선유방이라고 합니다.”
선유방은 진무앙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눈은 별처럼 빛났고, 목소리도 활력이 넘쳤다.
모든 것을 목격했는데도 겁먹은 기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선유방이 배포가 남달리 큰 소년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넌 어쩌다가 구예와 함께 있게 된 거냐?”
“이야기가 긴데, 여기서 들으실 거예요? 그럴 시간 있어요?”
거침없는 대꾸였다.
진무앙은 쓰게 웃었다.
선유방의 말이 맞았다.
이야기는 이곳 일을 마무리 지은 뒤에 들어도 늦지 않았다.
진무앙은 구석에 모여 오들오들 떨고 있는 정회와 두 명의 하녀를 돌아보았다.
그가 하녀들에게 말했다.
“살고 싶으면 따라와라.”
하녀들이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나왔다.
정회도 엉거주춤 일어나 그녀들과 함께 움직이려 했다.
그런 그를 진무앙이 손을 들어 막았다.
“넌 네 힘으로 알아서 나와라.”
정회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건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는 털썩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
“내… 내가 무슨 수로 혼자 저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안개를 뚫고 나간단 말입니까? 제발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내가 왜 네 사정을 고려해야 하지? 따라오면 괴물이 손을 쓰기 전에 먼저 나한테 죽을 거다.”
진무앙은 심드렁하게 말한 후 등을 돌렸다.
그 뒤를 구예를 안은 오청연과 선유방이 따랐다.
절망에 빠진 정회가 힘없이 주저앉을 때 정자의 상공에 떠 있던 세 개의 마병이 진무앙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그러자 물러나 있던 회색 안개가 밀물처럼 정자로 몰려왔다.
공포에 질린 정회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정자 밖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그곳도 이미 안개에 점령당해 있었다.
정회의 모습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데는 숨 한 번 쉴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마병의 호위를 받는 진무앙 일행의 주변 일 장 이내로는 안개가 침범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염왕시의 공격도 없었다.
오청연이 진무앙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편했을 텐데, 왜 안 했어요?”
“그때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요?”
“짝퉁 결계와 급조한 염왕시 따위를 상대하면서 내가 귀찮게 생각이라는 것까지 해야 한다는 거냐?”
“그러면 안 되나요? 생각도 하고, 또 좀 더 신중하게 움직이면 일을 풀어나가는 게 훨씬 수월하잖아요.”
“흥! 안 그래도 수월해.”
진무앙은 코웃음을 쳤다.
“벽창호!”
“꼬우면 네가 앞장서든가.”
말문이 막힌 오청연은 한숨을 포옥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진무앙 일행은 장원의 대문 앞에 설 수 있었다.
밖에 웅성거리고 있는 주신언과 사마휘, 공야무룡과 신완아, 그리고 지부 대인 상모걸 등이 보였다.
아직 안개를 벗어난 건 아니어서 그들은 주신언 등을 볼 수 있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았다.
즉, 주신언 등은 진무앙 일행을 볼 수 없었다.
진무앙이 움직이려 하지 않자 오청연이 물었다.
“안 나갈 거예요?”
“마무리는 짓고 나가야지. 그냥 나가면 귀찮아져.”
“무슨 마무리요?”
“이런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