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52
352 말해봐
다음 날 아침.
“아으음…….”
진무앙은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까슬까슬하면서도 부드럽고 말캉말캉한 느낌에 눈을 떴다.
알몸의 남궁희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려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진무앙은 싱긋 웃으며 굵은 팔로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남궁희가 얼굴을 가린 풍성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깼어요?”
“네가 이러는데 안 깰 수가 있나.”
남궁희가 배시시 웃으며 그의 가슴에 상체를 기댔다.
진무앙은 힐끗 창밖을 보았다.
닫힌 창문의 틈 사이로 밝은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가 남궁희에게 말했다.
“못 본 새 요부 다 됐네.”
“제가요?”
“응. 밤새 밝힌 것도 모자라 해가 떴는데도 나를 덮치고 있잖아.”
“호호… 이 느낌, 너무 오랜만이긴 해요.”
진무앙이 번개같이 자세를 뒤집었다.
자신의 몸 아래 눌린 남궁희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가 말했다.
“좋아. 아직 풀리지 않은 회포가 있으면 이 기회에 모두 날려 버리자.”
눈가에 미소를 매단 남궁희가 그의 등을 꼭 끌어안으며 말을 받았다.
“저는 대찬성이에요.”
방 안의 공기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 * *
호북성 무한 무림맹 총타 군사부.
독고운진은 거대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집무실을 뱅글뱅글 돌았다.
팔짱을 낀 채 창가에 기대고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독고홍련이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아버님, 이제 그만하세요. 밤새 그러고도 모자라서 아침까지 이러세요?”
뚝.
걸음을 멈춘 독고운진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홍련아, 무앙이 언제쯤 여기 도착할까?”
“남궁세가에 며칠 머물고 출발하실 테니까 달포쯤 뒤에 도착하시지 않을까요?”
“그렇게 빨리?”
“그분 성격이면 더 빨리 올 수도 있어요.”
“무앙이 이번엔 진짜 내 껍질을 벗기려고 할 게 분명한데, 그 마수를 피할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는구나. 천축으로 도망갈까?”
“그러다 잡히면 껍질 정도로 끝나지 않을걸요?”
독고운진의 입술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렇겠지……?”
“네. 그럴 거예요.”
독고홍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버님, 선자에게 부탁하는 건 제가 생각한 계책이었어요. 그러니 숙부님께 혼이 나야 할 사람은 아버님이 아니라 저예요.”
화들짝 놀란 독고운진이 손사래를 치며 크게 말했다.
“무슨 소리! 네가 생각한 계책이라고 해도 실행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니더냐. 그런데 왜 네가 책임을 진다는 것이냐!”
“그야 숙부님이 저를 예뻐하시니 아버님보다 제가 벌을 받는 게 나으니까요. 아무래도 좀 가벼운 벌을 주시지 않을까요?”
“홍련아, 네가 아직도 그놈을 잘 모르는구나. 무앙은 자기 여자가 아니면, 남녀 구별하지 않고 아아아주 평등하게 조지는 놈이야.”
“저한테도 그러실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하다가 정말 큰일난다. 그놈이 어디로 튈지는 옥황상제도 모른단 말이다.”
“옥황상제가 모르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분이 친한 쪽은 염왕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놈의 염왕은 뭐하나 몰라. 무앙이 억겁의 세월 동안 이렇게 세상에서 깽판을 치고 있는데.”
“염왕이라고 숙부님을 데리고 가고 싶겠어요? 그러면 숙부님이 그 세상에서도 감당 못할 깽판을 치고 다닐 게 불 보듯 뻔한데.”
“그런 거냐……?”
“예. 그런 거예요.”
“아이고…….”
독고운진의 입에서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연신 흘러나왔다.
반면 독고홍련은 별반 긴장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독고운진이 그녀에게 물었다.
“네 얼굴을 보니까 뭔가 방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생각하고 있는 방법이 있느냐?”
“있기는 해요. 통할 거라고 확신은 하지 못하지만요.”
독고운진의 표정이 환해졌다.
“있다고? 그것이 무엇이냐?”
독고홍련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독고운진의 귀에 몇 마디를 속삭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독고운진의 눈이 커졌다.
“그게 통할까?”
“모르겠어요. 하지만 뭐라도 해봐야죠. 아버님의 껍질이 벗겨지는 걸 손놓고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독고운진이 독고홍련을 와락 끌어안으며 눈물을 쏟았다.
“아아아, 사랑하는 내 딸, 역시 너밖에 없다.”
그를 마주 꼭 끌어안은 독고홍련이 말했다.
“저도 아버님밖에 없어요.”
* * *
제국의 황성 지하 대석실.
신무제는 거대한 원형의 문양 중앙에 문상과 함께 서 있었다.
이글거리는 살기로 가득찬 그의 눈이 중앙에 놓인 두 개의 관을 향했다.
한기가 올라오는 흰색의 관은 만년한옥을 통째로 깎아 만든 것이었다.
지금 그곳엔 무상과 마병환요가 누워 있었다.
마병환요 우문백령은 표정이 조금 창백할 뿐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무상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의 안색은 납빛이었고, 호흡은 가늘고 불규칙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문상이 신무제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마병환요의 내상은 스스로 치유되고 있습니다만, 무상은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상처가 그 정도로 심한 것이냐?”
“예. 십이경락의 대부분이 끊겼고, 하단전의 일부가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머리 쪽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왜?”
“진무앙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무상은 일시 숨이 끊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를 마병환요가 강제로 되살리기는 했습니다만… 시간이 걸린 탓에 무상의 뇌는 제 기능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럼 상처에서 회복되어도 깨어나기 어렵다는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폐하.”
