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56
356 아무튼 많아
독고운진이 그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우리… 봐주는 거냐?”
“네 껍질을 벗기든 홍련의 팔을 자르든…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런다고 내 가슴에 난 구멍이 메꿔질 일은 없으니까.”
그가 심드렁한 얼굴로 독고운진 부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꺼져. 꼴도 보기 싫다.”
독고홍련이 독고운진의 겨드랑이 사이에 들어가 그를 부축했다.
독고운진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우리 딸, 많이 놀랐지?”
“저보다 아버님이…….”
독고홍련은 말끝을 흐렸다.
“이 아비는 괜찮다.”
독고운진은 여전히 피칠갑이었다. 하지만 몸에 났던 상처는 전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팔짱을 낀 진무앙이 짝다리를 짚고 서서 중얼거렸다.
“돼지 새끼, 여러 가지 하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로 죽다 살아난 줄 알겠어.”
독고운진이 그의 눈치를 살살 보며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말했다.
“죽다 살아난 거 맞잖아.”
진무앙이 손가락으로 독고운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누가? 네가?”
“그럼 나지, 누구겠어?”
진무앙이 암월도의 손잡이를 잡으며 되물었다.
“죽지도 못하는 놈이 그런 말을 하면 진짜 제대로 썰어주고 싶어진다는 거 모르냐?”
움찔한 독고운진이 슬그머니 독고홍련의 뒤로 가서 어깨를 잔뜩 웅크렸다.
하지만 팔십 근도 되지 않는 독고홍련의 뒤에 웅크린다고 오백 근이 넘는 그가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진무앙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돼지, 지금 숨은 거냐?”
“숨긴 누가 숨었다고!”
“볼일 다 봤으면 빨리 꺼져. 더 볼 게 뭐 있다고 그렇게 뭉그적거려?”
“무앙, 우리보고 진짜 이대로 가라는 거야?”
“그럼 거짓말로 가라 하겠냐?”
“형산에서 오행기 애들한테 대재앙 어쩌고 했다면서? 우리가 널 열받게 한 건 맞지만, 네 화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으니 그게 무슨 소린지 설명은 해줘야…….”
진무앙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으며 한마디를 했다.
“대역천영겁결계.”
간단한 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독고운진의 안색이 확 변했다.
“무앙, 진짜 그거냐?”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구 할 이상 확신한다.”
“으으음… 어느 미친놈이 그걸…….”
“돼지, 그 미친놈이 누군지 너도 알잖아.”
독고운진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꿀꺽… 이 세계에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배후에 정말로 종가주가 있단 말이야?”
“파멸, 종말, 멸망, 재앙… 이런 인생에 도움이 눈곱만치도 되지 않는 것들에 꽂힌 미친놈이 그 개새끼 말고 또 있겠냐?”
“그건 그렇지만…….”
독고운진의 둥글둥글한 입술 사이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꽤 오랜 세월 조용히 지내기에 이 세상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건가 싶었더니… 그냥 내 희망사항에 불과했었군.”
“네 뇌는 국숫발로 가득차 있는 모양이네. 내가 여기 있는데 그놈이 포기를 하겠냐?”
독고운진이 입술을 불퉁거리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희망사항이라고 했잖아.”
진무앙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돼지, 너 지금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개긴 거냐?”
지은 죄가 있는 독고운진은 즉시 입술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시선을 얌전히 내렸다.
“무앙, 그럴 리가 있어? 내가 너한테 개기다니, 착각도 그 정도면 병이야.”
그가 진무앙의 눈치를 슬슬 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은 예전에 네가 나한테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던 것들 조사하면서 다른 세상의 힘이 본격적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건 알았어. 하지만 그게 종가주일 줄은 몰랐다.”
“그럼 누구라고 생각한 건데?”
“전신마가주. 예전에도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이백 년 전에 네가 그놈의 아들을 죽이면서 불구대천지수가 되었잖냐. 놈이라면 여기서 이런저런 일을 벌일 만한 능력도 충분하고.”
