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69
369 그럴 리가 없잖아
진무앙의 기세가 확연하게 누그러지자 소소가 울먹이며 말했다.
“숙부님, 혼날 사람은 저예요. 강 소숙은 제 말대로 한 것뿐이에요.”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알아듣게 말해봐라.”
표정은 안 좋았지만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지켜보던 공야무룡이 신완아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아매, 주공이 저 꼬마한테만 이상하게 약한 것 같지 않아?”
“가가도 느꼈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희한하네. 주공이 원래 애를 좋아하는 분이었던 건가?”
신완아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린아이와 함께 있는 진무앙을 본 적이 없으니 뭐라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때 소소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진무앙에게 대답을 했다.
“며칠 전에 강 소숙이 숙부님이 귀환하는 중이라고 하시면서, 많은 아줌마하고, 강 소숙의 형제자매 분들이 수향루로 오고 있다는 말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강 소숙에게 형제자매 분들이 수향루를 포위해서 숙부님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드렸어요.”
“이 돼지 자식은 그 말에 옳다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예. 그러니 잘못은 강 소숙이 아니라 제게 있어요.”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네 잘못이 아니다.”
“예?”
“어린애가 하는 말에 맞장구를 치고 그걸 실행에 옮긴 어른이라니. 오죽 못났으면 어른이 열 살짜리 애 말에 솔깃해서 그걸 따르냐. 맞아도 싼 짓이야.”
“아니… 그래도 그건…….”
진무앙은 소소의 말을 끊고 결론을 내렸다.
“내 말이 맞는 거다. 무조건 맞는 거다. 반론은 허용 안 한다.”
소소는 입술을 깨물어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여전히 바닥에 누워 있던 강석초는 억울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진무앙이 그런 그의 옆구리를 세게 걷어찼다.
퍽!
“으악! 아니, 소소하고 얘기 잘 나누는 것 같더니 왜 때려요?”
“그 표정 뭐냐? 내 말에 이의 있다는 거냐?”
“…아니요. 없습니다. 없어요…….”
“그래야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하는 말인데.”
강석초의 입술이 댓 발은 튀어나왔다.
할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표정이었지만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한 마디만 더하면 진무앙이 다시 암월도를 휘두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진무앙이 소소에게 말했다.
“일어나라. 네 잘못 아니라고 했잖냐.”
“강 소숙을 더 때리지 않으실 거라고 약속해 주세요, 숙부님. 그렇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어요. 저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요.”
“안 때려, 꼬맹아. 그러니까 일어나.”
소소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 진무앙에게 허리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숙부님.”
진무앙이 강석초에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너, 오늘 꼬맹이 때문에 산 줄 알아.”
“…예…….”
비틀거리며 일어난 강석초가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는 왜 빼?”
“…감사합니다, 대형.”
진무앙이 휘적휘적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가려는 산산을 강석초가 불렀다.
“막내야.”
“왜?”
“왜 그랬냐?”
“뭘?”
강석초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아까 잘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너 때문에 내가 대형한테 개 맞듯이 맞았잖아.”
산산이 코웃음을 쳤다.
“흥, 맞을 만하니까 맞았지.”
“무슨 소리야? 사마세가에서 대형을 만나게 해준 사람이 난데?”
“넷째 오빠, 입이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대가가 이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우리한테 연락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야? 오빠잖아.”
강석초의 얼굴에 뜨끔해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자연히 목소리도 작아졌다.
“그건 다들 모여들면 저 인간이 또 튈까 봐 그런 거지… 그럼 큰 누나가 또 얼마나 마음 아파하겠냐고.”
산산은 또 코웃음을 쳤다.
“흥! 솔직하게 말해. 오빠가 정말 큰 언니 때문에 그런 거야? 물론 그 마음도 있었겠지.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잖아.”
강석초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이유가 또 있다는 거냐, 막내야?”
대답하는 산산의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우리가 오면 오빠가 더는 대가를 볼 수 없을까 겁이 나서 우리를 부르지 않은 이유. 내가 틀렸어? 맞잖아!”
강석초는 대꾸는커녕 산산의 눈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러한 그의 태도는 산산의 말이 진실이라는 뜻이었다.
산산이 말을 이었다.
“우리 중에 오빠만큼 대가를 그리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 오빠는 우리한테 그러면 안 됐어. 그러니까 맞아도 싸.”
“…….”
강석초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등을 홱 돌린 산산은 발걸음도 가볍게 진무앙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닫히자 진소혜가 강석초를 부축했다.
“강 가가, 괜찮아요?”
“견딜 만해. 저 인간한테 맞은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뭐.”
진소혜가 서러운 얼굴로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하지만 어깨만 들썩일 뿐 소리는 내지 못했다.
우는 소리가 나면 진무앙이 다시 문을 열고 나올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강석초가 소소를 돌아보며 말했다.
“소소야, 고맙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는데.”
소소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을 받았다.
“아니에요. 제가 죄송해요. 저 때문에 사달이 난 거잖아요.”
강석초는 쓴웃음을 지으며 소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런 생각하지 마라. 저 인간 말이 맞아. 네가 이야기를 했더라도 그걸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나야. 그러니 책임도 내가 져야 하는 게 맞지. 너무 마음에 두지 말고 들어가서 쉬어.”
