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59
359 나한테 왜 이래요?
해 질 무렵, 수향루 정문 앞.
다가닥. 다가닥.
“워, 워.”
거구의 마부가 고삐를 당기자 마차를 끌던 네 마리의 흑마가 걸음을 멈췄다.
공야무룡이 마차를 돌아보며 말했다.
“주공, 도착했수!”
“알아.”
심드렁한 대답.
공야무룡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왜 안 내리는 거유?”
“내리든 말든 네가 신경쓸 일 아냐.”
마차 안.
오청연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진짜 왜 안 내려요?”
진무앙은 측면의 창가에 턱을 올린 채 수향루를 보며 대답했다.
“묘하게 불안해서.”
“불안하다고요? 왜요?”
“글쎄… 왜 불안한지 나도 모르겠다.”
진무앙은 심각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음, 내가 외유하면서 난향한테 무슨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했나?”
답은 바로 나왔다.
“그런 거 없는데…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라 난향한테 죄를 지을 리가 없잖아.”
그가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은 오청연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그만하고 어서 내려요. 이러다 날 새겠어요.”
진무앙이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 여기에서 생활했던 기억, 얼마나 있는 거냐?”
오청연은 가는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천무령을 각성할 때 많은 부분이 소멸되어서 일부분만 기억할 뿐이에요. 당신도 바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다른 것들이야 오죽하겠어요?”
“네 기억이 그렇게 불완전하면, 저 안에 너한테 서운하다고 할 사람 많을 거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기억하지 못하는 걸 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래.”
진무앙은 품에서 인피면구를 꺼내 얼굴에 뒤집어썼다.
오청연이 물었다.
“그건 왜 써요?”
“여기선 이 얼굴로 통해. 본 얼굴로 다니면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를 거야. 너도 면사를 써. 네 얼굴 알아보는 사람 많으면 귀찮아.”
진무앙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가자.”
진무앙과 오청연이 마차에서 내리자 몽지림은 즉시 허공으로 몸을 감췄다.
진무앙은 오청연과 신완아, 공야무룡을 데리고 수향루의 문 안으로 들어섰다.
영업이 시작된 터라 수향루의 대문을 오가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진무앙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상하네…….”
“뭐가요?”
“난향이야 그렇다 쳐도 석초는 내가 돌아온 걸 모를 리가 없는데…….”
“석초라면… 포대화상같이 생겼다는 남자 말인가요?”
“응.”
그의 말을 들은 것인지 안쪽에서 누군가 허겁지겁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진 호위님!”
그는 귀수신의 사공춘이었다.
진무앙 앞에 도착한 그가 포권을 하며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다녀오셨습니까.”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진무앙이 물었다.
“왜 너만 나와?”
허리를 편 사공춘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예?”
“다른 놈들은 어쩌고, 제일 늙어 보이는 네가 나오는 거냐고.”
사공춘은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해서 언뜻 봐도 칠팔십 세 이상 같았다.
“난향이 마중 나오는 건 기대도 안 해. 하지만 석초 자식은 나와야 할 거 아냐.”
“루주님은 집무실에 계신 듯하고, 강 아우는 바쁜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도 요 며칠 동안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이냐?”
“어느 분 앞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하긴 다른 사람 말은 못 믿어도 너는 믿을 수 있지.”
진무앙은 걸음을 옮기며 사공춘에게 물었다.
“소소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별채 앞마당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몸 상태는 어때?”
“진 호위님이 떠나실 때와 비슷합니다.”
“악화되지는 않았다는 말이지?”
“예.”
“네가 고생했다.”
“별말씀을. 마땅히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너는 그 고리타분한 말투 좀 어떻게 할 수 없냐?”
사공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예?”
“그것만 바꿔도 확 젊어질 것 같은데 말이지.”
“어떻게 바꾸라는 말씀이신지……?”
“됐다. 바랄 걸 바라야지. 넌 그냥 그렇게 살다 가.”
“예?”
“자꾸 되묻지 마. 대꾸하기 귀찮다.”
“예…….”
진무앙이 암월도의 도갑을 그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그 안에 내가 돌아다니며 모은 무량보천신단의 재료들이 들어 있다. 그거, 연단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냐?”
안색이 환하게 밝아진 사공춘이 도갑을 받으며 대답했다.
“열흘에서 보름 정도입니다.”
“당장 연단 시작해. 난향한테는 네게 필요한 것들 뭐든 지원하라고 말해둘 테니까.”
“알겠습니다. 소소는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크게 악화되지 않을 테니 제가 연단을 마칠 때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아이는 염려하지 마.”
“그럼.”
포권을 한 사공춘이 미친 듯이 후원으로 달려갔다.
그곳엔 난향이 그를 위해 만들어준 의방이 있었다.
사공춘이 사라진 자리에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아담한 체구의 미부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진무앙에게 말했다.
“진 호위, 어딜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그녀는 수향루의 총관 이수홍이었다.
“어, 이 총관님,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루주님은 집무실에 계십니까?”
“그럼, 영업 이제 막 시작했잖아.”
“저는 루주님한테 귀환 보고를 드리러 가보겠습니다.”
“호위무사 일은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거야?”
“글쎄요. 루주님이 자꾸 다른 일을 시켜서 확답을 드리기 어렵네요.”
“목 호위도 자네를 보고 싶어 해. 시간 날 때 셋이서 같이 한잔하자고.”
