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54
354 말은 쉽지
안휘성과 호북성의 경계에 걸쳐 있는 대별산.
사두마차 한 대가 산기슭에 난 비좁은 관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다가닥- 다가닥-
관도는 오르막길로 마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리기 힘들 정도로 좁았다.
거기에 바닥도 울퉁불퉁하고 크고 작은 돌들이 널려 있어서 마차는 쉴 새 없이 덜컹거렸다.
마부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곰을 연상케 하는 공야무룡과 천상 선녀가 울고 갈 미인 신완아였다.
신완아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속삭였다.
“가가, 이제 화난 거 좀 풀어요.”
공야무룡은 뒤를 힐끗 돌아보고는 역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내가 화가 안 나게 됐어?”
소리는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거칠었다.
누가 들어도 뿔이 잔뜩 났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또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게 길을 재촉해서 남궁세가에 도착했는데, 쉴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출발하셨잖아. 일정이 급하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건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그는 눈썹을 곤두세우며 말을 이었다.
“무한까지 가는 장강의 편한 물길을 놔두고 왜 제대로 관리도 안 된 관도, 그것도 산길을 타느냔 말이야. 아무리 대별산의 산세가 평탄하다고 해도 이건 주공이 작정하고 나를 괴롭히려고 한다고밖에 볼 수 없는 거 아니야?”
신완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공야무룡을 다독였다.
“주공이 왜 일부러 당신을 괴롭히겠어요. 이 길은 수로를 타는 것보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선택한 걸 거예요. 장강을 이용하면 남쪽으로 멀리 돌아가게 되잖아요.”
“아매는 너무 착해서 늘 꿈보다 해몽이 좋아.”
그때 뒤에서 심드렁한 진무앙의 음성이 들려왔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구나. 마부들아, 그만 닥치도록 하여라.”
공야무룡의 입술이 댓 발은 튀어나왔다.
그가 뭐라 하려 할 때 신완아가 그의 팔뚝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가, 하지 말아요.”
“왜?”
“남궁세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공의 분위기가 평소하고 좀 달라요.”
공야무룡이 눈을 껌벅거렸다.
“지금 선 넘으면 위험하다는 거지?”
“맞아요. 가가가 주공을 자극하면 정말 말안장이 될 수도 있어요.”
공야무룡은 움찔했다.
“음… 그럼 이번은 그냥 넘어가자.”
“잘 생각하셨어요.”
신완아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공야무룡은 입술만 벙긋거려 구시렁대며 말을 몰았다.
마차 안.
진무앙은 바닥에 몽지림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있었다.
물끄러미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초점이 흐릿했다.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다.
오청연은 그림처럼 조용히 앉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모산파의 꼬마 도사 선유방은 남궁세가에 맡겼고, 난추는 은신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오청연의 눈빛이 깊어졌다.
진무앙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물어보나 마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일과 관련된 질문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남궁희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고, 그녀와의 추억은 오롯이 진무앙의 몫이었으니까.
오청연이 불쑥 그에게 물었다.
“난추는 어떻게 할 거예요?”
진무앙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뭘 어떻게 해?”
“빙의를 하지 못한 상태로 놔둘 거냐는 말이에요.”
“아직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어.”
“난추는 빙의하지 않고 천무령을 각성했어요. 당신도 그런 그녀의 상태가 굉장히 불안정하다는 걸 알잖아요. 이대로 가면 기운의 균형이 무너져서 폭주할지도 몰라요.”
“그럼 그때 가서 소멸시키지 뭐.”
“하아…….”
오청연이 한숨을 내쉴 때 그녀의 옆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일렁이며 난추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서 몸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은신이 가능했다.
난추는 날카롭게 빛나는 눈으로 진무앙을 보며 말했다.
[나를 봉인도 아니고 소멸시키겠다고요?]“환우십병은 폭주가 시작되면 봉인이 불가능하잖아. 그러니 소멸시킬 수밖에.”
[그러게 남궁희의 몸에 빙의를 하게 내버려…….]누워 있던 진무앙의 벌떡 일어나 난추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 속도는 오청연과 난추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진무앙의 손이 단숨에 난추의 목을 움켜쥐었다.
콰직!
[아흑!]피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목이 잡힌 난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난추는 육신이 없는데도 반응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진무앙은 경계를 넘나드는 남자라 육신이 있든 없든 상대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것이다.
무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진무앙이 말했다.
“다시는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두 번째 경고는 없을 거다.”
[커억… 커억… 소… 손 좀…….]진무앙이 손을 놓자 난추는 두려움에 질린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진무앙은 마차의 벽에 등을 기댔다.
망연한 표정이었지만 방금 전처럼 눈의 초점이 흐릿하지는 않았다.
그가 난추에게 말했다.
“사람의 몸에 빙의하겠다는 생각은 포기해.”
[왜 그래야 하죠?]“내가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거든.”
[그럼 저는 폭주하게 될 거예요.]“그럴 일은 없어.”
[방법이 있나요?]“내 몸 안에 파천혈신륜과 현천을목마금의 마령들이 살고 있는 거, 알지?”
[알아요.]“걔들 사이 아주 좋아. 너도 들어가면 신기라고 날 세우지 말고 걔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라.”
[예? 제가 어딜 들어간다는 말이에요?]진무앙이 손끝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어디긴 어디야. 여기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오청연의 안색이 변했다.
