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47
347 말로만?
난추는 수직으로 굴을 뚫으며 전진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황금빛이 사방을 밝혔다.
덕분에 뒤를 따르는 진무앙과 세 여자는 아주 편안했다.
시야도 밝은 데다 그들의 머리 위로 엄청나게 쏟아지는 흙먼지는 혼돈암혼강기의 외벽을 타고 흘렀다.
거기에 강벽은 그들을 공처럼 품은 채 상승하고 있어서 세 여자는 따로 경공을 펼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황제 부럽지 않은 호사가 아닌가.
하지만 공야무룡과 남궁진, 황보평의 상황은 그들처럼 여유롭지 않았다.
그들은 동굴의 벽에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박아 넣으며 위로 오르고 있었다.
선두에 있던 공야무룡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으드득, 내가 주공을 만난 게 복인지 화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수.”
진무앙이 심드렁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그러든가.”
“챙기지 않을 거면 속도라도 좀 내면 안 되우?”
“그게 내 맘대로 되냐? 땅 파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주공이 옆에서 한 손 거들면 금방 끝날 거 아뇨!”
“곰탱아, 네가 머리가 나빠서 감이 잘 안 잡히나 본데, 나와 난추는 맡은 역할이 달라. 쟤 역할은 굴을 파서 통로를 만드는 거고, 난 세 여자를 보호하는 거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 공야무룡은 악을 썼다.
“주공은 협동이라는 말도 모르는 거유!”
진무앙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몰라, 새끼야.”
난추가 굴을 파는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경공을 펼치는 것에 비길 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공야무룡 등 세 청년은 위로 솟구치는 시간보다 벽에 손목까지 쑤셔 넣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공야무룡이 열받은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남궁화가 소맷자락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가늘게 어깨까지 들썩이는 게 웃음을 참기 힘든 듯했다.
진무앙이 불쑥 그녀에게 물었다.
“넌 오빠가 개고생을 하고 있는 데 아무렇지도 않냐?”
소맷자락을 내린 남궁화는 언제 웃었냐는 듯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빠는 지금 하는 걸 고생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진짜?”
“예. 평생 무림에 몸을 담아도 이런 경험을 한 번도 못 하고 죽는 무인이 태반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오히려 진 대가께 감사하는 마음뿐이에요.”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진무앙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희에게 말했다.
“록이가 자식들을 정말 잘 키웠네.”
남궁희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가주 동생은 세가 일이 바빠서 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요. 쟤들을 가르친 건 둘째 경아예요.”
“그놈이 가르쳤으면 좀 위험한데…….”
“뭐가 위험하다는 건데요?”
“경아는 너무 반듯해서 재미가 없어. 사람이 좀 허술하고 빈틈도 있고 그래야 재미있지.”
“재미없으면 좀 어때요. 경아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나보다 동생이야?”
진무앙의 말에 남궁희가 곱게 눈을 흘겼다.
“비교 대상이 너무 잘못되었잖아요.”
“경아보다 나라는 말은 절대 안 하네.”
진무앙이 구시렁거리자 남궁희가 웃으며 물었다.
“당신, 삐친 거예요?”
“누가 삐쳤다고 그래!”
진무앙이 소리쳤을 때 쉼 없이 전진하던 난추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녀가 진무앙을 돌아보며 말했다.
“십 장만 더 파면 염왕시와 만날 거예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처럼 정확하게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남궁희가 물었다.
“저들이 이곳에 우리가 있는 걸 어떻게 아는 걸까요?”
진무앙은 품에서 거무튀튀한 염왕주를 꺼내며 대답했다.
“이것 때문이야. 염왕시는 염왕주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려. 환우지약이 다른 파편을 느끼는 것처럼.”
염왕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남궁희가 탄성을 토했다.
“아, 그렇군요!”
진무앙이 난추에게 말했다.
“너는 뒤로 물러나. 지금부터는 임아의 시간이야.”
몽지림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진무앙이 손을 들어 막힌 굴의 벽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말했다.
“임아, 앞을 치워.”
스스릉-
청아한 검명과 함께 몽지림이 검을 뽑아 들었다.
검끝에서 칠흑처럼 검은 섬광의 무리가 피어올랐다.
그것을 본 남궁희의 얼굴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그녀는 남궁세가 최후 초절기의 심득을 얻은 천재였기에 몽지림의 무공 경지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몽 언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진무앙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얘기하자면 길다.”
“언니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귀띔 좀 해줘요.”
“임아가 전력을 다하면 난향과 싸워도 천 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야.”
많이 놀란 듯 남궁희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난향 언니한테 천 초나요?”
“응.”
“엄청나네요……. 지금의 저도 난향 언니와 싸운다면 백 초를 버틸 자신이 없는데…….”
그사이 난추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녀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그때 검과 하나가 되어 날아오른 몽지림이 벽을 파고들었다.
쑤와아아아앙-
콰콰콰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앞을 막은 바위들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돌의 파편들이 우박처럼 일행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콰콰쾅-
몽지림은 숨 두어 번 쉬기도 전에 십 장을 전진했다.
퉁-
지금까지와 다른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몽지림의 앞이 확 트였다.
