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68
368 이 여시 같은 것!
그날 저녁, 수향루.
“잘 다녀왔어?”
난향은 등불이 환하게 켜진 별채의 정원에서 진무앙을 맞았다.
진무앙이 입을 떼기도 전에 그의 등에 업혀 있던 산산이 신나게 손을 흔들며 말을 받았다.
“큰 언니! 저 왔어요!”
난향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여전히 그 사람 등이 그렇게 좋니?”
산산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래도 이제는 내려와야 하지 않을까?”
“싫어!”
“진 대가가 짜증을 낼지도 몰라.”
산산이 울먹울먹한 얼굴로 진무앙에게 물었다.
“대가, 큰 언니 말 맞아?”
말을 잘못하면 산산이 울음을 터트릴 게 뻔한 상황이라 진무앙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려, 막내야. 내가 너한테 왜 짜증을 내겠냐.”
금세 얼굴이 밝아진 산산이 난향에게 혀를 날름 내밀며 말했다.
“그거 봐, 큰 언니. 대가는 나한테 짜증 안 낸다잖아.”
“쯧, 막내야, 이제는 네 나이를 생각할 때도 되지 않았니? 대체 언제쯤 철이 들 거야?”
“죽을 때까지 안 들 거야, 대가가 나를 어른 취급해 주면 몰라도.”
진무앙이 한숨을 내쉬며 난향에게 말했다.
“내가 잘못했다. 산산이한테 주안과를 주는 게 아니었는데.”
산산이 입술을 삐죽였다.
“나한테만 준 것도 아니면서. 언니, 오빠들한테 전부 줬잖아. 그래서 전부 늙지 않는 건데.”
난향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다른 애들은?”
진무앙과 함께 온 사람은 산산뿐이었다.
“몰라서 묻냐?”
난향이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더 마음에 들지 않은 진무앙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좋냐?”
“당연하잖아, 애들이 당신 도망치지 못하게 이곳을 포위했는데.”
“그런다고 내가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흥흥, 당연히 아니지. 당신이 작정하면 누가 막을 수 있겠어?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야반도주하는 게 쉽지 않을 거야.”
시무룩해진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누가 야반도주를 한다고 그래…….”
“소소 문제만 해결되면 그럴 생각 아니었어?”
그 말에 흠칫했던 진무앙은 즉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천만에. 절대 그럴 일 없어! 맹세하라면 할 수도 있다고!”
난향이 소리 없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도 못한 당신 맹세를 어디다 써?”
역시 말로 난향을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절감한 진무앙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구시렁거렸다.
“말 참 이쁘게 한다…….”
그는 화제를 바꿨다.
“석초 자식은 어디 있어?”
“아직 안 돌아왔어.”
“아직도? 애들 다 낙양에 온 거 밝혀졌는데 왜 안 돌아와?”
“당신이 어떻게 나올지 뻔하니까.”
“뭐가 뻔하다는 거야?”
“나한테 묻지 말고 당신 자신에게 물어봐.”
난향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 내 집무실로 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녀가 말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들은 진무앙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담담하기까지 한 그의 태도에 난향이 걸음을 멈췄다.
“반응이 내가 기대한 것과 많이 다르네?”
“뭘 기대했는데?”
“적어도 긴장은 할 줄 알았지.”
“내 지론 중 하나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야.”
그의 덤덤한 대꾸에 난향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래서 즐기겠다고?”
난향에게 지은 죄가 태산보다 높은 진무앙은 즉시 꼬리를 내렸다.
“그건 아니고…….”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보던 난향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무앙의 태도는 정말로 그녀의 예상과 너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향은 이 세상에서 진무앙을 가장 잘 아는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물었다.
“참 이상하네. 왜 당신이 이 상황을 싫어하는 것 같지가 않지? 아니, 오히려 바라던 일처럼 느껴져. 내가 잘못 본 거야?”
진무앙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넌 진짜 타심통이라도 터득한 여자 같아.”
제대로 봤다는 뜻이다.