“헛다리 제대로 짚었네.”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놈도 여기 있는 건 맞아. 하지만 대국을 주관하지는 못해. 놈이 감당하기엔 판이 너무 커.”
“무앙, 정말 종가주가 대결계를 친 거라면… 어떻게 할 거냐?”
진무앙이 뭐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곳엔 난향이 살아. 뿐이냐? 임아, 휘아, 백지, 가흔, 유코에, 운정이, 옥상이도 있고, 또…….”
독고운진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만! 대체 몇 명이야? 여자들 이름 부르다가 날 새겠다!”
“아무튼 많아. 걔들 죽는 꼴은 절대 못 봐.”
“에효, 그 많은 이름을 부르는데 남자 이름은 하나도 안 나오는구나.”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사내놈들이야 자기들 목숨 자기가 챙겨야지. 내가 왜 걔들을 신경써.”
“무앙, 너도 참 대단하다. 네 그 변태스러운 취향은 어떻게 수천 년이 흘러도 변할 기미조차 보이지를 않냐?”
“초지일관이…….”
독고운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진무앙의 말을 끊었다.
“그래그래, 그게 네 지론이지.”
“대충 알아들었으면 무림맹으로 돌아가서 전투 준비나 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할 거야. 놈의 손에 시체가 된 홍련이를 보고 싶지 않으면.”
“너는?”
“낙양으로 간다.”
“알았어. 이놈 데리고 가.”
독고운진은 어느새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 자운신조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무앙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그 욕쟁이를? 싫다.”
“소식 주고받는 데는 자운만큼 유용한 애도 없어. 말귀도 알아듣고 빠르잖아. 그러니 데리고 가.”
자운신조가 소리를 질렀다.
[천중제일색마왕 진무앙, 난 돼지보다 날씬하고 예뻐! 난향 소저도 날 좋아해!]그 말을 들은 진무앙과 독고운진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아으, 저걸 그냥!”
“자운, 그게 먹여주고 재워주는 주인한테 할 소리냐!”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부라리자 자운신조는 재빨리 하늘로 날아올랐다.
[흥! 돼지가 언제 그런 걸 나한테 해줬어! 먹이 잡는 것도 나고, 잠자리 만드는 것도 나야!]“너 자꾸 무앙 앞에서 헛소리하면 부리에 입마개 해버린다!”
[인간은 쫌팽이들이야. 진실을 듣기 싫어해!]진무앙이 독고운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보고 저런 걸 데리고 가라고? 네가 옆에 두기 싫으니까 나한테 떠넘기려는 거지?”
독고운진이 풍차를 돌리듯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절대 아니야! 정말 전서구로 쓰라고 잠시 빌려주는 거야.”
진무앙이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닌 것 같은데…….”
독고운진은 진무앙이 잡을까 봐 겁이 나는 듯 꽁지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독고홍련을 재촉했다.
“딸아, 어서 가자. 맹을 정비하려면 할 일이 산더미야.”
“예, 아버님.”
독고홍련은 진무앙에게 허리를 숙였다.
“숙부님, 다음에 뵐 때까지 강녕하세요.”
“너 안 보면 훨씬 더 강녕할 거다.”
독고홍련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등을 돌렸다.
그런 그녀와 함께 신형을 날리며 독고운진이 진무앙에게 소리쳤다.
“무앙, 바빠서 그냥 가지만 오늘 련아에게 손찌검한 거, 나중에 제값 받아낼 거다!”
“그전에 네 껍질이 벗겨질 거다, 돼지 자식아.”
진무앙은 심드렁하게 대답한 후 마차로 걸어갔다.
마차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공야무룡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주공, 저 덩치 산만 한 분, 누구쇼?”
진무앙이 이름을 부르지 않은 탓에 그는 독고운진이 누군지 몰랐다.
“독고운진.”
공야무룡과 신완아의 안색이 변해 소리쳤다.
