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39
339 아니었어요?
신조 ‘자운’이 날아오르고 얼마 후 사마휘와 주신언은 구예와 함께 무한으로 떠났다.
진무앙은 멀거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마휘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가냐… 매정한 년…….”
진무앙의 입술 사이로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야반도주한 그를 기다리며 평생을 살다가 꽃처럼 스러졌던 수많은 여인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고도 남을 소리였다.
그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사마휘와 주신언이 멀어지는 걸 지켜보던 오청연이 갑자기 모산파 꼬마 도사 선유방의 수혈을 짚었다.
아이를 바닥에 눕힌 그녀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그 매정한 년, 사마휘죠?”
진무앙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냐?”
“당신이 그렇게 이상하게 구는데 모를 수가 있겠어요?”
“주신언은 모르던데?”
“그 사람이야 사마휘가 여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선입견이 이래서 무서운 거구나.”
공야무룡이 큰 눈을 껌벅이며 끼어들었다.
“지금 두 분이 하는 말 무슨 소리유? 설마 사마 대주가 여자라는 말이우?”
진무앙은 혀를 차며 대답했다.
“지금은 여자 맞아.”
“그건 또 무슨 말이슈?”
“걔는 음양인이야.”
진무앙은 일행에게 사마휘의 비밀을 숨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남에게 말을 옮길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공야무룡과 신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까지는 몰랐던 듯 오청연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가 물었다.
“그녀가 음양인이었어요?”
“응.”
오청연이 탄성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당신이 외박을 하면 코피가 났던 거군요.”
공야무룡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오 소저, 음양인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는데 왜 갑자기 이야기가 그쪽으로 튀는 거유?”
오청연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작은 곰아, 음양인의 성욕은 일반인의 백배를 넘는단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와 운우지락을 나누는 대가로 복상사할 정도지.”
“그러니까 그게 주공의 코피하고 뭔 상관이냔 말이우?”
“둔한 녀석, 네 주공이니까 음양인을 상대하고 코피 정도로 끝난 거야.”
이쯤 되자 눈치가 없는 공야무룡도 마침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그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주공… 외박했을 때 사마 대주와 잔 거유?”
진무앙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답했다.
그의 발끝이 번개 같은 속도로 공야무룡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퍽!
“으악!”
거대한 바위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공야무룡은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신완아가 급하게 공야무룡의 앞을 막고 진무앙에게 고개를 숙였다.
“주공, 우리 그이 때리지 말아주세요. 좀 둔해서 그렇지, 얼마나 주공을 위하는데요.”
펄쩍 뛰는 공야무룡의 정강이를 한 대 더 걷어차려던 진무앙이 입맛을 다시며 발을 내렸다.
“곰탱아, 아무리 생각해도 완아가 너무 아까워. 그리고 완아야, 너도 다시 생각해 봐라. 아직 정식으로 저 자식과 혼인식도 올리지 않았으니 물러도 흠이 되지 않아. 저런 둔탱이하고 평생을 사는 건 좀 아닌 거 같지 않냐?”
“주공께서 저희를 보고 천생연분이라고 하신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어요. 저는 하늘이 두 쪽 나는 날이 오더라도 저이의 아내로 살다가 죽을 거예요.”
진무앙이 혀를 찼다.
“열녀 났네. 열녀 났어.”
그는 요리도구들을 챙겨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곰탱이하고 완아는 오두막이나 지어라. 이건 내가 치울 테니.”
공야무룡은 신완아와 함께 나무를 쌓아놓은 곳으로 갔다.
오십여 장 떨어진 근처의 작은 냇가에서 요리도구들을 씻으며 오청연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러는 거, 처음 봐요. 정말 의외예요.”
“뭐? 설거지?”
“예.”
“자주 하는데? 아, 너는 본 적이 없겠구나. 내 여자가 아니니까.”
“당신 여자들에게는 요리부터 설거지까지 다 해주는 거예요?”
“매일은 아니지. 내가 먹이고 싶어 할 때보다 걔들이 나한테 맛있는 걸 먹이고 싶어 할 때가 더 많으니까.”