“무조건 살려라. 무상은 어린 시절부터 짐의 곁을 지킨 충신이다. 그를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다.”
신무제는 이를 갈았다.
“진무앙…….”
그가 문상에게 물었다.
“현재까지 완성시킨 염왕시의 숫자는 얼마나 되느냐?”
“형산에서 잃은 것들을 제외하면, 육백칠십삼 구가 남아 있고, 한 달 내에 완성될 예정인 것들이 삼백 구입니다.”
“숭천무련의 전 제자와 모든 염왕시를 언제든 출병시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아라.”
신무제의 어조는 엄중했다.
문상은 무릎을 꿇으며 크게 외쳤다.
“존명.”
“진무앙이 쓰러지면 무림엔 짐을 막을 자가 없다. 건곤일척의 대전이 될 것이다.”
문상의 눈끝이 가늘게 떨렸다.
“드디어 천하무림말살지계를 시작하시는 것이옵니까, 황상 폐하?”
“칠마병을 전부 모은 후에 마병환요를 마병존마로 만들고자 했지만 그럴 여유가 없을 것 같다.”
신무제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신광이 쏟아졌다.
“진무앙에게 꼬리를 잡히면 대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역습을 당할 우려가 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오십 년 전 할바마마에게 일어났던 불행한 일이 짐의 대에서 되풀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꼴은 절대 못 본다.”
그가 문상을 불렀다.
“문상.”
“예, 폐하.”
“환요의 몸이 회복되는 대로 존마전환대법을 실시하겠다.”
놀란 문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폐하, 하지만 칠마병이 다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환요를 존마로 전환하면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보완할 방법이 있으니.”
“아…….”
“대법에 차질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도록.”
“존명.”
문상은 크게 절한 후 석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신무제는 마병환요와 무상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허공의 한 점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가주, 할 이야기가 있다.”
휘우우우우- 휘우우우우웅-
신무제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기묘한 소리가 들려오며 허공에 검붉은 원이 생겨났다.
그리고 검붉은 원의 가운데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꽃 속에서 차갑고 맑은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황제여,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하는 것인가?]그것은 마계종가주의 음성이었다.
신무제가 불꽃을 노려보며 말을 받았다.
“진무앙에게 마병환요가 크게 다쳤다.”
[뭐라고?]많이 놀란 듯 푸른 불꽃이 춤을 추듯 일렁였다.
신무제가 말을 이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진무앙은 호도협에서 마병환요와 싸웠을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다.”
말이 이어질수록 그의 목소리는 무겁고 딱딱해졌다.
“그래서 마병환요에게 존마전환대법을 시행할 생각이다. 지금 상태에서 그자와 다시 충돌한다면 환요는 소멸될지도 모른다.”
[으으음… 황제여,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닐까? 오마병만으로 존마전환대법을 실시하면 칠마병을 모았을 때에 비해 그 능력이 오 할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안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
신무제의 말투는 단호했다.
이미 결심이 굳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종가주가 말을 받았다.
[결정을 한 후에 나를 불렀다는 건 내게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겠군. 그렇지 않은가, 황제여?]신무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그대는 칠마병이 마계에서 만들어졌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그대의 세상에 존마전환대법을 펼칠 때 부족한 마병 두 개의 기운을 보완할 방법도 있으리라 믿는다.”
[내게 방법이 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군.]“물론. 그대는 마계의 주인이니까.”
[황제의 안목은 확실히 다르군. 그대의 말이 맞다. 나는 확실히 그런 방법을 갖고 있다.]“좋군. 대법을 시행할 준비가 끝나는 대로 그대를 찾겠다.”
[나도 준비를 해놓도록 하지.]신무제도 석실을 떠났다.
하지만 푸른 불꽃은 사라지지 않은 채 홀로 그 자리에서 타올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석실 중앙에 흑의복면인이 유령처럼 나타나 부복했다.
그는 현무위사였다.
“부르셨습니까, 가주.”
종가주의 목소리가 석실을 울렸다.
[현무, 신무제가 존마전환대법을 준비하려 한다.]현무위사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종가주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마병 둘이 부족하다. 이 상태로 대법을 완성한다면 마병존마는 반쪽에 불과하게 된다. 신무제도 그걸 알기에 내게 도움을 청했다.]현무위사가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이럴 때를 대비해 내가 그곳으로 보낸 자들이 있지 않느냐. 이제 그들을 거둘 때가 되었다.]“천군과 신녀를 처리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 사신위사를 모아라. 그리고 내 지시를 기다려라.]“존명.”
[천군과 신녀의 마기라면 마병 둘의 기운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다.]종가주의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존마전환대법은 내가 그 세상에 심은 여러 안배의 정점이다. 그것이 성공하면 내가 그곳으로 갈 수 있다.]“저희 사신위사는 그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가주.”
[그러기 위해 천군과 신녀의 희생이 필요하다.]“언제든 처리할 수 있도록 다른 삼위사와 함께 그들의 동태를 감시하며 지시를 기다리겠습니다.”
[너를 믿는다.]현무위사는 이마를 바닥에 대고 오체투지로 인사를 한 후 석실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후 푸른 불꽃도 환상처럼 사라졌다.
* * *
합비의 남부에는 제국 내에서 다섯 번째로 큰 호수가 존재한다.
바로 소호다.
깊은 밤, 거울처럼 맑은 소호 수면은 밝은 달빛 아래 물고기의 비늘처럼 은빛으로 반짝였다.
호수변에 손을 잡은 두 사람이 나타났다.
진무앙과 남궁희였다.
남궁희가 진무앙의 팔을 끌어안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가 진무앙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네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이틀이 지났어요.”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한 진무앙이 물었다.
“답, 정했어?”
남궁희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