“무림맹 총군사!”
“맞아. 그놈이다.”
“무림맹의 최고위급 요인을 그렇게 막 칼로 찌르고 패대기치고 그래도… 되는 거유?”
진무앙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안 될 건 뭐냐?”
“아니… 그게…….”
공야무룡은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면 그의 조부 공야승추도 막 굴리는 진무앙이었다.
무림맹주도 꺼리지 않을 사람인데 군사를 굴리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진무앙과 오청연이 마차에 올랐다.
안에서 진무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곰탱아, 갈 길이 멀다.”
“알았수.”
신완아와 함께 마부석에 나란히 앉은 공야무룡이 말에 채찍질을 했다.
“이랴!”
히히히히히잉-
다가닥! 다가닥!
사두마차는 대별산의 관도를 힘차게 달렸다.
* * *
적막한 어둠에 잠긴 황성의 대장원.
후원의 정원까지 천군을 안내한 시녀는 공손히 인사를 한 후 되돌아갔다.
연못 근처의 정장에서 차를 마시던 신녀가 미소로 천군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천군.”
맞은편에 앉은 천군이 조금 굳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천하에 어떤 풍파가 일든 신녀의 안색은 늘 평온하군요.”
“텅 비운 마음엔 파도에 흔들린 배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태평하게 있다가 뒤통수를 맞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요, 신녀?”
신녀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누가 가만있는 제 뒤통수를 치려 한다는 말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걸 알 텐데도요?”
“난세와 중립은 어울리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신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경고를 해주러 온 천군께서 제 뒤통수를 칠 것 같지는 않으니… 신무제나 종가주, 둘 중 한 사람이겠네요. 아니, 둘 다일 수도 있겠군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음, 그런데 두 사람의 무게가 너무 차이가 심해서 동급으로 놓고 말하려니 종가주에게 조금 미안해지려 하네요. 어쨌든, 누군가요, 제 뒤통수를 치려는 사람이?”
“아직은 의심 단계이긴 하지만… 둘 다입니다. 신무제와 마계에 있는 종가주의 움직임이 심상찮습니다.”
천군의 대답에 신녀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물었다.
“천군의 뒤통수도 위험한 건가요?”
“신녀를 노리는 자들이 나는 그냥 두겠습니까.”
“그럼 우리 두 사람 모두를 제거하려 한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그분들이 왜 그런 엉뚱한 짓을 하려고 할까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위험 부담이 너무 크잖아요. 더구나 신무제는 우리와 했던 협약까지 깨뜨리면서 말이죠.”
천군은 미간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아직 정확한 정보가 없는 터라 추측이긴 합니다만, 신무제도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무제를 궁지에 몰 인물이라면… 역시 종가주겠죠?”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신녀가 가늘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하아… 아무튼 그들이 우리를 노린다면, 손해보다 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해서겠지요? 어떤 이익일까요?”
“신무제는 정국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를 쓰러뜨린다면 종가주는 마병존마를 완성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그가 이곳으로 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고요.”
신녀는 천군의 말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그녀가 탄식하며 말했다.
“나무는 가만있으려 하는데, 바람이 내버려 두지 않는 형국이로군요.”
그녀가 천군에게 물었다.
“천군께서 제게 이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당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신녀는 눈을 들어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았다.
“아직 성녀를 찾지도 못했는데, 주변엔 풍파만 넘실거리네요.”
“신녀, 나와 함께 판을 뒤집어보지 않겠습니까?”
“재미는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나는 할 일이 있어요.”
“성녀를 찾는 것 말입니까? 내가 그 일을 도울 수 있습니다.”
신녀의 눈이 커졌다.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확실한 도움이라면, 천군과의 협력, 긍정적으로 검토하지요.”
천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성녀로 의심되는 소녀가 어디에 사는지 아는 자가 있습니다. 그를 만날 수 있게 조치하지요.”
“그가 누구죠?”
천군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창 첩형 상관무외라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