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36
336 더한 놈일 수도 있습니다
대운객잔 별채 진무앙의 방.
진무앙은 마지막으로 들어온 공야무룡을 보며 중얼거렸다.
“작은 방이 아닌데 저 곰탱이 자식이 들어오니까 손바닥만 한 골방처럼 보이네.”
공야무룡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내 듬직한 덩치가 마음에 안 들면 마부 해고하슈.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니까.”
진무앙이 눈을 치켜뜨며 구시렁거렸다.
“완아만 없었으면 벌써 저 주둥이에 한 방 먹여줬을 건데.”
흠칫한 신완아가 공야무룡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진무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에효… 그래그래, 너희 천생연분인 거 인정하마. 평생 그러고들 살아라.”
오청연이 빙긋 웃으며 한마디를 했다.
“구박하는 거예요? 부러워하는 거예요?”
진무앙이 그녀를 째려보며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너라도 좀 입 다물고 가만있어 주면 안 되겠냐?”
“싫은데요.”
“잘났다.”
포기한 진무앙이 침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구예가 누워 있었다.
소녀에게서 눈을 뗀 진무앙은 탁자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주신언, 사마휘, 오청연, 공야무룡, 신완아, 그리고 선유방.
그리고 탁자 위에는 거무튀튀한 검은 구슬, 염왕주가 놓여 있었다.
진무앙이 선유방을 돌아보며 그를 불렀다.
“모산파 꼬마.”
선유방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예.”
“말해봐라. 어떻게 된 거냐?”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선유방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두 달 전, 복면을 쓴 놈들이 야심한 시각에 형산파를 공격해서 멸문시켰어요.”
충격을 받은 주신언과 사마휘는 눈을 부릅떴다.
사마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선유방에게 물었다.
“형산파가 멸문당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야. 그렇게 엄청난 사건이 왜 알려지지 않았지?”
형산파는 말석이긴 하지만 구대문파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유서 깊은 거대 문파였다.
그런 문파의 멸문이 두 달이나 지난 지금까지 강호에 소문이 나지 않았다는 건 믿기 힘든 것이었다.
주신언과 그녀가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건 무림맹의 풍령부운전조차 아직 그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봐야 했다.
선유방이 대답했다.
“복면 무리가 그 후에도 형산 전체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어서 그래요.”
말을 잇는 소년의 눈에 분노와 슬픔이 깃들었다.
“그때 저는 사부님과 함께 형산파에 머물고 있었는데… 사부님은 저를 숨겨놓으시고 놈들과 싸우다가 돌아가셨어요.”
진무앙이 불쑥 물었다.
“염왕주에 담긴 원혼이 네 사부와 형산파 식솔들이냐?”
소년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렇지 않으면 상식을 벗어날 만큼 좋은 염왕주의 품질이 말이 안 되니까.”
사마휘가 물었다.
“오랫동안 수행을 계속한 형산파 제자들의 원혼을 품어서 염왕주의 질이 좋다는 말이야?”
“응.”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구예가 갖고 있던 검은 구슬, 염왕주의 정체와 생성 방법, 그리고 용도와 위력에 대해 이미 간략하게 설명을 해준 뒤였다.
일행 중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주신언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도 곧 수긍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은 일반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투성이였으니까.
선유방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형산파의 비밀 은신처에 숨어서 그놈들이 염왕주에 사람들의 혼을 가두는 대법을 행하는 걸 봤어요. 그자들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여서 그 원혼을 염왕주에 흡수시켰어요.”
진무앙이 물었다.
“희생자가 몇 명쯤 되냐?”
“천수백 명이 넘어요. 놈들은 형산파에 있는 사람은 애어른 상관없이 모두 죽였으니까요.”
“대법은 얼마 동안 진행된 거냐?”
“칠 일이요. 그리고 염왕주가 완성되자 놈들의 우두머리가 복면인 몇 명과 함께 그것을 갖고 형산을 내려갔어요. 저도 그놈을 따라 하산했고요.”
“형주로 바로 온 게 아니라는 말이냐?”