난향의 눈빛이 깊어졌다.
“갑자기 그 이유가 너무너무 듣고 싶네.”
“나중에 말해줄게. 지금은 머리가 복잡해서 정리를 좀 해야 해.”
진무앙이 말에 난향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녀가 당장 알아야 하는 일이라면 진무앙이 저런 식으로 말할 리 없었다.
난향이 떠나자 진무앙은 별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여전히 등에 업혀 있는 산산에게 물었다.
“막내야, 이제 내려오는 게 어떨까? 저 안에는 소소라고 너보다 어린 애도 있어. 걔가 보면 비웃을 거다.”
“소소면 대가가 꼬맹이라고 부른다는 열 살짜리 여자애를 말하는 거지?”
“걔를 알아?”
“응. 석초 오빠한테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그래?”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석초 오빠는 걔가 굉장히 착하고 생각이 깊은 애라고 했어. 그런 애가 나를 비웃겠어?”
결국 내리지 않겠다는 말이다.
“막내야, 예전보다 떼쓰기가 늘었다.”
산산의 대답은 명쾌했다.
“난 그런 거 몰라.”
진무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산산을 강제로 떼어내지는 않았다.
그러려면 별수 없이 그녀를 집어던져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다가는 밤새도록 그녀의 대성통곡을 들을 게 뻔했으니까.
방으로 들어섰을 때야 산산은 진무앙의 등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침상 앞에 서서 고민에 빠진 얼굴로 팔짱을 끼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진무앙이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막내야, 뭐하냐?”
“침상이 너무 작은 것 같아서.”
“충분한데?”
“아니야. 둘이 자기엔 너무 작아. 아무래도 큰 언니한테 침상을 바꿔달라고 해야겠어.”
진무앙이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응? 둘이 잔다고? 무슨 소리냐?”
산산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되물었다.
“그럼 혼자 자려고 했어?”
“…너, 여기서 잘 생각이냐?”
“당연한 거 아냐? 대가 혼자 재우면 언제 도망갈지 모르잖아.”
“도망 안 간다고 했잖아.”
“헹, 설마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거 아니지? 그 말을 믿었던 큰언니가 며칠 밤을 눈물로 지새우는 걸 본 게 몇 번인데.”
움찔한 진무앙이 말을 돌렸다.
“산산아, 그래도 이건 아냐.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도 있잖냐.”
산산의 눈이 동그래졌다.
“대가가 남자야?”
“그럼 여자냐?”
“몰라.”
“모르긴 뭘 몰라!”
산산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받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후우… 졌다…….”
진무앙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침상 모서리에 앉은 산산이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가는 왜 공력을 완전히 풀어버린 거야? 수향루 정문을 지날 때부터 그러던데.”
“여긴 난향이 집주인이야. 천하에 이보다 안전한 곳은 없어. 그러니 내가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잖냐?”
“아, 그래서 모르는 거였구나.”
“뭘?”
“넷째 오빠 숨어 있는 거.”
진무앙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산산이 넷째 오빠라고 부를 사람은 강석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그 돼지 자식이 숨어 있다고?”
그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산산은 겁을 먹기는커녕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궁금하면 대가가 찾아봐.”
산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 밖에서 뭐가 굴러가는 듯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진무앙은 순간 이동하는 듯한 속도로 방에서 뛰쳐나갔다.
복도엔 강석초가 네 발로 계단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꼴을 보아 발이 엉켜 쓰러졌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마음이 급한지 그는 일어나지도 않은 채 달린 것이다.
그래서 저런 모습이 된 것이고.
그 모습을 본 진무앙이 번개처럼 신형을 날리며 뇌성벽력과도 같은 대갈일성을 내질렀다.
“애들을 사마세가에 숨겨놓고 나를 기다리게 한 게 너지, 이 통통돼지 새끼야!”
단 일보로 강석초를 따라잡은 진무앙은 그의 뒷덜미를 잡아 올렸다.
사색이 된 강석초가 고개를 돌려 진무앙을 보며 애걸했다.
