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7
037 그깟 모가지 따오면 되지
주신언이 찾아오긴 했지만, 며칠은 조용하게 지나갔다.
다행히 사마휘도 찾아오지 않았다.
기녀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으니 그는 송옥루와 관부를 들락날락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희봉 살인사건을 조사하느라 진무앙을 찾을 시간이 없는 듯했다.
우창언에 대한 소문은 들리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주설란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진무앙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하루 세 번 식사 후 소소와 산책하기.
영업 시작 전 호위무사 대기실 도착.
그곳에서 대기하다가 영업이 끝나면 거처로 귀가.
취침.
그가 경험한 적이 없던 규칙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 평화(?)는 강석초의 방문으로 깨졌다.
“무앙, 할 얘기가 있다. 내 방으로 가자.”
“여기서 얘기해.”
“소소가 들을 수도 있어.”
“얘 자는데?”
“깰 수도 있잖아.”
“수혈을 누르면 되지.”
“그게 아홉 살짜리 애한테 할 짓이냐? 어린아이가 혈을 잡히면 발육에 큰 문제가 생긴다는 거 몰라?”
“염병…….”
진무앙은 투덜거리며 강석초를 따라 그의 방으로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진무앙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네 의뢰.”
진무앙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채경옥?”
“응.”
강석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무앙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야, 그런데 너 정말 할 거냐? 이 낭랑이 사고 치지 말라고 했잖아. 무림맹 조사대도 너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고.”
“무조건 해야 해.”
“왜? 삐끗하면 넌 무림공적이 될 수도 있어.”
“이 자식이 시작도 안 했는데 겁부터 주고 지랄이야.”
“꼬실 여자가 없어서 채경옥이냐? 그 여자가 아무리 미인이라고 해도 네가 들이대기엔 가시가 너무 많은 꽃이라고.”
“저번에 내가 한 말을 어디로 들은 거야? 꼬시려는 거 아니라니까. 그리고 내가 유부녀한테 들이대는 거 봤냐? 천하의 그 많은 처녀 놔두고 왜 유부녀한테 들이대냐고!”
“하긴 가정파탄 내면 남편이 지옥 끝까지 쫓아온다고 유부녀는 쳐다도 보지 않긴 했지…….”
“후우… 그렇다니까.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을 줄도 알아봐라. 난향이나 너나 왜 그렇게 나를 못 믿어? 나, 정직한 남자야.”
“정직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꼬시는 거 아니면 채경옥하고 뭘 하려고 하는 건데?”
진무앙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기색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낀 강석초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너, 진짜 그 여자 꼬시려는 거 아니구나.”
“귓구멍에 말뚝 박았냐?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해?”
“그럼 뭘 하려는 건데?”
진무앙이 툭 뱉듯이 이름 하나를 말했다.
“아영 때문이야.”
강석초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아영? 설마… 단리영?”
“응.”
강석초가 벌떡 일어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진무앙을 노려보았다.
“아우, 잠시라도 네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 한 내가 미친놈이지. 야, 이 새끼야, 그녀도 유부녀야! 더구나 채경옥한테는 없는 애까지 있다고!”
강석초가 낙양에 터를 잡은 지도 몇 년 되었다.
당연히 그는 단리영이 사마무광의 둘째 부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진무앙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거 모르냐?”
강석초가 눈을 껌벅거렸다.
“아영을 만나서 예전에 못다 했던 정분을 다시 불태우려는 거 아니었어?”
진무앙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아니라니까!”
움찔한 강석초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진무앙이 그를 잔뜩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너도 아영이 몇 년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지?”
“낙양에 살면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냐?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었는데.”
“그녀가 왜 안 보이는지 알아본 적 있냐?”
강석초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딴 놈 부인이 된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잖아. 너랑 살림 차렸을 때도 나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았었고. 더구나 남편이 낙양의 지배자인 사마세가의 소가주 창천일검룡 사마무광이야. 그녀에게 어설프게 관심 보였다가는 밥줄 끊어진다고. 목도 위험하고.”