“당신… 대체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마병 둘을 품은 지금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험한데, 그것도 모자라 난추까지 얹겠다고요?”
“응.”
진무앙의 대답은 짧았다.
그의 뜻이 확고하다는 걸 알아차린 오청연과 난추는 당황했다.
난추가 물었다.
[내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당신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 건가요?]“돼.”
[나는 싫어요.]“네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왜요? 당신이 그걸 강요하려고 한다면 난 떠나겠어요.]“저항도 못해보고 소멸당하고 싶으면 그래도 상관없겠지.”
진무앙의 말에 묘한 느낌이 섞여 있다는 걸 깨달은 난추가 물었다.
[당신의 제안을 거절하면 당신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나는 소멸된다는 건가요?]“말귀를 잘 알아듣네.”
[말도 안 돼요!]“말이 돼.”
진무앙이 서늘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번에 내가 안 가르쳐 주겠다고 했던 말, 기억하냐?”
[당연하죠.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데.]“당대에 환우십병이 동시에 출현한 것, 그리고 삼신기와 칠마병의 비정상적인 각성이 의미하는 것…….”
진무앙이 말끝을 흐리자 오청연이 눈에 불을 켜고 소리쳤다.
[또 말 안 해줄 거야 어쩌고 하면 정말 화낼 거예요!]진무앙은 움찔했다.
“음… 날 이렇게 잘 아는 여자가 늘어나는 건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닌데…….”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농담이다. 두 번씩이나 그러겠냐.”
그의 안색이 진지해졌다.
“앞서 말한 일들은 어떤 놈이 이쪽 세상 전체를 대상으로 거대한 결계를 펴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오청연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결계라고요? 누가 그런 걸?”
“개새끼.”
“하아…….”
오청연이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물었다.
“전에도 그렇게 부르던데 그렇게만 말하면 그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알아요? 말해줘요. 그 ‘개새끼’가 대체 누군데요?”
진무앙이 무거운 얼굴로 대답했다.
“마계종가주 불멸마신.”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오청연과 난추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오청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설마 당신이 말한 거대한 결계라는 게 불멸마신이 다른 세계를 멸망시킬 때 펼치는 대역천영겁결계를 말하는 거예요?”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난추가 끼어들어 물었다.
[어떻게 그런 결론을 얻은 거예요?]진무앙은 두 여자(?)에게 구화산 지하의 혼돈성역과 대협곡에서 얻은 태양이화창과 결계, 십만대산 지하의 유혼반천대법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대역천영겁결계를 의심하기 시작한 건 대협곡에서 강제로 활성화된 태양이화창을 보았을 때였다.”
말을 잇는 그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신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마력… 놈이 이쪽 세상에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한, 그걸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대결계밖에 없다. 그리고 얼마 전 마병환요가 존마지공을 펼치는 걸 보고 확신을 하게 되었지.”
오청연과 난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청연이 물었다.
“마병환요가 존마지공을 사용했다고요?”
“그래.”
“그건 불가능해요. 환요가 존마로 진화하면 삼신기는 그 순간에 그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고요.”
“너희만 그런 게 아니야.”
“예?”
“마병존마의 등장은 암혼을 자극해. 존마는 이쪽 세상에서 그 개새끼의 사념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니까.”
“그런데 당신도 존마를 느끼지 못했군요.”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환요가 존마지공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게 대역천영겁결계 덕분이라는 말인가요?”
“그래.”
“아……!”
오청연과 난추의 입에서 무거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나는 대결계의 힘 덕분에 존마전환대법을 받지 않은 환요가 존마지공을 쓸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당신 생각이 맞을 거예요.”
“환요가 존마로 진화해 놈의 사념체가 된다면, 놈은 아득한 옛날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들 거다.”
“하지만 그도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걸요? 당신이 있으니까요.”
“전과 달리 대결계까지 치고 있는 걸 보면 놈은 이번엔 나와 진짜 끝을 볼 생각인 것 같다.”
진무앙이 난추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난추, 너도 대역천영겁결계가 완전히 활성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천무령으로 각성한 환우십병의 기운은 모두 대결계의 중심으로 흡수되겠죠…….]“잘 아네. 그럼 왜 내가 널 묵령과 금령처럼 품으려고 하는지도 알겠지?”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것도 잘 아네. 그러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내 말대로 해.”
[생각할 시간을 주겠어요?]“무림맹 총타에 도착할 때까지 결론을 내.”
[알았어요.]난추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녀가 은신한 후 오청연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아직 대결계가 완성된 게 아니라면 그것을 저지할 수도 있잖아요?”
“말은 쉽지.”
“방법이 없나요?”
잠시 마차의 천장을 올려다보던 진무앙이 대답했다.
“개새끼가 이 세계에 대결계를 펼치기 위해선 놈에게 충성하는 강대한 힘을 가진 노예들이 있어야 해. 그들을 찾아 죽이면, 저지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
오청연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종가주의 노예들을 대체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그때였다.
“으악, 깜짝이야!”
밖에서 공야무룡의 커다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청연이 물었다.
“곰아, 무슨 일이니?”
“아니,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나게 큰 통돼지같이 생긴 남자하고 면사를 쓴 여자 한 명이 뚝 떨어져서…….”
진무앙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잘됐네. 껍질 벗기러 무한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