“하인들에게 시키면 편하지 않나요? 그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진무앙이 피식 웃었다.
“청연, 넌 신기로만 살아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남녀가 같이 있을 때, 서로가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거야. 가진 게 많고 적음은 별 상관없고, 거기에 다른 사람을 끼워 넣을 이유도 없어.”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까 신기하고 새롭군요.”
“뭐가?”
“당신에게 주기적으로 봉인당하기는 했지만 나도 살아온 세월이 있어요. 그동안 당신에 대해 들은 게 없겠어요?”
“내가 신비하고 멋진 남자라는 소리야 귀에 따갑게 들었겠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난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요?”
“그럼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거야?”
“야반도주 전문가라는 악명이요. 그 시대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여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악명을 알고 있던데요?”
“헛소문이야.”
진무앙은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청연은 배시시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마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오며 그녀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정말 무림맹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이곳에서 시간만 보낼 거예요?”
“그럴 생각이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다.”
“왜요?”
진무앙이 눈짓으로 형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거든.”
거리가 가까운 덕분에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마차에 도착했다.
쿵. 쿵. 쿵. 쿵.
바로 옆의 공터에서 지축을 올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났다.
공야무룡이 오두막을 짓는 소리였다.
그는 거령도를 도끼처럼 사용하며 아름드리나무들을 목재로 깎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들었다.
신완아는 그가 자른 굵은 나뭇가지들을 이용해 침상과 의자를 만들고 있었고.
초절정고수와 절정고수가 힘을 합쳐 하는 작업이다.
당연히 일의 진척 속도는 눈부실 정도로 빨라서 오두막은 벌써 대충 하단의 윤곽이 잡힌 상태였다.
요리도구를 정리하고 두 사람의 작업을 지켜보던 오청연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아까 숭천무련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했죠? 그건 그자들이 형산을 빠져나가려 할 거라는 말인가요?”
진무앙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놈들은 염왕주를 손에 넣기 전에는 산을 떠나지 않을 거야.”
“왜죠?”
“염왕주는 염왕시를 제작할 수 있는 도구이기만 한 게 아니야.”
“다른 기능도 있다는 말이에요?”
“응.”
“그게 뭐죠?”
“소멸 방지 도구.”
진무앙의 말을 단번에 알아들은 오청연은 탄성을 토했다.
“아! 그런 기능이…….”
“염왕주는 전륜마기를 생성해. 그리고 그것이 있어야만 염왕시를 만들어낼 수 있어.”
진무앙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야. 염왕시는 최소한 한두 달 이내에 다시 전륜마기에 몸을 담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소멸되거든.”
“이곳의 기운이 마계가 아니기 때문에 생긴 치명적인 허점이로군요.”
“응. 그래서 저놈들은 염왕주를 손에 넣어야만 해.”
“당신이 그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저들도 모르지 않을 텐데, 과연 욕심을 낼까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염왕주를 포기하는 건 염왕시를 버리겠다는 말과 같아. 과연 저놈들이 그럴 수 있을까?”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숭천무련이라는 집단이 가진 내부적인 역량을 알 수 있겠군요.”
“그렇겠지. 형산에 있는 우두머리가 냉철하고 과감하다면 나와 오행기는 헛물을 켤 것이고, 아니라면…….”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많은 피가 흐르겠죠.”
“누가 들으면 내가 피에 미친 혈귀인 줄 알겠네.”
“아니었어요?”
“죽고 싶냐?”
“절대 아니죠.”
싱긋 미소 지으며 대답한 그녀가 연이어 물었다.
“저들이 염왕주를 노린다면 어떤 방법을 쓸 거 같아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당연히 모르겠죠. 하지만 예상은 할 수 있잖아요.”
“귀찮게 그런 걸 왜 해? 닥쳤을 때 하면 되지.”
“하아…….”
오청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바람처럼 공양무룡과 신완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진무앙이 그녀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어디 가?”
“보면 몰라요? 애들 집 짓는 거 도울 거예요.”
