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41
341 너, 은신 안 하냐?
일행에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진무앙 일행 중 시간에 민감한 사람은 공야무룡과 신완아뿐이었다.
그들은 오두막을 두 채나 지었는데 그 이유는 첫날밤에 바로 밝혀졌다.
밥때가 아니면 오두막에서 아예 밖으로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그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다른 이유로 오청연과 모산파의 소년 도사 선유방도 바빴다.
오청연은 다른 신기의 흔적을 감지하기 위한 명상에 들어갔는데 밥때조차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리고 선유방은 그새 오청연의 추종자가 되어 있었다.
그건 그녀가 그보다 오히려 술법에 더 정통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시도 그녀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들과 달리 진무앙은 한가했다.
그는 시간이 굼벵이처럼 지나든 쏜살같이 지나든 관심이 없는 남자였으니까.
그래서 그는 애당초 오두막에 들어앉아 뭔가를 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오두막을 지은 지 사흘째 되던 날의 아침을 마친 직후.
식사를 마친 진무앙은 요 며칠 그랬던 것처럼 몽지림을 불러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밤에 그처럼 엄청나게 퍼부어대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쳤고, 하늘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입에 잡초 한 가닥을 문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누가 큰 산 아니랄까 봐 날씨 변덕이 끓는 죽 같네.”
하늘에서 시선을 거둔 그는 고개를 돌렸다.
멀리 냇가에서 설거지하는 공야무룡과 신완아가 보였다.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좋은지 그릇을 씻으면서도 연신 웃기 바빴다. 가끔 서로에게 물을 튕기며 장난도 쳤고.
그걸 본 진무앙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주 깨가 쏟아지네. 눈꼴이 시어서 살 수가 없어. 휘아가 떠날 때 나도 같이 가는 건데… 염병, 돼지 자식이 그런 말을 한 이유가 궁금해서 남은 게 슬슬 후회되려 하네.”
독고운진은 자운신조를 통해 그가 열받아서 떠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고 장담했었다.
진무앙은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고 싶어서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독고운진은 그와 비슷한 면이 있었는데, 그건 일에 관해서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이곳은 대륙 남부라 겨울에도 춥지 않은 지역이다. 게다가 어느새 봄까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새 잠이 들었던 진무앙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형산의 깊은 숲으로 시선을 향한 그가 투덜거렸다.
“참 시끄러운 놈들이네. 그렇게들 목이 근질근질한가? 무림맹 애들이 오면 어련히 알아서 썰어줄 텐데 그 며칠도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거냐?”
그는 귀찮아 죽을 것 같다는 얼굴로 두 개의 오두막을 돌아보았다.
우르릉, 쿵쿵쿵쿵.
공야무룡과 신완아가 있는 오두막은 굉장히 튼튼하게 지어졌는데도 쉴 새 없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게다가 지붕 위로는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처럼 뜨거운 열기를 품은 아지랑이가 풀풀 솟아올랐다.
저렇게 한창 불이 붙어 있는 그들을 불러 일을 시켰다가는 식사 때마다 공야무룡이 침 뱉어놓은 밥을 먹게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걸 무서워할 진무앙이 아니다.
앉은 채로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곰탱아!”
오두막의 흔들림이 뚝 멈췄다.
“당장 나와! 일 생겼다!”
공야무룡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하면 주공 혼자 하슈!”
진무앙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마부가 아니라 아주 상전이네, 상전이야.”
그가 다시 소리쳤다.
“좋게 말할 때 튀어와! 한 번 더 같은 말 반복하게 하면 너희 각방 쓰게 할 거다!”
휘이이익-
오두막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바지만 입고 상의는 반쯤 걸치다 만 공야무룡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신완아가 허겁지겁 따라 나왔다.
아무래도 여자인 그녀는 걸쳐야 할 옷가지가 많아서 공야무룡보다 늦은 것이다.
진무앙의 앞에 도착한 공야무룡이 투덜거렸다.
“주공, 무슨 일인데 부른 거유?”
진무앙이 턱짓으로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놈들이 사슴 사냥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후딱 가서 머리통들 가지런히 박살 내주고 오겠수.”
“그래라.”
심드렁하게 대꾸를 한 진무앙은 다시 몽지림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하지만 그는 곧 다시 벌떡 일어났다.
마치 뭔가에 놀란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갑작스러웠다.
막 신완아에게 손을 흔든 후 숲으로 몸을 날리려던 공야무룡이 눈을 껌벅이며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슈?”
진무앙은 고개를 갸웃하며 숲을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을 읽은 공야무룡은 선뜻 질문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착각인가? 희아의 기운이 왜 저기서 느껴지지?”
그제야 공야무룡이 물었다.
“‘희아’라는 분이 누군데 그러슈?”
“완아보다 예쁜 여자.”
공야무룡이 신완아를 돌아보며 힘차게 말했다.
“헹! 주공, 천하에 아매보다 예쁜 여자는 없수. 그녀는 당대 천상십화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한 진무앙이 공야무룡의 말을 끊었다.
“곰탱아, 콩깍지는 완아하고 둘이 있을 때만 써라.”
공야무룡은 움찔했다.
여자한테 진심인 진무앙의 성격을 깜빡한 것이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진무앙은 그가 아니라 공야승추라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목뼈를 부러뜨릴 남자였다.
그는 즉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댔다.
사색이 된 신완아도 무릎을 꿇었다.
“주공, 잘못했수. 용서해 주시우.”
“주공, 잘못했어요. 공야 가가를 용서해 주세요.”
서늘한 눈으로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진무앙이 입을 열었다.