“예. 우두머리는 염왕주로 형산의 화전민 마을과 인근 작은 마을에서 괴물을 만들어냈어요. 그렇게 만든 괴물을 어딘가로 데리고 갔고요. 당시 염왕주로 결계를 만들어낸 놈이 바로 상철이었어요.”
“놈들이 형주엔 언제 들어온 거냐?”
“그들은 열흘가량 형산 근처에 머문 후에 형주에 들어왔어요. 그후엔 계속 염왕주로 괴물들을 만들어냈고, 형산의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갔던 것처럼 그들도 어딘가로 끌고 갔어요.”
주신언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모처로 데리고 갔다고? 그곳이 어딘 줄 아느냐?”
선유방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소년의 말은 계속되었다.
“저는 계속 놈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다가 며칠 전에 무림맹 형주 분타를 공격하는 상철을 발견하고 그를 공격했어요. 그의 무공은 보잘것없어서 제압이 가능했는데, 마지막에 괴물이 방해를 해서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어요.”
진무앙이 물었다.
“네 목적이 염왕주를 탈취하는 거였냐?”
“예.”
“염왕주에 네 사부의 영혼도 포박당해 있는 거냐?”
선유방은 서글픈 눈으로 탁자 위의 염왕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사부님은 등선하지 못하고 저 안에 갇혀 계세요. 그 악마 같은 자들이 대법으로 그분을 가둔 거예요.”
“그렇게 계속 쫓다가 오늘 장가장에 가게 된 거고?”
“예.”
“복면을 쓴 자들이 속한 세력이 어딘지 들은 게 있냐?”
“무슨 련이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음… 숭천무련이라고 했던 거 같아요.”
“숭천무련?”
“예.”
진무앙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저 이름 들어본 적 있는 사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숭천무련은 진무앙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처음 듣는 이름인 것이다.
선유방의 짧지 않은 이야기가 끝나자 방 안은 침묵에 휩싸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무림맹 소속인 주신언과 사마휘가 받은 심적인 충격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공야무룡과 신완아도 생각이 많아지긴 매한가지였다.
사해집마부를 집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형산파를 멸문시킨 신비문파 숭천무련의 존재가 주는 압박감은 가볍지 않았다.
그들이 언제 사해집마부를 공격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오청연도 마계와 관련이 있는 염왕주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 속이 편하지 않았고.
그녀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숭천무련이라는 자들이 염왕시를 끌어모으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들로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그들이 누구냐에 따라 목적도 달라지겠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무앙은 대답은 하지 않고 선유방에게 질문을 했다.
“꼬마야, 형산의 마을과 형주부에서 염왕시가 된 사람들이 몇 명쯤 되는지 아냐?”
“사람들을 염왕시로 만드는 게 무조건 성공하는 것 아닌 것 같았어요. 열 중 아홉은 피를 뿜으며 죽더라고요. 아무튼 제가 본 건 일백오십 명쯤 될 거예요. 계속 놈들을 따라다니며 본 것이기 때문에 그 숫자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거예요.”
“일백오십 명이라…….”
팔짱을 낀 진무앙은 등을 의자에 깊숙이 묻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그는 시선을 내려 오청연을 보며 입을 열었다.
“놈들이 염왕시로 뭘 할까 물었지?”
“예.”
“무림 정복 아니면 무림 말살. 그런데, 내가 볼 때는 후자를 꿈꾸는 자인 것 같아.”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주신언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림 말살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꿈꾸는 자들이 있단 말인가?”
“염왕시가 어떤 물건인지 제대로 알면 주 대협도 망상이라는 말을 하지 못할 겁니다.”
“그게 사람을 물면 괴물이 된다는 건 아네. 하지만 그런 걸로 어떻게 무림 전체와 싸운단 말인가?”
“주 대협, 혈마강시를 아십니까?”
“사백 년 전 고금팔대고수의 일인인 철혈전마에게 괴멸된 혈륜마방의 그 혈마강시 말인가?”
“맞습니다.”