“예, 강 소숙.”
말을 하는 소소의 안색은 어두웠다.
아이의 속내를 짐작한 강석초가 말했다.
“저 인간이 너한테 실망했을까 봐 무서운 거지?”
정곡을 찔린 소소의 눈에 말라가던 눈물이 차올랐다.
강석초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이니까 마음 쓰지 마라. 저 인간은 적에게는 무자비하고 집요하지만, 자기 사람한테는 뒤끝이 없어. 일이 마무리되면 그게 아무리 큰일이라도 바로 다 잊는다.”
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수긍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린 듯했다.
강석초는 소소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고 진소혜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오청연이 소소에게 물었다.
“소소야, 오늘은 나와 같이 잘래?”
“언니하고요?”
“응. 내가 진 대가하고 십만대산에 갔을 때 겪은 이야기를 해줄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 너도 들으면 재미있을 거야.”
“정말요?”
“응.”
“고맙습니다, 언니.”
말을 하는 소소의 눈이 반짝였다.
불안하던 얼굴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아무리 똑똑해도 소소는 아이였다.
오청연과 소소도 방으로 들어가자 복도엔 공야무룡과 신완아만 남았다.
신완아가 공야무룡에게 말했다.
“가가, 오늘은 조용히 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공야무룡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니, 왜 그래야 해?”
“이 분위기에 그러고 싶어요?”
“이 분위기가 어때서?”
“지금 주공의 심기를 거스르면 당신도 강 대협 꼴이 될지 몰라요.”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도 그럴까……?”
“그러고도 남을 분이라는 걸 가가도 잘 알잖아요.”
공야무룡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신완아는 공야무룡의 손을 잡아끌고 방으로 향했다.
밤이 깊어갔다.
오청연과 함께 같은 침상에서 잠을 자는 소소는 성격만큼이나 자는 자세도 반듯했다.
얼굴도 편안했다.
오청연이 해주겠다고 한 십만대산 이야기가 아이에게 위로가 된 듯했다.
시간이 축시를 넘어 인시(새벽 3시경)로 넘어갈 즈음.
곤히 잠을 자던 소소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느릿하게 위로 올라갔다.
드러난 아이의 눈동자는 금방 잠에서 깬 것 같지 않게 초롱초롱한 빛을 발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바로 옆에서 잠을 자는 오청연이 그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눈을 뜬 그녀가 소소에게 물었다.
“어디 가려고?”
소소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소피가 마려워서요. 주무세요.”
“같이 가줄까?”
“아니에요. 매일 혼자서도 잘 다녔는걸요.”
“무섭지 않아?”
“집이잖아요.”
“그래? 그럼 다녀오렴.”
“예.”
아이와 눈이 마주친 오청연은 빙긋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침상을 벗어난 소소는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아이의 행동이 이상했다.
측간이 있는 뒷마당으로 가는 건 맞았지만 뒤꿈치를 들고 걸었다. 게다가 진무앙의 방을 계속 힐끗거렸다.
마치 그가 자신의 기척을 들으면 큰일이 나기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깰까 걱정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아이의 몸짓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뒷마당으로 나온 소소는 측간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이상한 일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들어올리기라도 한 듯 소소의 두 발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땅에서 세 치가량 천천히 떠오른 아이는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스르르르르-
진무앙이 소소에게 무공을 가르치긴 했지만 아이의 성취는 호신술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아이가 펼치는 경공은 절대고수가 아니라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어풍비행술이었다.
투명한 막이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파공음도 나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소녀 귀신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물 흐르듯 수향루의 뒷담을 넘은 소소의 신형이 십여 장이나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가로질렀다.
북부의 주택가가 순식간에 소소의 뒤로 멀어졌고, 낙양성의 북쪽 성벽이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확 가까워졌다.
아이는 성벽을 한 마리 새처럼 가볍게 날아 넘었다.
소소의 목적지가 어딘지는 분명했다.
아이는 똑바로 북망산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낮에도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북망산은 인적이 완전히 끊긴 채 괴괴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소소의 움직임이 멈춘 곳은 허물어져 가는 고묘의 앞이었다.
고대 왕족의 것인 듯한 고묘는 절반쯤 허물어져 본래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고, 거미줄과 넝쿨이 뒤덮고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보통의 아이라면 겁에 질리고도 남을 분위기였다. 하지만 소소의 얼굴은 평온했다.
이곳에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묘의 마당에 쓸쓸한 눈빛으로 서 있던 아름다운 궁장여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가 소소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너를 보게 되는구나.”
마음의 격정을 참을 수 없는 듯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소를 맞는 그녀는 신녀였다.
소소의 눈에도 큰 파문이 일어났다.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신녀를 보며 말했다
“엄마…….”
“그래, 나다. 소소야.”
신녀는 떨리는 손으로 소소를 잡아 품에 안았다.
쉴 새 없이 아이의 뺨과 머리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신녀의 말에 소소는 격렬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녀의 품을 파고들었다.
“아냐, 엄마. 늦지 않았어. 절대 늦지 않았어.”
“힘들지는 않았어?”
“아니, 루주님이랑 여러 좋은 분이 날 보살펴주셨어.”
“외롭지는 않았고?”
소소가 눈을 들어 신녀를 보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아빠하고 함께 있었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