바위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핏빛의 눈동자를 번뜩이는 삼십여 구의 염왕시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붉은 눈을 번뜩이며 굴벽에 달라붙어 있는 그들은 박쥐를 연상시켰다.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보는 몽지림의 눈빛은 무심하기만 했다.
염왕시들이 일제히 벽을 박차며 몽지림에게 달려들었다.
염왕시들이 파내려온 동굴은 폭이 일 장에 달할 정도로 컸다.
그렇다고 삼십여 구에 달하는 숫자가 동시에 공격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몽지림을 공격하는 숫자는 일곱 구로 한정되었다.
쐐애애애애액-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해일과도 같은 경력이 동굴을 메우며 밀려 내려왔다.
그럼에도 몽지림은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검과 하나가 되어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칠흑의 섬광이 그녀의 정면을 유성처럼 꿰뚫었다.
쑤와아아앙-
쩌저저저저저적-
크아아아아-
그 섬광의 궤적에 놓인 일곱 구의 염왕시가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내는 괴악한 비명이 동굴을 떨어 울렸다.
후두두두두둑-
몽지림은 비처럼 쏟아지는 검은 피와 조각난 육편을 뚫고 계속 비상했다.
다섯을 셀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던 염왕시는 모조리 파편으로 화해 지하로 추락했다.
덕분에 진무앙과 두 여자, 그리고 공야무룡 등은 아주 편안하게 몽지림의 뒤를 따라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기이하게도 염왕시의 공격이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몽지림도 그것을 느낀 듯 다시 진무앙의 옆자리로 돌아왔다.
지상이 가까워지자 남궁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위가 시끄럽군요.”
“그러게.”
“무림맹 오행기가 도착한 것 같아요.”
진무앙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척후로 보낸 애들이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형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전투에 돌입했다는 말이야?”
“오행기를 이끄는 무토기주 모용천기의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오만한 놈인가 보네.”
“어리석은 아이는 아닌데… 그 아이는 무림맹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는 편이에요.”
“명색이 오행기의 수좌라면 지피지기 백전불태 정도는 알 거 아냐?”
“천기는 모용세가의 적통인데 그걸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는 아직 오행기를 곤란하게 만드는 적을 만난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적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은 과대평가하는 거죠.”
진무앙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적의 힘을 모르는 상태에서 수뇌부가 오판하면, 부하들이 얼마나 어이없게 죽어나갈 수 있는지도 모르는 철부지라는 말이네. 돼지 자식이 어쩌다 저런 놈을 오행기의 수좌로 삼았지?”
“그분 잘못이 아니에요. 오행기주의 인사권은 총군사가 아니라 맹주에게 있어요.”
남궁희가 그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무앙,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오행기에서 희생자들이 많이 나오는 모양이에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남궁진과 남궁희, 황보평의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떠올랐다.
세 사람은 염왕시에게 쫓기며 목숨이 오락가락한 적이 있기에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무앙은 상승하는 속도를 올리지 않았다.
남궁희가 그에게 물었다.
“화났어요?”
“화는 무슨. 주제파악 못하는 놈 때문에 짜증이 좀 났을 뿐이야.”
남궁희는 가늘게 한숨을 내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희미하게 들리던 처절한 비명과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동시에 위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손에 잡힐 것처럼 그녀의 심상에 그려졌다.
수많은 사람이 허망하게 죽음을 맞고 있었다.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진무앙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그녀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무심했다.
‘하아…….’
남궁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진무앙은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를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의 말에 잘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착각에 불과했다.
진무앙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일을 그에게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남궁희가 아니라 난향이라도 불가능했다.
“무앙, 제가 먼저 나가도 될까요?”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단호하게 거절한 그가 말을 이었다.
“무공을 펼치면 가뜩이나 얼마 남지 않은 생기가 더 빨리 타버려.”
“하지만 오행기의 아이들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혀를 찬 진무앙이 말을 받았다.
“넌 가만있어. 여기엔 너 말고도 고수 많으니까.”
“당신이 나서줄 거예요?”
“아니. 나는 오행기가 전멸하든 말든 관심 없어.”
그가 몽지림을 보며 말했다.
“임아, 저 세 놈을 데리고 먼저 올라가. 가서 죽지도 살지도 않은 것들을 치워 버려.”
몽지림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발아래엔 공야무룡과 남궁진, 황보평이 벽에 손을 번갈아 박아 넣으며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남궁화가 다급하게 진무앙에게 말했다.
“저도 보내주세요.”
진무앙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몽지림에게 말했다.
“얘도 데려가.”
몽지림은 망설임 없이 왼손을 쭉 뻗었다.
그녀의 장심에서 흘러나온 칠흑처럼 검은 세 가닥의 기류가 공야무룡을 비롯한 삼남일녀의 허리를 채찍처럼 휘감았다.
몽지림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솟아올랐다.
쑤와아아아아앙-
“어어어!”
“헉!”
“어억!”
공야무룡 등의 입에서 놀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검은 기류에 휘감긴 채 번개처럼 진무앙과 남궁희의 옆을 지나쳐 지상으로 날아올랐다.
남궁희가 화사하게 웃으며 진무앙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무앙.”
“말로만?”
남궁희가 볼을 붉히며 둥실 한 자를 떠올라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진무앙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강철 같은 팔로 남궁희의 허리를 감으며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는 순간에 충실한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