“목이 위험하긴… 그냥 귀찮았다고 말해, 자식아.”
계속해서 그가 물었다.
“그녀가 모습을 감췄을 때 사마세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
“별일 없었어. 있었으면 내 귀에도 들어왔겠지. 왜?”
“별일이 없었을 리 없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확신을 해?”
“그녀가 시녀를 시켜 흑암주를 밖으로 내보냈거든.”
안색이 확 변한 강석초가 벌떡 일어나며 악을 썼다.
“흑암주? 설마 너 이 새끼, 그녀에게 그걸 줬던 거야?”
“응.”
“하… 흑암주가 어떤 물건인데, 아무한테나 막 줘!”
“내 물건 내 여자한테 줬는데 네놈이 왜 악을 쓰고 지랄이야.”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왜!”
강석초는 맥이 다 빠진 모습으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무앙아, 네가 남의 목숨 아끼지 않는 건 잘 아는데, 네 목숨줄까지 아무렇게나 뿌리고 다닐 줄은 몰랐다.”
“과장하지 마. 흑암주를 준다고 내 목숨이 위험해지지는 않아, 임마.”
“그걸 가진 사람이 어떤 요구를 할 줄 알고? 천하삼정의 주인들 목을 따오라는 요구를 할 수도 있다고!”
“사내새끼 간이 조막만 해요. 그까짓 모가지 따오면 되지. 별걸 다 걱정하고 지랄이야.”
아연실색한 강석초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진짜… 어휴…….”
그가 물었다.
“흑암주 건은 어떻게 알았는데?”
“꼬맹이가 갖고 있었다.”
“소소? 걔가 그걸 어떻게?”
“시장 노점에서 샀대.”
“헐… 흑암주가 어떤 물건인데…….”
“이제 대충 자초지종 알았지? 채경옥에 대해서 알아낸 거 말해봐.”
“사흘 뒤에 향산사에 불공을 드리러 간단다.”
“향산사? 향산에 있는 거냐?”
“응.”
“그녀가 사마세가에서 나오면 알려줄 수 있지?”
“그건 어렵지 않은데, 채경옥을 통해서 아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생각이냐?”
“그래.”
“그녀라면 아영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긴 한데, 그걸 생전 처음 보는 너한테 말해줄 이유가 없잖아?”
“그녀가 세가를 나오면 알려주기나 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너는 신경 꺼.”
“역시 넌 재수 없는 놈이야.”
“그거 요새 내가 누구한테 자주하는 말인데… 간다.”
진무앙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혼자 남은 강석초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낭랑한테 말을 해줘야 하나…… 그랬다가는 나중에 무앙이 내 목을 비틀려고 할 건데……. 하지만 말 안 하고 있다가 이 낭랑이 알게 되면…… 으으으……. 어떻게 해야 하나…….”
안타깝게도(?) 그는 결정장애에 빠졌다.
* * *
대로를 사이에 두고 수향루를 마주 보고 있는 객잔의 이층 창가.
중후한 풍모의 중년인과 문사풍의 미남자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주신언과 사마무룡이었다.
수향루에 눈길을 주고 있던 사마무룡이 맞은편의 주신언에게 말했다.
“주 대협, 그자는 통 밖으로 나오질 않는군요.”
주신언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서 더 의심스럽지 않은가, 사마 공자?”
“그렇긴 합니다. 비룡무관 참사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자주 밖으로 나왔다고 들었으니까요. 행동이 바뀌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법이죠.”
“진무앙이 진가장과 비룡무관에서 일으켰던 소동을 보면 그가 범인일 가능성은 구 할 이상이네.”
“저도 동감입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그가 수향루에 있는 걸 목격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인피면구가 있으면 그런 조작은 어려운 게 아닐세.”