“총관님이 술값 낸다고 하면 언제든지요.”
이수홍은 남자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얼마든지 낼 테니까 날만 잡아.”
“예.”
이수홍의 시선이 진무앙의 뒤에 서 있는 신완아, 공야무룡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면사를 쓴 오청연에게 이르자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진무앙에게 물었다.
“저 소저는 낯이 익은데… 진 호위, 소개를 해주겠나?”
“총관님, 조금 참으시죠. 먼저 루주님을 뵌 다음에 소개해 주겠습니다.”
“뭐… 알겠네.”
진무앙은 포권을 한 후 이 총관을 지나 난향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공야무룡이 그에게 물었다.
“주공, 그런데 진짜 호위무사를 하고 계신 거였수?”
“왜?”
뒷머리를 긁적인 공야무룡이 대답했다.
“저는 그냥 농담하시는 줄 알았수다.”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지.”
“주공은 몇 달을 굶어도 안 죽는 분이잖수.”
“나 굶는 거 본 적 있냐?”
“그건 아니지만… 할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데…….”
진무앙이 걸음을 멈추며 공야무룡과 신완아를 돌아보았다.
“너희 둘은 후원 별채로 가서 기다려. 생각해 보니까 너희까지 난향한테 데리고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공야무룡도 높은 사람을 만나는 건 체질적으로 별로인 남자라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수.”
진무앙이 손을 들어 후원 별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야. 가면 포대화상처럼 생긴 놈이나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애가 있을 거다. 걔들한테 내가 보내서 왔다고 하고 방 잡아달라고 해. 그럼 알아서 안내해 줄 거다.”
“넵!”
힘차게 대답한 공야무룡은 대끔 신완아의 손을 잡고 후원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던 진무앙이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난향은 저 자식이 공야승추의 손자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텐데…….”
오청연이 물었다.
“알아보면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는 말투네요.”
“만만찮은 문제가 생길 거다.”
“난향이라는 분과 큰 곰 사이에 원한이라도 있나 보네요.”
“아니.”
“예? 그럼 무슨 문제인데요?”
“공야승추가 아니라 난향은 곰탱이 할머니하고 사이가 안 좋아.”
“작은 곰의 할머니가 누군데요?”
“일월…….”
어디선가 들려온 맑고 차가운 여인의 목소리가 진무앙의 말을 끊었다.
“거기서 쓸데없는 잡담하지 말고 빨리 올라와!”
“귀도 밝아요.”
흠칫하며 중얼거린 진무앙은 오청연의 손목을 잡고는 바람처럼 경공을 펼쳤다.
난향은 손에 장죽을 들고 의자에 앉아 진무앙과 오청연을 맞았다.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오래 걸렸네. 성과는 있었어?”
“먼저 고생했다는 말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기에는 당신 옆에 거슬리는 여자가 너무 많아.”
“임아한테 한 이야기는 아닐 거고. 얘는 오청연이야. 여기서 일했던 자양화. 알지?”
오청연이 난향을 향해 포권을 했다.
정중한 인사였다. 하지만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눈에 삼엄한 신광이 어린 난향이 말했다.
“껍데기만 자양화네. 속은… 신기 중 하나?”
오청연이 면사를 벗으며 말을 받았다.
“눈썰미가 날카로운 분이시로군요. 진 호위님이 꺼리실 만해요.”
“무앙이 날 꺼린다고?”
난향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당신은 입조심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그와 나에 대해 그처럼 생각 없이 나불대다가는 내일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오청연의 안색이 굳어졌다.
“루주, 당신이 범상찮은 사람이라는 건 알겠지만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군요.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한다는 말을 명심하는 게 좋… 컥!”
말을 하던 오청연의 입에서 격렬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진무앙이 그녀의 가녀린 목을 움켜쥔 채 위로 들어올렸다.
어떻게 손을 쓴 것인지 오청연은 버둥거리기만 할 뿐 그의 손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 당신… 왜……?”
말을 하던 그녀는 진무앙의 무심한 눈을 보고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진무앙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향에게 사과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 너를 이 자리에서 소멸시키겠다.”
오청연은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그녀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뭔가 억울하고, 서운하고, 무섭기도 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파도가 그녀의 마음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그때 난향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앙, 그만하고 놔줘.”
진무앙의 손에서 힘이 사라졌다.
툭!
“하악… 하악… 하악…….”
오청연은 목을 움켜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물기 젖은 눈으로 진무앙을 보며 물었다.
“나한테 왜 이래요?”
진무앙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난향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마라. 그녀에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나뿐이다.”
이 말 또한 진심이라는 걸 느낀 오청연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그 순간, 다시 난향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앙.”
진무앙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언제 심각했냐는 듯 그는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응? 왜?”
“일부러 그녀에게 위압적으로 굴 필요 없어.”
진무앙이 움찔하며 물었다.
“네 눈에는 내가 연기를 하는 걸로 보여?”
“그래.”
“내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
“흥! 당신은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내지 못하게 미리 약을 친 거잖아. 아니야?”
“아… 아닌데…….”
“됐고.”
난향이 그의 말을 자른 후 물었다.
“기운으로 이루어진 다른 여자도 있다며? 나오라고 해.”
진무앙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을 것 같아?”
즉시 전후사정을 알아차린 진무앙이 이를 부드득 갈며 소리를 질렀다.
“이 새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