“무림이라면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세. 당시 그들에게 받은 타격으로 무림은 오십여 년 가까운 암흑기를 보냈네. 그러니 어떻게 그것을 모를 수 있겠나.”
“염왕시는 혈마강시에 뒤지지 않는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주신언은 믿기지 않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받았다.
“허허, 그건 말이 되지 않네. 혈마강시는 하나가 한 명의 절정고수를 상대할 수 있고, 셋이면 초절정고수도 죽일 수 있던 진정한 괴물이었네.”
틀린 내용이 없는 터라 진무앙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신언의 말이 이어졌다.
“반면 장가장에서 생성되었던 염왕시 수십 구는 모두 자네와 오 소저의 손에 죽었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혈마강시 급 괴물일 수 있겠는가.”
주신언의 말은, 열 배가 넘는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 몰살당한 염왕시를 어떻게 혈마강시에게 비교하겠냐는 뜻이었다.
주신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쓰게 웃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진무앙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모르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주 대협이 믿든 말든 염왕시는 혈마강시 급의 괴물입니다. 그것들 일백이면 어지간한 중견 문파를 무너뜨릴 수 있고, 일천이면 구대문파라도 소림과 무당 정도가 아니라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겁니다.”
사마휘가 낮은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 게 벌써 일백오십이나 모였단 거잖아…….”
진무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만들어진 염왕주가 저거 하나가 아니라면, 문제는 훨씬 심각해질 거야.”
“무앙, 염왕주가 더 있을 수 있다는 말이야?”
“응. 아까 내가 설명한 것처럼 염왕주는 사람들의 원혼을 모아 만드는 물건이야. 그래서 이걸 만든 자는 그가 누구든 무림공적이 될 수밖에 없어.”
“일천 이상의 사람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짓을 한 놈이니 당연히 무림공적으로 선포해서 제거해야지.”
“그래서 이걸 만든 자의 목적이 무림 말살인 거 같다고 한 거야. 무림을 정복하려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있어야 해. 그런데 일단 염왕주를 만들면 그자는 그럴싸한 명분을 확보할 수가 없어. 무자비한 대량학살자일 뿐이니까.”
사마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염왕주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생각 같은 건 아예 없는 자가 만든 물건이라는 말이네.”
“맞아.”
“대체 어떤 놈일까?”
눈빛이 깊어진 진무앙이 말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예전에 그런 놈이 하나 있었어.”
“누구?”
“천무제.”
오청연을 제외한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주신언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염왕주를 만든 자가 대혼돈시대를 열었던 그 미치광이 황제 천무제에 버금가는 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가?”
“더한 놈일 수도 있습니다. 천무제는 염왕시를 만들 줄 몰랐으니까요.”
“으으음…….”
주신언이 앓는 듯한 신음소리를 냈다.
진무앙이 그에게 말했다.
“주 대협, 무림맹 총군사에게 지급으로 연락을 해주십시오.”
“연락은 어렵지 않은데, 무엇을 전하라는 건가?”
“천하에 형산파와 같은 사례가 있는지 찾아봐 달라는 것이 첫째고, 둘째는 외단 전체를 당장 형산 아래로 최대한 빨리 급파해 달라고 하십시오.”
주신언이 입이 떡 벌어졌다.
“외단 오행기 전체를 말인가?”
“예.”
“왜?”
“숭천무련이라는 놈들이 염왕시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 전에 궤멸시켜야 합니다.”
“무한의 형편이 아직 좋지 않네. 그런데도 총군사가 내 요청을 들어주겠는가?”
그답지 않게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다.
총타의 외단 오행기 수장들은 지방의 일개 분타주인 주신언보다 신분이 훨씬 높았다.
그러니 주신언이 걱정하는 것도 일리가 있었다.
진무앙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이름으로 요청하십시오. 그럼 독고 총군사는 즉시 외단을 보내줄 겁니다.”
주신언은 멍한 표정으로 눈만 껌벅거렸다.
진무앙의 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근거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귀에 진무앙의 탄식 섞인 한마디가 들려왔다.
“후우, 역시 내 팔자에 쉬운 일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