“둘 다 일어나. 그리고 곰탱아, 말귀를 알아들은 거 같으니까 이번은 넘어가 주마. 한 번 더 내 앞에서 너의 그 허접한 콩깍지를 드러내면 그때는 경고 없이 네 눈을 뽑아버릴 거다.”
공야무룡은 목청껏 대답했다.
“넵! 명심하겠수.”
신완아가 거들었다.
“절대로 실수하지 못하게 제가 저이의 입단속 잘할게요.”
여전히 장단이 잘 맞는 둘을 보며 혀를 찬 진무앙이 말했다.
“곰탱아, 가자.”
그는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야무룡이 그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직접 가시려고 하는 거유? 나 혼자서도 충분한데…….”
“저기서 낯익은 기운이 느껴져. 아무래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알겠수.”
두어 발짝 걸음을 내딛던 진무앙이 의아한 표정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몽지림이 다른 때와 달리 허공에 은신하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그를 따르고 있었다.
“너, 은신 안 하냐?”
맑은 눈으로 그를 보던 몽지림이 다가와 살며시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 손길에서 어떤 감정을 느낀 진무앙이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이렇게 같이 가고 싶은 거야?”
물론 몽지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너하고 같이 걷는 것도 괜찮겠지.”
그때였다.
“저도 같이 가요!”
맑은 외침과 함께 몽지림의 옆에 오청연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명상이나 하지, 왜 나와?”
“저도 ‘희아’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요.”
진무앙이 하는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별게 다 궁금하네.”
“제 마음이에요.”
“꼬마는?”
“술법 수련하고 있어요.”
“넌 여기 있어.”
“왜요? 정말 궁금하단 말이에요.”
“너까지 따라오면 완아하고 꼬마는 누가 지켜?”
“으음…….”
할 말은 잃은 오청연은 입을 열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없을 때 염왕시가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신완아와 선유방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들 둘의 무공으로는 염왕시 한 구를 상대하기도 벅찼다.
오청연이 아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여기 남을게요. 그래도 나중에 그분이 누군지 알려줘야 해요.”
“내가 느낀 대로 저 기운이 그녀의 것이라면.”
다음 순간, 진무앙과 몽지림, 공야무룡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오청연과 신완아는 아쉬운 표정으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숲으로 들어선 진무앙은 오 리도 가지 않아서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 바닥을 살피던 공야무룡이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주공, 쫓기는 사람이 셋이우. 그리고 발자국의 크기로 보아 이남일녀인 것 같수.”
공야무룡도 귀주의 오지에서 성장한 남자라 추종술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진무앙이 입을 열었다.
“셋 다 뒤꿈치가 바닥에 닿았어.”
“핏자국이 없는 걸 보니까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구, 탈진한 모양이우.”
일류 이상의 무인이 경공술을 펼칠 때 뒤꿈치가 바닥에 닿는 경우는 의도적인 경우 외에는 극히 드물다.
더구나 지금처럼 도주하고 있을 때는 더욱더 그렇다.
발 전체가 바닥에 닿으면 탄력이 약해지고, 그러면 반동을 이용할 수가 없어서 움직임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뒤꿈치가 바닥에 닿았다면 도망치는 무인의 몸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보아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공야무룡이 진무앙을 돌아보았다.
그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공, 안 쫓을 거유?”
진무앙은 대답 대신 자기 할 말을 했다.
“발자국의 흔적으로 보아, 도망치는 자들은 남궁세가의 창궁신법과 황보세가의 웅풍만리신법을 익힌 무인들이다.”
공야무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앙이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
“그럼 그들은 무림맹에서 보낸 척후일 거유.”
공야무룡이 고개를 갸웃하며 이어서 진무앙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경공들, 남궁과 황보가의 직계만 익힐 수 있는 무공 아니었수?”
“맞아.”
진무앙은 질문을 했다.
“곰탱아, 이상한 거 못 느꼈냐?”
“뭘 말이우?”
“추적하는 놈들은 도망치는 자들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 경공을 익히고 있어. 그런데도 아직 그들을 잡지 못했다.”
“일부러 안 잡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뭔 소리슈? 안 잡는 거라면 주공을 유인하는 것일 테지만, 능력이 모자라지도 않는 자들이 못 잡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잖수?”
진무앙이 쫓기는 자들의 발자국 중 유달리 작은 것을 가리키며 말을 받았다.
“이 옆에 있는 발자국 보이냐?”
공야무룡은 눈에 공력을 실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셋이 아니라… 넷?”
작은 발자국 옆에는 초절정고수인 공야무룡의 안력으로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발자국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었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추적자들이 일부러 잡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도망자들은 네 번째 인물의 도움 덕분에 아직 잡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여자 한 명을 부축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흔적이 이렇게 희미하다는 건, 네 번째 인물은 상당한 무공의 소유자인 것 같수.”
“이 흔적이 정말 희아의 것이라면…….”
진무앙의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강렬해지며 갑자기 숲속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공야무룡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며 침을 삼켰다.
“꿀꺽!”
초절정고수인 그조차 숨을 쉬기 힘들게 만드는 공포스러운 살기가 사방을 짓누르고 있었다.
“주… 주공… 왜… 왜 그러슈?”
그의 말 때문일까.
진무앙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던 소름 끼치는 대살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가 무한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돼지 새끼, 네가 정말로 희아를 보낸 거라면… 이번에는 진짜 네놈의 껍질을 벗겨 버릴 거다.”
몽지림의 손목을 잡은 진무앙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주… 주공! 같이 갑시다!”
공야무룡이 악을 쓰며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