오청연이 가버리자 심심해진 진무앙은 몽지림을 불렀다.
“임아.”
그의 머리 위 허공이 장막처럼 좌우로 갈라지며 고풍스러운 고대 곤룡포를 입은 몽지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벅지.”
진무앙이 짧게 한마디를 하자 유령처럼 땅에 발을 디딘 몽지림은 두 다리를 길게 펴고 앉았다.
진무앙은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잠시 후 낮게 코를 고는 소리가 바닥에 깔렸다.
드르렁- 드르렁- 푸우우우- 푸-
진무앙은 잠이 들어서 알지 못했다.
몽지림의 길고 흰 손가락이 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 * *
형산파, 어둠에 잠긴 축융각.
이비영이 바람 같은 경공술로 전각에 들어섰다.
상좌에 앉은 무상의 앞에 부복한 그가 입을 열었다.
“무상 각하, 얼마 전 진무앙이 머문 곳에 자운신조가 내렸습니다.”
“자운신조? 독고운진이 키운다는 그 영물을 말하는 것이냐?”
“예.”
이비영이 말을 이었다.
“직후 주신언과 사마휘는 무림맹으로 출발했고, 진무앙 일행은 형산 기슭에 오두막을 짓고 있습니다.”
무상의 눈에 어리둥절한 빛이 떠올랐다.
두 가지 사안 모두 그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무림맹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주신언과 사마휘가 그들을 기다리지 않고 귀맹을 했단 말이냐? 거기에 진무앙은 오두막을 짓고?”
“그렇습니다.”
무상이 혼란스러워하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놈들이 단체로 미쳤나……?”
이비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답을 요구한 질문도 아니었고, 대답할 정보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운신조가 독고운진의 명령서를 갖고 왔으니까 그런 변화가 생긴 것일 텐데…….”
생각에 잠겼던 그가 이비영에게 물었다.
“무림맹의 동정에 대한 정보는?”
“지금쯤이면 무림맹의 동정 파악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운중비각엔 자운신조와 같은 영물이 없어서 무한의 소식이 이곳에 도착하려면 내일 저녁은 되어야 합니다, 무상 각하.”
“흠,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보고하도록.”
“존명.”
“진무앙이 오두막을 짓고 있다는 건 당분간 이곳을 떠날 계획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림맹의 지원 세력과 합류한 후 행동을 개시할 가능성이 높다.”
“예.”
“지원 세력이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무한에서 이곳까지는 천 리 길입니다. 먼길이지만 한 사람당 서너 필의 말을 번갈아 사용하며 이동한다면 늦어도 오 일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군. 알았다. 계속 진무앙을 감시하고, 특이 상황이 생긴다면 즉시 보고하라.”
“존명.”
이비영이 조심스럽게 무상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무상 각하, 지금이라도 다른 성에 지원을 요청하면 어떨지…….”
무상은 촌각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진무앙은 머릿수가 많다고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다시는 지원에 대한 말을 꺼내지 마라.”
단호한 음성.
“예, 무상 각하.”
고개 숙여 대답한 이비영은 입술을 깨물며 전각을 나갔다.
혼자가 된 무상의 눈빛이 깊어졌다.
생각에 잠겼던 그가 입을 열었다.
“곽패.”
건장한 검은 그림자가 유령처럼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상의 친위대장 곽패였다.
무상이 그에게 말했다.
“이비영의 보고를 들었느냐?”
“예, 무상 각하.”
“사 일 이내에 염왕주를 손에 넣어야 한다.”
그는 품에서 양피지 두루마리 한 장을 꺼내어 곽패에게 던졌다.
공력이 실린 두루마리는 천천히 허공을 가로질렀다.
곽패가 두 손으로 공손히 그것을 받아 들자 무상이 말했다.
“그 안에 내가 구상한 계획이 들어 있다.”
“시행은 언제가 좋겠습니까?”
“진무앙 일행의 긴장감이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시작해라.”
“존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곽패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유령처럼 사라졌다.
무상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