“대형, 아냐. 내 얘기 좀 들어봐. 형제자매를 여기로 불러모은 건 내가 아니라 운상이라고. 정말이야. 믿어줘.”
“이럴 때만 내가 대형으로 보이지, 이 돼지 새끼야! 불러모은 건 그 녀석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는 검푸른 섬광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강석초를 보며 음산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운상이가 사마세가에 애들을 숨겨놓는 짓을 했다고? 그 단순한 녀석이?”
강석초가 발악을 했다.
“대형! 걔라니까! 절대 나 아니라고!”
그때 진무앙을 따라 방을 나온 산산이 고개를 갸웃하며 강석초에게 말했다.
“넷째 오빠, 우리보고 사마세가에 가 있으라고 한 사람은 오빠가 맞잖아. 거기서 기다리면 분명히 대가가 올 거라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만들 거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기절초풍한 강석초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산산은 말을 이었다.
“오래된 일도 아니잖아, 오늘 아침에 그랬으니까. 그런데 벌써 잊은 거야?”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죽은 강석초가 산산을 향해 비명처럼 악을 썼다.
“막내야, 너, 대체 나한테 왜 이래!”
산산이 귀엽게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말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강석초가 다시 악을 썼다.
“이 여시 같은 것!”
진무앙이 그런 그를 복도 바닥에 거꾸로 처박았다.
쾅!
마치 망치로 못을 친 것처럼 강석초의 머리가 단단한 나무 바닥을 뚫고 어깨까지 틀어박혔다.
“저렇게 귀여운 막내한테 여시가 뭐야, 여시가! 이 돼지새끼야!”
“대형……!”
바닥에 박힌 머리를 빼낸 강석초가 억울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진무앙을 보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진무앙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허리춤의 암월도를 도갑째 손에 쥐었다.
그것을 본 강석초의 안색이 푸르딩딩하게 변했다.
“대형! 참아, 제발 참아! 말로 하자고! 폭력으로 분풀이를 하는 건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진무앙이 여전히 음산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내가 야만의 시대에 태어나 그곳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는 걸 잊었냐?”
강석초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흑흑흑… 대형… 제발 참으십쇼.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다신 안 그럴게요!”
그 짧은 사이에 그는 말투까지 변해 있었다.
대꾸는 말이 아니라 암월도였다.
부우우우우웅-
이건 암월도가 도갑째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이건 찰진 매타작 소리.
“꾸웨에에에에액!”
그리고 처절함이 극에 달한 비명이 별채를 뒤흔들었다.
암월도를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삼십 대를 두들겨 패는 신기를 보여준 진무앙이 다시 한 번 도를 들어올렸다.
그가 다시 도를 휘두르려 할 때였다.
푸른 그림자가 달려들어 강석초의 몸을 덮었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애원.
“진 대가, 제발 이 사람을 용서해 주세요.”
진무앙의 손이 멈칫했다.
몸으로 강석초를 덮은 사람은 진소혜였다.
“비켜라, 저 자식은 더 맞아야 해.”
진무앙의 음성엔 여전히 노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진소혜는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제가 맞을게요. 차라리 저를 때려주세요.”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렸다.
때려달라고 상관도 없는 진소혜를 두들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갈 생각도 없었다.
그는 진소혜의 어깨를 잡아 들어올렸다.
진소혜가 무슨 수로 진무앙의 손길에 저항을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힘없이 위로 들려졌다.
진무앙이 그녀를 옆으로 치우려 할 때 강석초와 그 사이에 작은 그림자 하나가 뛰어들어 바닥에 엎드렸다.
“진 숙부님, 강 소숙을 용서해 주세요.”
작은 그림자는 소소였다.
아이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진무앙을 보고 있었다.
소소를 향한 진무앙의 눈에서 천천히 분노의 빛이 사라졌다.
고개를 든 그는 복도에 어느새 오청연, 공야무룡, 소소… 거기에 마야까지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구시렁거렸다.
“구경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