“하지만 그 정도로 정교한 인피면구는 부르는 게 값일 만큼 비싸고, 설령 돈이 있다 해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아쉬운 건 곡은설과 위명신의 행방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들을 찾으면 진무앙의 살인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 텐데, 어디에 숨었기에 무림맹과 본가의 제자들이 아직도 그들을 찾지 못하는 것인지…….”
주신언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가 말했다.
“참 묘하단 말이야…….”
사마무룡이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뭐가 묘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진무앙, 그자가 낙양에 온 시점이 묘하다는 말일세.”
주신언이 말을 이었다.
“그가 수향루에 모습을 드러낸 날 북망산 아래 작은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네. 그 며칠 후에는 북망산에서 혈사당주를 비롯한 정예살수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또 그 며칠 뒤엔 향산과 비룡무관에서 대참사가 일어났네.”
“사건에 연관성이 있습니까?”
“없네, 지금까지는.”
“그런데도 그리 말씀하시는 이유가?”
“사건 관련 서류에 공통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시간을 전후로 죽립을 쓴 장신의 사내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일세.”
“그가 진무앙이라고 의심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죽립을 쓴 장신의 남자라는 사람들의 진술만으로 그를 세 사건의 범인이라 지목하는 건 무립니다.”
무림맹과 사마세가는 무림의 공도를 지키는 존재였다.
증거도 없이 단순한 의심만으로 진무앙을 연쇄살인범으로 몰았다가는 세간의 지탄을 받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들이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걸 내가 모르겠는가, 하하하.”
너털웃음을 터트린 주신언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을과 북망산의 살인 사건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조사를 해볼 생각일세. 둘 다 조사가 부실하게 이루어진 것 같거든.”
“천민들이 사는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이니 관부에서 깊이 있게 조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북망산 사건은 낙양 분타에서 조사한 거 아닙니까? 그것까지 부실하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주신언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받았다.
“살해당한 자들이 혈사당의 살수라는 보고를 받긴 했네만, 난 부분타주에게 맡기고 크게 관심이 갖지 않았네. 매 부분타주는 능력 있는 친구니 알아서 잘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세.”
낙양 분타주가 직접 조사하기엔 혈사당의 이름값이 너무 약했다.
그리고 무림맹 낙양 분타의 이인자인 철장(鐵掌) 매곤은 장법의 일류고수로 하남성 남부의 무림명가 매가장의 후예였다.
혈사당 사건 조사를 하기엔 그도 차고 넘치는 명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매 대협은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한 겁니까?”
주신언은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도 살수들 따위가 죽은 사건에 큰 관심은 없었던 것 같네. 보고서의 내용이 부실했거든. 아무튼 이번 사건이 일어난 뒤에 그가 올린 보고서를 다시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
“어떤?”
“매 부분타주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날의 전후에 북망산을 오른 사람들을 모조리 조사했네. 하지만 혈사당이 당주인 사귀까지 나서서 노릴 만한 거물은 찾을 수 없었네.”
“음…….”
“그들이 비록 고수 소리를 들을 만한 자들이 아니라 해도 사귀를 포함 여덟 명이나 되었네. 적지 않은 숫자지. 그런 그들을 몰살시키려면 최소한 일류고수 이상의 무공을 가져야만 하네. 하지만 당시의 북망산에 그럴 만한 강호명숙도 목격된 바가 없네.”
“발견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까?”
“하나가 있긴 했네. 살수들이 몰살당한 장소 부근의 동굴 속에 죽어 있던 노인의 부패한 시체가 발견되긴 했네. 그래서 궁금해졌지. 혈사당은 왜 북망산에 몰려갔을까? 그리고 그들을 몰살시킨 고수는 누구일까? 그는 왜 그들을 죽였을까? 또 죽은 노인은 누구일까?”
사마무룡의 눈에 흥미로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재미있군요. 저도 조사에 참여시켜 주십시오.”
“당연하지. 자네는 조사대의 부대장이 아닌가.”
그들은 다시 수향루로 눈길을 돌리며 술잔을 들었다.